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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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컾 로그 / 도윤주원

HHY의 수집함 by H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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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서로 적대 가문에서 태어났다. 장관을 번갈아가며 하는 두 가문을 보며 혹자는 끼리끼리 해먹는 것이 아니냐 말할 법도 한데 이 두 가문에는 그런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 장관이 되면 그 전의 것들을 싹 갈아엎는 것이 첫 순서였으니까. 이런 가문에서 태어난 둘은 어떤 방향으로 노력해도 사랑을 이룰 수 없었다. 비밀로 해가며 몰래 만나도 누군가는 둘을 보며 수군거렸고, 당당하게 만나면 둘을 갈라 놓으려는 사람에 의해 방해 받았다. 결국 다음 생을 기약하며 최대한 적게 몰래 만나던 중 주원이 전장에 가게 되었다. 전장. 피가 마를리 없고 적군의 피 위에 나의 피가 덧씌워질 수 있는 곳. 주원과 집안의 걱정으로 진작에 검을 내려놓고 문관으로 있던 도윤은 주원이 걱정되었다. 떠나는 전날 겨우 만나 꼭 살아 돌아오시라는 말밖에 해주지 못했다. 둘 사이를 증명할 수 있는 무엇도 나눠가지지 못한 채 그렇게 둘은 헤어졌고, 그렇게 누구도 주원의 대소사를 도윤에게 전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몇날며칠을 기다렸을까. 그토록 기다리던 주원의 소식을 들었건만 도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신이 내리는 세상의 종말이라도 옅들은 사람 마냥 파랗게 질려 있었다.

[전장을 지휘하던 그 장관 있잖아. 포로로 잡혀서 고문당하다가 자결했대.]

주원의 죽음은 많은 것을 남겼다. 최대한 주원을 돌려받으려던 나라는 더이상 무서울게 없다는 듯 적들의 요세로 쳐들어갔고 결국 이틀밤만에 승전보를 울렸다. 잡힌 장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주원은 한 것이다. 살아서 돌아오겠다는 도윤의 약속은 뒤로 한 채. 그 누구도 둘의 사이를 몰랐기에 그 누구도 도윤에게 주원의 소식을 전해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미 장례까지 모두 끝나고 나서야, 남은 것이라고는 제 앞으로 남긴 것이라며 의아해하는 얼굴로 검을 전해주던 한 병사에 의해 주원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며칠을 방에 틀어박혀 울기만하는 아들을 보며 도윤의 부부는 그저 물을 제때 챙겨주라는 말만 할 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 빨리 알았고, 아들에게 전해줄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것이 제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겨우 마음을 잡고 살아가는 듯한 제 아들을 흔들리게 두고 싶지 않았는데 저리도 끝없이 우는 것을 보면 차라리 둘을 만나게 해주었어야 했나 후회도 들었다. 그리고 주원의 집안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원이 도윤에게 남긴 검은 주원의 집안에서 가보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실전에서 사용하는 장검과 생활에서 쓰는 단검 두 자루가 한 세트인데, 보통 장검은 바깥사람이 단검은 안사람이 가졌다. 그리고 그 한세트를 모두 도윤에게 주었다. 결혼하고서 5년은 지나야 주는 검을 주원은 도윤에게 주었다. 그것을 도윤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주원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그래.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얼만큼 울었을까. 더이상 주원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목이 붓고 나서야 도윤은 눈물을 멈추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곤 다시 검을 들었다. 주원이 제게 검을 주었으니 자신은 이 검을 쓸 것이다. 내려놓은지 수년이 지나 금새 전장에서 죽는다면 차라리 고맙다 생각될 정도로 도윤은 독기로 가득했다. 주인을 잃은 사냥개는 무서울 게 없었다. 보이는대로 베고 또 베었다. 제 앞을 막는다면 아군이어도 베었고 적군이라면 뒤에 있어도 베었다. 수십 수만 수천명의 피를 검에 덧씌우고 또 덧씌운 우느 날 다 끝나가는 전투에서 도윤은 자폭에 휘말렸다. 양쪽 다리가 다 날아가 움직이려면 팔로 기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안에 가득찬 분노를 표출하듯 검의 날을 잡았다. 자루는 땅에 박히면서 저 높이 있었다. 칼날은 잡기 무섭게 도윤의 손에 파고 들었지만 도윤은 그마저도 느껴지지 않는다는듯 폐허가 된 주변을 살펴보고는 소리를 질렀다. 아슬하게 걸쳐있는 죽음의 공포가 아닌 분노에서 나오는 비명이었다. 분했다. 모든 것이 다 분하고 억울해서 참을 수 없었다. 신이라는 작자가 있다면 멱을 잡고 흔들고, 뺨을 때리고, 정강이를 걷어차고 싶었다.

서로 마음껏 사모하는 것도, 같은 길을 걷는 것도, 한날한시에 눈을 감는 것도. 무엇도 할 수 없는 이 빌어먹을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도윤은 다 갈라져 피가 섞여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도윤은 보기보다 욕심이 많았다. 다음생을 약속하자는 주원에게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다음생은 그때가 되어서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지금의 행복을 주원과 나누고 싶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잘 잤는지 아침 인사를 하고, 지는 달을 보며 잘 자라고 밤인사를 하고 싶었다. 서로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고 같이 무관의 길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도윤이 원했던 것은 이번 생에서 무엇 하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분노로 가득한 비명을 들었다는 듯 하얀 나비 한 마리가 칼자루 위에 앉았다. 그리고 들리는 목소리에 도윤은 단번에 저 나비가 신이라는 작자라는걸 알게 되었다. 다음 생을 기약하지 않았느냐. 다음생? 다음생을 기약해서 제 연인은 자결을 했고 저는 두 다리를 잃은채 구해질 가능성도 없는 이 곳에 쓰러져 있는 것입니까? 차라리 그랬다면 다음생을 기약한 그 날 같이 강물에 뛰어들 걸 그랬습니다. 한 시 빨리 다음생에서 만나게. 그리고, 다음생에 만난다 하더라도 서로를 못알아본다면 그리고 지금을 기억 못하면 소용없는 것 아닙니까. 저는 현생의 저로도 다음생의 저로도 그를 마음껏 사모하고 싶은 것이지 다음생만의 저로는 도저히 억울해서 눈을 못 감겠습니다.

비유적이거나 분노에서 나오는 단순한 말이 아닌지 보통 귀신이라면 이미 성불하고 남았을 시간임에도 도윤이 가진 흉흉한 기운은 여전했다. 그 근처에는 보기 좋은 식물이 자라지 못했고 사람이 집을 지으면 얼마 못가 병으로 모두 죽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도윤은 계속해서 남의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런 도윤의 상태를 살피는 듯 신은 한참을 말없이 날개만 팔락이더니 이내 소리내어 웃었다. 좋아. 그럼 네게 영원을 선물해주마. 앞으로 사랑하게 될 모든 이를 떠나보내며 사모하는 이 하나만을 기다려보거라. 다음생에 줄 것을 미리 주는 것이니 나 역시 받는 것이 있어야하지 않겠느냐. 게다가 네가 뒤집어쓴 피는 저승의 강물로도 쉬이 씻기지 않을 것 같구나.

신은 도윤에게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주었다. 녹슨 검만이 남아있던 자리에 푸른 불꽃이 일면서 도윤의 몸이 나타났다. 감각을 익히듯 몸을 이리저리 몇번 돌려보던 도윤은 괜찮다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도윤이 검을 뽑고 저를 노릴 때까지 그 모습을 모던 신은 "마지막 선물이다. 그를 알아볼 수 있게 해주마."하는 말을 남기고는 자리를 떠났다. 자신을 베기 위해 달려드는 도윤을 비웃듯 저 높이 날아갔다.

이후 몇백년동안 도윤은 여기저기를 떠돌며 주원을 찾아다녔다. 사랑하는 가족은 이미 죽은지 오래였다. 어쩌다 그들을 닮은 사람을 만나면 초대한 오래 교류하며 도움을 주었다. 그들의 환생을 만나면 아예 대놓고 친절하게 굴었다.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채로도 가족이라는 울차리를 잘 유지하는 그들을 보면 씁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도윤은 자신의 세상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때까지는 무슨 슬픔이 와도 버틸 수 있었다. 아니지. 세상을 잃었던 그날의 슬픔에 비하면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곳에서 몇십년 저곳에서 몇십년 그렇게 이리저리 떠돌다 많이 변해버린 고향으로 돌아왔다. 먹거나 자지 않아도 죽지 않는 몸은 꽤 쓸만해서 도윤은 주원이 오면 편하게 모시겠다며 닥치는대로 돈을 벌었고 또 모았다. 그리고 현재 부자들이 산다는 동네 그 중에서도 가장 경치가 좋은 자리에 있는 고풍스러운 이 2층 집이 도윤의 집이 되었다. 사람들은 모두 도윤의 집이라 했고 서류도 도윤의 것으로 되어 있지만 도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집은 그저 강아지와 함께 집주인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근처 비탈길에 새로 생긴 찻집. 카페는 많아도 찻집은, 더욱이 이런 동네에 이런 작은 찻집은 더욱 드물기에 도윤은 안으로 들어갔다. 똑똑. 입으로 노크소리를 흉내내자 안에서 차를 우리던 사내는 놀랐다는듯 작게 어깨를 흠칫 떨었다. 푹 눌러쓴 모자는 서쪽의 섬나라 신사들이 쓰는 것과 닮았고 사내가 입은 옷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 색 뿐이라...

"이런, 죄송합니다."

제 정체를 눈치챘다는듯 도윤이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며 양 손을 머리 옆에 들자 사내는 한숨을 쉬며 모자를 벗어 탁자에 올려두었다. 그리고 그 때 도윤은 다시금 제 세상과 마주했다. 그가 무어라 말하고 있었지만 도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토록, 그토록 기다리던 주원이 제 앞에 있었다. 이건 전생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똑같은 얼굴 똑같은 말투 그리고... 저를 사랑하지 않는 눈빛. 아, 신이 말했던 받아갈 것이라는게 이것이었다는걸 도윤은 너무 늦게 알아챘다.

그곳은 평범한 찻집이 아니었다. 주원이 일하는 일터였다. 이승의 마지막 공간. 언젠가 주원도 건너갔을 그 찻집. 이곳의 한잔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데 당신은 어떤 감정과 어떤 생각으로 차를 마셨을까. 아랫입술을 깨무는 것으로 겨우 머쓱한 표정을 유지한 도윤은 그대로 어정쩡하게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가게 주인이 나가라는 말도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으니까.

도윤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은 생사를 휘저었다. 어느날은 차에 치일뻔한 유기견을 구했고 어떤 날은 완전범죄를 저지르는 범죄자를 죽였다. 어느날은 자살하려는 사람을 살렸고 어느날은 방관하기도 했다. 기준없이 생사를 마구 휘저어 일거리를 늘리는 도깨비를 좋아할 저승사자가 있을까. 찻집인척 이리 해놓으면 사람이 안올줄 알았더니 도깨비가 손님으로 올 줄은 몰랐던 주원은 한숨을 쉬고는 앉으라는듯 하나뿐인 테이블을 가볍게 턱짓했다.

저를 침입자 취급하는 연인을 보고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미 오래 전 사람이 아니게 되었지만 도윤은 우울함을 감추기 점점 힘들었다. 주인에게 혼나는 강아지마냥 욱 쳐지는 어깨와 푹 숙인 고개. 그래도 손님이라고 대접받은 차만 홀짝홀짝 마시는 모습을 보며 일터를 침범받아 불쾌해졌던 주원의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빨리 차를 마시고 돌아가 주었으면 했다. 어쨌든 자신은 만나야할 사람이었던 자들이 앞으로도 한가득이었으니까.

"저는... 도윤이라고 합니다. 서도윤."

이름을 밝히면서도 자신에게 이름이 무어냐 묻지 않는 도윤에게 주원은 제법이라는 듯 눈썹을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그것을 보았는지 도윤은 칭찬받은 강아지마냥 해사하게 웃었다. 저승사자들에게는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 기억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저 너희는 죄인이다. 죗값을 치뤄야한다. 그 두마디뿐이었다. 그런데도 먹어야하고 잠을 자야하고 살아가야했다. 저승사자로써. 기억나지도 않는 전생의 죄때무에 다른 자들처럼 새로운 삶을 받지도 못하고 이름도 받지 못한채 평생을 살아야한다니. 그 죄가 무엇일까 다들 궁금해하면서도 선뜻 알아내려하는 자는 없었다. 선례가 있다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들 전생과 그 죄에 대해선 찜찜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불쾌감 때문이었다.

주원이 이곳으로 발령받은건 도윤이 돌아오기 직전이었다. 여기까지야 우연이로 칠텐데,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던 도윤에게 찾아온게 주원이었을 때 도윤은 속으로 나즈막히 신을 다시금 욕했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풀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그저 그것을 잊을 때까지 기다리다가 마치 별거 아닌 헤프닝이었다는 듯 다시 주원과 만날 생각이었는데 그러지도 못하게 되었다. 어찌 되었든 둘은 같이 살게 되었다. 큰 거실을 놓고 고풍스러운 계산을 올라가면 왼쪽에는 도윤의 방이 오른쪽에는 주원의 방이 있는 형태였다. 로맨스 판타지 소설에나 나올법한 디자인의 집은 도윤의 취향도 주원의 취향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전 주인의 취향이었다. 주원을 사모했고 주원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주원에 대해 다 아는 것은 아니라며, 도윤은 인테리어를 고치는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저 예전에 어느날 말했던 것처럼. 볕이 잘 드는 큰 마루와 넓은 마당과 자신을 닮은 강아지정도를 생각했을 뿐. 그 이상은 전부 주원이 돌아오면 정할 생각이었는데.. 일이 어쩌다 이렇게 꼬인건지 도윤은 한숨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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