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놀

Romeo Djt-Marouc

아, 로미오! 왜 당신의 이름은 로미오인가요?

골모어 밀림 바깥에는 세상이 없다. 오로지 연옥, 고문, 지옥만 있을 뿐이다.

이곳에서 추방되는 것인즉 세상에서 추방되는 것이며, 세상에서의 추방은 곧 사형이다.

그러니 ‘추방’이란 죽음의 미명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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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 로미오구나. 고놈 참 말 안 듣게 생겼네.”

낯선 남자가 소년의 볼을 꼬집었다. 소년은 반항했으나 남자는 어린애 투정으로 받아들였다.

낯선 남자가 소년의 볼을 꼬집었다. 소년은 반항했으나 남자는 어린애 투정으로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된 제 자식에게 저기 친구들과 놀고 있으라며 등을 떠밀고는 남자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말이 오가는지 엿들으려 귀를 있는 힘껏 기울였으나, 온통 소년이 이해하기 어려운 말뿐이라 무의미했다.

남자는 이미 소년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네가 그’ 따위의 말을 앞에 붙인 거겠지. 저에 관한 소문이 어떻게 났기에 몇 년에 한 번은 올까말까 한 이마저 존재를 알고 있는가. 그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아 소년은 괜히 발끝에 걸리는 작은 돌멩이를 걷어찼다.

“로미오, 그럼 이제 마을을 떠나는 거야?”

쳐진 눈을 한 아이가 말을 붙였다. 소년은 입술만 부루퉁히 내밀며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 언니가 그랬어. 남자가 되면 마을에서 떠나야 한대.”

“난 가기 싫은데.”

“그럼 숲의 수호자가 될 수 없는데도?”

“수호자는 마을에서도 할 수 있잖아.”

예외는 없다. 마을에 남는 것은 오로지 여자들뿐이다. 소년은 남자가 되었으므로― 실은 태어날 적부터였다만, 성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때는 2차 성징 이후이니 ― 마을을 떠나야 했다.

마을을 떠난 소년의 선배들의 말로는 굳이 말하거나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야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이른바 ‘마스터’라 불리는 남자들이 언젠가부터 자신이 데려갔던 소년과 함께가 아닌, 혼자서 마을에 오곤 했으니까. 그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모자란 시간이었다. 이러면 자연스레 추측이 되는 것이다.

마을 밖으로 나가면 죽는다.

그렇기에 남자가 된다는 건 저주나 다름 없는 일이다.

소년은 죽고 싶지 않았다.

이 아름답고 자애로운, 그러나 한없이 잔인한 밀림을 사랑했다. 울창한 나무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색, 빛의 양, 그리고 딱 알맞은 만큼만 사냥감을 내어 주는 자연이 좋았다. 때문에 밀림의 자비 아래 언제고 풍요를 누리려면 마을 안에서 안전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좋았다.

“로미오, 이리 오렴.”

“………….”

어머니가 아들을 불렀다. 소년은 부름에 답하지 않았다.

떠나야 할 시간이 오고 있다.

소년이 머뭇대니 남자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소년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당장 떠나진 않을 거다. 하룻밤 자고 내일 출발할 테니, 오늘은 다 같이 맛있는 걸 먹으면서 작별 인사를 하자꾸나.”

“……안 가면 안 되나요?”

용기내어 질문했다. 남자는 한쪽 무릎을 꿇어 앉으며 소년과 시선을 마주했다. 크고 따뜻한 손바닥이 소년의 붉은 머리꼭지에 얹혔다.

“알잖니, 로미오. 서로 떨어져 있더라도 혼은 늘 함께 있다는 걸. 그러니 너무 슬퍼 말거라.”

몸이 떨어져 있는데 영혼이 이어져 있다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러나 촌락의 분위기는 소년의 기분과 반대였다. 모두가 정성껏 소년의 마지막을 준비했다. 그것이 못내 불만이었다. 누굴 위한 송별회냐는 말이다. 자매들이 함께 만든 화관이며 꽃 목걸이를 걸어줘도 내내 소년은 뚱한 얼굴이었다.

“로미오, 표정 좀 펴.”

“너 같으면 마을에서 쫓겨나는데 웃을 수 있겠냐?”

“너는 쫓겨나는 거라고 생각해?”

소년이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마을을 떠나고 나면, 언제 돌아오리라 기약할 수 없다. 운 좋게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성인이 되어서는 오로지 종의 보전을 위한 목적이리라. 그때쯤이면 성별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아이들 역시 자매 혹은 형제가 되어 마을을 떠나 있거나, 혹은 이들 중에서 함께 밤을 보낼 상대가 정해지겠지.

역겹기 짝이 없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모닥불을 피우고 음식과 술 그리고 음악을 즐기느라 여념이 없다. 소년의 추방은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위한 날이기도 했다. 오늘 소년을 데리러 온 남자가 스승 겸 남편 또는 아버지 역할을 맡은 것이다.

소년은 어머니 곁에 달라 붙어 있었다. 어쩐지 오늘밤이 아니면 영영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이 스친 탓이다.

“로미오.”

어머니의 목소리가 잔잔히 흘러들었다. 소년은 답하지 않았다.

“로미오, 내 아가.”

“……네, 어머니.”

소년은 자연스레 어머니의 품에 안겼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소년이 기억하고 있는 것과 한 점 다르지 않은,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될 품. 소년은 얼굴을 파묻고 부비적댔다. 어머니의 냄새가 기득했다.

“숲의 수호자가 돼야 할 전사가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는구나.”

“전 수호자 같은 거 안 할래요…….”

“로미오.”

부드러우나 단호한 목소리가 다시 소년을 불렀다. 소년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고개를 들어 제 어미를 바라본다. 새벽 하늘 같은 푸르른 두 눈동자가 소년을 향했다. 소년의 오른쪽 눈동자는 이 눈빛을 꼭 닮아 있었다.

“너무 두려워 말거라. 이 어미는 네가 훌륭한 수호자가 될 거라고 믿어.”

“그럴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로미오 레이캬비크, 너는 누구의 아들이지?”

어머니의 손이 소년의 뺨을 감쌌다.

“스탸르나…… 레이캬비크, 요.”

“그래. 비록 내일부터는 네 이름 뒤에 붙은 성씨를 네 스승의 것으로 바꾸겠지만, 네가 내 아들이자 레이캬비크의 아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레이캬비크의 아이들은 모두 용맹한 전사이지. 너는 이 어미가 겁쟁이라고 생각하느냐?”

“절대 아니에요!”

소년이 힘껏 외쳤다.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밤공기를 타고 높이 흩어졌다.

“그렇지? 그렇다면 너 역시 겁쟁이일 리가 없다. 분명 멋진 숲의 수호자가 될 거야.”

소년이 다시 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머니는 부드러운 손길로 등을 쓸어주었다.

“로미오, 오늘 널 데리러 온 남자는 훌륭한 전사란다. 저 남자 밑에서 자란 아이 중에 수호자가 되지 못한 사람은 없었어. 그러니 열심히 배우거라. 그리고 나서 이 어미와 다시 만나도록 하자. 그럴 수 있지?”

어머니가 작게 속삭이며 소년의 머리꼭지에 입을 맞추었다. 꼭 밤의 여신이 축복하는 것 같았다. 소년은 간신히 울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멋지구나. 벌써 훌륭한 숲의 수호자로서 한 걸음 나아간 셈이다. 네가 또다른 스승이 되어 새로운 제자를 데리러 올 날이 기대되는구나.”

“………….”

“로미오, 내 아들. 앞날에 언제나 밀림의 풍요로움이 함께하기를.”

이것이 소년이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이다.

다만 어머니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은 영영 오지 않았다. 스승이 한 사람의 수호자가 되어 그 몫을 다하게 된 소년의 모습을 보는 날 또한.

소년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제국에 의해 모두 불타 사라졌다. 거대한 밀림도, 어머니의 품도, 존경하는 스승도.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하늘에 붉은 달이 떠오른 어느 날, 소년은 마침내 제 차례가 다가왔다는 생각에 기꺼이 눈을 감았다.

나는 이 밀림을 영원한 안식처로 자리 잡고, 세상 지친 이 몸에서 이 기구한 운명의 멍에를 떨쳐 버리리라.

눈아, 마지막으로 보아라!

팔아, 마지막 포옹이다!

아아, 그리고 생명의 문인 입술아, 정당한 입맞춤으로 도장을 찍어 만물을 독점하는 죽음과 영구한 계약을 맺어라!

자, 쓰디쓴 지도자, 냄새 흉한 안내자여, 자각 없는 뱃사공아, 바다에 지친 너의 배를 당장 암석에 부딪혀 다오!

나의 어머니 그리고 우리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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