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민은] 저승사자의 하루

당신은 저승사자의 존재를 믿는가? 그렇다면, 귀신의 존재는?

이 이야기를 믿든, 믿지 않든 그것은 당신의 자유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당신이 저승사자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알아주기를 바래서 이다.

자, 여기 힘든 하루를 보내는 3명의 저승사자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실까?

저승사자의 하루

w.카사블랑카

1. 은광의 하루

은광은 오늘도 민혁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가 갈 수 있는 반경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어찌나 그 안을 돌아다니는지, 한번에 그를 찾는 날이 없었다. 그가 죽은지 벌써 2주가 지났는데도.

“민혁씨- 여기 있어요? 어디 있어요?”

오늘은 번화가였다. 영화관 근처를 돌아다니던 은광을 누군가 툭 건드렸다. 으아악!! 누구야?! 저를 건들일 ‘사람’이 없을 것이 뻔한데도, 은광은 와악 소리를 지르며 놀랐다.

“푸흡…저에요, 은광씨.”

그런 은광을 보고 해사하게 웃는 남자가 있었으니, 그 남자가 바로 민혁이였다. 은광은 민혁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똑바로 선 은광이 민혁과 마주 섰다.

“오늘도 예쁘네요, 은광씨.”

그의 말에 은광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그런 은광을 보며 민혁이 다시 웃음지었다. 고개를 숙인 은광이 웅얼거리며 말했다. 민혁씨가 예쁜걸 못 봐서 그래요... 그러나 민혁은 고개를 저으며 은광의 얼굴을 감싸 쥐고 고개를 들게 했다.

“아니에요. 제가 본 모든 것 중에 은광씨가 제일 예뻐요.”

진심이 담긴 민혁의 목소리와 시선에 은광이 얼굴이 더욱 화르륵 불탔다. ㅇ, 오늘은 꼭 가셔야 해요! 은광이 손을 살며시 뿌리치고 나서 하는 말에 민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벌써요… 아직, 못 본 것도 많은데…”

“ㅇ…아…”

“오늘, 이거 해보면 안돼요?”

민혁이 가리킨 것은 영화관이었다. 저 영화 한 번도 본적 없단 말이에요. 민혁의 말에 은광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만 보는거에요- 그 말에 민혁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그럼 우리 저거 봐요!”

“네, 그래요-”

뭐, 인간들이 만든 거가 뭐가 어떻겠어? 후에 은광은, 그때 다른걸 택하지 않았던 자신을 매우 때리고 싶다고 말했다.

-

“으아아악!!”

은광이 격한 비명소리와 함께 민혁의 팔을 부여잡았다. 스크린 가득 튀는 피와 소름끼치는 여자의 비명소리가 은광의 시각과 청각을 마비시켰다. 옆에 앉은 민혁은 그런 은광의 모습을 보며 웃음 짓고 있었다.

“푸흡- 무슨 저승사자가 공포영화를 보고 무서워해요?”

“ㅅ, 실제 귀신들은 저렇게 안생겼다구요!! 악귀도 저 정도는 아니에요!”

은광이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민혁의 팔을 부여잡고 말했다. 둘은 영화관 구석에 앉아 공포영화를 관람중였다. 물론 귀신과 저승사자인지라 돈도 안내고 그냥 남는 자리에 착석한 것이었다. 그것도 커플 석에. 하지만 둘은 영화를 본 적이 없어 커플석인지도 몰랐다.

-ㅅ…살려줘어-!! 꺄아아악!!!

“아아악!!!”

여주인공의 비명소리와 크로스 되는 은광의 비명에 민혁이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저승사자가 이래도 되는 거야? 민혁은 처음 보는 공포영화인데도 무섭지도 않은지 소리도 안 지르고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물론, 소리 지르는 은광을 보며 웃음짓는게 더 많았다. 은광이 반쯤 울먹거리기 시작하자 민혁이 은광의 어깨를 두드렸다.

“은광씨, 진정해요. 그냥 나갈까요?”

“흑…하…아니요, 주인공 어떻게 되나 보고 싶어요…”

울먹이면서도 결말이 궁금하다는 은광의 말에 또 다시 빵 터진 민혁이 땀에 젖은 은광의 머리를 살짝 넘겨주었다. 스크린 속에선 남주인공이 은광과 같은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하실을 살펴보는 남자의 어깨에 하이얀 손이 쓰윽 올라왔다. 그리고 남자 주인공이 뒤를 돌아보는 순간-

-아아악!

이번에 은광은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민혁이 타이밍을 맞춰 손으로 은광의 시야를 가렸기 때문이다. 귀신이 사라지자 민혁이 다시 손을 내렸다. 은광이 고개를 돌려 민혁을 바라보았지만, 민혁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광이 제 가슴위에 손을 올렸다. 뛰지 않는 심장이지만, 두근거리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인간들이 느끼는 감정이, 이런 거였나. 이미 사람이 아닌지 오래되어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뭔가 아득히 그리운 느낌이라고, 생각한 은광 이였다.

영화를 보고 나온 민혁과 은광이 얼굴을 마주보고 풋-하고 웃었다. 중간이 무서웠던 것에 비해 마지막이 별로 무섭지 않았다며 너스레를 떠는 은광을 보며 웃음 짓던 민혁이 저 멀리 태양을 바라보았다. 붉게 타오르며 노을을 만들어내는 해를 보던 민혁이 손으로 살짝 챙을 만들었다.

“은광씨.”

“네?”

“저랑 노을 보러가요.”

네? 얼른요- 민혁이 은광의 손목을 잡고 당겼다. 아니, 이제 가야… 이것만 봐요. 네? 은광이 그 말에 한숨을 포옥 쉬었다. 그래, 이것만 보고… 데자뷰가 느껴지는 것 같지만, 착각이 아닙니다. 여러분.

민혁이 은광의 손을 당겨 온 곳은 산동네로 올라가는 길의 벤치였다. 제법 높은 곳이라 훤히 다 보이는 도시의 끝에 해가 반쯤 걸려있었다.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이 붉은 노을을 바라보았다. 은광이 흘끔 민혁을 바라보았다. 민혁은 감동받은 듯 한 얼굴이었다.

“노을이란 게... 이렇게, 아름다운거였군요.”

“...”

“살아있을 때, 봤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은광이 그런 민혁의 옆얼굴을 말 없이 바라보았다. 그가 살아있더라면, 살아서 이런것을 보았더라면….

-

민혁은 살아있을 때, 선천적으로 눈이 보이지 않는 맹인이었다. 그래서 사망 사유도 뺑소니였다. 소리를 듣지 못한 민혁이 클락션을 울리며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한 탓이었다. 민혁의 몸에서 영혼이 빠져나올 때, 그는 처음 보는 세상에 놀라고,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몸에 놀랐으며, 차에 치여 사망한 자신의 반려 견을 보고 슬퍼했다. 그런 민혁을 인도하러 온 저승사자가 바로 은광이었다. 은광은 반려 견을 붙들고 슬퍼하는 민혁을 붙잡고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이민혁씨 맞으시죠?”

“흑...하, 아니... 누구세요?”

“저승사자 서은광입니다. 1990년 11월 29일생 맞으시죠? 20XX년 XX월 XX일 13시 5분 사망하셨고요, 지금 가셔야 합니다.”

“네...? 지금이요? 안돼요. 우리 하모 두고 어떻게 가요. 안돼요!!”

“하, 민혁씨. 동물들은 바로 명계로 가게 되어있어요. 민혁씨와 인연이 된다면 꼭 다시 만 날겁니다. 어서 갑시다.”

“ㅇ...안돼요! 난...”

안된다며 고개를 젓던 민혁의 몸이 점점 투명해져 갔다. 이런, 당황한 은광이 포승줄을 꺼냈지만 이미 민혁은 사라진 뒤였다. 아, 젠장. 은광이 곤란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귀찮아졌네. 공중에 손을 저어 책을 꺼내 든 은광이 오늘 인도해야 할 영혼들을 체크했다. 민혁은 그리 큰 죄가 없어 금방 악귀로 변할 영혼은 아니었다. 오늘 인도해야 할 영혼 중에 중죄인이 있음을 체크한 은광이 포승줄을 제대로 쥐었다. 우선 급한 불부터 끄자. 입술을 꾸욱 깨문 은광이 투명하게 사라졌다.

그 후 은광이 저녁때쯤에 민혁을 찾으러 다녔지만, 사라진 민혁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없었다. 은광이 상사에게 한바탕 깨진건 당연한 일이였다.

그 후로 은광은 일하는 틈틈이 민혁을 찾았지만 사라진 영혼이 그렇듯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그런 은광의 앞에 민혁이 나타난 날은, 벚꽃 잎이 하얀 눈 마냥 흩날리던 날이었다.

“민혁씨- 하... 어디 있는 거야...”

은광은 오늘도 거리를 돌아다니며 민혁을 찾고 있었다. 오늘은 인도할 영혼이 많지 않음에 생긴 여유였다. 그때 그냥 잡았어야 했는데… 입술을 살짝 깨무는 은광의 시야에, 벚꽃을 감상하고 있는 사람들 중 다리가 반쯤 투명한 누군가가 눈에 들어왔다. 찾았다!!!

“민혁씨!!”

“헉…!!”

“이러시면 안돼요, 민혁씨!! 자, 어서 갑시다!!”

은광이 민혁의 팔을 잡고 당겼다. 그러자 또 다시 도망치려는 듯 민혁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져갔다. 그러자 은광이 포승줄을 꺼내들었다. 이번에도 놓칠 순 없었다.

“민혁씨, 이런식이면 곤란합니다. 포승줄에 묶이면 죄가 더 무거워질 수 있어요.”

“제발…아직, 떠나고 싶지 않아요... 이제야 앞을 볼 수 있는데…”

민혁이 간절한 얼굴로 은광의 팔을 붙잡았다. 그 표정에 은광의 마음이 흔들렸다. 민혁이 앞을 보지 못했다는 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여태 이런 영혼이 수두룩했지만 흔들린 적이 없었는데, 민혁의 간절한 표정에 은광은 단호하게 쳐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제발요…”

“하…아니, 민혁씨-”

“조금만, 조금만요. 네? 나쁜 짓 안할게요…!”

제 팔을 붙잡고 반쯤 울먹리며 말하는 민혁에 은광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하… 그래요, 오늘만입니다. 한숨을 내쉬는 은광과는 달리 민혁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지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민혁이 연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은광이 손을 휘저으며 아니라고 말했다. 환한 얼굴의 민혁이 은광의 팔을 당겼다.

“같이 벚꽃 봐요, 우리.”

“ㅇ, 아니- 저는-”

“다른 사람이랑 벚꽃 보는게 소원이었어요!”

소원이라는 말에 멈칫한 은광이 결국 그의 바램대로 벚나무쪽으로 발을 옮겼다. 커다란 벚나무 밑에 선 둘이 벚꽃잎 사이로 반짝거리는 햇빛을 바라보았다. 민혁이 눈이 부신지 손으로 살짝 챙을 만들었다.

“햇빛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군요.”

“…”

“꽃잎이 떨어지는게 참 아름다워요.”

눈이 오면 이런 느낌인가요? 민혁이 살풋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은광은 그 말에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잘게 떨어지는 햇빛 아래의 민혁이 너무나도 눈이 부셔서.

-

이렇게 은광은 민혁이 하자는 것들에 거절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게 된 것이었다. 한번만, 한번만 이라는 그의 말에 넘어갈때마다 상사에게 깨지는 횟수도 늘었지만, 은광은 점차 민혁과 함께하는 시간에 길들여져 갔다. 민혁와 함께 그의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보는 시간이 좋았다. 어느센가 민혁을 찾아다니며 그와의 시간을 즐기는 저를 발견하였을때,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하며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른다. 저승사자가 인간의 영혼에게 정을 주는 것은 금기였다. 한번 정을 붙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되니까. 은광은 후회했지만, 차마 민혁을 포승줄에 묶어 끌고갈 수가 없었다. 그가 지옥에 떨어질까봐.

“은광씨.”

“네?”

“고마워요. 이렇게, 저를 생각해줘서.”

민혁이 은광을 보며 작게 미소지었다. 은광은 그에 맞춰 미소지을 수가 없었다. 노을에 붉게 물든 반투명한 그의 몸에 의자가 비춰보였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렇게 노을을 보는게 소원이였어요.”

“…”

“은광씨와 했던 모든 것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과 해보고 싶었던 것이었죠.”

“저…”

“제가 은광씨에게 예쁘다 했던거, 진짜 거짓말 아니에요.”

“민혁씨…”

“저 때문에 많이 곤란하셨죠?”

민혁의 말에 은광은 대답 할 수 없었다. 그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은광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자 민혁이 손을 뻗어 다리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은광의 손을 쥐었다.

“이제 가요.”

“…네?”

“더 이상 은광씨를 곤란하게 하기가, 너무 미안하네요.”

민혁의 말에 은광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곤란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대로 민혁을 보내기가 싫었다. 그러나 죽은 영혼이 생계에 오래 머물면 지박령이 되거나 악귀로 변할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민혁은 다른 저승사자에게 잡혀 윤회의 고리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었다. 그 말은, 두번 다시 민혁을 볼 수 없다는 소리였다.

결심한 표정의 은광이 민혁의 손을 꽉 쥐고 일어났다. 은광이 공중에 손을 휘젖자, 노을이 검게 갈라지며 새카만 하늘의 강가가 나타났다. 명부에 가는 입구이자,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건너는 망각의 강이었다. 한숨을 내쉬는 은광의 손이 잘게 떨렸다. 강가를 향해 은광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이 강을 건너면, 이승의 모든 기억을 잊게 될거에요.”

“아… 그럼, 죽고 나서의 기억도…”

“네. 없어질거에요.”

민혁이 착잡한 표정으로 은광을 바라보았으나, 은광은 앞만 보고 걸을 뿐이었다. 차마 민혁을 바라볼 수 없었다. 두 사람이 강가에 가까이 섰다. 강가에는 이미 수많은 영혼들이 홀린듯 강을 건너고 있었다.

“여길 건너실때, 절때 뒤돌아보면 안됩니다.”

“…네?”

“뒤를 돌면 강 바닥의 요괴들이 당신을 끌고 내려갈겁니다. 절대 뒤돌지 마세요.”

그 말에 한숨을 쉰 민혁이 찰랑거리는 물을 바라보았다. 뿌연 황토빛의 강은 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민혁이 다시 한번 은광을 바라보았다. 무표정인 그의 얼굴이 민혁의 가슴을 찔렀다.

“...정말, 고마워요.”

“제 할 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저승사자님을, 정말 좋아했어요.”

그 말을 하며 부드럽게 미소지은 민혁이 강물에 발을 담궜다. 이제부터 뒤를 돌아보면 요괴에게 끌려갈 것이었다. 민혁이 떨리는 발걸음으로 물을 헤쳐 나갔다. 곧 이어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민혁은 뒤를 돌고 싶은 마음을 꾸욱 내리 눌렀다. 조금 있으면 모든 마음과 기억이 사라질 것이라 자신을 위로하며.

강가에 선 은광이 점점 멀어지는 민혁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굳은 표정의 은광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사실,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면, 그를 보내야 한다는 다짐이 무너질까봐.

이제 작은 점으로 보이는 민혁을 바라보는 은광의 눈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나 은광은 자신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는 저승사자였으니까. 곧 민혁이 보이지 않음에 은광이 뒤를 돌았다. 책을 꺼내 든 은광이 다시 공간을 열어 이승으로 돌아갔다. 그가 인도해야 할 영혼은 넘쳐났다. 이미 해가 져 어둑어둑한 이승의 하늘을 바라보던 은광이 서서히 사라졌다. 밤에는 악귀가 흘러 넘치기 마련이었다. 이제, 철저한 저승사자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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