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무협 AU

천살

철권 무협 AU

집밥상 by 양동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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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맹은 강호의 국가 기관이다. 관무불가침이라고 떠들어대긴 하지만, 무림인들이 중원에 발붙이고 살고 있는 만큼 국가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이게 아니꼽다면 세속의 무엇도 붙잡을 수 없을 정도의 강자가 되면 된다.

아무튼 무림맹이 맡은 일은 강호에서 큰 영향을 끼친다. 그중 하나가 후기지수 양성이다.

무림맹은 5년에 한 번씩 용봉지회를 연다. 성별의 관계 없이 중원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파악하는 데 비무회만 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용봉지회에 참여한 후기지수들은 성적에 따라 천무대와 지용대로 나뉜다.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는 천무대, 그 외의 이들은 지용대다. 어느 쪽이든 들어가면 무림맹의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의뢰를 맡아 실전 경험도 쌓을 수 있으며, 일부는 아예 무림맹 소속으로 살기도 한다.

천무대에는 세가의 아들딸들이 주로 간다. 세가에서 풍족한 지원을 받았는데 무공과 내공이 뛰어나지 않으면 잘못된 일이다. 사실 세가의 도련님, 아가씨를 평범한 부대에 둬 관리할 수 없다는 게 큰 이유긴 하지만.

빛나는 세대, 중원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 가장 뛰어난 후기지수들이 모인 부대…. 지용대들은 언젠가 천무대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맹의 어르신들도 큰 기대를 하고 있다. 그만큼 정파 사이에서는 위용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지금 그 천무대가 죽기 일보 직전이라는 거 빼고 말이다.

‘하….’

상황이 최악이다. 같이 들어간 다섯 중 셋이 죽고 하나는 다른 쪽으로 도망갔다. 도망친 녀석은 자기보다 상처가 더 깊었으니 살아남긴 어려울 것이다.

새어나오는 신음을 겨우 삼켰다. 기운을 맞은 여파로 내상을 입었다. 뒤에 있어 그나마 상하는 선에서 그쳤지, 가장 앞에서 맞은 녀석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절정이 왜 여기 있어. 미치겠네, 진짜.’

받은 임무는 숲에 있는 녹림 토벌이었다. 천무대 일곱과 지용대 마흔 명이 출동한 만큼 수월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리저리 만나는 산적들을 처리하면서 산채 위치까지 알아냈다. 맞는지 확인할 겸 둘러볼 생각이었는데, 산적들 수준을 알아서인지 그냥 다 없애버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싸우기 시작했다. 다 없애버릴 만했다. 두목 놈이 나오기 전까지는.

‘한 시진이 지나도 돌아오지 못한다면 바로 들어오라고 하긴 했지만. 구원이 오기 전에 다 죽게 생겼어.’

나무 위에서 꼼짝 못 하고 있는 지금을 보면 거기서 도망친 게 용할 지경이었다. 입에서 새어 나오는 피를 소매로 닦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여기로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다섯 명. 그래, 죽더라도 발악은 하고 죽어야지.

기습을 준비하던 중 이상함을 느꼈다. 들리는 발소리 수가 줄고 있었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자 산적 세 명이 공포에 질린 채 달리고 있었다. 뒤를 흘낏 바라본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며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무언가에 도망치듯 필사적인 움직임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기습하긴 제격이다.’

가장 앞서가던 산적 위에 떨어지며 칼을 박았다. 기습으로 발이 묶인 그들의 뒤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날라왔다. 온몸이 피투성이인 사람이었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한 명이 허리가 휜 채 죽었고, 그 소리에 놀라 넘어진 다른 놈은 소매에서 단도를 꺼내 허공을 휘적거렸다.

“오지 마! 오지 마!! 씨… 으아아아악!”

피투성이 남자가 칼을 휘두르던 산적의 오른팔을 잡고 돌려 뽑아버렸다. 엄청난 고통에 외마디 비명을 외치던 산적은 남자가 머리를 분리해 버리면서 조용해졌다. 순식간에 시체 두 구가 생겼다.

발걸음 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숨조차 내쉬지 못했다. 머리를 날려버린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손을 물끄러미 보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쳤다.

“…….”

“아군일세! 아군이야! 때리지 말게나!”

바로 칼을 내리고 양손을 들었다. 그의 옷이 피범벅이긴 하지만 지용대 소속에게 주던 옷이 틀림없었다.

“…지용대 소속 맞지?”

“맞아. 그쪽은 누구지.”

“천무대 소속 빅터 슈발리에라고 하네. 내 이름 들어는 봤겠지?”

“아니.”

“응?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나 용봉지회 준우승자야? 모를 리가 없… 아야야….”

“내상을 입었나? 그래서 홀로 있었던 거였군.”

“그래, 쫄들은 다 그냥저냥이었지만 두목이 절정이라 함께 있던 4명이 죽었고, 나만… 산 거 같군. 빨리 알려야 해. 어중간한 인원으로 싸울 만한 놈이 아니야.”

“여기서 동으로 맞나?”

“맞아. 어서 가야…”

“다 쓸고 오는 길이었는데.”

“뭐? 잠깐? 혼자서? 그게 될 리가….”

빅터가 말을 삼켰다. 피투성이 의복, 싸울 의지를 잃고 도망가던 산적들, 그가 보여준 무공. 어쩌면 진짜로….

“하…하하. 하하하.”

“빅터?”

“하하, 쿨럭 켁.”

어이가 없네…. 긴장이 풀린 빅터가 피 한번 뱉으며 풀썩 쓰러졌다.

빅터가 백두산을 처음으로 만난 날이었다.


맹은 강호에서 내로라할만 한 고수가 모이는 곳인 만큼 다들 콧대가 세다. 때문에 맹에서 우애를 쌓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빅터와 백두산의 관계도 그러했다. 정확하게는….

“백두산~! 오늘 일 끝나고 기루 안 갈래~?”

“안 간다고 말했을 텐데.”

빅터가 엉겨 붙는 쪽에 가까웠다.

“사내로 태어나서 기루를 안 가는 게 말이 안 되잖아. 솔직하게 말해. 가고 싶지?”

“가고 싶지도, 평생 갈 생각도 없다. 그만 권유해라.”

“어휴 심심하지도 않나.”

빅터의 눈에 백두산은 자신만 아는 녀석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무관심하고 친해지려는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니 지난해 용봉지회 준우승자도 몰라보고, 사건에 딱히 관심도 없고. 참 친해지기 어려운 놈이었다. 그래도 달라붙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날 혼자서 절정 고수 하나와 산적들을 몰살시킨 놀라운 업적은 빅터가 있던 조와 백두산이 나눠 가지게 되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이치에 맞았다. 아직 어린 후기지수 혼자서 녹림 하나를 박살 냈다는 걸 믿을 리가 없다. 백두산 본인도 딱히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고 같이 입 맞춰 적당히 끝났다. 다만 빅터만 아는 것이 있었다. 평상시 백두산의 무공은 냉정하게 몰아세우며 어떤 공격에도 넘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날 보여줬던 초식은 살초 그 자체였다. 평정은 무슨 사람 어디 뜯어버리는 무식한 공격. 분명 고수의 무공이 아닌 무언가가 있다. 궁금하다!

그렇게 끈질기게 몇 번씩 만나던 결과 서로 친하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 큰 일 하나씩 끝나면 축하 겸 만나서 술 마실 정도가 되었다. 서로 맹에 정식으로 들어가 일하는 곳이 달라져도 만나자는 약속을 걸면 꼭 나왔다. 그렇게 둘 다 맹에서 한자리 차지할 정도로 연륜을 쌓을 때쯤 약속이 생겼다.

그러나 그날은 조금 달랐다. 드물게 백두산이 먼저 약속을 잡고 술을 진탕 마신 것이었다.

“웬일이야. 자네가 이렇게 술 많이 마시는 건 오랜만인데.”

“…오늘이 아버지 기일이다.”

“어어어… 그런가. 어음.”

헛기침을 한 빅터가 천천히 백두산을 보았다.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백두산의 눈에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좋은 분이었나?”

“그래, 좋았지…. 나만 아니었더라면.”

‘나만 아니었더라면’ 그 구절에서 빅터는 백두산의 눈에 붉은빛을 보았다. 붉은빛 너머에서 아른거리는 하나의 심상을 엿보게 되니, 검은 하늘에 붉은 별과 시산혈해….

“헉….”

지옥도에 충격을 받은 빅터가 두려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음에도 백두산은 묵묵히 술잔을 비웠다.

“궁금하던 게 아니었나.”

“그 심상, 그 세계… 이게 대체… 들어만 봤던…?”

“…….”

술병을 들어 다시 술을 따른 백두산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최악이 맞아. 내 실체는 그게 맞네.”

“왜… 왜 알려준 건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말해야 했다.

“맹에 들어온 이유가 애초에 이걸 위해서였으니까. 이 운명을 바꿀 힘을 원했어.”

“그러니까! 왜!”

“화경에 도착했지만 이 이상부터는 더 이상 속이기 어렵지. 그래서 이듬해에 나는 맹을 떠날 생각이네. 가기 전에 한 번쯤은 밝히고 싶었어.”

“…내가 무슨 선택을 할 줄 알고.”

“상관없네. 태어났을 때부터 무림공적이 될 명운.”

복잡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아래로 떨군 빅터가 피식 웃었다.

“하. 네가 무림공적? 아직도 기루 문턱 안 넘은 사람이 무림공적이면 난 혈마겠구먼.”

“너….”

“그동안 알아서 다 제어하면서 살아왔잖나? 가끔 스스로 기맥 다 막고 쓰러지던 거도 다 이거 때문이었지? 그리고… 나는 자네 없었으면 지금까지 못 살았어. 그날 산채에서 죽었지.”

“…….”

“그러니까 나는 뭐… 괜찮네. 이런 거 알려주는 거 보니 이제야 친구 된 느낌이네.”

“후회할 텐데.”

“자네나 나나 맹을 위해 살았는데 어떤가. 거기다 곧 나간다며. 맹도 딱히 손대지 않을 걸세. 여차하면….”

“그 이상은 직권 남용 아닌가?”

“내 제자들인데, 직권 남용 아니지.”

백두산이 질렸다는 듯 눈을 감았다. 맞은편에 빅터는 껄껄 웃었다.

“자네도 제자 들여보게나. 무공 잇는 거 말고도 애 하나 키우는 재미가 쏠쏠한데.”

“내 무공을 이어서 어디다 쓰겠나.”

“그런 것치고는 혈교 놈들 대가리 잘만 깨더구먼.”

혀를 찬 백두산이 술병을 들어 빅터의 잔에 따랐다. 그렇게 이번 만남도 평범하게 끝났다.


‘죽을 뻔했던 적도 지나가니 다 추억처럼 느껴지는군.’

이제는 무림맹 부주가 된 빅터가 창밖을 보며 추억에 잠겼다. 떠나기 전에 본 친구 얼굴은 후련해 보였다. 그리고 자기 앞에서 친구가 말했던 말이 생각났다.

‘나도 제자 생겼다. 빅터.’

그 말 들은 직후 경공 써서 쫓아가려다가 레이븐한테 뒷덜미 잡히고 끌려가는 통에 이름도 얼굴도 모른다. 그 잠깐만 본다는 걸 일해야 한다고 그렇게 해야 했나 참. 지금쯤이면 지학은 당연히 넘었을 텐데…. 올해 용봉지회 안 나오려나? 맹 안 들어오려나? 그냥 발만 차도 알아볼 수 있는데.

“부주님?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아 고맙네. 레이븐. 이번 북해빙궁 빙궁주 동사 사건 맞나?”

“네, 맞습니다.”

“물고기가 물에서 익사하는 말이랑 다를 바가 없군. 빙공 다루는 인간이 얼어 죽는 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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