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제목 뭐라고 하지)
자컾 로그 / 도윤주원
처음 형을 본 날을, 나는 아직 잊지 못하고 있어요.
운동선수의 몸을 디자이너 선생님들이 좋아한다는건 알고 있었어요. 선수 생활을 할 때도 몇 번이나 초대장이 왔었으니까요. 은퇴를 하면 그런 관심들은 다 사라질줄 알았는데 매번 초대장을 보내주시던 선생님께서 직접 초대장을 주셔서 감사한 마음으로 쇼에 참석했죠.
패션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또 몇 선생님들을 제외하고는 브랜드도 몇 개 알지 못해서 그저 감사한 마음 하나만 가지고, 선생님께서 주신 사랑에 답하고자 쇼에 참석했죠. 처음 대회를 나갔을 무렵부터 저에게 옷을 보내주시고 또 관심을 주시던 선생님이었지만, 선생님의 옷은 선뜻 입기 겁났어요. 막상 입으면 맞춘 듯 잘 어울렸지만 걸어놓으면 난해하다 할 수 있는 디자인이었으니까요.
그 날도 하나둘 무대 뒤쪽으로 향하는 모델들을 보며 ‘힘들겠다.’, ‘선생님 이번에도 모델 잘 뽑으셨네. 귀신이셔.’ 따위의 생각을 했죠. 그런데 그들 사이에서 형의 얼굴을 보았을 때, 거짓없이 나는 형의 얼굴 뒤에서 빛을 보았어요. 그걸 뭐라고 하더라. 아무튼 빛을 보고 나는 넋이 나갔어요. 모델인지 스텝인지 아니면 모델의 매니저인지도 모른채 그렇게 형을 보내고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내 자리에 앉았어요.
런웨이의 바로 앞자리. 모델과 함께 사진이 찍히는 곳. 눈치 없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그 자리가 의미하는게 무엇인지 모를 정도는 아니었기에 최대한 정갈하게 앉아서 쇼를 볼 준비를 했어요. 그러면서도 런웨이 뒤쪽을 나도 모르게 힐끗거렸죠. 혹시라도 아까 얼굴을 봤던 그 사람이 관계자여서 얼굴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하지만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아까 본 것들이 아니었죠.
객석의 조명이 어두워지고 스포트라이트가 무대를 비추며 쇼가 시작되었어요. 선생님께서 짧게 쇼에 대해 설명해주셨고 첫 모델이 나오는데, 그게 형이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의 형은 정말, 인간을 초월한, 그래. 마치 대천사의 강림을 보는 것 같았어요. 한걸음 한걸음이 자연스러우면서도 우아했고 그 고고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였죠. 내 귓가에는 성당의 종소리가 들렸고 심장은 그것보다 몇배로 크게 뛰었어요. 맞아요. 나는 그 때 형을 처음 봤을 때, 그 때부터 형을 사랑했어요.
너무 넋을 놓고 있어서일까요. 옆에 앉았던 다른 셀럽이 제게 귀띔을 해주었어요.
“멋있죠? 이주원이라고 유명한 모델이에요. 저 사람을 자신의 무대에 세우기 위해 혈안인 디자이너가 줄을 섰어요.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숱하게 오니 더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죠. 지금 시대의 슈퍼 모델을 뽑으라 하면 다들 망설임없이 그를 뽑을거에요.”
이주원. 어떻게 이름까지 멋있지. 홀린 듯 형을 보는 것도 잠시 형이 무대에서 사라지자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모델들을 보는데, 들어간지 얼마나 됐다고 형이 다시 무대 위에 올라왔어요. 아까와는 다른 옷을 입었지만 그 완벽함은 다르지 않았죠. 이제와 고백하는건데 그때 형을 보느라 다른 모델이 누가 있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쇼의 끝이 아쉬운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감사 인사를 하기위해 무대에 올라오신 선생님이 야속할 정도로 나는 그 쇼가 영원하길 바랐어요. 몇 번이고 형을 보며 얼굴이 새빨개졌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또 볼 수 있을까, 또 보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마무리중인 무대 뒤로 갔죠.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
“그렇게 러브콜을 보냈는데 은퇴하고 나서야 와?”
선생님은 장난스레 제 옆구리를 찌르셨고 저는 웃으면서도 눈은 형을 찾았어요. 사방에서 쏟아지는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따위의 인사 속에 혹시 형의 목소리가 있는걸까 거의 혈안이 되어있었죠. 그런 저를 보고 선생님은 그저 웃어주기만 하셨어요.
“너 지금 주원이 찾지?”
“네. …네? 어떻게 아셨어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다 써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정도였다니. 놀라서 토끼눈으로 선생님을 보니 다 아신다는 얼굴로 형이 어디 에이전시 소속이고 다음 쇼는 무엇인지, 그리고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최고의 화보는 무엇인지도 알려주셨어요.
“아무리 찔러도 패션에는 관심도 없더니- 선생님은 아쉬워 도윤아.”
“죄송해요. 그치만 제가 선생님 많이 좋아하고 또 감사하는거 아시죠?”
“그걸 몰랐다면 알려주지도 않았어-”
집에 가서 찾아볼 형의 화보를 정리하는데 저 멀리서 고고하게 밖으로 나가는 형을 봤어요. 무대에서는 일하는 중이라 그런줄 알았는데 무대 아래에서도 형은, 정말. 너무 멋있었어요. 그날 무대에서 봤던, 그리고 그 아래에서 스치듯 보았던 모습들에 나는 처음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샜어요.
그렇게 몇 번이고 형의 쇼를 찾아봤고 또 집에서는 화보와 인터뷰를 찾아봤어요. 다정하지만 어딘가 짓궂은 모델. 스무살부터 시작한 모델이라는 직업은 천직인지 승승장구했고 지금은 누구에게나 슈퍼모델이라고 불리는, 말 그대로 천재. 나는 예술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지만 형이, 형이 입은 옷이, 그리고 형이 일하는 그 순간들이 너무나 아름답다는건 알 수 있었어요.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나는 빠져들었고 어느새 형의 쇼를 찾아가는게 내 일정이 되어 있었죠.
그래서 처음 형을 만나게 해줄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더 이상 바라는게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행복했고 또 믿기지 않았어요. 자리를 마련해주신다는 분께 충분히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그 날부터 하지도 않던 피부관리나 관리운동을 빡빡하게 잡았죠.
“반갑습니다. 이주원이라고 합니다.”
“바, 반갑습니다. 서도윤, 이라고.. 합니다.”
처음 올림픽에 나갔을 때도 이것보다 떨리진 않았는데. 티나면 어떡하지. 그래서 부담스러워서 괜히 나왔다고 후회하시면? 나는, 나는 지금 그냥. 계 탄, 그래. 성덕일 뿐이야. 나는 성덕이다. 성덕이다.
몇 번이고 목소리가 떨렸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척 형과 식사를 이어갔어요. 다행히도 큰 실수 없이 무난하게 대화는 이어졌고 끝까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거의 끝나갈 때 즈음 형과 눈이 마주치고 그리고 형이 웃어줬을 때, 꾹꾹 눌렀던 마음이 펑 하고 터지며 얼굴을 붉게 물들였어요.
“죄송해요.. 그게.. 그러니까.. 만난게 꿈만 같아서.”
팬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게 꿈만 같다고 표현할 수 있나? 있겠지. 형도 그렇게 생각하면 좋을텐데. 티가 전혀 안나지는 않았어도 많이는 아니었기를. 그날 집으로 걸어가며 얼마나 바라고 또 바랐는지 몰라요. 누군가를 보고 마음이 뛰고, 행복해지고. 받은줄 몰랐다 하더라도 주는 것 만으로도, 그저 사랑하는 것 만으로도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걸 나는 형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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