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무협 AU

빙궁주 is dead (1)

철권 무협 AU

집밥상 by 양동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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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의 바깥, 새외 무림은 중원 사람에게 참 애매한 지역이다. 땅이 붙어있어서 서로 왕래가 있는데 그렇다고 엄청 친밀하다고는 볼 수 없는 곳. 그래서 대부분 폐쇄적인 성향을 띠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무림과 동떨어져있는 곳을 고르라 하면 열 중 아홉은 북해를 꼽을 것이다. 추위 때문에 가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 그렇다.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바닥 삼아 자는 거지도 추운 게 싫어서 안 간다. 그러면 정보를 어떻게 얻냐? 그래도 거기 사람이 사는 곳이라고 상인이 간다. 북해 넘어가는 지점쯤에서 상인들 말 하나 주워듣고 마는 것이다. 맹도 그런 식으로 새외를 관리한다. 지금과 같은 특별한 때가 아니면 말이다.

북해의 수도에 있는 어느 민가에서 누군가가 분주히 움직인다. 한쪽 벽에 종이쪽지가 붙고 창문을 가려 빛이 새어 나가지 않게 만든다. 평범한 방이 작은 조사방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을 가볍게 턴 이, 레이븐이 벽에 붙은 종이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건물의 위치와 감시 체계, 주의할 사항 등 빙궁을 돌아다니는 데 필요한 정보들이었다. 모두 자신이 오늘 조사한 기록이었다.

레이븐이 맡은 임무는 현 빙궁주의 감시였다. 현 빙궁주에게는 의혹이 너무나 많았다. 전대 빙궁주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든가, 인수인계에 대한 장로들의 만장일치, 자질 부족처럼 부정적인 소문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에 인수인계 과정 혹은 빙궁주한테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한 맹이 조사하기로 결정했다.

'네놈이 뭘 숨기고 있든, 내가 찾아낼 것이다.'

하루 만에 빙궁주의 일정과 경로를 파악한 레이븐은 다시 내일 계획을 정리하고 잠에 들었다. 정말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렇게 감시 1일 차. 빙궁주가 죽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있었지?'

잠입 임무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융통성이다. 어떤 돌발 행동에도 유려하게 대처하며 늘 최악을 상정하고 움직인다. 감시 대상이 사망하는 것도 염두에 두기도 한다.

'하지만 대상이 빙궁주면 말이 다르다.'

빙궁주는 북해 전체를 다스리는 자. 북해에서 가장 권력과 무력이 강한 이가 죽는다는 건 생각하기 어려웠다. 심지어 바깥으로 나간 것도 아닌 빙궁 내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빙궁주만이 들어갈 수 있는 빙굴에서 동사한 채.

'대상 사망으로 맡은 임무는 진행 불가…. 하지만 이대로 갈 수는 없다.'

시신을 옮긴 이의 말을 들어본 결과 빙궁주는 오른쪽 팔이 없었고 얼음 계단에서 발견, 기어오르는 모습으로 얼었다고 말했다.

'변사가 아니다. 타살. 누군가의 습격으로 사망한 게 타당하다.'

아직 누군가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그건 지금부터 밝히면 된다. 생각을 정리한 레이븐이 빠르게 방에서 빠져나왔다. 그 누구도 한 명이 사라진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현장은 얼어붙은 장소라 보존이 잘 돼서 나중에 가도 되겠지만… 궁주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 지금밖에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빙굴 입구에 도착한 레이븐이 품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냈다. 양기를 더하는 약으로 비 오는 날 같은 추운 날에 활동할 때 먹었다. 쓴맛이 퍼지기 전에 빙굴로 몸을 날렸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만난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빙궁주만 구한 뒤 더 수색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편하게 빙굴 안까지 들어온 레이븐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연이 만들어낸 얼음은 야명주의 빛과 맞물려 아름다운 광경을 자아냈다.

'약을 먹었음에도 한기가 느껴질 정도면, 빙궁주만 들어올 수 있다는 게 체감이 되는군.‘

이미 추운 장소인데 동굴 기둥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어쭙잖은 경지로 발을 들였다간 얼어 죽기 딱 좋은 장소였다. 빙공을 다루는 이에게는 큰 제약이 되진 않겠지만, 레이븐은 아니었다.

'빠르게 둘러보고 나가야겠어.'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팔 하나였다. 오른쪽 손이 달려있는 것을 보면 빙궁주의 것이 맞았다. 단면부를 보니 어깨를 얼린 뒤 충격을 주어 뗀 것 같았다. 그렇게 되었다면 피나지 않고 깔끔하게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아픔은 칼로 자른 것과 다르지 않았겠지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얼음 조각상이 여럿 보였다. 대부분 다리 부분만 남고 파편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아 싸우는 여파로 부서진 듯했다. 그 다음으로 눈길을 끈 건 중앙에 있는 거대한 고드름이었다. 주위에 하얀 기운이 맴돌며 더없이 투명했다.

'…북해의 모든 한기가 모이는 지점인가.'

더 가까이 가기엔 위험했다. 그리 생각한 레이븐이 몸을 돌렸다.

'제3자가 있었던 건 확실하다. 빙굴에서 빙궁주와 만났고, 싸움에서 진 빙궁주가 살기 위해 발버둥 쳤으나... 계단 중턱에서 죽고 말았다.'

알아낸 것은 제3자가 빙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 그것 말고는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더 많은 정보가 필요했다.

'빙궁주에 대한 정보를 더 알아낼 수 있는 장소가... 아마 지금이면 시작했나.'

레이븐은 장로들이 긴급회의를 열 장소를 정한 건물로 향했다.

"이게 대체 무슨 변고입니까!"

"2장로, 진정하시게."

"지금 진정하게 생겼습니까? 궁주께서 돌아가셨다고요!"

"조용, 조용! 그만하게!"

장로들은 혼란스러운 모습이었다. 머리를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는 이가 있는가 하면 소리 지르며 분통을 터뜨리는 이가 있었다. 상석에 앉은 이가 주의를 주면서 겨우 혼란이 가라앉았다.

"이를 어찌합니까. 1장로. 가장 순수한 핏줄이 저리 죽다니. 그나마 남은 아이들은 다 그 아이보다 못하단 말입니다."

"가라앉히게. 나도 궁주 자리에 또 그런 것을 앉히고 싶지 않으니."

"아이고, 그 천것을 겨우 내쳤건만 이리 곤란한 일이 생길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어찌해야 할까요? 민가에는 알리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유심히 듣던 레이븐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지금 대화만으로도 전대 궁주와 지금 궁주 사이의 사건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했다. 전대 빙궁주의 혈통이 못마땅하던 장로들이 제거하고 직계를 내세우려 했던 것이라. 폐쇄적인 환경이라면 꼭 따라붙는 악습이었다.

'자기네 위신에 치명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에 방비조차 안 하는 걸 보면 자신감이 넘치는 건가.'

이제 뻔한 이야기나 할 거라 생각한 레이븐이 자리를 나서려 할 때 한 사람이 다급히 방문을 열었다.

"장로님… 장로님들!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길래 이리 소란스럽게 들어오는 게냐."

"빙정이 사라졌습니다!"

"그거야 본디 빙굴에 보관하고 있었고, 지금 궁주가 그걸 운기를 잘못해서…."

"그…그것이 궁주님 시신에서 빙정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뭣이?!"

방 안에 있던 장로들의 얼굴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건 레이븐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길을 안내해라! 가서 봐야겠다!"

그 말을 시작으로 모든 인원이 우르르 방을 나섰다. 그 뒤를 따라 붙은 레이븐이 침음을 삼켰다.

'빙정이 시신에서… 나올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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