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
자컾 로그 / 도윤주원
살면서 처음으로 도윤은 사람이 예민하다는게 어떤 것인지 체감하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작게 시작된 어깨 통증은 점점 커져 이젠 옷을 갈아입는 것조차 힘들었다. 통증은 선수에게 예민한 문제였다. 게다가 수영선수가 어깨 통증이라니. 사라지지 않고 저를 계속 괴롭히는 통증에 도윤은 처음으로 예민한 상태가 되었다.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선수 생활을 계속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라지지 않는 아픔은 사람을 예민하고 지치게 만들었다.
"어깨충돌증후군입니다. 치료를 하시면 일상생활이나 일반인 수준의 운동은 가능하지만, 선수생활을 계속하시긴 힘듭니다."
처음에는 치료 가능성에 기뻐했다. 나을 수 있다.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 하지만 어느정도 통증에서 벗어나자 내려와야하는 선수의 삶이 자신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도윤에게 선수생활은 빛나는 삶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빛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인생 그 자체였다. 언제나 물 속에서 수영을 했고, 대회를 나갔고, 연습을 했다.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물살을 가를 수 있는지, 자신의 잘못된 습관은 무엇인지 찾아가고 고치는 것이 지금껏 도윤이 살아온 삶의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더이상 그렇게 많이 물살을 가르면 안된다니. 이젠 물 밖에서 살아야한다니. 막막했다. 말 그대로 물 밖에 던져진 물고기가 된 것처럼 매마름이 그의 모든 것을 지배했다.
은퇴 인터뷰를 했다. 부상으로 인한 은퇴. 익히 알려졌던 과한 연습량. 예상했냐는 기자의 질문.
언제나처럼 성실하게 대답했지만 평소라면 물 속에 있을 시간이었다. 땅이 두 발에 붙어있다는 것만으로도 약간의 멀미가 느껴졌다.
수영 금메달리스트 서도윤은 그렇게 22세의 젊은 나이에 수영계에서 은퇴하게 되었다.
은퇴하기 전의 치료를 제외하고 도윤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았다. 제 집에 누워 멍하니 일렁이던 물살만 떠올렸다. 물살에 일렁이지 않는 빛이 도윤은 너무나 어색했다. 두 발을 단단하게 밀어내는 땅이 어색했고, 따로 호흡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제 몸속들 드나드는 공기가 어색했다.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이대로 치료해도 더이상 물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이젠 이 어색하고 단단한 땅에서 살아야한다는 것이 끔찍했다. 사실 자신은 물고기가 아니었을까. 인어라는 별명이 사실 제 진짜 이름이 아니었을까. 바깥의 풀벌레 소리와 함께 들리는 것은 에어컨의 기계음 뿐이었다. 더이상 시원하고 일렁이는 물은 그에게 없었다.
사람과 말을 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날 무렵, 문득 든 외로움에 도윤은 TV를 켰다. TV에서는 세계적인 패션쇼에 서게 된 한국 모델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화면 속의 사람은 이질적인 땅을 당당하게 박차고 앞으로 나아갔다. 입은 옷을 빛내면서도 스스로의 빛을 잃지 않았다. 서있는 것만으로도 멀미가 나는 이 땅을 저렇게 멋지게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니. 그 대단한 모습에 죽어있던 도윤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모델 이주원. 이미 세계적인 모델인 그가 도윤은 만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단단한 땅에서 멋지게 걸을 수 있는지 궁금했다. 주원은 도윤에게 목표가 되었고 꿈이 되었다. 멋진 사람은 방황하는 사람에게 꿈이 되어주기 마련이니까. 방황하던 도윤에게 주원은 그렇게 말 그대로 스타가 되었다.
선수시절부터 꾸준히 들어오던 패션쇼 초대에 도윤은 캐주얼한 정장을 입고 처음 참석했다. 이 날을 위해 재활에 힘을 썼고 처음으로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멋진 사람을 눈으로 보는 순간에 망가져 있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만큼은 될 수 없어도 자신 역시 이 단단한 땅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그 마음은 도윤을 병원으로 이끌었다. 육지멀미를 이기고 도윤은 이렇게 멀쩡하게 1열에 앉을 수 있게 되었다.
'혹시 이 쇼에 그 모델이 서지 않을까?'
기대감이 마음을 채워갔지만 큰 기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상실을 겪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보란듯이 주원은 도윤의 시야에서 패션쇼장 뒤로 들어갔다.
아, 그 사람이다. 가장 빛나는 별.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