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러브하이

[BL] 러브 하이 EP. 01

[EP. 01] 헤어졌다고 손절하면 죽는다.

잉젬이네 by 잉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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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 러브 하이 EP. 01

EP. 01

헤어졌다고 손절하면 죽는다.

*

가족을 제외하고 세상에서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하던 사람이, 어느 날 나에게 믿을 수 없는 제안을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 같은가?

“내가 너 좋아하는데,”

“나도 좋아해. 안 좋아하면 주말에 외박계 내고 네 방에 있겠냐. …잠깐, 뉘앙스가 좀 다른 것 같은데. 내가 방금 생각한 의미가 맞아?”

“…….”

“…언제부터? 아니 갑자기?”

당신과 같은 성별을 가진 소꿉친구가 예전부터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고백하면서,

“어쨌든. 이건 넘어가고,”

“아니 이걸 어떻게 그냥 듣고 넘겨-”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딱 2년만 사귀자. 이후엔 깔끔하게 친구 사이로 돌아오는 것으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2년만 사귀어보자는, 여동생의 최애 로맨스 판타지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이나 할 법한 제안을 한다면 말이다. 

“어때.”

“어때 같은 소리하고 있네….”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나 박유원은,

“…하아, 알았어. 연애해.”

“잘 생각했어.”

“으으, 너 약속 지켜라? 2년 채우면 다시 친구로 돌아오는 거. 헤어졌다고 손절하면 죽는다.”

…수락했다.

*

박유원과 임수윤은 유치원생 시절부터 고등학생이 된 지금까지 끈질기게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사이이다. 요즘 세대 부모님들이 으레 그렇듯 두 사람 다 맞벌이 집안에서 태어났고, 업무 시간이 긴 직종에 다니고 있는 보호자들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보다 많은 시간을 유치원에서 보냈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지금과 성격이 상당히 비슷했는데, 박유원의 경우 활달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여러 명의 친구와 모여 노는 것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골목대장 스타일이었다. 임수윤은 선생님들이 그렇게 선호한다는 자유시간에 얌전히 동화책만 읽는 애. 책을 읽다가 작은 상처가 나도 울지 않는 탓에 한 번씩 주의를 기울여 살펴야 하긴 했지만, 그 이상 신경 쓸 것은 없었던. 육아 난이도 최하.

그런 두 사람이 친해지게 된 것은 오후 세 시에 어지간한 친구들이 부모님과 하원하고, 사전에 신청한 소수의 야간반 아이들이 한 방에 모이게 되면서부터였다. 야간반의 경우, 같은 시각에 끝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의 부모가 일을 끝마치고 데리러 오면 하나씩 집으로 가는 시스템이었는데 박유원과 임수윤은 매번 마지막까지 남아있었거든.

자신과 놀던 친구들이 모두 떠나고 혼자선 재미없는데 뭐 하고 놀지? 하던 유원의 눈에 그전까지 있는 줄도 몰랐던 아이가 들어왔다. 책상에 동화책 몇 권을 꺼내두고 열심히 읽는 중인 애. 아이가 읽는 동화는 유원 또한 집에서 읽어본 것들이었다. 그림은 많지만, 내용은 한두 줄로 되어있어서 금방 끝나는 것.

박유원은 친구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레고 놀이를 하자고 말하겠다 결심하고 수윤이 있는 책상으로 걸어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유원이 꽃받침을 하고 빤히 쳐다보며 기다리는 것도 눈치 못 채고 느릿느릿 동화책을 넘기던 아이는…

“그거 아까 읽었는데!”

“…?응.”

“또 읽을 거야?”

“응.”

“왜?”

“재밌어서…”

책 세 권을 다 읽은 후 다시 가장 처음에 읽었던 동화책을 들어 유원이 참지 못하고 끼어들게 만들었다.

“나랑 노는 게 더 재미있는데!”

“놀아? 너랑?”

“응!”

“…싫어.”

“왜! 나랑 놀자!”

“이거 볼 거야.”

“나 너랑 레고하려고 기다렸단 말이야!”

그때 임수윤이 지은 ‘그래서 어쩌라고.’라 말하는 듯한 표정은 지금까지도 잊히질 않았다. 그래 놓고 유원이 울먹이기 시작하니 그의 손을 잡고 레고 상자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었지. 박유원은 속도 없이 혼자 안 놀아서 좋다고 헤헤거리며 열심히 놀았다.

그 후에, 유원의 아버지가 먼저 유치원에 도착해서 그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야 했을 때. 임수윤은 ‘나랑 노는 거 재밌지?’하는 유원에게 고갤 끄덕이고 손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 다시 책 읽는 곳으로 가서 이미 읽은 책을 손에 쥐었었다. 예나 지금이나 고집 하나는 장난 아닌 놈.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박유원은 주변에서 임수윤을 ‘얌전하고 순한’ 아이라 칭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저놈이 얌전하다고? 그냥 쟤가 하고 싶었던 게 우연히 그런 애들이 하는 것들과 겹쳤을 뿐이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그걸 최소 열 번은 반복해서 읽고, 몇 달 뒤 또 읽고, 또 읽어서 나중엔 읽지 않고도 좋아하는 구절이 몇 페이지의 몇 번째 줄에 나왔는지 아무렇지 않게 읊는 놈은 유원이 생각했을 때 절대 마냥 얌전하고 순한 아이는 아니었다.

어릴 때 얘기는 이쯤 하고. 다시 지금으로 돌아와 보자. 임수윤이 박유원을 좋아하게 된 시기는 중학교 3학년 때라고 했다. 지금 그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해 첫 겨울 방학을 보내는 중이니 대충 1년쯤 된 거지. 어쩌다 그랬는지는 자기도 모르겠는데 그냥 갑자기 나를 보고 심장이 두근 하더란다. 임수윤이 좋아하는 열두 번째 소설책에서 주인공이 어떤 사람을 보고 첫눈에 반하는 장면에서 쓰인 여덟 줄의 서술처럼.

소꿉친구에서 애인이 되는 경우야 많다지만, 그건 이성 관계일 때 얘기고. 임수윤은 내 성향이 바이인지 헤테로인지도 모르는 마당에-게이일 확률은 왜 제외한 거냐고 했더니 ‘너 여자 좋아하게 생겼어.’ 하는 어이없는 대답이 날아왔다.- 나도 임수윤을 좋아할 확률은 0퍼센트라 판단했다고 한다.

당시 나는 과학고 진학을 준비하던 중이었고, 임수윤은 인문계를 갈 생각이었기에, 지금보다 덜 만나면 마음이 금방 뜰 거라 생각해서 3년 후 성인 됐을 땐 자기도 순수하게 우정으로 나를 대할 수 있겠지 싶었다는데. 임수윤 방에 아직도 여섯 살 때 읽은 문제의 동화책이 꽂혀있다는 걸 아는 나로서는 참으로 본인을 모르는 판단이다 싶었다.

“내 계획은 완벽했는데, 이렇게 된 건 네 탓이야.”

“허.”

본인 딴엔 완벽하다고 생각한 계획은 고등학교 진학 후 완벽하게 어그러졌다. 왜냐면, 내가 과학고 가고 나서도 중학생 때처럼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고 주말엔 지금처럼 외박계 내고 임수윤 집에 놀러 왔으니까.

“우리가 비대면으로도 충분히 교류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태어났다는 점을 간과한 거지. 메신저로 몇 시간 대화하는 것도 만나서 시간 보내는 것만큼의 관계 유지 효과가 있었는데 말이야.”

그렇게 1년, 이대로는 이도 저도 안된다 싶었던 임수윤은 내게 말한 그 얼토당토않은 제안을 생각해낸다. 2년간의 계약 연애. 지금부터 2년 후 1월, 졸업식 전까지만 사귀자는 것. 2년인 이유는 1년으로 하려다가 고등학교 3학년은 본격적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시기인데 주변 환경이 바뀌면 생활 리듬이 깨져서 안 좋다면서 ‘연애하는 애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 헤어지면 안 된다? 없는 애들은 새로 만들지 말고~’ 했던 임수윤의 1학년 담임 선생님의 말씀 때문이었다고 한다.

“화진 쌤이 그러는데, 고3 때는 주변 환경이 바뀌면 안 좋대.”

“…그거 입시 때문 아니야? 난 내년에 입시 보는데.”

“아. 그렇네.”

얘가 한 가지 간과한 점은 내가 과학고 학생이라는 것이다. 나는 과학고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 개학하고 나면 바로 조기 졸업을 준비할 예정이었으니까. 임수윤은 아차 싶은 표정을 짓더니, 심각한 얼굴로 ‘그럼 어떡하지. 대학 가서 2년간 사귀어야 하나?’하는 소리나 지껄였다. 어쨌든 2년간 나와 사귈 것이라 결정했으니 꼭 한 번은 이룰 것이라는 전제인 거다. 

나는… 임수윤이 얼마나 돌아있는 놈인지 알기에 제안을 승낙했다. 임수윤이 고개를 기울이며 ‘왜 수락했어?’ 묻기에 지금 네가 나 좋아한다는 거 알아버렸고, 사귀잔 말도 들었는데 내후년으로 미루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되물으니 놈도 ‘그건 그렇지.’하며 수긍했다.

“그리고… 아 모르겠다. 나도 그냥 조기졸업 안 하고 1년 더 다니지 뭐.”

“뭐? 왜?”

“너보다 일찍 입학해서 학번 달라지는 것도 내심 신경 쓰였고. 가고 싶은 대학 정하는 데에 1년은 좀 부족하다 싶어서. 겸사겸사.”

핑곗거리도 생겼고 잘됐네. 임수윤은 내 말에 ‘미친놈아.’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이마를 손바닥으로 세게 밀었다. 임수윤 침대에 자리를 잡고 있던 나는 그대로 중심을 잃고 넘어갔다.

“자기, 진도가 너무 빠른 거 아니야? 우리 손도 안 잡았는데 벌써 침대?”

“헛소리하지 마라.”

그리고 손을 안 잡았다니, 어디서 거짓말을…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주구장창 네가 내 손 끌고 다니던 거 앨범에 사진 다 남아있어. 애인 관계로 잡은 건 없다는 말이었지! 너는 참, 책을 그렇게 읽으면서 맥락을 못 읽냐…

“어쨌든. 그럼 오늘부터 사귀는 걸로?”

“어. 수락해줘서 고맙다. 그, 낯간지러우니까 호칭은 그냥 원래대로 해.”

“싫은데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를 건데!”

여차저차해서… 나는 소꿉친구와 생애 첫 연애를 시작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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