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월

노을

자컾 로그 / 랑월 고록

노을이 지고 있어요. 네모반듯한 창문 너머로 붉은 햇빛이 들어와 여관 안을 밝히고 있죠. 그 빛은 너무 강해서 앞서가는 당신의 한쪽 얼굴을 모두 가려버렸어요. 반밖에 보이지 않는데도 붉은 농르 속 당신의 머리칼이 반짝이면서 더욱 예쁘게 빛났어요.

"아, 장미다."

내 발걸음이 멈추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본 당신 주변에 예쁜 장미꽃이 만개해있었어요. 그게 너무 예뻐서. 당신이 너무 예뻐서.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려서.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당신에게 속마음을 말해버렸어요.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의 나는 세상 앞에서 한없이 작고 또 모든 게 무서운 아이였어요. 다른 이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그들의 얼굴도 못보고 땅만 보는 겁쟁이였죠. 그건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였어요. 얼굴을 보지 못하고 그저 잠시 본 당신의 머리칼만 내 기억에 남았죠. 와인을 떠올리는 붉은 머리카락. 우리나라에 오면 참 환영받겠구나. 딱 그 정도의 생각과 나보다 큰 당신에게서 느껴지는 막연한 무서움뿐이었어요.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으러 나가고, 산책을 하면서 당신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형을 떠올리게 했던 당신은 알고 보니 누나를 더욱 닮아 있었죠. 보잘 것 없는 나를 챙겨주고, 예뻐해주고, 내 어리광을 받아주었죠. 누나를 닮은 당신은 내게 점점 더 큰 의미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그 꽃을 줬어요. 리시안셔스의 꽃말 찾아보았나요? 변하지 않는 사랑이래요. 긴 시간을 사는 우리인 만큼 영원을 약속하는게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고 있어요. 하지만 어리석을래요. 당신이 허락해준다면 나는 영원히 당신을 사랑할거예요.

"어떤 너라도 다 좋으니까."

기억나나요? 당신이 해준 말이에요. 나도, 나도 당신을 좋아해요.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해요. 그래서 노력하는거예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회사 분들이 아니어도 많은 분들을 만날 거예요. 고백은 아이가 하는 거고 어른은 유혹을 한다잖아요. 좀 더, 그래요 마치 당신처럼 멋진 사람이 되어서 당신을 유혹하고 싶었어요. 내가 당신에게 빠진 만큼 당신도 내게 빠져줬으면 해서, 내가 당신에게 내 모든 것을 줘버린 것처럼 당신의 모든 것이 욕심나서. 그래서 노력했었는데….

나는요. 당신을 사랑해요.

당신이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이에요.

지독한 욕심이 나를 뒤흔들고 세상으로 밀어 넣고 있어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월터씨… 사랑해요."

그랬는데. 분명 그랬는데. 아마 후회할 거예요. 당신이 나를 피하고 어색해하면 오늘을 미친 듯이 후회할 거예요. 하지만 지슴의 당신이 너무 예뻐서. 그래서 말할 수 밖에 없었어요.

"미안해요…. 사랑, 하고… 있어요…. 답을, 달라고… 안해요. 하지만, 하지만… 그냥… 알아만, 주세요….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미안해요…. 사랑해요, 월터씨."

아니라 다를까 눈 앞의 당신이 흐려져요. 차오르는 눈물은 고이고 고여서 노을이 물은 뺨을 따라 흘렀어요. 울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말하고 싶지도 않았는데. 나는 그저 주저 않으며 끊임없이 당신에게 사랑을 고백했어요. 아주,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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