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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자 by 빼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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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리며 이것저것 수공구들이 수납된 재킷을 입은 엔지니어가 나왔다.

"안녕하세요, 수고 많으십니다."

엔지니어는 텐고쿠를 알아보았다.

"하라가미씨의 파트너분이셨군요. 방문하신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회복력이 좋으셔서 내일 바로 부품 장착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워낙에 조용하신 분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파트너가 온 걸 보시면 기뻐하실 겁니다. 들어가 보세요."

텐고쿠는 웃으면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는 엔지니어와 교대하듯 작업실 안으로 들어갔다.

하라가미는 미술실에서 봤던 토르소와 같이 흰 테이블 위에 얹어져 있었다. 하라가미의 상태 자체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명령이나 임무 외에는 잘 반응하지도 않다 보니 이런 상태에서 근 2주를 기다리기만 했다고 하는 게 다른 의미로 인간의 범주를 넘은 것 같긴 했다.

"텐고쿠."

그래도 파트너가 오자 기쁜 기색에 힘이 들어갔는지 잠깐 기우뚱했다. 텐고쿠가 놀라서 손으로 받쳐주려고 했지만 하라가미는 이런 일에 익숙한 듯 능숙하게 남은 왼팔로 균형을 잡았다.

"만나서 기뻐."

"반가워요, 하라가미씨. 아까 엔지니어한테서 듣기도 했지만 몸 상태는 어때요?"

하라가미는 텐고쿠의 눈을 빤히 바라보면서 조금 늦게 입을 뗐다.

"몸 상태는 좋아. 지루해서 그렇지."

표정도 억양도 바뀌질 않아서 정말로 지루한 것인지 잘 분간이 가지 않지만, 하라가미한테 있어서는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큰 친밀감의 표시였다. (텐고쿠도 이 사실을 깨우치는데 꽤 오래 걸렸다.)

"내 이야기는 별로 해줄 만한 게 없군. 텐고쿠의 이야기를 해줘."

"그러면... 이번 임무 엄청 험난했잖아요? 조금 다쳐서 돌아갔더니-"

유도 사범인 텐고쿠는 아이들과 있을 기회도 많아서 다양한 연령대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하라가미는 그런 일상적인 이야기라고 해도 좋았다. 가끔 대꾸하거나 다른 질문을 하는 하라가미의 낮고 잔잔한 목소리를 듣다 보니 텐고쿠의 마음도 평화를 찾아갔다.

할만한 이야기들이 끝났을 때 하라가미는 꽤 만족스러워 보였다. 감정표현이 큰 건 아니었지만 긴장이 풀린 조금 더 부드러운 표정의 하라가미는 인군의 살인 기계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과 행복을 느끼는 개인처럼 보였다. 텐고쿠는 하라가미가 이런 표정을 지을 때 그에 대한 사랑스러움을 느끼고는 했다.

"할 이야기가 없으시다 고는 했지만, 그래도 저는 하라가미씨도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요."

한 번 얼굴이 풀린 하라가미의 표정은 조금 더 읽기 쉬워졌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말에 확연히 겸연쩍은 기색이었다.

"점검한 내역을... 읊는 건 정말로 재미 없을 텐데."

으엑. 하라가미의 괴멸적인 대화 주제 선정에 반쯤은 감탄스럽고 남은 반쯤은 실망의 탄성을 뱉어버렸다. 텐고쿠의 실망을 감지한 하라가미는 조금 주눅 들었다.

텐고쿠는 하라가미가 입을 열 만한 대화 주제를 찾기 위해서 머리를 짜냈다. 돌연 아까 봤던 한 팔로 균형 잡는 모습이 떠올랐다.

"혼자 지내시면서 운동을 따로 하시나요?"

"어느 정도는. 기계인 부분과 생체인 부분을 같이 움직이는 건 둘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데 좋거든."

"헤, 아까 봤을 때 한 팔로도 균형을 쉽게 잡으시기에 신경이 좋으신 걸까 싶었거든요."

"그건..."

하라가미는 말을 불러오는 게 느린 듯이 조금 천천히 입을 뗐다.

"나름 요령이 붙은 거랄까...."

텐고쿠는 자기가 주제를 잘못 건드렸다고 생각했다.

"아... 제가 생각이 짧았었나 봐요. 기분 상하게 만들 의도는 없었어요, 하라가미씨."

"괜찮아. 그렇게 알아가는 거지."

잠깐 침묵이 흘렀다. 텐고쿠는 아직도 하라가미와 소통하는데 있어서 이런 어색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살짝 고개를 들었다가 하라가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꿰뚫는 듯한 곧은 시선은 하라가미씨 특유의 것일지 아니면 살짝 빛이 나는 듯한 인공 안구의 효과인지 헷갈렸다.

"텐고쿠."

"앗, 아, 네?"

이건 정말로 숨길 것도 없이 100% 바보같이 굴었다.

"키스해줘."

"아뇨. 그ㅔ, ㅔ? 예?!"

그리고 진짜 바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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