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스타!

이십일그램의 자애

이십일그램의 우울

미도리×치아키

소설 / 190428 발행

“이상한 광경이네요.”

침묵이 시작된지 한참만에, 내가 먼저 목을 울렸다. 모리사와 선배가 나를 올려다보는 시선을 느끼며 나는 한 박자 느리게 말을 이었다.

“죽어있는 나를 바라보는 나.”

“아직 죽지 않았다.”

내 병상 옆의 보조 의자에 앉아있던 모리사와 선배가 즉답했다. 아마 모리사와 선배니까, 내가 그런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는 것 즈음은 눈치 채고 있었을 거다. 모리사와 선배의 마음씀씀이에 기분이 좋아져 희미하게 웃었다.

“병문안 온 건 처음이에요?”

화제를 바꾸는 목소리가 밝아진 게 나 자신이 알 정도로 느껴져 조금 부끄러워졌다. 오히려 모리사와 선배는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침착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모리사와 선배는 이미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몸 쪽의 나를. 웃음기조차 가신 옆얼굴이 이를 데 없이 진지하다.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내 몸을 바라보았다. 모리사와 선배가 천천히 운을 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많은 생각을 품었다 떠나보낸 사람이나 낼 법한 목소리였다. 아마 고민했겠지. 그 말이 나를 상처입히지는 않을까 하고.

“네가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령으로 찾아 온 거라고 생각했지.”

“응…….”

모리사와 선배는 담담하게 진심을 말했다. 나라도 그랬을 거다. 모리사와 선배가 사고 소식을 듣고 유령인 모리사와 선배를 만나게 된다면. 아마 같은 생각을 했겠지.

그러니까 그를 탓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떨어트리는 것과 거의 동시에 모리사와 선배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놀란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모리사와 선배를 바라보면,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넌 아직 살아있다! 그러니 네가 저 몸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그 말에 나는 어색한 걸음으로 내 몸을 향해 다가갔다. 흉부가 얕게 달싹이는 것으로 봐서는 제대로 숨을 쉬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묘한 꼴이다. 나는 얌전히 잠든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손은 내 몸을 통과할 뿐이다. 흠칫 놀란 나는 손을 물렀다. 선배에게 닿으려 했을 때와 비슷하다. 전혀 닿지 않는다. 말한다면, 저게 나의 몸이라는 감각이 없다. 이 시간이 조금만 더 길어졌다간 정말로 나의 몸이 아니게 될 것만 같다. 나는 어쩔 줄 몰라하며 도움을 청하듯 그를 돌아보았다.

“어,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여…….”

“음…….”

잠시 턱을 괸 채 고민하던 모리사와 선배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처럼 손뼉을 쳤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는 그만 그에 대한 신뢰를 잃을 뻔 했다.

“그래! 깔대기! 입에 깔대기를 물리고 널 그대로 밀어넣으면……!”

“말도 안 된다구요! 내가 액체인 것도 아니고!”

당황한 내가 그렇게 소리치면 모리사와 선배가 어깨를 으쓱이며 뻔뻔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고체도 아니지!”

급기야 모리사와 선배는 근처에 있던 책자를 돌돌 말기 시작했다. 정말로 깔대기를 만들 작정이다! 나는 익숙하게 손을 뻗었다. 그를 제지할 셈이었다.

“진정해요!”

붙잡아서, 말릴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그를 붙잡지도 못한 채 통과하는 손길에 나는 물론이고 선배도 굳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들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모리사와 선배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오히려 내 쪽이 침착해졌다. 나는 다시 한 번, 통과해버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를 유지하며 그의 손 위로 내 손을 겹쳤다. 내 의도를 모를 리가 없는 선배가 가만히 내 손을 바라보았다. 겁에 질린 기색은 조금 사그라들었다. 나는 최대한 차분하게 목을 울렸다.

“……선배 지금 좀 조급해하는 것 같아여.”

“미안, 하다…….”

모리사와 선배는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털썩 주저앉았다. 순순히 돌아오는 사과가 오히려 애틋해서,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오히려 고마워요. 선배는 나 때문에 조급해하는 거잖아요.”

“읏…….”

나보다 훨씬 더 침착하고 이성적인 머리를 갖고 있는 선배는 지금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방법까지도 고민하고 있는 거다. 전부 나를 위해서. 나를 어떻게든 살려내기 위해서. 나는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나를 흘끔 바라보았다. 나의 몸을 물들이는 붉은 햇살이 그새 짙어졌다. 나는 내 몸을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며 선배를 향해 말했다.

“이제 갈까여? 여기 오래 있고 싶지 않아.”

모리사와 선배는 나를 바라보는 채로 잠시 침묵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는 병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모리사와 선배는 병실에 둘만 있어야 할 사이는 아니지만, 엄마가 자리를 비워 준 덕분에 나도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었으니 되었다고 생각한다. 선배는 엄마와 인사를 나누었다.

“곧 깨어날 겁니다.”

선배의 그 말은 단순한 인사치레가 아니었다. 확신에 가까운 말에 엄마는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고맙다고 대답했다. 나는 선배의 곧은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당신은 마치 나를 되살려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하고 있네요. 그 목소리에 담긴 결의는 마치 자석처럼 나의 신뢰를 끌어당긴다. 아마 엄마에게 역시 비슷한 감각으로 다가왔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눈을 꽉 감았다. 하지만 동시에 선배를 믿고 싶지 않았다. 선배는 히어로가 아니다. 후배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를 도울 길을 찾지 못해 조급해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에 불과하다. 나는 선배에게 기대어서는 안 되었다.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내 목숨의 무게마저 혼자서 짊어지려 하지 말아요.

나는 선배와 함께 선배의 집으로 향했다. 우리 엄마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서로 인사를 나누며 멀어지던 선배는 골목의 모퉁이를 돌아 엄마가 보이지 않게 된 다음에야 겨우 나의 얼굴을 살폈다. 내 얼굴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별 수 없는 동정이 묻어난다. 그걸 불쾌하게 여길 생각은 없다. 내가 짐짓 신경 쓰지 않는 척 걸음을 옮기면 모리사와 선배는 머뭇거리며 물었다.

“남지 않아도 괜찮겠나?”

“괜찮지 않을 이유가 있나요? 어차피 저기 있어봐야 내 시체를 보고 있기밖에 더 하겠어여? 우울해서 죽어버릴거야…….”

“시체라니! 아직 죽지 않았다!”

모리사와 선배가 기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있지도 않은 고막을 보호하듯 귀를 감싸쥐며 투덜거렸다.

“소리치지 말아여. 안 그래도 이상한 사람인데, 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거야.”

“으윽.”

모리사와 선배가 어쩔 줄 몰라하며 주위를 둘러보다, 이내는 눈을 굴렸다. 말을 고르는 눈치였다. 그 시선이 물끄러미 나를 향하는 것으로 그가 고민을 마쳤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내 말은…… 가족 곁에 남지 않아도 괜찮겠냐는 뜻이었다.”

그러고도 머뭇대는 목소리였다. 나는 의미 없는 한숨을 내쉬었다. 모리사와 선배가 나를 신경 쓰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엄마의 얼굴이 초췌했다. 장사를 하는 사람답게 웃는 것이 얼굴 가죽에 밴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쳐있는 게 느껴졌다.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아들을 돌보는 것은 분명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을 테다.

오늘 나는 잠든 것처럼 누워있는 타카미네 미도리의 몸을 보고 실감했다. 타카미네 미도리는 죽을 것이다. 아마 모리사와 선배 역시 나와 같은 것을 느꼈을 테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으니 오히려 더욱 기민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안절부절 못했던 거다.

그래서, 당장 나를 깨우기 위해 그렇게나 필사적이었던 거다.

물론 선배나 나만이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닐 테다. 엄마는 사고 이후 매일을, 그 몸을 돌보며 나나 모리사와 선배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타카미네 미도리는, 당신의 아들은 결국 죽을 것이라고. 나는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목을 울렸다.

“내가 곁에 있는다고 무엇이라도 달라지는 게 있었다면 남았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를 위로한 건 내가 아니었다. 내 목소리는 닿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를 위로한 건 모리사와 선배였다. 나는 위로조차 할 수 없다. 그런 내가 엄마의 곁에 남는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친 엄마를 위로하는 것조차 선배에게 위임해버린 내가. 유령인 내가. 곁에 남는다고 해서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나 때문에 슬퍼하는 가족에게 위로는 커녕 말을 걸거나 안아줄 수조차 없어.”

분명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겨우 고개를 들어 모리사와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런 걸 보고 있다보면 차라리 죽고 싶어질 거예요.”

그렇게 죽음을 입에 담은 나는 모리사와 선배를 향해 애써 미소지어 보였다. 나와 시선을 마주한 모리사와 선배는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떨어트렸다. 이어지는 건 이 상황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과였다.

“……미안하다.”

“선배가 미안할 일이 있었나요?”

나는 구태여 능청을 피웠다. 모리사와 선배에게 사과를 받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력이었다.

“오히려 선배에게는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 말에 모리사와 선배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선배가 아니었으면 나는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한 채 떠돌았을 거예요.”

실제로 그랬다. 처음 순간에는 내가 살아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학교를 나서는 익숙한 얼굴들을 향해 말을 걸었다. 테토라 군이나 센고쿠 군이 먼저 말을 걸지 않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조금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말을 붙이고, 그게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는 걸 혼자서 깨닫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겠죠.”

사실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었다. 나는 금방 깨달았다. 무디게 받아들이기에 타카미네 미도리는 외로움에 지나치게 예민한 인간이었다.

“나는 무척 외로웠을 테고.”

외로웠다.

“깨달은 뒤에는 그보다 더욱 외로워졌을 거예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웠다.

그래서 모리사와 선배를 찾아나섰다. 멍청한 근거였다. 분명 우리에겐 만나기로 했던 약속이 있었으니까. 모리사와 선배는 약속을 깨는 사람이 아니니까. 나를 봐줄 것이라고, 그런 말도 안 되는 것을 꿈꿨다. 발소리조차 나지 않는 걸음을 서둘러 3학년 교실로 향했다. 그리고 교탁 아래에 숨어있던 모리사와 선배는.

“타카미네, 그런 말은……. 읏…….”

모리사와 선배는 무얼 참아내는 사람처럼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는지 입술이 허옇게 눌릴 정도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목소리에는 차마 숨기지 못한 조급함이 배었다.

“이런 건 전부 선배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예요. 지금은 다르잖아.”

모리사와 선배는 내 목소리를 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를 올려다 보았다. 그렇게 이번에도 나를 발견해줬다. 모리사와 선배만이 나를 눈치챘다. 그렇다면 나의 외로움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선배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웃어보였다.

“선배가 있으니까…….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요. 선배 다른 사람의 3배 정도로 시끄럽고. 선배 혼자 세 사람 몫을 해주고 있는 거네요. 후후…….”

내가 그렇게 말하면 모리사와 선배 역시 한숨에 가깝게 웃었다. 그의 상냥한 얼굴에는 여전히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쉬이 갤 수 없는 감정이었을테니 별 수 없었다.

“……위로를 받아버렸구나.”

“당신에게 받은 위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건 진심이었다. 모리사와 선배는 쓸쓸하게 웃고 내게 손을 내밀었다.

“돌아가자, 타카미네.”

나는 마치 그 손을 잡을 것처럼 그 위로 내 손을 올렸다. 우리의 손은 말 그대로 겹쳐졌다. 당연하지만 그렇게 겹쳐져도 선배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모리사와 선배의 온기를 느낄 수는 없어도, 그는 분명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함께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식사를 하고 또 특촬을 보다가 잘 준비를 했다. 모리사와 선배는 오늘도 늦게까지 깨어있었다. 늘 그랬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그렇게 격언처럼 떠들던 사람이 한참을 뒤척이고 내게 말을 걸다가 잠이 들곤 했다. 나는 적당히 선배가 나를 위해 일부러 빼놓은 의자에 앉아 그의 말에 대충 대답을 하며 그가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울고불고 난리를 친 첫날에는 잠들지 못하면 밤새 심심할테니 DVD를 틀어주겠다느니 하는 정신나간 소리를 하기에 퇴짜를 놓았다. 그랬다간 컴퓨터를 통과해버리는 나에겐 밤샘 강제 시청이 되어버린단 말이다. 무엇보다 특촬을 켜놓고 선배가 잠들 수 있을 리가 없고. 나는 넌더리를 내며 말했다.

“당신 내일도 아침 연습 있을 거 아녜요. 얼른 자요.”

내가 그렇게 퉁을 주자 모리사와 선배는 조금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 그렇군. 신경써줘서 고맙구나.”

나야말로 헛소리를 했다고 깨달은 건 새벽녘이 밝아올 즈음이었다. 모리사와 선배는 내가 선배에게 머물게 된 뒤로 한 번도 농구부에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농구부 뿐만이 아니다. 유닛활동도, 교우관계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하고 있는 게 없었다.

전부 내 탓이다. 이 똑똑하고 계획적인 사람이 늦은 시간에 잠드는 것도, 피로가 묻어나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거는 것도, 아침 연습에 빠질 정도로 늦잠을 자게 된 것도, 학교가 끝나자마자 다른 일을 할 겨를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전부 이 사람이 내게 몰두해있는 탓이다.

속이 울렁거리는 듯 했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내가 외로울 것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동안 내가 혼자 견뎌야 할 시간을 셈하고 있는 거다.

이런 걸 귀신에게 홀렸다고 말하는 것이겠지. 나는 침대에 대충 팔꿈치를 괸 채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의 한숨은 그의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리는 일도 없이 사라졌다.

모리사와 선배는 아침에 약한 사람답게 부스스한 아침을 맞이했다. 이를 닦는 선배 뒤에 서서 거울에 비치는 멍한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머리 뒤에 베개만 대주면 바로 잠들 것 같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그야 느지막한 시간에 잠들었으니 피곤할 만도 하다. 양치를 마친 선배가 입을 헹구고 고개를 드는 순간에 그를 불렀다.

“저기요, 선배.”

나의 모습이야 거울에 비치지 않았으니 선배는 내가 그의 등 뒤에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을 테다. 화들짝 놀란 등이 쭈뼛이며 서는 듯 했다. 모리사와 선배는 필사적으로 놀린 기색을 지우며 나를 돌아보았다. 덕분에 잠은 다 깬 모양이었다.

“아, 하하하, 타카미네! 무슨 일이냐!”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유닛 활동은 쉬고 있는 건가요?”

갑작스러울 물음에 모리사와 선배는 이번에도 뜨끔한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을 감출 요량인 것처럼, 모리사와 선배는 수건을 집어들어 제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었다.

“아, 아아. 유성대는 다섯이서 하나니까 말이다.”

그 말에 나는 손을 꽉 움켜쥐었다. 내가 이대로 죽어버리면? 그때도 다섯이서 하나라는 말을 할 건가요? 그렇게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화를 억눌렀다. 그렇게 말해봐야 선배의 마음을 다치게 할 뿐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농구부는?”

답을 뻔히 알고 있는 물음이었다.

“자율 연습으로 스케줄을 짜두고 잠시 쉬고 있다.”

비슷한 질문이 반복된 탓인지 선배도 비교적 침착하게 대답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선택이다. 당신은 부장이잖아. 유닛의 리더잖아. 그런 걸 저버릴 정도로 책임감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잖아.

“요즘 계속 나하고만 다니고 있죠.”

내가 그렇게 묻자 선배는 침묵했다. 얼굴을 감추었던 수건은 의미를 잃은 것처럼 그의 다리 근처에 늘어진 채 흔들리고 있다. 그렇게 둔감한 사람은 아니니 아마도 내 질문의 의도를 눈치챈 것이리라.

“나, 선배가 내게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선배의 얼굴에 드리워지는 절망을 보았다. 모리사와 선배는 그 활달하고 열렬한 성미에 어울리지 않게도 우물쭈물 말했다.

“……포기, 하는 건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포기라니. 그럴 리가 없다. 모리사와 선배에게 나는 그렇게 쉽게 포기하는 이미지였던 것일까. 너무 그럴 법 해서 오히려 화가 난다. 당연하지만 선배가 아닌 나 자신에게. 나는 힘주어 목소리를 내었다.

“아뇨,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하지만 선배는 날 위해 선배의 생활을 포기하고 있잖아.”

내가 그런 말을 해도 모리사와 선배는 침묵할 뿐이다. 나는 별 수 없이 말을 이었다.

“선배의 생활을 해줘요. 내가 선배에게 빚지는 기분이 들지 않도록.”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건 거기까지다. 나는 한숨을 섞어 짐짓 가벼운 투로 걱정을 표했다.

“그리고 선배가 이렇게 대충 살다가 내가 깨어났을 때 더 이상 대장도 부장도 아니게 되어버리면 곤란해요. 아침마다 당신이 날 끌고 갈 명분이 사라져버린다구요.”

“……타카미네.”

“무엇보다 나, 선배의 멋진 모습이 보고 싶어요.”

모리사와 선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그런 식의 직설적인 화법을 쓰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 같았다. 조금 기분이 상쾌해져 나는 더욱 능청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런 선배의 모습을 보는 거, 싫지 않았거든요.”

그 순간, 모리사와 선배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선배는 그 날 바로 유성대를 모았다. 역시 유닛의 리더다운 행동력이다. 갑작스러웠을 부름이었지만 누구도 빠지지는 않았다. 나를 제외한 네 명이 연습실에 모였다. 센고쿠 군은 묘하게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이다. 테토라 군도 침착한 표정을 하고는 있지만 그게 필사적으로 평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정도는 알았다.

그리고 분명 이들은,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언제나 다섯이서 하나 같은 소리를 해왔으니 더더욱. 나는 말없이 모리사와 선배를 살폈다. 그는 평소처럼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그, 대장. 괜찮슴까?”

먼저 그 화제를 입에 담은 건 테토라 군이었다. 성분이 부족하고 짧은 문장은 오히려 그가 다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섬세한 테토라 군인 만큼 많은 말들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고도 말을 고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한 것이리라. 모리사와 선배가 웃는 얼굴로 되물었다.

“뭐가 말이냐?”

무얼 각오라도 하듯 한숨을 내쉰 테토라 군이 이번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물었다.

“미도리 군 없이 괜찮냐는 말임다. 저나 센고쿠 군이나 대장이 무척 상심했을 거라고 생각했슴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나의 빈 자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두 사람을 떠올렸다. 나의 빈 자리와 그 부재의 여파를 걱정하는 사람 같은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나의 빈 자리는 쉬이 채워질 것이며 그렇기에 누군가가 나의 부재에 대해 슬퍼하는 일 같은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나는 그 정도의 인간이라고. 타카미네 미도리는 대체 가능할 인간이라고. 이렇게 상심한 사람들을 앞에 둔 지금에야 안다. 그게 얼마나 멍청하고 한심한 생각이었는지.

내가 모리사와 선배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모리사와 선배는, 테토라 군과 센고쿠 군이 생각한 것처럼 상심했을까. 상심했겠지. 마냥 짐만 되어 온 나의 무게를 거두었을 뿐인데도 그는 무얼 상실한 것처럼 슬퍼했겠지.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음. 그렇군.”

모리사와 선배는 이렇다 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지막이 되물었을 뿐이다.

“나구모는 어떻지?”

“전 연습해야 한다고 생각함다. 미도리 군이 참가할 수 없는 건 속상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내팽개칠 수는 없슴다.”

테토라 군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고 그를 바라보는 모리사와 선배의 표정이 밝았다. 모리사와 선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음, 전혀 상심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거기서 잠시 모리사와 선배가 테토라 군의 시선을 피하듯 눈을 굴렸다.

“그게, 혼이 나서 말이다. 하하.”

하지만 그건 도망치는 게 아니었다. 그의 시선은 온전히 나를 향했다. 모리사와 선배가 나와 눈을 맞추며 씩 웃어보였다. 그게 사랑스럽게 느껴져 나도 마주 웃어주었다. 이걸로 충분했다.

유성대는 연습을 시작했다. 5명이서 유성대라고 했던가. 익숙하지만 결코 완전할 수 없는 포메이션 그대로 노래가 시작된다. 나의 자리는 비어있는 채다. 스피커에서는 간간히 나의 목소리가 나온다. 내가 있어야 안무가 완성되는 파트에서는 누구라도 조금은 흐트러지곤 했다.

아, 내 자리구나. 그게 나의 공백이구나. 아마 내가 아니라도 그게 타카미네 미도리의 부재 탓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았을 것이다. 나의 빈 자리는 무대를 망치고 흐름을 깬다. 그런데도 일부러 만들어낸 것이 분명한 웃는 얼굴들은 서로를 격려하듯 시선을 마주치고 웃어보인다. 속이 답답하다.

그 날 저녁, 모리사와 선배는 평소보다 이르게 잠이 들었다. 간만에 제대로 몸을 움직인 덕분이겠거니 했다. 오늘도 나는 선배가 나를 위해 꺼내놓은 의자에 몸을 앉힌 흉내를 내며 그를 바라본다.

기어코 혼자가 되고 마는 이 시간이 싫다. 외롭고 쓸쓸하다. 더 이상 이 곳에 있고 싶지 않다. 본디 나의 자리가 아니었을 공간에 자리한 나의 자리가 싫다. 타카미네 미도리의 자리를 남겨두기 위해 선배가 들이는 수고가 싫다.

의자를 꺼내지 말아요. 나의 자리를 남겨두지 말아요. 내 목소리를 지워요. 내가 없어도 괜찮은 유성대를 만들어줘요. 나를, 기다리지 말아요.

“연습은 잘하고 있었나?”

그 다음날 모리사와 선배는 아침 일찍 일어나 농구부에 들렀다. 선배가 농구 코트에 들어서자 그 익숙한 기척을 가장 먼저 눈치챈 아케호시 선배가 서둘러 뛰어나왔다. 

“와! 치쨩 부장!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나의 태양 아케호시! 이렇게 반겨주다니 무척 감동적이구나! 꽉 안아주마!”

“으, 역시 자율 연습이 나았을지도.”

아케호시 선배는 그렇게 말하며 제게 안겨온 모리사와 선배를 밀어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질색하는 투는 아니다. 오히려 반가워하는 것이 분명한 기색에 이 사람이 얼마나 모리사와 선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안다.

조금은 빛 바랜 평소 같은 소란에 자율 연습을 하던 부원들이 하나 둘 다가와 선배를 반겨주었다. 완전히 인기인이다. 이런 사람을 독점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죄책감마저 생길 정도다.

들뜬 분위기에서 굳이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는 없었다. 같은 부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나의 상황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까, 그게 고마웠다. 모두 온전히 모리사와 치아키를 환영해주고 있었다. 아마 모리사와 선배에 대한 배려였겠지.

부원들과 짧게 인사를 나눈 선배는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다시 코트로 돌아왔다. 나는 빈 벤치의 가장자리에 앉아 모리사와 선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부원들이 모여든다. 그 사이에서 환하게 웃는 선배의 얼굴이 사랑스럽다. 그대로. 그대로 그 자리에 있기를 원한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타카미네.”

낮추어 속삭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면 모리사와 선배가 씩 웃고는 내 곁에 앉았다. 형체가 있어도 닿지 않을 거리에 앉는 것은 나를 배려한 탓이다. 나는 모리사와 선배를 바라보았고 모리사와 선배는 자연스럽게 농구 코트를 바라보았다. 평소라면 코트를 누비며 활약하고 있었을 사람이다. 나는 나지막이 물었다.

“왜 왔어요?”

“쉬고 싶어서 말이다.”

“흐응.”

나는 대충 목을 울렸다. 이 사람의 의도는 쉬이 짐작이 간다. 이 사람은 언제나 그랬다. 가만히 있어도 자석처럼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부류의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들 사이에서 편하게 있어도 되었을 것을, 매번 가장 외롭고 쓸쓸한 사람에게 찾아가곤 했다.

자석이 으레 그러하듯 양극의 존재는 맞닿는 법이었나보다. 모리사와 선배는 내게 닿아, 제 에너지를 나누어주었다. 언제나 밝게 웃어주었다. 그게 얼마나 다정한 일이었는지, 어째 속이 울렁거렸다.

“저리가요. 당신 목소리도 크고, 한 마디라도 했다간 혼자 떠드는 것처럼 보일 거야.”

“그럼 조용히 있을 테니까.”

모리사와 선배는 그렇게 속삭이고 정말로 입을 다물어버렸다. 코트를 스치는 바람에 그의 머리카락이 흐트러졌다. 익숙하지 않은 침묵이었기에 나는 무심코 할 말을 고민했다. 양손을 마주 쥔 채 나 역시 코트를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의 연습인만큼 크게 체력을 쏟는 일 없이 여유롭게 진행되었지만 운동부 특유의 투지라는 것이 있다.

난 언제나 그 사이에 끼지 못하고 동떨어져 있었던가. 그야, 농구의 룰도 제대로 몰랐던 시절이 바로 얼마 전이다. 섞일 수 있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거의 강제에 가깝게 농구부에 몸을 담게 만들었으니 아마 선배로서도 내버려둘 수는 없었겠지. 항상 모리사와 선배는 나를 찾아왔다. 기초부터 알려주었고 사소한 발전을 찾고 그걸 칭찬해주었다. 내내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무엇도 불가능했을 일이라는 것을 안다.

문득 바로 곁의 모리사와 치아키를 확인하고 싶어져 고개를 돌리면, 나를 바라보는 선배의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선배는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여전히, 모리사와 치아키는 유일하게 나를 봐주는 사람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이 우울한 일이었다.

“부장.”

꽤 긴 시간을 그러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사라 선배가 모리사와 선배를 찾았다.

“오, 이사라! 그간 아침 연습을 잘 통솔해준 것 같구나! 고맙다!”

“말 그대로 자율 연습이었는데요, 뭘. 그보다 부장이 쉬는 동안의 진행 상황은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모리사와 선배는 내 쪽으로 몸을 옮겨 이사라 선배가 앉을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야, 이사라 선배에게는 내가 보이지 않으니 자칫하면 내 위에 겹쳐져 앉아버릴 수도 있다. 선배 나름 신경써 준 것일 테다. 선배들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모리사와 선배와 닿지 않는 거리에 있었다.

벤치를 짚은 모리사와 선배의 손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모리사와 선배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나는 그의 손등 위로 내 손을 겹쳤다. 딴에는 몰래 한다고 한 것이었는데 금방 들켜서, 제 손등을 흘끗 내려다 본 선배는 나를 보고 씩 웃었다.

그러니까,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거라고 했는데도.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가는 모리사와 선배의 등을 따라 한 걸음 뒤서서 걸었다. 그와 나란히 걸을 때는 잊고 있었다. 예전처럼 한 걸음 뒤에서 모리사와 치아키의 모습을 눈에 담고 나서야 이 사람의 세계가 얼마나 커다랬는지 새삼 알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리사와 치아키를 걱정했다. 아마 타카미네 미도리는 몰라도 모리사와 치아키가 그의 후배가 병상에 있는 일로 힘들어한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도 있었을 테다. 그들은 모리사와 치아키의 슬픔에 공감해주고 안타깝게 여겼겠지.

모리사와 치아키는 전염성이 있는 사내다. 우울만큼 전염되기 쉬운 감정이 없는데도 이 남자가 있으면 달랐다. 이 태양과도 같은 남자의 긍정성에는 나마저도 전염될 정도니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었을지 상상도 되지 않을 정도다. 이 사람의 존재가 너무나 크다.

나는.

모리사와 치아키를 독차지해서는 안 된다.

“어땠어요?”

모리사와 선배가 친구들과 인사하고 길을 갈라선 뒤에야 나는 그에게 물었다. 모리사와 선배는 무엇에 대한 물음인지 감이 안 오는 것처럼 가볍게 고개를 기울였다.

“으음?”

그제야 설명이 부족했다고 안다.

“간만에 친구들이랑 하교 한 거 아니에요?”

다시 한 번 그의 감상을 되묻자 선배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즐거웠다!”

그의 뺨이 희미하게 상기되어있었다. 약간의 흥분감이 섞인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관계를 소중히 할 줄 알고 그들을 위할 줄 안다.

그러니까, 분명 그런 사람이니까 나의 상황을 안타깝게 여기고 내게 매몰되어버린 거다. 나는 느리게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 애써 밝은 체를 하는 것은 아무래도 나의 캐릭터는 아니라서, 그냥 평소처럼 말이다.

“응. 아마 다른 사람들도, 선배가 돌아와서 즐거웠을 거예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시원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아주 밝지는 않았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가 없어 나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턱을 당기고 정면을 바라보았다. 곧은 시선은 나를 향하지 않았다. 꾹 다문 입술은 평소의 웃음기조차 없었다. 나는 그 단정한 옆얼굴을 눈에 담았다.

“더, 빨리.”

모리사와 선배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 다음에는 결심이 필요한 사람처럼 침묵했다. 선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타카미네를 되돌려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지겨우리만치, 변하지 않는 남자였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이런 사람이다. 간만에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닌 온전히 저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 모리사와 치아키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 사람이 했을 생각이야 뻔하다.

타카미네 미도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타카미네 미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했을 것이다. 타카미네 미도리의 외로움을 곱씹었을 것이다. 그리고 타카미네 미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외로움을 곱씹었을 것이다. 그게 얼마나 내게 따뜻하게 닿아왔는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슬프게 느껴졌는지.

“……고마워요.”

나는 달리 할 말이 없어 그렇게 대답하고 고개를 떨어트렸다. 여전히 잠든 채일 타카미네 미도리를 생각했다. 몸을 떠난 영혼의 유통기한은 어떻게 될까. 영혼이 없는 몸의 유통기한은 또 어떻게 될까.

타카미네 미도리는 죽을 것이다.

모리사와 선배는 몇 번인가 더 나를 찾아갔다. 언제는 유성대의 멤버들과, 언제는 농구부의 부원들과. 언제는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의 친구들과. 그리고 언제는 나와 단 둘이서.

선배는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뺨이 약간 마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 착각이 아니겠지. 선배를 붙잡고 울고 싶었다. 저건 살아남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내가 저 몸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건 내 몸이든 영혼이든 어느 한 쪽은 유통기한이 끝나버렸기 때문이라고.

모리사와 치아키라고 그걸 모르지는 않았을 테다. 그저 이 남자는, 그래. 내게 마음의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내가 저보다 더 힘들 것을 상정했겠지.

모리사와 치아키는 제 역할을 둑 즈음으로 알았나보다. 제가 무너져내리면 나를 지켜줄 것이 아무 것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틀리지는 않았다. 지금의 내게는 모리사와 선배 뿐이었다. 그래서 싫었다. 무엇이고 모리사와 치아키에게 기대어야 하는 것이 싫었다.

오히려 혼자였다면 억지로 무얼 꾸미지 않아도 괜찮았을까. 그랬다면 후배의 죽음을 예감한 모리사와 치아키는 제 감정을 드러내고 마땅히 슬퍼하고 이내는 제 안에 남은 후배의 잔해도 털어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 후배가 바로 제 곁에 남아있었기에 모리사와 치아키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을 했을 테다. 내가 선배의 곁에 머물게 된 이후로, 선배는 한 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그 시점 이후로 한 번도 제 껍데기를 벗은 적이 없었다. 그 남자가 어떤 가면을 쓰고 어떤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 너머의 알맹이를 내게 보일 생각이 없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게 속상했다. 선배는 괜찮은 건가요. 나와 고작 두살 뿐이 차이나지 않는 나의 어리고 여린 선배는.

괜찮을 리가 없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히어로가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몇 개월 앞둔 어린 인간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더 이상 내 목숨의 책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걸 그만두게 하고 싶었다.

그만둬요. 알잖아요. 당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나는 절대 살아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그를 붙잡을 수도 없었고 울 수도 없었다. 그럴 수 있는 몸조차 내게는 없었다. 나는 선배의 수척한 뺨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떨어트렸다.

이상이 생긴 것은 그 이후였다. 그리고 그 이상은, 내가 아닌 모리사와 치아키에게 일어났다.

유성대의 연습 중에 모리사와 선배가 쓰러졌다. 마치 건전지로 돌아가는 인형의 건전지가 다 되어버린 것처럼 뚝. 선배는 무너져내렸다.

테토라 군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테토라 군은 모리사와 선배의 몸을 일으켰다. 모리사와 선배의 몸이 시체처럼 힘 없이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본 센고쿠 군이 선생님을 불러오겠다며 뛰쳐나갔다. 신카이 선배는 느린 걸음으로 다가가 모리사와 선배의 안색을 살폈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무얼 했냐면, 그들의 뒤에 선 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실체가 없는 유령이었고 그를 향해 달려간다고 해서 무얼 도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는 무력감이 차올랐다.

죽은 것처럼 눈을 감고 있던 선배가 힘 없이 눈을 떴다. 짧게 기절했던 것인지 아니면 몸의 힘이 풀렸던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몽롱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 순간, 선배는 나의 시선을 의식하기라도 한 것처럼 테토라 군에게 의지하지 않고 바닥을 짚었다.

“……나는 괜찮다. 직접 일어나마.”

“치아키.”

신카이 선배의 짧지만 단호한 만류에 테토라 군 역시 동조하며 그의 팔을 붙잡아 제 목에 걸었다.

“대장, 제가 부축하겠슴다.”

“음……. 고맙구나.”

신카이 선배의 만류 덕분이었을까. 모리사와 선배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테토라 군에게 제 몸을 기대었다.

그렇게 보건실로 향하는 도중에 사가미 선생님을 대동한 센고쿠 군과 마주쳤다. 센고쿠 군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크게 겁을 먹었던 것 같았다.

“대장 공…….”

모리사와 선배가 손을 뻗어 센고쿠 군의 뺨을 문질러 닦아주었다. 그 순간 센고쿠 군이 무얼 참듯 눈을 꽉 감았다. 커다란 눈에 맺혀있던 눈물이 넘쳐 주르륵 흘러내렸다. 우리는 모리사와 선배를 걱정했지만 누구도 쉬이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신카이 선배였다. 신카이 선배가 말했다.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로 해요.”

그러면 모리사와 선배가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 없다! 어렸을 적에도 자주 이렇게, 이유도 없이 아팠었지!”

그건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도 그 말에 토를 달지 않았지만 그 중 어느 누구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이 이유 없이 아플 리가 없다. 그 이유가 선배의 몸에 있지 않을 뿐이다.

그 순간 나는 그것이 나의 탓임을 직감했다. 선배 역시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여기에 너무 오래 있었다.

모리사와 선배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저녁에는 조금 이르게 잠에 들었고 학교에서는 곧잘 보건실 신세를 졌다. 모리사와 선배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는 아니다. 제 몸 상태는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이 없는 거다. 아마 도움을 받을 수가 없겠지. 그 문제가 선배 자신에게 있지 않은 한.

나는 어쩌면 모리사와 치아키의 영혼을 짜내어 이 자리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혼, 어쩌면 활력, 비슷한 이미지의 단어들이 뇌리를 스쳤다. 괴담이나 공포 영화에서 으레 나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아주 현실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모리사와 선배가 나보다 먼저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고 싶었다. 선배가 나와 함께 있어준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살고 싶었다. 선배와 함께 살고 싶었다. 선배의 곁에서 살고 싶었다. 좋아하는 선배의 멋진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싶어서, 계속 살고 싶었다. 그 즈음에서 나의 모든 행동은 전부 의미를 잃는다.

쓰러져버린 모리사와 선배의 모습을 떠올린다. 삶에 대한 나의 의지가 모리사와 선배를 쓰러지도록 만든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런 건, 결코 함께 사는 것은 못 된다.

모리사와 선배를 괴롭히고 싶지 않다. 그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내 영혼의 무게가 선배를 짓누르는 것만은 견딜 수가 없다.

내가 선배를 못살게 구는 게 싫어서. 그런데도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할지 나 혼자서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어서.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 그것조차 수가 없어서.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머리를 싸매었다.

아마 내게 몸이 있었다면 눈가가 짓무를 때까지 펑펑 울었을 것이다. 울어서 눈물이라도 토해내었다면 기분은 조금 나아졌을까. 하지만 내가 유일하게 흉내낼 수 있는 동작은 한숨 정도였다. 나는 오늘도 한숨을 흉내내어 입을 벙긋대고 벽에 기대었다. 잠들 수 없는 밤이 계속되고 있었다.

모리사와 선배는 오늘도 보건실의 침대 한 켠을 차지하고 잠들었다. 그가 잠들어있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잠들 수 없는 나는 그의 곁에 선 채, 구석으로 돌아누운 선배의 등을 바라보았다. 말 없는 등이 가만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 달싹이는 모양에야 나는 그가 살아있다고 짐작한다. 그건 지금의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 숨결이다.

문득 모리사와 선배가 몸을 뒤척이며 돌아누웠다. 잠든 얼굴은 안쓰러울 정도로 수척했고 얇은 침구는 간단히 어깨 아래로 흘러내렸다. 저물기 직전의 선명한 햇볕이 눈꺼풀 아래까지 새어들었는지 모리사와 선배는 제 팔로 눈을 감추어버린다. 살짝 벌어진 입에서 한숨이 새었다.

흐트러진 침구를 정리해주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그럴 수 있는 몸이 없다. 서늘한 공기에 모리사와 선배가 마른 어깨를 움츠렸다. 그 몸이, 어째 작게 느껴졌다.

“……응.”

모리사와 선배가 희미하게 신음했다. 저를 사로잡은 죽음으로부터 깨어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모리사와 선배는 가볍게 몸을 비틀어 풀어내고 천천히 팔을 거두었다.

처음 보는 서늘한 얼굴이 그 아래에 있었다. 모리사와 선배는 오랜 시간을 잠들어있던 사람 답지 않은 지친 한숨을 토했다. 아마 전혀 풀리지 않은 피로의 발로였을 테다. 아마도 혼자였다면 이런 얼굴을 했을 것이라고 그 순간 알았다.

아니. 틀렸다. 아마 그가 혼자였다면 차라리, 이런 얼굴을 할 필요는 없었겠지. 거의 만성에 가까워진 그의 피로감은 분명 나로 인한 것이다. 내가 그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전부 나 때문이다. 나는 천천히 목을 울렸다.

“일어났어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 선배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면. 또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 된다. 내가 알고 있는 환한 얼굴이 된다. 그새 가면을 쓴 거다. 배우가 되겠다는 사람이었으니 그 정도 연기는 별 것도 아니었겠지.

내가 말 없이 그를 바라본 채 서있으면, 모리사와 선배는 서두르는 기색 없이, 동시에 늑장을 부리는 일도 없이 몸을 일으켰다.

“오래 기다렸겠구나. 이제 집으로 갈까!”

그 말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 마음은 전혀 모르는 모리사와 선배는 침대 아래로 다리를 내려 신발 안에 대충 발을 끼워넣었다. 몸을 숙여 신발 끈을 묶는 손짓은 어색한 구석이 없다. 

나는 고개를 숙인 선배의 정수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은 단정한 구석 없이 지푸라기처럼 흐트러져 있었다. 모든 것이 평소 같았다. 그렇기에 아마 지금부터 하려는 말은, 이 상황과 결코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천천히 목을 울렸다.

“미안해요.”

모리사와 선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새 자란 앞머리는 길었고 기억보다 푸석했다. 앞머리 사이로는 선배의 커다란 눈동자가 보였다. 희미하게 패인 어두운 그림자가 커다란 눈 아래에 져 있었다. 가면으로는 차마 가릴 수 없는 수척한 뺨은 한참 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바싹 말라 허옇게 일어난 입술이 희미하게 우물거리다 겨우 목소리를 토했다.

“무얼 말이냐?”

온전히 고개를 든 모리사와 선배는 짐짓 모르는 척을 하며 나의 사과에 되물었다. 나는 더 이상 무얼 감출 생각이 없었다. 그럴 여력이 없었다.

“당신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건 알고 있었죠? 옛날부터 몇 번이나 겪었던 일이잖아요.”

모리사와 치아키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 다듬을 시기가 지난 앞머리와 수척한 뺨을 하고, 움푹해진 눈과 마른 입술로 억지라곤 느껴지지 않도록 성실하게 웃어보이며 여전히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한다.

쉴 수 없는 숨이 막혔다. 존재하지 않는 호흡이 얹혔다. 뛸 리 없는 심장도 이내는 멎을 것만 같았다. 슬픔이란 감정을 눈물로 표현할 수는 없었으니 나는 그렇게라도 울었다. 나만이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북받친 목소리로 외쳤다.

“자길 볼 수 있다는 걸 알아챈 귀신이 붙고, 그 다음엔 아무도 이유를 말해주지 못하는 병을 앓고!”

뻔한 일이었다. 몸이 약했던 어린 모리사와 치아키를 상상한다. 모리사와 치아키는 아마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을 테다. 어릴 적에는 병치레가 잦았다고 했다. 유령을 본 것도 그 시절이라고 했다. 모든 이야기의 톱니는 맞물려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이렇게 될 일이었다. 나도 알 수 있는 인과관계다. 모리사와 치아키라고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정말 몰랐다 쳐도 지금은 알 것이다. 모를 수가 없다. 이유 없이 허약한 몸의 이유 정도는. 그러니까.

나는 앓듯이 목을 울렸다.

“이번에도 그런 거잖아. 나 때문이잖아, 그거.”

모리사와 선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건, 내 생활 리듬이 흐트러져서 그런 거다!”

그건 무척이나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다. 내가 할 말을 잃고도 슬며시 벌어진 입을 차마 다물지 못하면, 모리사와 선배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건 중요한 일이거든.”

마치 조금 늦잠을 잔 일에 대해 말하는 양 너스레를 떤다. 그 모습에 더욱 화가 났다.

“또 그렇게!”

그래서 순간 목소리를 높였다. 유령이 되어 머리를 잃고서도 이성은 가진 모양이지. 나는 바로 입술을 깨물어 목소리를 죽였다. 당연하지만 그 과정에서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게, 당신 혼자 모든 걸 책임지려고 하죠.”

부정할 셈은 아닌 모양이지. 모리사와 선배는 부정하는 대신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 모습에 허탈한 웃음이 새었다. 이 사람은 정말, 어디까지 책임을 질 셈이었을까. 나는 결심을 마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을 놓아줄게요.”

“뭐.”

모리사와 선배의 표정이 변했다. 그건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 당연하지만 이런 얼굴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충격받은 얼굴도, 지친 얼굴도, 미소를 가장하도록 꾸며낸 얼굴도. 무엇도 내가 바란 얼굴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떤 얼굴을 바랐던가. 이미 먼 과거가 되어버린 선배의 얼굴을 떠올린다. 지워진 것처럼 희미하다. 딱 그의 표정만 떠오르지 않는다. 선배의 활력을 집어먹고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주제에 가장 소중한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다니. 슬슬 웃음이 나올 것만 같다. 미쳐버린 것이 분명했다.

“아, 안 돼요. 안 될 것 같아요, 더 이상은.”

나는 얼굴을 감싸쥐고 무얼 떨쳐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선배. 선배는 나를 사랑해줬는데. 겨우 나 같은 걸 살리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손을 떨어트렸지만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떤 말보다도 이 말이 가장 힘들었다. 너무 많은 결심과 각오가 필요한 말이었다. 나는 겨우 짜낸 용기로, 희미하게 중얼거렸다.

“나, 당신을 좀먹는 내가 너무 싫어.”

당신이 사랑하는 나를 싫어하고 싶지 않았다. 이왕이면 살아남고 싶었다. 당신이 나를 구하고 싶어했으니까, 나의 삶을 긍정해주었으니까. 나와 함께 살고 싶어했으니까. 그래서 나도 살고 싶었다. 당신과 함께 살고 싶었다. 그 마음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분명 당신을 죽일 것이다. 그러니까 아마도 이 각오는 헛된 일이 아닐 테다. 할 말을 잃은 선배에게 내가 말했다.

“이젠 슬슬 끝내요, 우리.”

“타카미네!”

모리사와 선배가 내 이름을 외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그의 무릎이 힘 없이 비틀렸다. 피로 탓에 어지럼증이 엄습한 모양이겠거니 싶어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결코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다. 그런 주제에, 이 사람은.

“널 좀 더 소중히 대해라!”

그런 말이나 하는 것이다. 커다란 목소리에 나 역시 화가 나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야말로 당신이나 더 소중하게 여기라구요!”

“내가 조금 기운이 없는 게 네가 사라질 이유는 되지 않는다!”

조금? 흥분이 섞인 선배의 목소리에 반박하려던 순간 선배는 날 향해 손을 뻗었다. 그게 나를 붙잡으려는 행위라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잡힐 리가 없다.

우리는 한 번도 맞닿은 적이 없었다. 나를 스치지도 못하고 통과한 손 끝은 너무도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선배에겐 그게 새삼스럽게도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나를 지나쳐버린 제 손 끝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떨어트렸다.

“……포기, 하는 건가?”

선배는 언젠가와 같은 물음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와 같은 대답을 했다.

“아뇨.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 즈음에서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천천히, 수많은 마음을 꾹 눌러담듯 목소리를 내었다.

“당신을.”

그 말에 모리사와 선배가 홱 고개를 들었다. 마주한 것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흐트러진 앞머리 아래로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젖어있었다. 모리사와 치아키라는 사람은 결국 그런 사람이다. 끝까지 나를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 뿐인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째 웃음이 나왔다. 이 사람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그 마음을 차마 주체할 수가 없어서 나오는 웃음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나는 웃음을 참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웃어보였다. 선배의 마음은 잘 알았다. 나도 다르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탓이다.

나도, 선배를 지키고 싶었다. 선배가 제 안위보다 나를 우선하여 생각했던 것처럼 나 역시 선배를 생각했다. 우리는 아주 비슷했지만 상황은 서로 달랐다. 나를 본래의 몸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아직 어떤 방법도 찾지 못한 선배와 달리 나에게는 선배를 지켜낼 방법이 있다.

끈질긴 사람이니 언젠가는 날 구할 방법을 찾아낼지도 몰랐다. 아니. 언젠간 찾아낼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때는 너무 늦다. 그 사이에도 나는 굶주린 쥐처럼 선배의 몸을 갉아먹을 것이다. 내가 잠들지 못하는 시간 만큼 선배를 잠들게 만들 것이다. 그 결과 어쩌면 정말로 선배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원한 적도 없고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선배의 생활도 선배의 몸도 선배의 마음도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엇 하나 포기하는 일 없이 모리사와 치아키를 지킬 것이다.

카테고리
#기타
추가태그
#미도치아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