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다짐
철권 무협 AU
사실 강호에서 준비하지 않은 상대를 먼저 때리는 행동은 도리가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덕을 중요시하는 정파의 누군가라면 사파 같은 짓이라며 손가락질하고, 그런 게 상관없는 사파라면 욕 한 번 내뱉고 죽이려 든다.
그러나 전조도 없이 닥친 화랑의 공격에 맞은 진은 어떤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맞기 전과 다르지 않은 표정이라 오히려 때린 사람이 이상하다고 느꼈다.
‘내가 제대로 때리긴 했나? ’라는 생각이 스칠 무렵.
“!?”
진이 자기 어깨로 향하던 화랑의 공격을 받아넘겼다. 균형을 잃고 넘어가던 화랑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누가 했던 것처럼 기운까지 똑같이 담은 공격이었다. 저 멀리 날아가 바닥을 뒹군 화랑이 숨을 고르곤 작게 웃었다.
“야, 욱하긴 했나 보다?”
“…….”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일어나 몸을 가볍게 턴 화랑이 내달렸다.
일반적으로 큰 무대가 아닌 장소에서 기운을 드러내며 싸우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빨리 끝내고 싶은 싸움이거나, 격의 차이를 알려주거나. 그 외에는 기운을 쓰지 않고 적당히 상대와 합을 맞추며 쓰러뜨릴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타당하다.
이를 정정당당하게 쓰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비무’다.
진과 화랑. 두 사람의 싸움이 그랬다. 한쪽이 압도적으로 몰아붙이는 그림이 아닌 서로가 합을 주고받으며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하단 공격을 막은 진이 화랑을 때리고, 공격을 피한 화랑이 반동을 이용해 한 대 때리는 등, 어찌 보면 의미 없는 소모전이라 볼 수 있겠지만…. 이렇게 된 이유는 서로의 수준이 비등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만일 후지기수들이 모이는 제전에서 두 사람이 싸웠다면, 승패를 가리지 않고 양측 모두 박수를 받았을 것이다.
‘홧김에 저지르긴 했는데….’
‘멋대로 덤벼들긴 했지만.’
그리고 그런 생각은.
‘꽤 하는데?’
‘…나쁘지 않다.’
서로를 상대하고 있던 두 사람이 더 잘 알고 있었다.
홧김이 맞긴 했다. 하지만 사실을 짚으면 저 녀석이 먼저 긁은 게 맞다.
‘그래도 그거랑 별개로는….’
싸우면서 녀석이 자신감 넘쳤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맹렬하게 몰아붙이는 공격을 다 막는 건 아니었지만, 자세가 무너지질 않았다. 그러면서 예측한 건 흘려 넘기는 걸 보면 머리도 잘 돌아가는 쪽이었다. 하긴 괴물 쫓아다니는 데 약할 리가 없지.
‘사부님만큼은 아니지만. 아니 이건 당연한 건가.’
진이 길게 내지른 주먹에 화랑이 뒤로 밀려났다. 기운을 담았는지 막았음에도 양팔에 얼얼함이 남아있었다.
오랜만이었다.
누군가와 접전으로 싸우는 것이.
‘잊고 있었어.’
그동안 만난 놈들은 적수라고 부르기 아까웠다. 적당히 때려주기만 하면 무릎 꿇고 싹싹 비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덕분에 귀찮기만 했고, 이겨도 시원찮았다. 하지만 내 앞에 있는 놈은, 아니 진은.
‘…이기고 싶어. 지고 싶지 않아.’
분노가… 아니었다. 물론 남아있기는 한데, 그것과 다른 무언가가 마음속에서 우러나왔다. 이를 뭐라 정의해야 할지 모를 때, 가까이 다가간 진의 눈동자에 자신이 비쳤다.
‘아….’
비친 자신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자신을 상대하던 진도….
“와라.”
“…하.”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소모전이 계속될수록 불리해지는 쪽은 화랑이었다. 괴물과 싸우면서 적게나마 기운을 쓴 데다 싸우는 방식이 초반에 몰아붙이는 쪽이었던 만큼 후반에 밀리는 편이었다.
진은 화랑이 싸우는 방식을 보고 버티는 쪽을 택했다. 계속 공격하다가 막아낼 기운까지 부족해질 때 힘으로 방어를 무너뜨리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각이 지난 지금 화랑은 지쳤다. 처음 맞았던 공격보다 위력이 준 게 느껴졌다.
‘…아쉽다.’
화랑이 적수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상황인 것처럼 진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만약 화랑이 만전의 상태였다면. 버티는 쪽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충돌하는 방법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화랑은 한계에 가까운 상태일 텐데도 여전히 맹공을 가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공격이 오면, 받아 넘겨 끝장을 내자.’
그리 생각한 진이 화랑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왼쪽 자세를 잡고 다가오던 화랑이 눈앞에서 오른쪽 자세로 바꿨다. 오른발에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아마도 남은 기운을 모두 담았을 것이다.
‘공격은… 오른쪽인가?’
오른발에서 앞으로 날아오는 공격으로 예측한 진이 준비를 마친 순간 눈앞의 화랑이 몸을 돌렸다. 그 직후 진은 머리 왼쪽에 격통을 느꼈다. 힘이 빠지면서 몸이 옆으로 점점 기울었다.
‘돌려…찼나…?’
방어를 버리고 내던진 도박. 그 도박이 적중해 넘어지는 진을 화랑이 안도하는 눈으로 봤다.
‘이대로 지고 싶지… 않아.’
이기고 싶어. 어떻게든. 어떻게든.
감정이 북받쳐 오르자, 몸 안의 내기가 꿈틀거린다. 오른발이 땅을 짚고 오른손이 주먹을 쥔다. 무너지려던 자세가 주먹을 지르는 자세로 바뀐다. 붉고 번개 같은 기운이 주먹을 감돌았다. 그리곤 고개를 든 진이 눈앞의 상대에게 주먹을 직격했다.
“…크헉!”
“체스토!”
정통으로 맞은 화랑이 멀리 날아가 쓰러졌다. 진도 바로 힘없이 쓰러졌다.
조용한 도장 마당에서 일어난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의 비무는 무승부로 끝났다.
독한 놈.
진이 쓰러지기 직전에 날린 공격을 맞은 화랑이 공중으로 뜨며 마지막으로 생각한 단어였다.
마당에 대 자로 뻗은 화랑이 겨우 눈을 떴을 때는 해가 지고 있었다. 팔다리는 멀쩡했지만, 진한테 맞은 가슴 부근에는 통증이 남았다. 어찌나 아픈지 상체 일으키기도 힘들었다.
“아우으으윽!”
옆으로 돌렸다가 반동으로 몸을 겨우 일으킨 화랑이 진을 바라봤다. 아까 전 공격이 마지막이었는지 자기처럼 쓰러진 상태였다. 아픔을 무릅쓰고 일어난 화랑이 진한테 다가갔다.
“야, 야. 일어나.”
진을 툭툭 발로 치며 말을 걸었다. 미동도 없었다.
“하…. 어쩔 수 없나. 아으… 읏차.”
화랑이 진을 앞으로 안아 들었다.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니 자신에 때렸던 부위에 멍이 들었다.
‘방 들어가면 바를 약부터 찾아야 하겠네. 나도 발라야 할 것 같고.’
‘아야얏’ 같은 신음 소리를 내며 화랑이 진과 함께 천천히 집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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