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히카 레시피의 비밀 : 발렌티온데이 특별 초콜릿 케이크

<2024-02-18 글 스터디 발렌타인데이 기념으로 쓰는 글>

“빛의 전사님에게 직접 건네주고 싶은데……. 바쁘시다고 해서요. 전달해줄 수 있을까요?”

“저희 카페에는 줄 수 있는거라고는 쿠키 뿐이지만 언제든 놀러와도 좋아요.”

“그래, 자네가 대신 그녀에게 전해주게. 비스마르크는 빛의 전사에게 신세를 많이 졌으니까 말이야.”

산크레드는 근처 임무를 위해 광장에 잠깐 모습을 비췄을 뿐인데, 그를 보고 어린아이부터 상인과 비스마르크의 링자트까지 그를 불러세웠다. 그의 손에는 편지와 선물들이 한가득이였고, 그녀가 좋아한다고 했던 산차잎까지 챙기고 돌아왔다. 산크레드는 빛의전사가 머무는 숙소까지 도착했는데 그 앞에는 잔뜩 선물을 짊어지고 돌아온 모그리가 배달부 초코보까지 데려와서는 길바닥에서 널브러졌다.

“모험가 앞으로 도착한 우편이다쿠뽀…! 무거워서 죽는 줄 알았다쿠뽀…!”

세레나 리버는 달에서 귀환한 뒤로 모든 임무를 나가지 못했다. 카페 운영도 며칠째 자리를 비웠고, 온종일 침대에 누워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 것이 제노스와 마지막 결투를 하고 난 뒤에는 제대로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부상이었다. 온몸에는 잔흔이 잔뜩 새겨져 사라지지 않았다. 알피노와 쿠루루가 함께 치료를 도맡았지만 죽음을 초월한 뒤나미스의 힘에 의해서 강제로 몸을 일으킨게 상처의 원인이라고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말에도 세레나 리버는 걱정하지 말라며 낮게 웃었다.

“당신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은걸요. 빛의 전사는 모두의 사랑을 받는군요.”

“꼭 그런 것만도 아닌걸.”

“우리 앞에서는 겸손해질 필요는 없어.”

“나한테는 과분하기만 한걸.”

“그래, 너라면 그런 말을 할 것 같았지.”

야슈톨라가 옆에 앉아서 두꺼운 마법책을 넘기며 읽고 있었고, 산크레드는 그 뒤에서 받은 선물들을 탁자 위에 올려두며 어깨를 으쓱였다. 선물 사이에는 갈색 각봉투가 눈에 띄었다. 초콜릿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지만 디저트는 입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샬레이안에는 영양소만 충분하면 되는 거라며 어떤 맛도 나지 않은 빵이나, 쓰디쓴 산차가 전부였으니 새로 맛보는 모든 음식들에는 새로운 감각을 깨우치는 것처럼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일이었다.

“일어나도 되겠어?”

“응, 괜찮아. 계속 누워있었더니 몸이 좀 뻐근해서 조금은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 의뢰를 할 정도는 아니겠지만…….”

빛의전사는 침대에서 가뿐하게 나와서는 탁자 위에 올려져 있는 선물을 살펴보았다. 사과 타르트, 크럼펫, 붉은머루 타르트, 치즈 수플레, 무화과 바바루아, 어둠밤 솜 알, 홍시 푸딩, 캐러멜, 커피쿠키……. 이슈가르드의 케이크부터 작은 과자들까지 잔뜩 쌓여져 단향이 은은하게 올라왔다. 세레나 리버는 선물들을 보고 옅게 웃었다.

“이건…….”

갈색 각봉투 안에는 쿠쿠루 가루가 한가득 담겨져있었다. 발렌티온데이를 앞둔 모든 가게에는 쿠쿠루 콩을 전부 사들여서 가루나 버터로 만들어둔다는 말을 떠올렸다. 지금쯤이라면 가루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일 것이었다. 쿠쿠루 버터는 저번에 많이 사둬서 재고가 남아있을 것이었다. 살구잼을 넣은 초콜릿 케이크가 그렇게 유명하다던데……. 잠시 고민하고 있는 세레나 리버 옆에 고개를 슬쩍 들이민 산크레드를 보고 화들짝 놀라며 다급하게 각봉투를 포장하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어보였다. 빛의전사는 산책하고 싶으니 옷을 갈아입어야해서 나가주지 않겠느냐는 말로 두 사람을 빠르게 설득시켰다.

“…이봐, 정말 괜찮겠어?”

“응, 정말 괜찮다니까. 내가 어린 아이도 아니고…….”

산책은 거짓말이다. 야슈톨라는 그 사실을 알고도 모르는 척 넘겨줬을 것이며, 산크레드는 미심쩍은 행동에 잠깐 의심하겠지만 순수하게 걱정을 했을 뿐이었을거라고 생각했다. 봄셔츠와 봄하의로 의복을 갈아입은 세레나 리버는 샌들을 구겨신고 뮨의 카페로 찾아갔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른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의자에 앉아서 뮨이 건넨 홍차를 받고 느긋하게 쉬고 가려고 했다.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홍차를 음미하려다가 저도 모르게 쿨럭거렸다. 홍차를 마셨다기보단 쏟아붓게 된 것에 가까웠다.

“……아, 괜찮아요. 방금 뭐라고 하셨죠?”

운 좋게도 옷에 묻는 사태는 면했다. 다만, 입천장이 조금 데었다는 것 빼고는 괜찮았다. 뮨은 깜짝 놀라며 하얀 손수건을 내밀었고, 세레나 리버는 받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신경쓰지 말라며 손을 휘적거렸다. 이번 발렌티온데이에는 초콜릿을 받고 싶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한동안 쉬고 있었던 탓에 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는 말은…….

“최근에 리제트씨가 오셔서 초콜릿을 주문하고 가셨는데…….”

“아, 미안해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각나서요. 홍차는 잘 마셨어요…!”

세레나 리버는 길을 탁자위에 두곤 그 자리에서 개인 카페로 바로 텔레포를 탔다. 닫힌 가게 문을 열고 전등을 킨 세레나리버가 초코보 앞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초코보 가방에 넣은 초콜릿 재료들을 꺼내며 다급하게 요리사의 비전서:제9권을 펼쳤다.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비전서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자허토르테를 만들 계획이었다.

“가장 먼저 메이플 시럽과 버터를 넣고 거품기로 치대서 크림을 만들고…….”

장터에서 파는 크림을 사도 되는 일이었지만 밖으로 나간다면 모든 상인들에게 붙잡힐 것이 분명했다. 세레나 리버는 고개를 저으며 작은 용기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는 거품기를 들어 빠르게 휘적거렸다. 하얀 거품의 크림 위에 쿠쿠루 가루를 넣고 또 한번 크게 휘적거렸다. 메이플 시럽의 향과 초콜릿의 단향이 한번에 올라왔다.

8~9인치 크기의 케이크 팬 위에다가 사베네어 들기름과 버터를 섞어서 꼼꼼하게 바르고 반죽을 붓고 케이크 팬을 들고 190도의 오븐에 넣고 한시간 정도는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케이크가 굽는 그 사이에 그 속에다가 살구잼을 바르려고 버터 나이프를 꺼내는 도중에 어디선가 탄내가 나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 190도라며! 세레나 리버는 온도를 내릴 정신도 없이 오븐을 열었고, 그 안에는 까맣게 타버린 자허토르테가 오븐 속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진한 초콜릿색을 머금은 자허토르테여야만 했는데…. 분명히 레시피대로 했는데…. 어떻게 처참하게 망해버릴수가 있는거냐고!

“망했어…….”

아무리 레시피대로 따라해도 타버리거나, 빠르게 굳어버리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재료가 많은 것도 아닌데…. 이대로라면 모든 재료를 소진하고 타버린 케이크를 혼자서 먹고 있을 생각에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쓰군요, 살구잼이 너무 차갑고, 거품을 너무 적게 내셨습니다.”

인기척도 없이 불쑥 튀어나와서는 망해버려서 쓰기만 한 자허토르테를 덤덤하게 먹는 프레이를 가만히 올려다보던 세레나리버가 놀란 눈으로 두걸음 정도 뒷걸음질 쳤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던거야?”

“……얼마 안되었습니다. 그보다, 시간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랬었지. 세레나 리버는 요리사 비전서를 옆으로 다급하게 넘기기 시작했다. 이 레시피로 계속 만든다면 예상한대로 망한 자허토르테를 선물할 것이 분명했다. 이거 말고도 다른 레시피가……. 프레이는 그 모습을 보고 세레나 리버의 손목을 붙잡았다. 고개를 올려 황금빛 눈과 시선을 마주했다.

“제가 말하는대로 따라하십시오.”

세레나리버는 그 말에 대답도 없이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지그시 힘을 준 그의 손이 손목에서 금방 떨어졌다. 레시피에 적힌 재료에다가 오븐의 온도와 살짝 데운 살구잼과 팬의 안쪽에다가는 밀가루를 살짝 뿌려야 한다는 점도 달랐다. 프레이가 불러준 레시피대로 차분하게 하나씩 해내가던 세레나 리버는 손과 얼굴에 묻은 초콜릿과 쿠쿠루 가루를 닦아낼 새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래요, 그건 그렇게 하면 됩니다. ”

적당한 온도에 구운 케이크에는 진한 초콜릿 향이 올라왔다. 식혀둔 케이크의 시트를 반으로 잘라내 한 면에 살짝 데운 살구잼을 꼼꼼하게 바르고는 마지막으로 물과 메이플 시럽을 넣고 저은 초콜릿 아이싱을 케이크 중앙에 재빠르게 부운 다음 윗면과 옆면을 고르게 정리했다. 해가 저물때까지 만든 케이크의 노력의 대한 결실이 드디어 반나절만에 끝맺었다. 긴 칼로 초콜릿 케이크를 조각낸 뒤에 하얗고 작은 상자에 전부 포장한 세레나 리버는 맥없이 작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아까보단 살구향이 진하게 느껴졌습니다.”

“레시피는 어떻게 안거야?”

“무엇을 말입니까?”

“자허토르테 만드는 것 말이야.”

“글쎄요.”

프레이는 대답대신 팔짱을 꼈다. 또, 그렇게 모르는 척 하면서 가만히 넘길 셈이었다. 요리사에게 찾아가서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했을수도 있었겠지만, 그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어디선가 비슷한 케이크를 먹어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차이 투 부누라도 마실래?”

“……좋습니다.”

그래, 또 넘어가줘야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해주는 게 서로에게 나은 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세레나 리버는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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