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

[FF14/로코클랴] 타투Tattoo

나는 네 거야.

* 옛날옛적에 쓴 자컾 연성222. 얘도 손질해다가 이쪽으로 옮깁니다.

* 원래 <검은 장미>하고 쓰인 시점도 완전 제각각인데, 이제와서 보니 저 글의 화답글이 이거구나? 싶어져서. 이 아래 애를 읽고 오시면 더 좋을 겁니다. 아마도()


클라디야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늘 지나가던 길가에 눈길을 끄는 게 있어서다. 원래 빈 자리였던 곳에 간판 하나가 놓여있었다. 어제까진 없었으니 그냥 노점상처럼 선 게 아닌가 싶은데, 아니지, 그게 문제가 아니다. 간판에 쓰인 업종이 문제였다. 타투. 단어 하나만 덜렁 걸려있는 그것에 시선도 생각도 빼앗겼다.

평생을 새겨질 단어나 문구, 혹은 그림. 행복이나 안녕을, 그것도 아니면 무운을 기원하는 것.

예전이었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을 거다. 무언가를 기록하고 기원하고 남기는 것에 흥미가 없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제 숨이 끊어져 에테르 계―별바다로 돌아가기 전까지 왼손에 꽉 쥐고 붙들고 있을 이름이 있으니까. 에테르를 엮어 이어둔 반지가 있다지만 또 다른 기록을 남기는 것도 좋지 않을까. 얼핏 물에 빠진 돌고래 주점에서 누군가 타투 그거 꽤 아프더라, 하는 소리를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애시당초 전투 내내 온몸으로 구르고 깨지는 게 일인 탱커에게 바늘이 아프면 얼마나 아프겠냐 싶어 클라디야는 두 번은 생각하지 않고 노점상 문을 열었다. 물론 언약자에게 조금 늦게 들어간다고 언질을 넣어두고서.

 


로코는 너른 카우치에서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하릴없이 뒹굴대고나 있었다. 조금 전 잠시 켜졌던 링크쉘을 노려봐야 다시금 불이 들어오는 일은 없다. 한동안 일이 엇갈린 탓에 언약자 얼굴을 못 본 지가 사흘인데, 원래대로라면 삼십 분 전에 집에 도착해야 했을 바로 그 언약자 씨께서 좀 늦어질 것 같다고 연락을 넣었으니 이리 된 거다.

‘토벌은 끝났다고 했는데, 라댜 뭣 땜에 늦는 걸까.’

집안은 고요하다. 이런 때면 안갯빛 마을답게 먼 데 있는 해안선에서 밀려오고 나가는 파도소리가 어렴풋하게 들리곤 한다. 새까만 모질의 미코테는 이제 뒹굴거리는 것도 질린 듯 카우치 가장자리에 엎드린 채로 다리나 간드랑간드랑 휘적이다가, 습관처럼 불러 세워둔 에오스를 쿡쿡 찔러보거나 하며 시간을 죽였다.

아주 느릿느릿하게 지나던 시간이 엉킨 실타래 더미처럼 발밑에 쌓여 발목을 간질인다 싶을 무렵, 길디긴 기다림이 끝났다. 제 주변의 에테르가 진동한 거다. 주위를 물들이는 잘 아는 빛의 에테르가 스며들고, 로코는 이런 에테르를 지닌 자를 딱 한 명만 안다.

“! 라댜!”

“늦어서 미안! 보고 싶었어!”

벌떡 몸을 일으키면 눈을 깜빡하는 순간 나타난 클라디야가 힘껏 저를 껴안아 왔다. 며칠 만에 와닿는 품이 기분 좋다. 들이마시는 숨에 섞인 체향과 다부진 몸에서 솟는 온기를 느끼면 드디어 제 반쪽이 곁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난다. 빛의 전사로서뿐만 아니라 일개 모험가로도 험한 일을 하는 것은 피차 마찬가지이고, 그럼에도 어디 쉽게 쓰러질 목숨들이 아닌 것은 알고 있지만, 서로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둔 것이 서로가 다른 의뢰를 받고 각자 움직일 때면 일의 시작과 끝에 생존 신고를 넣는 거였고, 한 번도 어긋난 적 없는 약속이다. 이번에도 일을 무사히 마쳤고 크게 다친 곳도 없다는 연락을 받았으니, 안위에 대해 마음을 졸인 건 아니지만 역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각별히 달랐다.

그러면서도 로코는 반가움으로 마주 끌어안은 팔에 힘을 꽉 준다. 반가움과 동시에 꽁함이 치고 올라온 거다. 다쳤다는 연락이 아니었으니 초조하게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대체 어디서 딴 길로 샐 일이 있었기에 제게 연유도 설명하지 않고 귀가를 늦춘 건지. 그 점에 불만이 없다면 거짓말이 될 거다.

힘을 줬으면 얼마나 줬다고 엄살을 떤 제 언약자 클라디야는 끌어안았던 팔을 풀더니 두 걸음 거리를 벌리고서 씨익 웃어 보였다. 흡사 대형견이 주인에게 칭찬해달라고 하듯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이쯤 오면 캐묻기보다도 다음엔 무얼 하려나 싶은 호기심이 이긴다. 이번 기다림은 길지 않았다. 루가딘 족 불꽃지킴이는 입고 있던, 슬릿이 깊게 들어간 치맛자락을 확 걷어 올렸다. 단단한 근육이 제일 먼저 눈에 띄고 갑작스런 눈 호강에 이게 뭔가 하는데, 로코는 곧 제 짝이 무얼 보여주고 싶었는지 단박에 알아챘다.

“쨘.”

저번까지만 해도 없었던 타투가 거기 있다. 탄탄한 허벅지 위에 멋들어진 필치로 쓰인 제 이름을 한 타투다. 자기 물건에는 이름을 씁시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배울 것 같은 발상이지만 전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다. 나는 네 거야. 기꺼이 자신을 물화物化해 건네는 애정이다. 고개를 들면 “칭찬해줘, 나 잘 했지?”라고 말하는 것 같은, 반짝거리는 진다홍빛 눈동자를 마주한다. 짝의 몸에 새겨진 제 이름과 그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던 로코는 이내 심장 안쪽을 간질거리다가 터져 나오고 만 감정이 자연스레 흘러넘치게 두며, 사랑스런 애인을 바싹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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