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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자 by 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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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마다 호박과 박쥐 장식이 가득하다. 여느 때처럼 할로캣이 명절을 알리고 꼬맹이들은 저마다 사탕 바구니가 있다. 거리엔 은은한 단내와 구운 과자의 버터 냄새가 난다.

아롱거리는 주황빛들 사이로 유령 분장을 한 이반과 꼬맹이들 줄 사탕 바구니만 손에 든 백사도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고 있었다. 이반은 31일이 되기 전에 백사가 집에 돌아와서 할로윈을 같이 보낼 수 있었던 게 좋았던지 약간 들뜬 것 처럼 보였다.

백사도 연인의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고 살며시 미소 짓고 있었지만

눈두덩이를 검게 칠한 흰 천 아래로 다리가 보이지 않았다.

연인과의 한가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어야 할 시간이었을 텐데, 백사는 불안함을 숨기는데 온 체력을 쏟고 있었다. 손안에 들이차는 것이 찬 바람인지 식은 땀인지 시렸다. 혹시나 피곤해서 그런 건지 몇 번이나 곁눈질로 확인해 보아도 다른 게 없었다. 백사는 혹여나 이반이 자신의 불온한 거동을 눈치채진 않을지 조심스레 눈을 마주쳤다.

천 너머로도 느껴지는 갸웃하는 몸짓과 의아한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백사는 별것 아니라며 너스레를 떨고 다시 길을 걸었다. 슬쩍 잡은 천 너머의 손아귀가 익숙한 온도와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아, 할로윈. 모든 성인의 날 전야제. 죽은 영혼과 정령, 온갖 자질구레한 요사스러운 잡것들의 날. 백사는 옆에 있는 존재가 한때 죄인의 영혼이었음을 통감했다. 하지만 그게 다 어쨌단 말인가. 이반이 어떤 존재였던 간에 자신이 사랑하게 된 상대였다. 그러기 위해 이반이 생을 이을 의지를 놔버리지 않게 지지해준 시간과 인내가 있었다. 백사에게는 계절적으로 불안정한 마력의 흐름에 따라서 잃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백사는 자기 몸 하나만 챙기면 됐었던 불멸에 가까운 삶을 아주 오랫동안 살아왔다. 백사의 세상엔 혼자 뿐이었고 백사의 의지대로 세상을 주무를 수 있었다. 한 번을 죽고 우연찮게 다음 기회를 얻었을 때 백사는 유약한 인간의 삶을 살며 그제야 사랑하는 법과 행복을 깨우쳤지만, 동시에 처음으로 타인의 공포를 이해하게 되었다.

사고가 일어난다면, 병에 걸려서 아프다면,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길을 잃어버린다면, 누군가에게 해코지 당한다면, 납치를 당한다면, 천재지변에 휘말린다면, 지나간 일을 후회한다면, 어느 날 사라져 버린다면, 언제라도 마음을 바꾼다면. 세상 모든 것들이 자신이 통제하고 제어할 수 없는 요소였고, 심지어 이반 자체 마저도 그랬다. 타인은 백사가 언제든지 굽힐 수 있는 손가락이 아니었다.

백사는 이반을 덮은 유령을 벗겨내고 싶었다. 얼굴을 확인하고 무사한지 알고 싶었다. 너머에 있을 어두운 보라색 눈동자를 보고 안도하고 싶다. 하지만 섬뜩, 어떤 금기를 떠올린다.

대신 백사는 이반의 손을 잡으면서 조금 더 다정하게 말을 했다.

혼자 왔었으면 이런 부산스러운 축제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그래도 이반이 좋아하는걸 보면 기뻐. 해가 지니까 날도 춥고 하늘도 어두워지니깐 이제 집에 돌아가자. 이반 보고 싶어.

이반은 대답하지 않고 조금은 아쉬운 듯 맥 빠지는 소리를 내다가 백사에게 손을 내민다. 이반의 손은 백사보다 아주 조금 더 따스하고 백사의 손과는 다른 위치에 굳은살이 있다. 백사는 소심하게 손가락끝을 만지작거리다가 자연스럽게 깍지를 끼는 손을 부드럽게 감쌌다.

가는 길에 백사는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바람은 싸늘하고 짙은 감색의 하늘에 은은한 주홍빛 언저리와 별들이 반대편 가장자리부터 쫑쫑 붙어있다. 돌아오는 길, 두 명의 발소리와 가을 풀벌레 소리만 마을 구석 어드메로 잦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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