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F14/유루무아] 유록빛 보물
이 찬연한 유록빛이 더 소중해진 건가도 싶다
* 툿친인 드로 님네 자컾 유루무아, 유루가 무아 눈동자 바라보는 걸 즐겨한다는 툿을 보고서 슥삭. 원래 썼던 조각이 너무 황문이라 열심히 뜯어고쳤습니다()
* 둘의 서사를 완전하게는 모르는지라, 뭔가 틀렸다면! 곧장 고칩니다!!
* 작중에 나오는 유록색은 요거(#6AB048)
* 오탈자 등등은 미래의 제가 때때로 고칩니다
유루에겐 영문 모를 버릇이 있다, 고 이자르무아는 생각한다. 아직 성질머리가 한창이던 때부터 나이에 걸맞게(혹은 강제된) 그럭저럭 점잖아진 지금까지 그는 제 눈을 빤히 들여다보는 때가 있었다. 아무런 설명도 전조도 없이 냅다 시작되는 응시는 여전히 부담스러우나, 무아는 이제 유루가 이 행동을 마치고 나면 한결 긴장이나 스트레스가 풀리는 걸 알아서 제게 여유가 있다면(그러지 못할 때는 지금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고 유루는 물러난다. 부서진 자리를 이어 붙인 약속은 잘 동작하고 있다) 쑥스러움을 이기고 파트너의 기행에 어울려주었다.
깜빡, 깜빡. 무아는 제게 오롯하게 집중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딴생각에 빠진다. 저기 보이는 먹구름 하나가 수평선 끝에 걸린 섬을 지날 때까지만 이러고 있자, 하면서.
그것은 치미는 충동이며 물과 함께 사는 저희네 일족에겐 어울리지 않는 갈증이다. 유루는 일족에겐 없고 제게는 있던 풍랑을 알았으나 이해받지는 못했다. 어렸던 저는 그 갈증을 어디에도 해소하지 못해 늘 거칠었더랬다. 그래서 한때 궤를 벗어났을지도 모른다고 지금 와선 생각한다. 그런 제가 물거품처럼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가지 않은 까닭이라면, 물 밑의 보물 덕이었다.
그것은 무지느러미들의 세상에 그득그득한 녹색들과는 격이 다른,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풍랑을 잠재우는 오묘한 녹색이다. 아가미 안쪽을 홧홧하고 건조하게 달군 열풍이 휘몰아칠 때면 유루는 물을 찾아 들어섰다. 때로는 바위너설 틈 깜깜한 곳에 한참 가라앉기도 하고, 다른 때는 해면처럼 수면에 걸쳐 반나절을 떠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발견한 거였다. 구름 몇 점만 떠 있는 맑은 날, 햇살이 수면 위를 기우듬하니 기울어 내릴 적이다. 날씨와 다르게 우중충했던 저는 터벅터벅 해안선에 닿았고 그길로 물 밑에 몸을 던졌다. 풍덩. 헤엄칠 의욕도 없이 몸뚱어리가 저절로 가라앉는 걸 내버려 둔다. 그러면 물속으로 스며든 하얀 햇빛이 제 곁을 지나며 어룽거렸다. 빛무리도 가라앉는데 뭐 어떠냐는 식으로 허탈해하고 있는 순간이었다.
대륙붕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산호초 군집 주변이 유록빛으로 가득 차 일렁이는 풍광. 유루는 홀린 듯이 그 사이로 헤엄쳐갔다. 늦봄이 되면 차가운 기운이 가시는 바다처럼, 그곳은 안온하고 침착하게 그를 다독였다. 보통은 뭍에 있다는 녹빛이 물 밑에 펼쳐져 있다는 어긋남이 제 반항심을 달래준 걸지도 모른다. 이후로 몇 번 시도해본 후에야 유루는 제 보물을 만날 조건을 특정할 수 있었고, 마음이 거칠어진 후에는 꼭 그곳을 찾았다. 때로 무지느러미들의 대화를 주워듣다 보면 등장하는 그들의 보물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 내겐 있노라고 아가미 가득 숨을 들이켜 부풀리듯 뻐길 수 있을, 자랑의 정경은 오래도록 유루만의 비밀이었다.
그러니 잠수하지 않고서도 저를 보듬어 온 색채를 뭍에서 만났을 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것이 없었다. 물밑으로 도피하지 않아도 여기, 저의 안녕이 있다. 흐린 날이 개기를 기다리던 그 갈급함이, 성마름이, 그로 인한 무정함과 아둔함이 들불처럼 이자르무아를 들볶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에도 제가 저의 보물 같은 색채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음은 지극한 행운이며, 행동으로 나서준 반려 덕분이다.
저의 모남으로 잃을 뻔했던 보물은 이제 기존의 색채보다 훨씬 우위에 있었다. 물과 함께 사는 저는 역시 조금은 괴짜여서, 물 밖에서 만난, 이 찬연한 유록빛이 더 소중해진 건가도 싶다. 무아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생 곳곳에 진주처럼 박힌 안락하던 몇몇 순간으로 이끌리고, 그렇게 점점 차분해진다. 심상의 끝은 기어코 무아로 끝난다는 것을 당사자에겐 말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말하지 못할 듯하다. 깊이 잠수했다가 벗어나듯이, 상념의 바다에서 유루는 떠오른다. 그러면 무아가 슬슬 안절부절못하는 게 아주 옅은 진동으로 느껴졌다. 제 기행을 아무것도 묻지 않고 자신이 견딜 수 있는 한도에서 어울려주는 그가 퍽 사랑스럽다. 이걸 알아채고 고마워할 줄도 알게 된 것을 보면, 스스로 참 둥그름해졌구나 싶으면서 이 또한 무아의 업적임을 알아 미안함이 거품처럼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더는 눈을 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지, 무아가 고개를 휙 돌렸다. 어쩌면 그냥 버틸 수 없어진 걸지도 모르지만. 주시할 수 없어진 색에 아쉬움이 남아도, 무아가 기어코 곁에 나란히 서준 것처럼 다음번이 있음을 앎으로 유루는 파문이 일어나려는 마음결에 대고 가라앉으라, 명한다. 격정은 다 지나고, 저는 최고의 보물과 함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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