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하여 남은 것이란

로그 by 차콜

“선배님. 제 동생, 포스입니다. 많이 컸죠?”

“왜 너랑 하나도 안 닮았지? 이쪽이 더 잘생겼군. 미래가 창창하겠어.”

“…. 정말 이러실 겁니까?”

“그러고보니 선배님은 왜 불을 무서워 하십니까? 라이터라든가 가스레인지는 안 무서워하시잖아요.”

“별 이유 없어. 뻔한 이유이기도 하고. 화상은… 불 능력을 가진 센티넬한테서 얻은 거라서, 그래서 트라우마가 된 셈인 거지.”

“아하…. 그렇다면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제 능력 아시잖아요!”

“그것 참… 정말 믿음직스럽군 그래.”

“히스터스 총감님! 나와보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응? 왜. 무슨 일 있나? …지금, 뭐라고?”

“그 아이는 아직도 오지 않았나?”

“예….”

“…그렇군.”


단 한발의 총성, 그리하여 생긴 균열. 그 균열은 많은 것을 불러일으켰다. 한 사람의 눈을 가리던 환상을 거두었고 끝내 현실을 일깨웠으며 그로 인하여 혼란을 야기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란 포스, 하나뿐이었다. 이제서야 비로소 홀로 남게 된 것이다. 덴 히스터스는 한 문장을 채 내뱉지 못하는 포스를 향해 그 어떠한 행동도, 말도 건네지 않았다. 혼란스럽겠지. 그리고 고요하겠지. 그렇게 깨닫게 되겠지. 총에 맞은 이가 존재하지 않음을. 갈라테이아는 네게 환상을 보여주었을지언정 두 귀까지 완벽히 막은 것은 아니지 않나. 고로 연극은 이제 끝이다. 오로지 포스 한 사람만을 위한 극단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한 관객이었던 덴이 무대 위 조명을 깨뜨렸기 때문이리라. 정처없이 흔들리는 포스의 눈을 바라만 보던 덴이 차츰 그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어느덧 그의 손에 들려있었던 권총은 도로 악세서리의 모습으로 돌아간 뒤였다.

“오베는 없어. 아직까지도 모르겠다면 네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말해주지.”

한낱 관객에 불과했던 덴이 포스가 서있는 무대 위로 난입한 순간이었다. 얼마든지 비난 받아도 좋았다. 모든 것을 자신의 탓이라 하여도 좋았다. 그저 아끼던 후배의 하나뿐인 동생이 그의 넋에 사로잡혀 점점 망가지는 꼴만큼은 볼 수 없었다. 아끼던 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사실은 덴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었고, 죄책감은 오베의 의지를 잇는 포스에게 향했다. 다른 이들에게 벽을 세우던 덴이 유독 포스에게만큼은 유해질 수밖에 없는 까닭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두 번씩이나 때를 놓칠 순 없었다.

가까워진 거리.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덴은 섣불리 포스를 위로할 수 없었다. 허공에서 길을 잃은 덴의 손은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갈라테이아의 금이 간 부분을 어루만졌다. 이곳에 오베, 그 아이가 있었더라면 위로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을 텐데. 불현듯 미치는 생각에 조소를 터뜨린다. 자신의 손으로 포스에게서 오베를 빼앗은 주제에, 같은 공간 속에서 오베를 떠올리다니. 이것이야말로 기만이라 할 수 있지 않나.

“기억해내, 포스. 내가 왜 화염 이능력을 두려워 했는지.”

덴의 목소리가 단호하게 포스를 향한다. 무대 바깥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자가 있다면, 그 목소리 속에서 비탄과 탄식 그리고 안타까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가까이서 덴을 바라볼 포스가 그 점을 눈치챘을 수 있을까. 온기를 잃은 갈라테이아를 쓸어내리던 손이 결국 포스의 눈가로 향한다.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가를 어루만진다. 안쓰러웠다. 안타까웠지. 강제로 현실로 끌어내려진 이 아이가 앞으로 받아들여야 할 슬픔이 어느 정도일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그저 덴은 이리 곁을 지키는 것만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화염 이능을 가진 센티넬에게 이 화상을 얻었다는 것.”

“그리하여 네 형이 나를 보호해주었다는 것.”

“그렇기에 내가 오베를 아주 아꼈다는 것.”

“…그리고 내게 화상을 입힌 자가 내 누나라는 것까지.”

포스의 손을 잡고 끌어올린다. 갈라테이아의 손에 금이 간 것처럼, 마찬가지로 푸른 금이 간 허연 손이 덴의 오른쪽 눈가에 닿았다. 두려움의 이유, 트라우마가 된 과거의 기억. 그 모든 것을 말해주었을 때에도 덴은 포스의 손을 이끌고 제 상처를 어루만졌었다. 오베의 기일을 두 번째 맞이하던 날. 그 날에 덴 히스터스는 자신의 치부를 포스에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포스의 옆에는 아직 오베의 넋이 남아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너무나도 긴 시간이 지난 오늘, 덴은 포스에게서 오베를 떠나보내기로 결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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