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사X사탄 AU
자컾 로그 / 도윤주원
교황이 지배하는 계급사회에서 추앙받는 직업 중 하나인 성기사. 탁월한 성력을 타고나야하며 그와 동시에 근력도 단단히 길러야하는 직업. 그리고 그 중에서도 성검을 뽑은 도윤은 기사단의 단장을 맡고 있었다. 단장이 죽으면 그의 무덤 옆에 꽂혀 다음 단장이 될 사람만이 뽑을 수 있게 된다는 성검을 뽑은 어린 도윤은 빠르게 성기사의 길을 걸었고 그 외의 것은 그에게 있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기사라고해서 무작정 딱딱한 것도 아니고, 기본적으로 하나의 종교를 가지고 살아가는 나라다보니 도윤은 같은 종교를 가진 그들에게 상당히 상냥하고 좋은 기사단장이었다. 그래서 도윤은 기사단장이라는 위치와는 달리 탐문같은 임무도 자주 수행했는데, 이번에 내려온 시골 역시 탐문을 위해 내려온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사람이 하나 둘 죽어가고 있는 마을. 사체들은 하나같이 심장이 없어서 사탄의 짓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어 도윤이 탐문을 위해 내려가게 되었다. 내려가는 마차 안에서 도윤은 그 마을에 대한 정보지를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몇 가구 살지도 않는 작은 마을. 수입은 주로 과수원에서 열리는 사과로 얻고 있으며 과수원은 마을 공동이 하나, 큰 지주의 것이 하나 이렇게 총 둘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 적은만큼 성당도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고 한다. 특히 제대가 훌륭하여 가끔 일부러 이곳으로 미사를 보러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도윤은 자잘한 것들을 훑어 넘기고 중요한 사건에 대한 내용을 읽었다.
해마다 마을 사람이 한 명씩 죽고 있는 사건. 사체들은 하나같이 심장이 없었으며 사건은 항상, 마치 그리스도를 향한 모욕이라도 되는듯 크리스마스에 발생했다. 올해 크리스마스까지는 아직 기간이 꽤 남았지만 교황께서는 탄신일에 발생하는 사건인만큼 빠르게 해결하고 싶으신 눈치였다.
"하긴 그게 아니면 나를 보내실리도 없지."
도윤은 말했듯 백성들에게 상냥한 성기사였다. 그만큼 얼굴이 많이 알려졌음에도 도윤을 선택한다는 것은 차라리 범인이 도윤의 얼굴을 보고 이번 탄신일에는 사건을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상당히 근시안적인 생각도 포함되어 있으리라. 도윤은 짧게 한숨을 쉬고 자료에 불을 붙여 철통 안에 집어 넣었다. 마을까지는 앞으로 이틀은 더 달려야한다. 지금까지 밝혀진 거라고는 모든 피해자가 심장이 없었다는 것과 사건이 매년 크리스마스에 일어난다는 것 뿐이라니. 이건 사실 유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도윤은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눈을 붙였다.
도착한 마을은 생각보다 훨씬 작았다. 마을이 보이는 언덕부터는 마차를 돌려보내고 직접 걸었음에도 마을을 한바퀴 둘러보는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갈 곳은 역시 성당이겠지. 마침 저녁 미사를 드릴 시간이니 들어가서 기도를 올려야겠다 생각한 도윤은 성당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훨씬 웅장한 성당 내부에 할 말을 잃고 가만히 서있었다. 벽이 아주 얇기라도 한 듯 성당의 내부는 겉에서 예상한 것의 두배쯤은 되었다. 단촐하지만 갖출건 다 갖추었다니, 틀린 말이었다. 웬만한 대도시의 성당과 비교해도 부족함 없는 크기와 웅장함 그리고 깔끔함에 도윤은 급히 성수를 찍고 성호경을 그은 뒤 성당 안을 구경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노을은 가지각색으로 성당 안을 채웠고 압도적인 크기의 샹들리에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흔들렸다. 왜 일부러 이곳까지 와서 미사를 보는지 알겠다는듯 도윤은 자리를 잡고 앉아서 성호를 그은뒤 기도를 올렸다. 아니 올리려 했다. 누군가가 말을 걸지만 않았다면.
"처음보는 얼굴이네요. 이 마을에는 처음이신가요?"
그 목소리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종교국가인 자신의 나라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마치 지독히도 아름다운 폭군의 것처럼 도도하고 위협적이었다. 도윤은 감은 눈을 뜨고 모았던 손을 풀고는 습관적으로 칼자루를 만지며 말했다.
"네. 교황청으로 돌아가던 길에 지쳐 며칠 쉬기 위해 왔습니다. 당신은... 이 성당의 신부님이신가요?"
신부복을 보고 나서야 칼자루에서 손이 떨어진 도윤은 의례 그렇듯 다정한 미소를 보이며 신부로 추정되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니, 누가봐도 그는 이곳을 관리하는 신부였다. 그 위에 누가 주임신부로 있을 수 있을까. 그 아래 보좌신부만 셋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그는 꽃처럼 처연했고 아름다웠고 성스러웠다. 고개를 끄덕이는걸 보며 도윤은 저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마치 하느님의 것이라도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대를 정리하며 제게 무어라 말했지만 그것은 하늘의 언어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멍하니 자신을 보는 도윤을 보며 이런 시선이 익숙한지 빙긋 웃은 신부는 했던 말을 반복했다.
"이곳의 주임신부 주원 미카엘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보좌신부님도 수녀님도 안계시는 작은 성당인만큼 제가 대부분의 일을 하고 있죠. 당신은... 성기사인가요?"
"... 아, 아. 네. 성기사 도윤 토마스라고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임무를 마치고 교황청으로 돌아가던 길이었구요."
알 수 없는 웃음을 짓는데도 경계심이 들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었다. 도윤은 둘 뿐인 이 시간이 계속되길 원했지만 하나 둘 사람들이 저녁 미사를 드리기 위해 성당으로 들어왔다. 하나둘 채워지는 사람들을 보며 예전에는 마치 자신이 신부라도 된 듯 뿌듯함을 느꼈다면 오늘은 이유모를 원망감이 쌓이니 이상했다. 모든게 이상했다. 이 성당을 들어왔을 때부터 모든게 이상하게 돌아갔다. 생각은 이어지지 않고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질듯 쿵쾅거린다. 계속해서 신부님 뒤의 십자가가 아닌 신부님을 보게 되고 신부님의 말씀이 다른 나라의 언어인양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상했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
기계적으로 미사를 치루고나서 도윤은 한동안 그 자리에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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