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랑] 메이드의 곁엔 항상 그 도련님이 있다.
도련님 진과 메이드 화랑 2부. 자신도 잊고 있던 키워드로 인해 그 시절 살인병기로 회귀한 화랑을 구하는 진의 이야기. 제 연성에서 브라이언 퓨리 첫 등장. 그러나 분량이 줄었다!
진과 화랑이 서로의 마음을 알게되고 결국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지 두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고작 두 달이지만 그 동안 꽤나 많은 일이 있었다. 처음으로 몸을 섞은 다음 날 아침, 화랑의 고함이 - 이 빌어먹을 변태 도련님이, 나 안해! 너랑 섹스 안할거니까! -저택을 쩌렁쩌렁하게 울려 저택의 모든 사람들이 그 외침을 들었다. 그리고 하필 그날따라 평소라면 절대 미시마 본가에 발을 들이지 않았을 리가 본가에 있었고 화랑의 외침에 폭소를 터트린 리가 바로 화랑의 사범님이자 아버지나 다름 없는 백두산 보안팀장에게 이 촌극을 알렸다. 당연하게도 백두산은 바로 미시마 본가로 달려왔고 제 앞에 서있는 사람이 제가 모셔야하는 도련님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저없이 발차기를 날리며 제가 분명 잘 부탁 드린다고 부탁을 드렸건만! 이라며 분노한 백두산의 앞에서 진은 제 위치를 잊어버리고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사죄했다. 물론 이걸 막아 줄 준은 어머나, 라며 모른척 했고 카즈야는 비웃었다. 리? 이미 안보이는 곳에서 폭소 중이었다. 여하튼 겨우겨우 백두산에게 사죄하고 화랑을 달랜 진은 어김없이 미시마 재벌의 후계자로서 본분을 다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자신의 전투 메이드이자 자신이 사랑하는 화랑이 있었다.
“ 그래서 이 편지는? “
“ 언제나처럼 같잖은 협박 편지 아냐? “
화랑의 말에 진이 제 책상에 놓인 검은색 편지를 보다 페이퍼 나이프를 들어 편지를 깔끔하게 개봉해 기울이자 안에서 툭, 검은 편지지가 떨어졌다. 제대로 접지도 않고 대충 우겨 넣은 것인지 툭 책상에 떨어지자마자 자연스레 펼쳐진 편지지에는 붉은색으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마땅히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보내주지 라고. 잠시 편지지를 바라보던 진이 흠 소리를 내더니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들어 사정없이 구기고는 그대로 쓰레기통으로 던져넣었다. 짐작 가는 곳이라도 있어? 화랑의 말에 진이 턱을 괴고 생각하는 것 같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많네. 그 말에 화랑이 웃었다.
“ 하긴 천하의 미시마 재벌이니 적도 한 둘이 아니겠지… 근데 아직도 이런 식으로 협박 편지 보내는 사람도 있네 “
“ 은퇴한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가끔 할아버지한테 협박 편지가 와 “
“ 역시 미시마 가, 주변에 적 밖에 없네. 넌 자다가도 칼 맞을 거다 “
“ 그러기 전에 네가 날 구해주겠지. 넌 날 지키는 전투 메이드잖아 “
“ …말이라도 못하면 “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일부로 투덜거린 화랑을 보며 작게 웃은 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땅히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보내주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편지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집어넣었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편지지에 쓰여진 문장이 진은 마음에 걸렸다. 마땅히 원래 있어야 할 자리… 이 편지… 정말 나에게 온 협박 편지가 맞는걸까? 이 문장에 맞는 사람은… 제가 아니라… 진이 고개를 움직여 화랑을 바라보았다. 화랑은 진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건지 태연하게 제 데저트 이글을 분리해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음, 이제 슬슬 총기 좀 바꿀까… 아무리 잼이 데저트 이글의 숙명이라고 해도 중요한 순간에 너무 자주 걸린단 말이지… 근데 손에 익은 총기라서 무턱대고 바꿀 수는 없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총기를 청소하는 화랑을 보던 진이 이내 피식 웃고는 미소를 띄우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괜찮아. 만약 이 편지의 대상이 화랑이라면… 그땐 내가 지키면 되니까. 내가… 붙잡으면 되니까. 그래, 진은 그렇게 쉽게 생각했다. 실제로도 자신도 화랑도 모두 강하니까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은 이 순간 너무나도 쉽게 생각해 버린 것을 후회하게 된다.
그 날은 이상하게도 바람 소리 하나, 자연의 소리 하나도 들리지 않는 기묘하게 조용한 날이었다. 마치 폭풍전야처럼. 진과 화랑은 리의 바이올렛 시스템즈사를 방문하고 있었다. 리가 개발한 컴봇의 공개 시연날이 오늘이었기 때문에. 바이올렛 시스템즈사 부지 한구석에 화려할 정도로 지어진 별관에서 한창 시연회가 벌어지고 있을 때 쯤. 사건이 터졌다.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터져나온 비명 소리에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역시나 화랑이었다. 제 메이드복 안쪽, 허벅지에 단단히 고정해놓은 홀스터에서 애총인 데저트 이글 두 자루를 꺼내 쥔 화랑이 진의 앞을 막아섰다. 그리고 동시에 사방에서 처음보는 밀리터리 군복을 입은 인간들이 습격하기 시작했다. 비명 소리와 시끄러운 발걸음 소리, 그리고 폭약과 총소리가 별관을 가득 채우는 와중에 리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바이올렛 시스템즈사에 속해있는 전투 부대인 위그드라실 부대가 출동했다. 자, 어디에 사는 놈들인지는 몰라도… 목표를 잘못 골랐어. 라스! 리의 외침에 미시마 가의 일원 중 한명인 라스 알렉산데르손이 진두지휘를 하며 습격자들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 역시 노리는 건 컴봇일까, 진? “
“ …… “
화랑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앉은 체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던 진이 벌떡 자리에 일어나 날개를 꺼내 날아올랐다. 화랑, 라스를 도와서 주변 정리를 해줘! 라져 댓! 제가 지켜야 할 진이 날아올라 명령까지 내리자 고삐가 풀린 화랑이 화려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품이 넓은 메이드복의 치마 부분이 참으로화랑이 움직일 때 마다 크고 부드럽게 너풀거렸다. 그래, 마치 춤과도 같았다. 죽음을 불러오는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춤. 그런 화랑을 바라보다 문득 진은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습격자들의 움직임이 좀 이상해. 컴봇을 노리는 거라면 직접적으로 컴봇이나 아니면 리 숙부 쪽으로 집중 되어야 하는데. 너무… 골고루 배치되어 있어. 설마… 목표가 컴봇이 아니다? 그럼… 습격자들의 목표는… 순간. 컥…! 익숙한 목소리의 괴로워하는 소리가 들리자 진이 휙 몸을 돌렸다. 그리고 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엎드린 체 괴로워하며 애총인 데저트 이글까지 놓아버린 체 위액을 토해내고 있는 화랑이었다. 화랑! 진이 그의 이름을 부르든말든 화랑의 앞에 서 있는 남자는 그런 화랑을 보며 마치 광인처럼 크게 웃을 뿐이었다.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진의 명령에 평소처럼 메이드복을 입고 데저트 이글을 든 체 침입자를 처리하던 화랑은 처음 신나던 기분은 어디로 가고 점점 기묘한 기분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 왜 날 보고 있지? 분명 목표물은 컴봇일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이 녀석도… 아까 그 녀석도… 눈에 들어있는 건 공포심과… 나 하나 뿐이야… 어째서지? 화랑이 제 옆에서 달려드는 습격자의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이마에 바람 구멍이 뚫려 쓰러지는 와중에도 그 눈에는 화랑 자신이 담겨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아. 일단 빨리 주변을 정리하고…
“ 정말 우스운 꼬라지를 하고 있군, 작은 사신 “
제게 달려드는 침입자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이내 누군가가 그 침입자의 뒤에서 주저없이 총을 발사했다. 당연하게도 침입자를 관통하고 날아온 탄환은 화랑의 볼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읏, 화끈화끈 거리는 통증과 뺨의 피부가 찢기는 고통에 이를 악문 화랑이 심장이 관통당해 즉사하여 쓰러진 침입자의 뒤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자식이다. 이 자식이… 대장이다. 군인과 용병의 중간 모습처럼 보이는 남자는 움직이기 편한 바지와 워커를 신었고 아무것도 입지 않고 들어난 상체에는 흉터가 가득했다. 갑작스런 대장의 등장에 화랑이 하, 크게 비웃으며 소리쳤다. 대장이라는 인간이 부하의 목숨을 너무 함부로 소비하는거 아냐? 그러다 뒤통수 맞고 뒤질텐데? 그 말에 남자가 비웃었다.
“ 상관 없다, 지금 이 자식들은 내 부하도 아니고 총알받이니까 “
“ 총알받이라고? “
“ 그나저나 정말 우스운 꼬라지군. 내가 알던 그 작은 사신… 이 이런 모습이 되다니 정말 통탄할 지경이야 “
“ 뭐야, 당신 누구야. 그 시절의 날 아는 인간은 없을텐데 “
“ 정말이지… 18살까지 살아있었으면 그땐 내가 친히 데리고 와 오른팔로 써먹어주려 했건만… 그걸 설마 미시마 가에서 가로챘을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우스운 꼬라지로 만들어서! “
“ 지금 누구냐고 묻잖아! “
왠지 모를 초조함에 휙 총구를 겨눈 화랑을 바라보며 데저트 이글의 방아쇠가 당겨지기 전에 그에게 접근한 남자가 작게 속삭였다. 역시 네놈을 효과적으로 써먹을 사람은 나 밖에 없겠군. 이제 마땅히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갈 시간이다, 블러드 탈론. 어…? 지금… 뭐라고… 순간 화랑의 머리 속에 가라앉아 있던, 지금까지 구출되고 난 후 6년 동안의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 지며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있던… 작은 사신일 때의 기억이 끌어올려지기 시작했다. 뭐야, 왜… 왜 그때의 기억이…! 컥…! 순간 화랑의 다리가 무너졌다. 무릎을 꿇고 데저트 이글까지 떨어트린 체 왼손으로 얼굴을 가린 화랑의 눈이 마구 흔들렸다. 그런 자신을 보며 터져나온 광소를 듣고 있는 화랑의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는 그 눈엔 어린 시절의 자신이 그들에 의해 고문과 세뇌를 받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이제 널 구해 줄 인간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 복종하고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결국 네 부모처럼 처참하게 개죽음을 당하게 될테니까. 블러드 탈론!
화랑이 으득 어금니를 악 물었다. 웃기지마! 지금의 난 그때의 내가 아냐! 그때 울고 울부짖으며 괴로워하던 나는 없어! 지금의 난 카자마 진을 모시는 전투 메이드 화랑이야! 내가 있을 곳은 여기야! 너희 따위에게 내가 복종할 듯 싶냐…! 그렇겠지, 어차피 죽이는 것 밖에 모르는 사신이 있을 곳은 역시나 사람을 죽이는 곳이겠지. 그렇다면 인간의 마음을 버리고 더욱더 효과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곳에서 써먹어 주는게 도리겠지. 웃기지마, 나는…! 살인병기가 인간처럼 살려고 하지마라, 그런다고 너의 손에 죽은 인간들이 살아돌아오지 않는다. 차갑고 온기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쇠사슬이 화랑의 목에 칭칭 감기기 시작했다. 잊지마라, 너는 살인병기이자 사신이다. 그러니… 너에게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어주지. 6년 간의 행복했던 기억 위로 지옥같은 살인 병기였던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살려달라 울부짖는 자신의 모습 위로 그런 사람들을 역으로 무감각하게 죽이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자괴감과 마음을 단번에 죽여버리는 죄책감에 위액을 토한 화랑의 앞에 누군가가 다가와 섰다. 화랑이 고개를 들자 보인 것은. 사람을 죽이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더니… 역시 역겨워. 어린 사신인 자신이 화랑에게 총구를 들이밀고는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진…!
“ 화랑! “
상태가 이상해보이는 화랑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드는 진을 본 남자가 광소를 멈추곤 짧게 말했다. 쏴라. 그리고 그 말이 끊나기가 무섭게 자신이 놓쳐버린 데저트 이글을 순식간에 다시 낚아채 쥔 손이 제 앞의 남자가 아닌 진에게로 향했다. 저에게 향해진 총구에 진의 눈이 커짐과 동시에 화랑은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래, 그건 그저 흔한 탄환의 발사가 아닌 진과 화랑의 관계가 부셔지고 인연의 끈을 끊어버리는 행위와도 같았다. 큭, 짧게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돌려 겨우 탄환을 피한 진이 땅에 착지하곤 다시 화랑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보는 그 눈을 본 진이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보는 화랑의 눈에는 안광이 없었다. 내가 저런 눈을 한 화랑을 어디서 봤지…? 그래, 그때다! 화랑이 있었던 쓰레기 같은 용병단의 아카이브! 그때 그 아카이브의 영상 속에서 화랑의 눈은… 저런 생기 없는 다 죽은 눈을 하고 있었어…! 왜 갑자기 화랑이 저런 눈을 하게 된거지? 왜… 그런 진의 의문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체 얌전히 기다리는 화랑의 머리를 짚으며 다시끔 광소를 터트린 남자로 인해 풀리게 되었다.
“ 진짜였군! 하하, 그때 그냥 흘러들어가며 들은건데 설마 진짜였을 줄이야! 그 죽은 쓰레기가 그래도 좋은 선물을 남겼군! “
“ 당신… 누구냐! “
“ 나는 브라이언 퓨리. 용병단 스네이크 아이를 맡고 있지. 이 사신이 몸을 담고 있던 용병단과는 동맹 관계였다. 뭐, 그래봤자 서로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던 말뿐인 관계이긴 했지만 “
“ 화랑을 어떻게 한거지? “
“ 하, 어지간히 사신을 개 취급을 하는군. 이름도 이쁘게 지어주고 말이지 “
“ 대답해! “
“ 흐응, 그때 죽은 그 쓰레기는 자신들의 세뇌 작업을 키워드를 주입한다고 했었지. 안 그래? 블러드 탈론! “
다시 한번 더 남자, 브라이언의 입에서 나온 키워드 블러드 탈론이라는 명칭에 화랑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 나온 것도 잠시 휘릭, 화랑의 양손에 들린 데저트 이글이 회전한다 싶더니 이내. 진과 브라이언을 향해 동시에 겨누어진 데저트 이글에서 탄환이 그대로 발사됐다. 갑작스런 화랑의 공격에 화랑만 바라보던 진도, 방심하고 있던 브라이언도 몸을 움직여 탄환을 피했다. 두 사람 다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화랑! 진이 벽에 박힌 두번째 탄환을 보다 다시 화랑을 바라봤을 땐 이미 브라이언의 주먹이 화랑의 배에 꽃힌 상태였다. 카학…! 짧은 비명 소리와 함께 비틀거리며 손에서 데저트 이글을 놓친 화랑의 머리를 후려친 브라이언이 그대로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지려는 화랑을 어깨에 들쳐맸다. 어지간히 개처럼 길들였군. 아무래도 조정이 다시 필요하겠어. 그렇게 중얼거리던 브라이언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진을 향해 허리춤에 매고 있던 수류탄을 잡아채 던지며 소리쳤다. 자폭해라, 쓰레기들아. 그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 사방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혼란스러운 별관을 채웠다. 거짓말, 사, 살려준다고 했…! 누군가의 목소리가 결국 끝을 맺지 못하고 커다란 폭발 소리와 함께 산화되었다. 진도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핀이 뽑힌 수류탄 2개에 이를 악물고는 날개를 펼쳐 몸을 감싸며 폭발에서 제 몸을 지켰다. 읏… 사방이 먼지와 연기에 휩싸인 것도 잠시 진이 날개를 크게 펄럭이며 순식간에 먼지와 연기를 날려보내자 그제서야 주변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처참하게 널부러진 시체들과 붉은 피, 건물의 잔해들이 눈에 들어온 것도 잠시 진이 주변을 살피며 화랑을 찾았지만 이미 화랑의 붉은 머리카락 한올도 보이지 않았다. 젠장, 화랑! 진이 절규와도 같은 소리를 내며 화랑의 이름을 불렀지만 그 외침에 대답해 줄 화랑은 이미 진의 손을 떠난 후였다.
이 자가 그렇게 중요해, 보스? 총알받이들을 다수 희생할 정도로? 그 질문에 브라이언은 그래서 불만이냐는 무서운 표정으로 바라보다 마시던 술을 탁, 소리나게 내려놓고는 눈을 번뜩이며 군용헬기 한구석에서 결박된 체 쓰러진 화랑을 바라보다 기억을 떠올렸다. 사신을 처음 본건 대략 8년 전 중동에서였다. 머나먼 미국에서 이 중동까지 오게된게 그로서는 큰 불만이었지만 세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누가봐도 보스에 어울리지 않는 쓰레기의 말을 한귀로 흘리며 형식적인 동맹 체결을 위해 가던 중 브라이언의 눈에 보인건 꽤나 어려보이는 소년병이었다. 하, 소문으로만 들은 총알받이인가. 그렇게만 생각하고 지나치려던 브라이언은 그 어린 소년병의 손에 들려있는 것이 작은 손에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은 데저트 이글이며 쏘는 족족 인간 형태의 과녁의 급소에 정확하게 맞추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호오, 소리를 흘리며 걸음을 멈췄다. 쓰레기 같은 보스는 브라이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인지 그가 질문도 하지 않은 일까지 모조리 말해가며 화랑, 그 당시 작은 사신에 대해 설명했고 그 과정에서 키워드까지 언급했다. 블러드 탈론이라… 하, 재미있군. 어디 실력 좀 볼까. 브라이언이 제일 밑의 부하를 시켜 작은 사신을 습격하게 했고 쓰레기 같은 보스가 블러드 탈론! 이라고 소리치자마자. 작은 사신은 주저도 없이 데저트 이글의 방아쇠를 당겨 자신을 습격한 남성의 이마에 총알을 박아넣었다. 비틀비틀 뇌수와 피를 흘리며 제 발 밑에 쓰러진 남자를 보던 작은 사신이 제 허리 춤의 칼집에서 칼을 꺼내 이미 사망한 남성의 목에 두어번 박아넣었다. 확인 사살까지 마친 작은 사신이 고개를 들어 제 보스를 가만히 바라보는 모습을 본 브라이언은 전율했다.
하하, 이거 대박이군. 브라이언의 말에 신이 난 쓰레기 보스가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걸 무시한 그는 가만히 작은 사신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세뇌니 뭐니 해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살인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그게 무뎌지는 순간 진정한 용병으로 거듭나는 것인데… 이 소년병은 거부감이 없다. 마치 처음부터 죄책감 따위는 없다는 듯. 살인의 재능이 너무나도 뛰어나군, 전쟁터를 누벼야하는 용병으로서는 최고의 재능이다. 하하… 이 쓰레기 같은 새끼에게는 너무나도 과분하군. 이 재능을 잘 살릴 수 있는 무대가 너에겐 필요하겠어… 좋아, 18살까지 살아남는다면 그땐 내가 친히 데려와 내 오른팔로 써먹어주지. 물론 어디까지나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면 말이야! 브라이언이 작은 사신을 바라보며 두 눈을 번뜩였다. 그리고 2년 후 브라이언 퓨리는 중동을 지배하고 있던 동맹 용병단의 전멸 소식을 듣게 된다. 어차피 허울만 좋은 동맹 관계 였기에 아쉬움은 1도 없었지만 딱 하나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때 자신이 발견한 최고의 살인 재능을 가지고 있던 작은 사신이었다. 역시… 그때 억지를 데리고 왔어야했나…? 아쉽군, 그 살인의 재능이. 이 브라이언이 혀를 차며 제 기억 속에서 작은 사신의 존재를 지웠다.
“ 보스, 보스도 이거 좀 봐요! “
“ 뭔데 이 난리야 “
“ 그 소문의 미시마 가의 남자 메이드가 있다나 뭐라나! “
“ 하, 할 일이 그렇게 없나. 그럴 시간에 다음 먹이감이나 차… 음? “
기억 속에서 작은 사신을 지운지 6년이 되었을 때 브라이언이 이끄는 용병단 스네이크 아이즈는 미국 내에서 가장 크고 악질적이며 잔인한 용병단 중 하나가 되어 국제경찰의 수배를 받을 정도로 세력이 커졌다. 자신을 부르며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는 부하의 머리를 내리치기 위해 다가간 브라이언은 사진 속 메이드복을 입은 남자의 모습에 멈칫 해서는 가만히 사진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다. 내가… 이 얼굴을 어디서 봤지…분명…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단 말이야… 그러다 남자의 손에 들린 것이 데저트 이글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 저도 모르게 터져나온 웃음과 함께 그의 손이 사진을 가로챘다. 뭐야, 보스. 왜 그래? 부하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사진 속의 남자를 바라보며 브라이언이 중얼거렸다. 살아 있었군. 작은 사신… 아니, 이젠 그냥 사신이라고 해야하나…?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있다니… 그때 그 용병단을 전멸시키고 사신은 살려서 데리고 온건가? 역시 그 잘난 미시마도 살인의 재능이 탐이 난 모양이군. 하지만. 브라이언이 인상을 찌푸렸다. 마음에 안들어, 완전… 개로 만들어놨군. 사신의 목에 사슬을 채우고 목줄을 쥐었어. 이렇게되면 모처럼 살린 살인의 재능이 묻혀버리잖아…! 어쩔 수 없군… 내가 사신을 마땅히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되돌려주지. 바로… 내 오른팔로서 말이야. 그래, 그래서 브라이언은 미국에서부터 멀고 먼 일본까지 오게된 것이었다. 이 모든 건 이 사신을 제 오른팔로서 전장에 풀어넣어 살인의 재능을 마음껏 꽃 피우게 하기 위해서…!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브라이언은 한번 더 자신을 재촉하는 부하에 퉁명스럽게 말하며 다시 위스키 잔을 손에 쥐었다.
“ 지금 저 녀석은 총알받이 100명의 몫은 할테니 걱정할 필요 없다 “
“ 저 우스운 메이드복을 입은 녀석이? “
“ 우습게 보지마라. 저 녀석은 작은 사신이라 불리던 녀석이야. 내가 지금까지 본 녀석들 중 가장 살인의 재능이 뛰어난 녀석이지 “
“ 저 녀석이…? “
“ 으헤헤헤…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덕분에 아주 좋은 살인병기를 얻었어 “
다시 손에 쥔 위스키를 단숨에 모두 비운 브라이언이 결박된 화랑을 힐끔 쳐다보고는 큭큭 웃어댔다. 좋아, 돌아가면 할 일이 아주 많아지겠어… 우선 다시 한번 더 그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야겠군. 거리낌 없이 사람을 죽이던… 그때의 사신으로 말이야… 광기에 찬 웃음소리와 함께 화랑을 실은 개조 군용헬기가 빠르게 미국 영공을 통과했다. 깨어나지 못하도록 마취제 등으로 잠재운지 21시간 만의 일이었다.
“ 기다려, 진정해. 진! “
“ 어떻게 진정할 수 있어…! ”
라스가 다급하게 진의 팔목을 잡아챘지만 진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체 라스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 화랑이 납치됐다. 브라이언 퓨리라 불린 남자가 이끄는 용병단 스네이크 아이즈의 목적은 컴봇이 아니라 처음부터 화랑이었다. 블러드 탈론. 그 시절 자기 자신을 죽이고 그들의 살인 병기로 살아가던 화랑의 탈취가 목적이었던 것이었다. 마땅히 원래 있어야 할 자리. 그건 아마도 살인 병기가 된 화랑이 마음껏 그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전장일 것이다. 자신들의 말대로 움직이는 살인 병기가 된 화랑을 실컷 이용해 먹고 필요가 없어지면 주저 없이 죽여버리겠지. 자폭 당한 그 사람들처럼. 진은 수류탄이 터지기 직전 울먹이며 공포심과 절규를 내뱉은 목소리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야… 이제야 겨우 모든 게 다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때 그 잔해가 남아 화랑을 괴롭히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거리낌 없이 방아쇠를 당기던 화랑의 그 안광 없는 죽은 눈이 아른거렸다.
“ 일단 진정해, 진 ”
“ 하지만…! ”
“ 네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 그가 걱정되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고 ”
“ 그럼 이럴 때가 아니잖아. 당장 빨리… ”
“ 당장 빨리 뭘 어쩌겠다는겁니까, 도련님 ”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움찔, 진이 어깨를 떨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진이 가장 두려워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주춤주춤, 진이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 있던 건. 보… 안 팀장님. 자신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는 백두산 보안팀장이었다. 이번 공개 시연회에는 본가의 보안팀은 참가하지 않았다. 이유는 백두산이 이끄는 본가의 보안팀은 철저하게 본가의 일에만 관여하는 것이 규칙이었기 때문이었다. 워낙 규모가 큰 미시마 가이기에 철저하게 분할되어 있는 업무에 맞춰 백두산이 이끄는 보안팀은 본가의 일에, 라스가 이끄는 전투 부대는 분가의 일에만 관여했다. 하지만 이렇게 철저하게 업무가 분할되어 있어도 어느 한 쪽이 요청을 했다면 분명 지원을 갔을 것이다. 그래, 이번 일도 진이 협박 편지를 받고 가볍게 넘기지 않고 본가의 보안팀에게 요청을 했다면. 협박 편지를 직접 보여주며 백두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면. 화랑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백두산이었다면 그 협박 편지의 주인이 화랑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화랑을 지키는 것에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하지만 진은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은 강하니까. 그리고 오만하게도 자신이 화랑을 지킬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으니까.
“ 리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공개 시연회에 불한당들이 습격했고 화랑을 납치해 갔다구요 ”
“ …… ”
“ 협박 편지가 도착했다고 들었는데… 그걸 왜 아무에게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
“ 그건… ”
“ 하아, 도련님이 강하신 건 잘 알고 있습니다. 미시마 가의 데빌을 길들이셨으니 그 강함은 분명 저희 보안팀 보다 더 강하시겠죠 ”
“ 보안 팀장님 ”
“ 하지만 그건 분명히 오만이었습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다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셨습니까? 적어도 저한테만이라도 알려주셨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
“ …… ”
“ 화랑을 울리지 않고 지키겠다고 하셨죠. 하지만 ”
“ …… ”
“ 약속을 지키지 못하셨군요, 도련님 ”
그 말을 끝으로 몸을 돌린 백두산이 리를 불러 이번 일에 대해 무언가 대화를 나누는 걸 바라본 진이 입술을 깨물었다. 변명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백두산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것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화랑을 혼자서 지킬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협박 편지도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오만이었고 결국 화랑을 지키지 못하고 빼앗겼다. 다시… 그를, 그때의 제 자신을 죽이고 사람을 거리낌 없이 죽일 살인 병기로 만들 조직에게 빼앗겨 버린 것이었다. 젠장… 한 손을 들어 제 얼굴을 가리는 진을 보던 라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사태의 수습은 진 없어 리와 라스, 그리고 백두산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진은 제 방에서 거의 감금 수준의 무기한 대기를 당하게 되었다. 그건 백두산의 분노도 있었지만 진의 태도가 미시마 가를 이끌어 가기에는 신중하지 못했고 오만하기 짝이 없는 선택을 했다는 것에 고개를 흔든 카즈야의 결정도 있었다. 준은… 말이 없었지만 그녀 역시 화랑을 걱정했다. 그녀는 백두산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아닌 병기로 살아가던 화랑을 제일 먼저 목격하고 그가 회복하던 과정을 아는 사람이었으니까.
화랑… 일주일이 지나도 여전히 감금 상태인 진이 오늘도 제 방의 침대에 걸터앉아 양손을 꼭 쥔 체 화랑의 이름을 읆조렸다. 화랑이 납치를 당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동안에도 제 방에서 무기한 대기를 당한 진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자책감을 느끼며 화랑의 안부를 빌고 그를 떠올리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진을 찾아온 사람은 준이었다. 똑똑, 가벼운 스냅과 함께 들려온 노크 소리에 진이 고개를 들자 그녀가 드물게 말도 없이 벌컥,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 준이 진을 보며 부드럽게 웃으며 그 옆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 저를 찾아왔다고 생각했던 준이 제 옆에 앉아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진이 꾹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그 주먹 쥔 손 위로 준이 제 손을 올리더니 이내.
“ …네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렴. 그리고 너의 각오를 보여주렴. 화랑군을 위해 지금 네가 뭘 할 수 있는지를 ”
준은 그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진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자신이 화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은 어떤 각오를 다져야 하는지. 생각의 정리가 끝나자 진은 방에서 무기한 대기를 당한 지 열흘 만에 스스로 자신의 방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방 밖으로 나온 진의 목적지는 당연하게도. 무슨 일이신가요, 도련님. 분명 무기한 대기를 회장님이 명령하셨을텐데요. 본가의 보안실이었다. 열흘 만에 진을 보는 백두산의 태도는 여전히 싸늘했고 보안실의 보안 팀원들만 제 팀장의 싸한 분위기에 움찔 떨며 두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잠시 말이 없던 두 사람 중 먼저 꺾인 건 백두산이었다. 하아, 한숨을 쉰 백두산이 잠시 도련님과 이야기를 나누겠다며 진과 함께 보안실을 나가고 나서야 보안 팀원들이 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텅빈 회의실로 들어온 백두산이 문을 닫으며 입을 열었다.
“ 회장님의 명령까지 어기고 절 찾아오셨다는 건 각오를 했다는 뜻으로 받아드려도 되겠습니까? 도련님 ”
“ …내 잘못으로 화랑을 빼앗긴 건 사실입니다. 내 오만이 화랑을 위험에 빠트렸죠 ”
“ …… ”
“ 그러니까 화랑을 구하고 난 후에 그를 내 직속 사용인이 아닌 보안팀에게 다시 돌려주겠습니다. 마땅히… ”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그 말을 들은 백두산은 침묵하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도련님의 각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 백두산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리와 라스가 들어왔다. 조카님, 결국 카즈야의 명령을 어기고 나온거야? 나중에 카즈야가 한 소리 할텐데. 리의 말에 진이 말없이 팔짱을 끼자 리가 피식 웃고는 그게 카즈야가 원했던 선택이긴 했지만. 이라며 작게 중얼거렸다. 백두산이 가볍게 책상을 두드려 자신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 브라이언 퓨리라는 자가 이끄는 스네이크 아이즈는 미국에서 꽤나 유명한 용병단이라고 하더군. 악질적이며 잔인한 용병단 중 하나로 말이야 ”
“ 악질적이고 잔인한 용병단이라는 것에는 동의해. 그 날 습격한 자들 중 태반이 그냥 버림말 이었으니까 ”
“ 조사해 보니 인질을 잡은 후 딱 한번만 자신들의 총알받이가 되면 풀어주겠다고 하면서도 그 몸에 폭탄을 달고 그대로 인간 폭탄으로 활용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현재 국제 경찰에 수배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
“ 조사 고마워, 라스. 그래서 그 국제 경찰과 협조해서 스네이크 아이즈를 모두 처리함과 동시에… ”
“ 화랑… ”
“ 그도 구할거야, 진. 아니, 구하는게 문제가 아니지. 그렇지, 백? ”
“ …각오를 다져주십시요, 도련님. 만약 화랑이 그때 그 당시의 살인 병기로 회귀했다면 최악의 상황으로는… ”
“ 죽일게요. 다른 사람도 아닌… 제가 ”
그 말에 놀란 건 리와 라스였다. 진이 화랑을 얼마나 아끼는지 잘 아는데 저 입에서… 죽인다는 말이 나오다니. 진이 스스로도 얼마나 각오를 다지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말이었다. 그게 내 오만의 결과가 된다고 해도… 제가 죽일게요. 그저 자책과 체념의 말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이 진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자신들을 똑바로 보며 말하는 진의 모습에 그의 각오를 확인한 세 사람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작전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살려달라 애원하는 가족을 향해 사신은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일말의 망설임도 죄책감도 주저함도 없이 살려달라 비는 일가족을 모조리 사살한 사신을 보며 브라이언이 만족의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태생이 살인자다. 아마도 지금 이 상태면 제 가족이라고 해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겠지. 다만. 화랑을 미국으로 납치 한 후 다시 세뇌를 하는 과정에서 그는 아무런 단어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나 카자마 진이라는 단어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심지어 키워드로 인한 세뇌를 이겨내고 몇번이고 자신에게 총을 들이밀었다는 제 부하의 말에 브라이언은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 사신을 개로 길들인 게 그 곱게 자라온 도련님인 것 같다고. 잠시 생각하던 브라이언이 이내 사악하게 웃었다. 자신이 길렸던 개한테 물리는 경험을 시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그리고 주인을 문 개의 목에 다시 목줄을 채우는 것도 좋겠다고.
“ 두목, 속보인데 ”
“ 뭐냐 ”
“국제 경찰이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미시마 가가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
그 말에 브라이언이 하하, 크게 발작하듯이 웃었다. 결국 이 사신을 잡기 위해 그 잘난 미시마 가 까지 붙게 되었다. 더 큰 적이 하나도 아닌 둘이 되었는데도 그는 너무나도 즐거워했다. 그래, 그는 그런 남자였다. 모든 것에 대해 증오를 가지고 있는 남자, 그리고 모든 것을 파괴하기 위해 살아가는 남자였으니까. 자, 그럼 손님 맞이를 준비해야겠지. 그리고 그 손님을 맞이하는 건 제 앞의 사신이었다. 블러드 탈론. 브라이언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움찔, 어깨를 떤 사신이 그에게 다가왔다. 자신이 죽인 가족의 피가 묻은 얼굴은 감정이 한조각도 실려있지 않았다. 안광이 없는 섬뜩한 눈을 바라보던 브라이언이 작게 속삭였다. 다, 죽여라. 라고.
그리고 정확히 이틀 후. 스네이크 아이즈의 본부가 습격을 받았다. 습격자는 그 동안 스네이크 아이즈의 거대한 규모로 인해 습격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국제 경찰과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국제 경찰을 지원하기로 한 미시마 가의 보안팀과 전투 부대 위그드라실이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레이씨.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백두산씨. 국제 경찰의 대표로 이번 작전에 참여한 레이 우롱은 오래동안 브라이언 퓨리를 쫓고 있다고 했다. 그는 과거 국제 경찰 소속이었으나 사망 후 매드 사이언티스트인 아벨이라는 자에게 개조되어 개조 인간인 레플리칸트로 다시 부활, 그 후 아벨을 죽이고 그 강해진 육체와 점점 더 광기가 서리기 시작한 정신으로 용병단을 만들어 이 세계를 부수고 또 부수는 중이라고 레이는 설명했다. 오래동안 쫓았고 잡을 수 있는 찬스도 있었지만 매번 그 잔혹한 인간 폭탄으로 인해 놓쳤다고 말한 레이의 얼굴에는 많은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
국제 경찰과 미시마 가의 보안팀, 전투 부대 위그드라실이 스네이크 아이즈의 본부에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상공에서 바라보던 진의 시야에 자신이 타고 있는 헬기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브라이언이 들어왔다. 마치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듯 까딱까딱 손짓을 하며 스윽 사라지는 그의 모습에 진이 그대로 데빌의 날개를 펼쳤다. 진? 리의 외침에도 진은 대답도 하지 않은 체 그대로 날아 올라 브라이언이 사라진 장소로 힘차게 날아갔다. 진!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진은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다. 빨리, 조금이라도 빨리… 화랑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브라이언 퓨리가 자신을 불렀다는 건 분명… 그 곳에 화랑이 있다는 소리였으니까. 어떠한 모습이든 어떠한 상황이든 어떠한… 결말이든. 진은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 화랑! ”
브라이언이 사라졌던 방향으로 날아들어온 진은 제 앞에 보이는 문을 박차고 들어와 소리쳤다. 그리고 마치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 처럼 넓은 공간이 보였고 그 가운데… 누군가의 피로 잔뜩 젖은 체 안광이 사라진 눈을 한 화랑이 들어왔다. 화랑… 진이 작게 이름을 읊조리니 광기에 서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진이 고개를 돌린 그곳엔 마치 이 상황을 즐기는 것 처럼 보이는 브라이언이 있었다. 하하, 오라고 했더니 진짜 올 줄이야! 어지간히 기르던 개가 그리웠던 모양이군, 애송이. 그 말에 진이 이를 악 물었다. 닥쳐, 이 이상 화랑을 마음대로 다루게 두지 않아. 돌려받겠어. 그래… 어디 한번…
“ 할 수 있으면 해봐라, 애송이. 블러드 탈론 ”
브라이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랑이 스윽 팔을 들어 들고 있던 총기의 방아쇠를 당겼다. 평상 시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데저트 이글이 아닌 다른 총기였다. 이미 거기서부터 화랑은 자신이 알던 화랑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진이 입술을 깨문 것도 잠시 저에게 날아오는 탄환을 데빌의 힘을 이용해 잡아챈 진의 손에서 힘을 잃은 탄환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호오, 저게 그 말로만 듣던 미시마 가의 데빌의 힘인가. 정말… 괴물이군. 어디 한번… 사신은 그 괴물도 죽일 수 있나 볼까. 죽여라, 블러드 탈론. 자신에게 떨어진 명령을 화랑은 충실하게 이행했다. 빠르게 진에게 접근한 화랑이 왼손에 들린 칼과 오른손의 총을 활용해 근접전으로 정말 죽일 듯이 진에게 덤벼들었다. 읏, 잠시만! 화랑! 정신차려, 화랑! 진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화랑은 조금의 손속도 없이 진의 급소만을 공격했다. 귀 바로 옆을 스쳐지나가는 탄환의 총격음에 귀가 멀어 버릴 것 같았다. 찰칵, 자신을 향해 겨누어진 총기에서 탄환이 다 떨어진 소리가 나자마자 눈을 빛낸 진이 총기를 붙잡은 오른손을 쳐내 총기를 떨어트리더니 화랑의 멱살을 잡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트렸다. 꽤 큰 충격에도 화랑의 입에서는 조금의 신음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화랑, 정신 차려…! 진의 외침에 잠시 말이 없던 화랑의 칼을 잡은 왼 손에서 점점 힘이 빠지는 것을 본 진이 조금이라도 정신이 돌아온 건가 싶어 아주 조금 긴장을 푼 순간이었다.
화랑의 손이 순식간에 제 몸에 달려 있던 수류탄의 핀을 뽑았다. 팅, 하는 소리와 함께 수류탄을 쥔 손을 그대로 진, 자신에게 붙이는 화랑에 눈이 커진 것도 잠시 이내 큰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휘유, 작게 휘파람을 분 브라이언의 눈에 진의 데빌의 날개 덕분에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은 화랑과 반대로 상체의 절반에 수류탄의 파편이 박혀 피를 흘리고 있는 진이 들어왔다. 날개로 온전히 자신을 감쌌다면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았겠지만 화랑을 지키기 위해 한쪽 날개를 희생한 결과는 진 자신에게 꽤나 큰 대미지로 들어왔다. 윽… 낮은 신음을 흘리는 진에게 발길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선 화랑이 탄이 떨어진 총기를 주어 탄환을 보충하고는 그대로 진에게 겨누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체 고통에 작게 신음하던 진이 고개를 들어 화랑을 바라보았다.
“ 화랑… ”
“ …… ”
“ 지… 키지 못해서 미안해… 이런… 악몽을… 다시 겪게 해서… 미안해… 그러니까 난 너를… 구할거야… 내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
“ …버려…? ”
“ 화랑? ”
“ 음? ”
그 시절의 화랑은 절대로 소리를 내지 않았다. 목소리를 내는 순간 자신에게 돌아오는 건 고통 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그 시간으로 회귀한 화랑은 절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화랑이 지금 소리를 내었다. 화랑, 내가 보여? 화랑!!! 진의 목소리가 화랑의 내면으로 스며들었다. 온통 어두운 공간에서 화랑은 목에 사슬이 감긴 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의 제가 쏜 탄환은 주저없이 화랑의 정신을 부셔버렸고 화랑은 이 곳을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사슬에 묶인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건 그 시절 자신에게 죽은 사람들의 원망과 목소리 뿐이었다. 너 때문에, 네가 우리를 죽였어. 사람을 죽인 살인자 주제에 어째서 지금 이렇게 행복한거야? 왜… 너만 살아서 행복한거야? 절규와 원망과 한탄이 섞인 목소리를 들으며 화랑의 정신이 점점 부셔져 갈 때 쯤. 힘없이 누워있던 화랑의 손 끝으로 마치 그때처럼 벌레 한마리가 기어 올라왔다. 그 벌레를 바라보던 화랑이 손에 힘을 줘 짖이기려 하려는 순간 화랑의 귀로 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키지 못해서, 악몽을 다시 겪게 해서 미안하다고.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너를 구하겠다는 그 목소리가 들린 순간 화랑이 작게 중얼거렸다.
“ 싫어… 진, 네가… 죽는 건 싫어… 난… 나는… 너를… ”
“ 아직도 살고 싶어? 파렴치해. 사람들을 그렇게 죽여놓고는 아직도 살고 싶어? ”
빛을 잃어버린 눈이 제 머리 맡에 서서 저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는 어린 시절의 작은 사신이 들어왔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안광이 없는 두 눈이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머리 맡에 무릎을 꿇고 앉은 어린 시절의 자신이 눈을 마주쳐왔다. 사람을 죽였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뤄야지. 납치로 인한 세뇌? 고문으로 인한 두려움? 그거 모두 변명이잖아.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게 두려웠다면 차라리 죽었어야지. 자살이라도 했어야지. 내가 죽인 사람들은 다시 살아나지 않는데 왜 내가 살아야 해? 그럼 그냥… 죽자. 응? 속죄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자. 그게 그에게도 분명 도움이 될거야. 그렇잖아, 사람을 잔뜩 죽인 자신이 누군가의 사람이라니. 분명… 그에게도 민폐일거야. 그러니까… 우리 사이좋게 죽자, 응? 어린 시절의 자신이 양 손에 데저트 이글을 든 체 하나는 자신의 이마에, 하나는 화랑의 이마에 총구를 가져갔다. 그대로… 방아쇠만 당기면… 자신은 죽을 수 있겠지. 그럼… 진도 더 이상 자신 때문에 힘들지 않겠지? 괴로워… 하지 않겠지? 그렇다면… 내가 죽는게… 낫지 않을까…? 화랑이 그대로 눈을 감았다. 그런 화랑의 행동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어린 시절의 자신이 천천히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끼릭끼릭, 방아쇠가 당겨지는 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모든 것을 놓으려는 순간.
화랑, 난 너의 그런 과거도 다 짊어지기로 했어. 그건 네가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버틴 것들이니까. 그러니까 네가 강간을 당했어도, 네가 사람을 대량으로 죽인 사람이라고 해도 나한테 너는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화랑이야. 어디선가 진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말이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순간 화랑의 손이 저를 겨눈 데저트 이글의 총신을 붙잡았다. 그런 화랑의 행동에 흠칫 놀란 어린 자신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아직도 살고 싶어? 우리는 살아있을 자격이 없어! 과거도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살아있어서는 안돼! 그 외침에 화랑이 제 목을 조르는 사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 그래, 우린 살아있을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 이유가 어떻게 되었든 나는 많은 사람을 죽였으니까. 그건 용서 받을 수 없겠지. 하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나는… 살고 싶어! 내 모든 걸 같이 짊어지겠다고 한… 사람이 나에게 있으니까! 그래, 나는… 살고 싶어!!! ”
제 외침에 잠시 말이 없던 어린 자신이 속삭였다. 그래… 그래도… 날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이 있구나. 죽을 때 까지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그 말에 어느새 안광이 돌아온 화랑이 고개를 들어 어린 자신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어린 자신의 눈에는 빛은 없었지만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신념이 들어있었다. 그럼… 어쩔 수 없다. 가게 해줄게. 하지만 이대로 가게 된다고 해도 우리를 옮아매고 있는 키워드 때문에 언젠가는 또 세뇌 당할 수도 있어. 그러니까… 놓고 가. 놓고 가면… 그건 내가 가지고 사라질게. 있잖아, 미래의 나. 과거의 자신이 그 작은 손으로 미래의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과거의 내 몫까지 행복해지면 좋겠어. 그때의 나는 이제 사라지지만… 결국 나도 너니까. 어린 자신이 손을 움직여 화랑의 오른쪽 눈을 가렸다. 고통과 두려움과 목숨이 사그러지는 잔인한 것만 보았던 이 눈… 가져갈게. 그와 동시에 화랑의 목에 감긴 사슬이 끊어졌다.
진은 작은 소리를 낸 체 움직임이 없는 화랑을 바라보다 다시 한번 더 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칼을 쥔 왼손에 힘이 들어간다 싶던 순간. 화랑이 왼손을 움직여 자신의 오른쪽 눈을 향해 칼을 찔려넣으려는 것을 진이 다급하게 손목을 붙잡아 멈췄지만 이미 칼끝이 오른쪽 눈을 파고든 후였다. 윽… 그와 동시에 화랑의 왼눈에 빛이 들어왔다. 화랑…! 놀란 진의 외침에 스르륵 칼을 떨군 화랑이 그대로 진의 몸 위로 무너졌다. 너… 왜… 아직도 화랑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진이 조심스럽게 손목을 놓아주자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이 바보가… 나 따위를 지키겠다고 지금… 이 상처는 다 뭔데… 정신이 온전하게 돌아온 걸 확인한 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반대로 지금까지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브라이언이 인상을 찌푸렸다.
“ …진… ”
“ 왜, 화랑 ”
“ 난 너랑… 살… 고 싶어… 그러니까… ”
살려줘. 그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진이 반쯤 눈을 뜬 화랑의 두 눈을 손으로 가려주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응, 나만 믿어. 화랑. 자신을 안심시키는 목소리를 들으며 화랑이 몸에 힘을 뺐다. 그런 화랑을 몸을 일으켜 안아 올린 진이 벽에 화랑을 기대게 하더니 이내 브라이언을 바라보았다. 이제, 당신만 남았어. 이미 자신의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브라이언의 화는 머리 끝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하하… 좋다, 결국엔 이렇게 되는군. 사신이 널 죽여주면 더 좋았겠지만 내 손으로 네가 죽는 걸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사신이… 아니야. 뭐라고? 사신이 아니야… 그는… 화랑이야. 그를 그런 이름으로 이용할 생각하지마! 하하, 개 한마리에게 너무 큰 애정을 주는군. 시끄럽고 덤벼라, 죽여주지. 높은 곳에서 내려온 브라이언의 몸에서 레플리칸트 특유의 기계 소리가 들려왔다. 완전히 데빌의 힘을 끌어낸 진의 등에서 검은 날개가 돋아났다. 그리고 두 사람이 충돌했다.
…여긴… 화랑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보인 것은 익숙한 미시마 가의 제 방의 천장이었다. 잠깐… 왜 오른쪽 시야가 안보이지…? 아, 맞다… 화랑은 꿈… 인지 아니면 정신 붕괴로 인한 환각이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제 내면이었는지 모를 곳에서 어린 자신이 제 오른쪽 눈을 가져간다고 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진짜 이렇게 물리적으로 가져가는 거였냐… 자신이 스스로 손을 움직여 오른쪽 눈을 칼로 찔렀다는 건 기억하지 못한 화랑이 상체를 일으켜 제 오른쪽 눈에 감긴 붕대를 매만지고 있을 때 쯤 벌컥 문이 열리더니 다급한 발걸음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화랑아, 정신이 드느냐! ”
“ 사범님… ”
백두산은 정신을 차리고 상체를 일으켜 앉은 화랑을 보고는 황급히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아 다시 침대에 눕혔다. 자신을 보는 백두산의 표정에 화랑은 너무나도 죄송스러웠다. 자신의 과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니 더욱 더 죄송스러웠다. 백두산은 화랑에게 그 동안의 일들을 이야기 해주었다. 국제 경찰과 손을 잡고 브라이언 퓨리의 스네이크 아이즈의 본부를 습격하는 작전이 실행되고 2시간 후 진이 잔뜩 상처를 입은 체 자신을 안아 들어 데려왔고 그대로 스네이크 아이즈는 괴멸되었다고 했다. 다만… 브라이언 퓨리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격렬한 전투 끝에 진이 날린 데빌의 힘이 담긴 전심전력의 주먹을 맞고 벽을 뚫고 나가 떨어진 그가 건물의 잔해에 파묻히는 걸 봤지만 끝내 시체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진이 알려준 브라이언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장소에 그 레이 우롱이 한참을 서 있었다. 오랜 악연을 끝내지 못한 한탄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감정 때문이었을지는 오직 그만이 알고 있겠지.
“ 그리고 화랑아. 네 오른쪽 눈은… ”
“ 네, 알고 있어요. 과거의 제가… 가지고 갔으니까요 ”
“ 과거의…? ”
그 말에 백두산이 뭐라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 거렸지만 이내 그는 침묵했다. 잠시 고개를 살짝 숙인 체 말없이 붕대를 매만지던 화랑이 번뜩 고개를 들어 소리쳤다. 그래, 진은요…? 진, 많이 다쳤는데… 무사한거죠, 네? 진을 찾는 화랑에 잠시 굳어있던 백두산이 작게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잘 들어라, 화랑아. 너는 이제… 그리고 잠시 후 화랑의 방에서 큰 소리가 울려퍼졌다.
온 몸에 붕대를 감은 체 제 방에서 잠을 청하고 있던 진은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손길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 날 그렇게 브라이언과의 싸움 끝에 화랑을 구출하는데 성공한 진은 수류탄과 브라이언과의 싸움에서 꽤나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 역시 레플리칸트, 만만치 않네. 그렇게 생각한 진이었지만 제 품에 안겨 있는 화랑을 보며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며 기절해 버렸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모든 치료를 마치고 제 방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상처 입은 몸은 빠른 회복을 위해서였는지 진은 첫날엔 거의 20시간을 잘 정도로 잠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깨어있는 동안에는 이제 더 이상 화랑이 제 옆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에 우울해 있었다. 자신은 이 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백두산과 약속을 하나 했었다. 화랑을 제 직속 사용인이 아닌 보안팀에게, 마땅히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려주겠다는 약속. 진은 그 약속을 지켜야 했다. 그러기로… 약속했으니까.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깨우는 화랑을 보지 못하겠구나. 자신의 옆에서 항상 밝게 웃어주는 화랑을… 보지 못하겠구나. 라고 진은 생각했다. 그렇기에 진은 지금 자신의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손길에 인상을 찌푸리다 결국엔 인상을 찌푸리며 확, 자신의 어깨를 붙잡는 손을 뿌리치며 몸을 일으켰다.
“ 대체 누구… ”
“ 일어났어? 진 ”
그러자 진의 눈에 보인 건 어느 때처럼 곱게 메이드복을 차려입은 체 자신을 바라보는 화랑이 있었다. 평상 시의 모습과 같았지만 다른 점은 오른쪽 눈을 가린 붕대 뿐이었다. 자신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진의 얼굴에 손을 휙휙 흔들어 보던 화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도 잠에서 안깼어? 너 요새 하루에 15시간 넘게 잔다며? 그래서 그런가 쉽사리 정신을 못차리네. 이제 정신 좀 차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이 화랑의 손목을 붙잡아 제 무릎 위로 끌어 당겼다. 어어, 어…? 진의 무릎 위에 앉게 된 화랑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런 화랑을… 진이 힘껏 끌어안았다. 화랑… 화랑… 자신을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은 진이 제 이름을 연신 불러대자 잠시 가만히 안겨있던 화랑이 손을 들어 진의 머리를 토닥였다. 응, 나 여기있어. 진. 작게 속삭인 그 말에 자신을 끌어안은 팔에 더욱 더 힘이 들어갔지만 화랑은 그저 가만히 진에게 안겨있었다.
“ 미안해, 화랑. 내 오만 때문에 네가… ”
“ 그건 너만의 잘못이 아니야. 우리 둘 모두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거지 ”
“ 하지만 화랑, 네 눈이… ”
“ 이건 필요했던 거야… 내가 살기 위해서, 너와 함께 살기 위해서 기꺼이 필요했던 희생이었어 ”
“ 하지만… ”
“ 블러드 탈론 ”
화랑의 입에서 키워드가 흘러나오자 움찔 어깨를 떤 진이 황급히 고개를 들어 화랑을 바라보았다. 키워드를 말하고 들었음에도 화랑의 눈은 조금의 빛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네 과거, 그리고 키워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대가였어. 나는 오히려 싸다고 생각하는데… 많은 사람을 죽였잖아… 그런데 눈 하나라니. 너무 가볍고 싼 희생이야. 그러니까, 진. 난 괜찮아. 그리고… 고마워, 살려줘서. 제 말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진에게 화랑이 밝게 웃어보였다. 그렇게 잠시 제 무릎 위에 앉은 화랑을 끌어안고 있던 진은 그제서야 조금 정신이 돌아왔는지 당황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 근데 화랑, 왜 메이드 복을 입고 있는거야? 그… 보안 팀장님한테… 이야기 못들었어? ”
“ 아, 날 내 직속 사용인이 아닌 보안팀으로 다시 돌려보내겠다고 한거? ”
“ 응… ”
“ 그거야 그 약속은 사범님과 너의 약속이고 나랑 약속한게 아니잖아 ”
“ 응? ”
“ 내가 납치 당한 사이에 그런 약속을 했어? 진짜 바보 같은 약속이나 하고 ”
“ 화랑… ”
“ 덕분에 깨어나자마자 사범님이랑 한바탕 했으니까. 하아, 나중에 준씨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
화랑이 해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사범님이 자신과 진이 나눈 약속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화랑이 그건 사범님과의 약속이고 저와 약속한게 아니니 내 의지로 진의 사용인으로 계속 있겠다고 했고 제 이야기를 들은 사범님의 분노가 한순간에 맥스치를 찍어 깨어나자마자 사범님과 한판 했다고. 하지만 뭐라고 할까나… 결국 밖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준의 개입과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 백두산은 다시 한번 더 이번과 같은 일이 발생하면 그땐 정말로 진과의 연결 고리를 끊어버리겠다고 신신당부를 하고 자신을 진에게 보내줬다고 했다. 추후 리 숙부를 붙들고 자식 새끼 키워봤자 소용없다고 한탄을 할 백두산을 떠올린 진이 나중에 죄송하다고 사죄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화랑이 진과 눈을 마주쳤다.
“ 진, 부탁이 있어 ”
“ 뭔데? ”
“ 계속 붕대를 감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안대를 만들어주면 좋겠어 ”
“ 안대? 아… 그렇지… 응, 우리 미시마 가의 마크를 새긴 안대를 줄… ”
“ 아니, 그거 말고 ”
“ 응? ”
“ 미시마 가의 마크가 아니라 너의 마크가 새겨진 안대를 줘. 내가 모시는 건 미시마 가가 아니라… 진, 너니까 ”
화랑이 손을 뻗어 진의 팔에 새겨진 마크를 쓰다듬었다. 그런 화랑에 진이 하하, 작게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넌 미시마 가의 전투 메이드가 아니라 나의 전투 메이드니까. 내… 사람이니까. 진이 화랑의 턱을 붙잡더니 이내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런 진의 행동에 잠시 눈을 깜박이던 화랑도 눈을 감았다. 입술에서, 맞닿은 몸에서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래, 나는… 살아있어.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거야. 진과 같이. 응, 내 곁에는 항상… 진이 있을테니까. 도련님의 곁에는 항상 메이드가 있듯이 메이드의 곁에는 항상 도련님이 있었다. 그래, 화랑은 진과 함께 살기로 했다. 앞으로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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