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ㅁ, ㅁㅁ.
2번 째 글스터디 주제: 나와 너 or 나야? 너야?
하늘을 가득 수놓은 반짝이는 별들.
그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을 하나 골라 이름을 붙인다면 그 이름은 나의 것일까, 너의 것일까?
설트SURT 왕국.
초대 황제 설트의 이름을 따 지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왕국이다.
언덕 위에 설치된 설트의 조각상 앞에서 아침 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 아아, 설트님이시여. 오늘도 이 왕국에 무궁한 발전과 축복을 내려주시옵소서."
자신의 초대 황제가 사실은 두 명이란 사실도 모른 채로 말이다.
오늘은 바보 같은 백성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찬양하고 있는 그 '설트'라는 인물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때는 음.. 그래. 아까도 말했듯이 대충 1,000년 전.
이제 막 15살이 된 꼬마 공주 두 명이 있었다. 이름은 시란과 스티. 염전을 가진 나름 부잣집의 두 딸이다.
"그래, 스티. 네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네 커다란 욕망이 담겼다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건 너무 거창하지 않니? 그냥 네가 꾼, 조금 현실성 강한 꿈이 아니었을까?"
"왜 그래, 시란. 지금까지 내가 말한 건 다 이루어졌었잖아. 그걸 가장 잘 아는 네가 이렇게 말하면 조금 슬퍼."
"그래, 그랬었지. 지나가던 개가 오른쪽으로 돌 것이다, 내일 비가 올 것이다, 아버지가 계단을 내려오시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실 것이다. 전부 네 말처럼 되긴 했지만 그건 그냥 운이 좋았던 거 아니야? 아버지가 계단에서 헛디디게 하는 정도는 나도 꾸며낼 수 있어."
"스티! 뭐라는 거야? 계단에 아무것도 없다는 건 너도 확인했잖아? 이제 와서 내가 의심스럽다고 하는 건 네 안목이 틀렸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금발의 소녀들이 둥그런 테이블의 좌와 우를 차지한 채로 수다를 떨고 있다. 손에는 요즘 유행하는 자수와 책이 들려있다. 자수를 놓는 자는 시란, 책에다가 무언가 메모하는 자는 스티. 둘은 쌍둥이 자매다. 금발의 머리를 하나로 정갈하게 묶고, 편한 잠옷 차림을 하고 있다. 햇볕이 창을 통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아침식사 후 자유시간을 보내는 듯하다.
"나야 네 말이 진짜던 가짜던 상관없었으니 슥 훑어보고 만 거지, 자세히 보진 않았단 말이야. 거기에 스티가 나까지 깜짝 속이기 위해서 장치를 해뒀을지 어떻게 알아? 네가 종종 말했잖아. 실은 생각보다 투명해서 사람들 눈에 안 보일 때가 많다. 거미줄 같아서 아무도 모르게 옭아맬 수도 있다, 하고 말이야."
"그건 내가 보는 소설에 실을 이용한 트릭들을 너에게 설명한 거고, 나에겐 그렇게 잘 이용할 기술은 없단 말이야. 내가 만약 실을 이용하려고 했으면 네가 그토록 아끼는 실을 꺼내기 전에 내 손가락은 벌집이 되어있었을 거야!"
분하다는 얼굴로 스티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나갔다. 본인이 잠옷을 입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은 것 같다. 주변에 있는 것이라곤 바다와 그 뒤로 펼쳐진 평야밖에 없지만 꾸역꾸역 작은 언덕을 찾아서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분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서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또 하나의 자신이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것에서 오는 배신감과 억울함이었다. 스티는 그날 다짐했다. 꼭 나라를 세워, 왕이 되어, 시란의 놀라는 눈을 보겠다고.
그로부터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소녀들은 성장했고,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아카데미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스티의 무대’가 되었다. 고지식한 분위기가 흐르던 아카데미에 왈가닥하는 스티가 모두를 휩쓸고 다녔으며, 선생님에게 많은 꾸지람을 듣긴 했지만 존재가 파격적이었던 만큼 그녀를 따르는 사람은 많았다. 셈이 빠른 ‘몽데’는 가장 먼저 스티의 오른팔이 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아카데미의 기사단장을 맡았던 ‘반’이 왼팔이 되었다. 그 뒤로 사람의 호의를 쉽게 얻을 줄 아는 ‘셜리’, 아카데미 원장이자 권력자의 딸 ‘달리아’까지 스티의 아군이 되는 것에는 그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애매한 태도를 보였던 건 시란이었다. 둘은 붙어 다녔다. 누가 봐도 쌍둥이인 둘 사이를 가로막을 수 있는 자는 아카데미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시란은 스티의 모든 행보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무시하듯이 자신만의 아카데미 생활을 고수했다. 너는 스티와 같이 ‘활동’하지 않는 거야? 너는 스티 바로 옆의 최측근으로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라는 질문에 전부 ‘모른다’는 대답으로 일갈했다. 그런 와중에도 시란은 자수 놓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스티가 입는 겉옷에 놓인 자수가 화려해지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아카데미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스티의 영향력은 커져만 갔고, 3학년 때는 회장을 맡는 것은 물론 나라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도 그려져갔다. 그럴수록 시란은 스티와의 교류를 줄였다. 다른 사람들은 스티가 바쁘니 자매의 사이가 소홀해졌다 싶었겠지만 스티는 알았겠지. 자신의 가족이 자신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음을.
그 후로도 쌍둥이는 붙어 다녔다. 몇 차례의 건국 전쟁을 지나면서도, 나라가 세워지고 나서도, 또 전쟁이 들이닥쳐 스티가 죽는 그 순간에도, 둘은 같이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손을 마주 잡고 있었지만 둘 중 누구도 나라를 맡겨달라거나, 뒤를 부탁해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시선을 마주하고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을 받아들였다.
시란에게 스티의 일기가 들어온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시란은 미리 알았다는 듯이 덤덤하게 그 일기를 받아들였다. 계속 전쟁을 벌여왔던 나라가 왕의 자리가 공석일 때를 노려 성을 차지하고, 스티의 무덤을 파헤치면서 발견된 일기였다. 자신의 가족을 모욕하는 행위에 분노할 법한데도, 시란은 몰래 일기장을 챙겨 가져다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한마디만 남겼다.
일기장을 열어보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문구는 ‘To. Siran’ 이었다. 이곳에 가장 먼저 적혀있던 과거의 일화로 일기장은 시작됐다. 그리고 그 뒤로 꾼 꿈에 대한 내용이 하나 둘 적혀있었다. 일주일 후 셜리가 몰래 향하는 장소에 대해서, 적국의 누가 어떠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에 대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그리고 일기장이 내 손에 들어오리라는 것까지 적혀있었다. 스티는 일기장이란 형태의 작별 인사를 남긴 것이다. 모든 글은 혼자 남아 고독할 또 하나의 자신을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서 적혀져 있었다. 심지어 일기장 마지막에는 ‘그리고 나는 봤거든. 네 손에 나의 일기가 들어가는 것을. 그래서 주변에는 너 몰래 넣어달라고 말해뒀어.’라고 적혀 있었다. 이런 것까지 서프라이즈라면서 준비하다니. 정말 자신의 쌍둥이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는 게 하나도 없었다. 오랜만에 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스티의 일기장은 너무나도 낡아 있었다. 내가 틈만 나면 읽었던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숨어지내던 거처를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옮기는 사이에 거의 스러져버렸다. 그녀의 기록은 나의 머리에 밖에 남지 않았다. 종이의 형태를 하고 있는 부스러기들은 일기라고 할 수 없었다.
일기의 형태는 남지 않았지만 스티가 남겼던 것들을 세상에서 없앨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스티가 적었던 모든 것을 옮겨 적진 못했다. 내가 그녀의 일기장을 닳도록 읽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모든 내용을 기억한다는 뜻은 아니다. 빠진 내용은 있지만 처음 몇 장 만큼은 그대로 옮겨 적었다. 내가 가장 많이 바라봤던 부분이니까. 1,000년 후의 미래라니. 웃음이 나온다. 그런 미래까지 봤으면 미리 말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하나 정정할 사실이 있다면 나는 어렸을 적에 스티의 의견을 부정한 것이 아니다. 스티, 너는 알고 있을까. 네가 나라를 세우는 꿈을 꾼 날, 나는 네 나라가 멸망하는 꿈을 꿨다는 것을. 우리는 쌍둥이니까 네가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나에게도 응당 그 능력이 있었을 거란 것을. 기쁨에 차 손을 휘두르며 반짝이고 있는 너한테 그런 미래를 알려줄 수 없었단 것을. 그래서 시큰둥하게 반응해버리고 말았단 걸 지금에라도 와서 이 지면을 빌려 사과하고 싶어. 나는 그 뒤로 별다른 꿈을 꾸지 못했다. 미래를 믿지 않는 나에게는 거기까지라는 듯이 미래라는 꿈이 더 이상 나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그 불안을 자수에 담았다. 너의 왕국이 결국 망한다면 처음부터 왕국을 세우는 것에 실패하는 게 좋으니까. 자수에 불안을 담을수록 너는 더욱 빛나는 존재가 됐고, 그에 맞춰 나의 자수도 화려해져 갔다. 그리고 미래는 바뀌지 않았다.
꿈에서 본 장면과 함께 스티와 스티가 세운 나라는 숨을 다했으며, 나는 외딴곳으로 숨어야 했다. 이곳을 찾은 후에야 나에게 다시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렬한 꿈은 어떤 소년이 찾아와 이 일기를 보는 꿈이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이 일기를 마무리해야겠구나. 그때부터 종이란 종이는 전부 모으면서 자수를 놓듯, 종이에 글자를 새겼다. 자수는 한 사람의 인생을 녹여내서 한 땀 한 땀 완성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자수에 새겨왔다면 이제는 우리 쌍둥이의 이야기를 종이에 새겨야 할 때다.
천천히, 천천히. 일기를 적어나가고 있으면 하루하루 달라지는 세상의 소식이 들려왔다. 스티의 나라는 몇몇 기사들의 힘으로 다시 되찾았으며, 왕으로 나를 앉히고 싶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나는 그것을 거절하는 의미로 왕의 위엄을 수놓은 망토를 성으로 보냈다. 그리고 일기를 완성해갔다. 적고, 찢고, 수정하고, 찢고의 반복 끝에 이 일기가 완성됐다. 기존에 있던 일기 분량의 반절에도 미치지 않는 양이 되었지만 담아야 할 정보는 전부 담았다고 생각한다. 길게 상세히 적는 것보단 핵심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나라를 되찾아 왕위에 오른 기사는 존경의 의미를 담아, 우리 이름을 따와서 설트왕국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그 뜻을 모두에게 알렸을 텐데 왜 미래의 백성들이 ‘설트’라는 사람이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스러져버린 스티의 일기장처럼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역사는 왜곡되고, 와전되어 본인들이 기억하기 좋은 쪽으로 남겨지겠지. 어쩌면 중간에 설트 왕국을 음해하려는 자들이 모든 자료를 태웠을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진 모르겠다. 미래도 그 부분을 알려주진 않았다. 그저 미래의 어떤 소년이 이 기록을 본다면 올바른 역사를 다시 세상에 퍼뜨려주길 바랄 뿐이다.
여기서 이만 글을 줄이겠다.
이것이 나 시란SiRan과 스티스태로sUiTaero가 세운 역사의 이야기다.
* * *
달도 미소 짓기 전의 어두운 밤. 누군가 산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반짝 빛나는 야생동물의 눈을 피해서 도망치면 다 쓰러져가는 오두막이 하나 보인다. 그곳에만 별빛이 모인 것처럼 옅은 빛을 받고 있었다. 저곳에 숨는다면 그들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할 거야. 주변을 경계하며 오두막으로 들어간 소년은 긴장에 귀를 쫑긋 세우며 앉아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든다.
아침이 밝았다. 소년은 놀라서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핀다. 다행히 주변에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소년의 앞에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금방이라도 다 찢어져 사라질 것만 같은 노트를 햇빛이 비쳤다. 소년은 그 노트를 열었다.
그간 잊혀져있던 역사가 새로이 세상의 공기를 맡게 되는 순간이었다.
몰라, 버려.
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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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름... 일본어로 시란(몰라)과 스태로(버려)...입니다. 이름 장난으로 시작하는 개그물이 목표였는데 쓰다 보니.. 전혀 다른 방향이 되었습니다. 스태로 쪽의 영어는 그냥 일본식으로, 발음하고 싶은 대로 발음한다!!!에서 따와 그렇게 되었습니다. (억지긴 하지만 뭐,,,,, 그럴 수 있죠?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길.)
어우 지금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마감을 해서.. 잘 적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횡설수설한 글이지만…. 아무튼 마지막까지 적은 것에 의미를 두려고 합니다.
아, 그거 적어볼까요.
여러분이 이 후기를 보고 계시다면 제가 무사히 마감을 했다는 것이겠죠…
저는 역사나 국가, 정치, 건국... 이런 것을 전혀 몰라서 여기저기 빈틈이 많겠지만 그래도 적는 건 재밌었네요..
저의 그뭔씹 취향을 가득 담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쌍둥이 최고.
쌍둥이는 세상을 구한다.
다들 쌍둥이 해요. 쌍둥이 안 해요?
쌍둥이 내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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