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주원

도깨비 불

자컾 로그 / 도윤주원 / 도깨비 AU

눈을 감았다 뜨니 내가 보였다. 눈도 감지 못한채 칼에 맞아, 그가 그러했듯 나 역시 내 뒤를 잇게 하기 위해 키운 아이의 품에 안겨 나는 죽음을 맞이했다. 심장에 꽂힌 검은 아프지 않았다. 이미 죽어서 고통을 못느끼는 것일까. 살면서 늘 들고다니던 것은 혼이 되어서도 한몸처럼 지낸다는데 매일같이 당신을 그리워하며 읽던 편지가 손에 들려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제 죽는걸까. 죽어서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는걸까. 한방울씩 떨어지는 빗줄기를 맞으며 저승사자를 기다렸다. 나는 죽은게 아니라 죽는 중이었던건지 저승사자는 5분쯤 뒤에 도착하였고 내 이름 석자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귀를 의심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서도윤. 본인, 맞으시죠."

의문문도 아닌 감탄문도 아닌. 평범한, 그래. 마치 당신같은 말투와 목소리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보아선 안될 것을 보았다. 어째서, 어째서 저승사자가 당신의 얼굴을 하고 있는걸까. 실없는 농담을 하며 나를 데려가려는 당신을 보니 있으니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를 신이라는 작자에게 화가 났다. 나를 이리 불행하게 만들었다면 그만큼은 편안하게 해주었어야지. 죽어서도 편하지 못한 당신을 보며 나는 화를 참지 못하였고, 내 혼은 집념이 되어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게 주었던 편지에 깃들었다. 물처럼 푸른 도깨비불이 주변을 휩쓸었고 눈을 뜨니 나는 당신의 무덤 앞이었다. 당신에게 쓴 편지는 당신과 함께 이 아래에 묻혀 이미 썩어 없어졌겠지. 당신과 내가 한번도 말하지 못한 사랑이란 것은 이제 내 손에만 남아있었다. 당신이 죽었을땐 그리도 늦게 오던 소식이 벌써 도착한 것인지 나의 집은 이미 초상집이었고 나는 조용히 내 방으로 가 당신에게 썼던 많은 편지들을 들고 집을 나왔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할까. 살아있는게 맞긴 한걸까. 나는 무엇일까. 당신에게 쓴 편지와 당신이 내게 남긴 마지막 편지만을 쥔채 나는 하염없이, 정말 하염없이 걸었다. 하루를 걸으니 한양을 벗어났고 나흘을 더 걸으니 이름 모를 산에 도착했다. 길 잃은 나무꾼을 집으로 돌려보내주기도 하고, 남의 밭을 도둑질하는 심마니를 내쫓기도 했다. 강가에 이르러서는 물살때문에 건너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하였고 그렇게 하염없이 돌아다니며 무엇을 찾는지 무엇을 피하는지도 모를 세월을 살았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니 나라가 바뀌어 있었지. 나라가 바뀌고서야 조금 정신이 들어 평범한 사람인양 시장을 거닐다 또 당신을 보았다.

검은 도포에 검은 갓 그리고 검은 짚신. 그때와 별 다르지 않은 차림의 당신을 보고 나는 걸음을 멈추어 뒤를 돌아보았다. 당신 역시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뒤를 돌아보았고 갓을 벗었다.

"그때 사라진 망자? ...이젠 망자가 아니군."

"...그때 그 저승사자군. 그땐 신세 많이 졌어."

"괜찮아. 나도 망자가 도깨비가 된건 처음봐서. 도깨비의 삶은 어때?"

"지루하고 원망스럽지."

내가 알던 당신이 아님에도 당신은 당신이기에 설렘이 주체되지 않는다. 이 좋은 날 좋은 시간에 누구의 방해도 싫어서 지나가는 악인의 발을 걸어 넘어트리자 그는, 당신은 도와주는 도깨비는 몰라도 이러는 도깨비는 처음 듣는다며 웃었다. 그리고는 바쁘다며 갈 길을 가는데 나는 바보같이 또 당신을 놓치고 말았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렇다면 그때를 위해 모든 준비를 해놓자.

그렇게 제벌이 되어 나를 대신해 회장직에 앉을 사람을 구해 곁에 두며, 나는 지금까지 당신을 기다려왔는데... 그런데 이렇게 당신을 만날줄이야. 그는 지금까지 나와 함께해온 누구보다 나를 아껴주었었다. 그런 그를 보내는 오늘, 마치 자리를 바꾸듯 당신을 만났다.

"또 보네. 도깨비."

"그러게. 저승사자."

당신을 잃었던 그날만큼은 아니지만 참 많이 울던 그 날, 당신을 다시 만났다. 마치 그날 당신을 돌려받은 것 같아서 더욱 눈물이 났고. 저를 보고 더 서럽게 우는 내가 어떻게 보일지는 상관없었다. 그저, 당신을 붙잡고 싶었을뿐. 당신이 그를 인도하고와서 나를 달래주자 그때 달래줬어야지 하며 나도 모르게 화가 났지만 참았다. 당신이지만 당신이 아니니까.

"저승사자는 먹고 자고 쉬어야한다는데, 내가 마침 적적해서 그러는데, 같이 살지 않을래? 방세는 안받을게."

"내가 잘생겨서 데리고 살려는건 아니고?"

"그것도 맞아."

괜시리 농을 주고받으니 마음이 한결 풀려 나도 모르게 울다가 웃어버렸다. 이러면 털 난다는데.

"그러다 엉덩이에 털나."

같은 생각을 했는지 가볍게 핀잔을 주는 당신을 보며 우리가 평범히 사랑했다면 이런 날들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어 다시 울음이 났다. 숨이 넘어가라 울던 방금과 달리 뚝 뚝 한방울 한방울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하는 빗방울처럼 울자 당신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뭐야. 나 왜 울어 도깨비?"

"몰라. 근데 같이 울자. 나 너무 슬퍼. 같이 울어줘. 그는... 지금껏 누구보다 날 가장 많이 돌봐준 사람이었어. 다른 이들은 다 삼촌이엇다 아들이었다 조카였다 손자가 됐었는데 그만큼은 늘 나를 손자 대하듯 대해주었어."

"그만 말하고 울기만 하자. 듣고 있으니까 더 울컥해."

"그래. 그냥 울자 우리."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