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자컾 로그 / 랑월
설날이라 집을 찾은 랑랑과 월터는 예전에 랑랑이 쓰던 방에 나란히 늘어졌다. 귀성길이 막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차라리 해외를 갔던 때가 나았지, 국내에서 이동하는게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줄은 몰랐다. 먼지 냄새 섞인 익숙한 장소에 랑랑은 강아지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월터는 그런 랑랑을 보다가 다정히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ㅎ, 형아... 힘들죠...."
평소보다 더욱 작고 자신 없어진 목소리와 무릎에 숨겨 저를 보지 않는 시선. 월터는 이런 랑랑의 모습이 익숙했다. 물론 언제나 당당하고 빛나길 바라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저 이런 위축된 모습도 랑랑이었고 그런 그를 온전히 사랑할 뿐이었다.
"응. 힘들어. 하지만 랑이랑 같이 있으니까 괜찮아."
동그랗게 몸을 만 랑랑을 안아주며 월터는 다정히 속삭였다. 둘이 만난지 햇수로 5년이었다. 그 시간동안 가족들을 만날 때면 랑랑의 형제들이 있는 독일이나 이탈리아 혹은 부모님 집이 있는 중국이나 캐나다를 찾았다. 그런 막내 부부에게 미안한 가족들이 이번엔 자신들이 한국에 들어온다 했다. 그렇게 랑랑의 한국 본가를 찾게 됐다.
"정말, 요...?"
예전의 랑랑이었다면 그렇지만, 그렇지만 하며 월터에게 끊임없이 미안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5년이란 시간은 길었고 월터의 사랑을 듬뿍 받은 랑랑은 더이상 월터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저 한 번 더 되물을 뿐이었다. 정말로, 정말로 나와 함께하는 것 자체가 좋냐고. 그렇게 물어오면 월터는 언제나 정말이라고 말하며 랑랑을 끌어안고 자신이 남긴 자국 위로 입을 맞추곤 했다. 언제나 사라지지 않는 목덜미의 두 개의 구멍에.
"엄마, 아빠랑... 누나, 랑... ... 형, 은. 오늘 저녁에 온대요."
시차 계산을 잘못 했대요. 하고 작게 덧붙인 랑랑은 입고 있던 니트 자락을 꼭 쥐었다. 미안함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었다. 차라리 평소에 입었던 원피스 차림이 좋았을텐데 그건 오랫동안 비운 이 집에서는 춥다며 니트'만' 입힌 제 연인에 대한, 입고 있는 것이 이 니트 하나뿐이라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나오는 행동이었다.
"그럼 그때까진 우리 둘 뿐인거네?"
랑랑은 알고 있었다. 저건 자신을 놀리는 말이다. 자신을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말이다. 저 말에 자신이 어떤 상상을 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고 있어서, 정말 할 건 아니지만 톡톡 건드려서 울먹거리게 하려고 하는 말이라는 걸. 하지만 동시에 월터라면 정말 하고나서도 멀쩡할 걸 알았기에 랑랑은 그가 원하는 반응을 줄 수 밖에 없었다.
"ㅎ, 형아...! 아, 안돼요. 그러다, 일찍... 오면, 어떡해요!"
빨갛게 익은 얼굴과 더욱더 힘주어 내려 중심부를 가리는 손. 그리고 울먹거리는 얼굴. 사랑스럽지 않을 수 없는 연인의 반응을 보며 월터는 미소를 짓고 농담이라며 그를 달랬다.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한, 여느때와 별 다르지 않고 앞으로도 이어질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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