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권 무협 AU

만남의 광장 (1)

철권 무협 AU

집밥상 by 양동잉
19
2
1

시내 중간만 가도 하나씩은 있는 고층 건물 하나 없는 작은 마을. 세간 소문도 장이 열릴 때 겨우 듣는 마을 좋게 말하면 평화롭고 나쁘게 말하면 단조로운 마을.

가끔 들르는 방문객이 마을의 명소를 묻는다면 마을 입구 왼쪽에 있는 작은 언덕을 말하곤 한다.

가볍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마을 전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마음도 가라앉아 평온해지는 곳.

그리고 그곳에 지금.

“사부님! 저 그냥… 나가고 싶습니다! 하… 이게 아닌데.”

백두산의 제자 화랑이 있었다.


최근 화랑에게 고민이 생겼다.

나가고 싶다. 이 작은 마을을 떠나 내 마음대로 살아가고 싶다. 분명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왜 말로 표현을 못 하겠지? 평소에 책 좀 잘 읽어둘 걸 그랬나?’

제자리에 풀썩 누운 화랑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한 하늘은 화랑의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마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어릴 적 사부님한테 정말 크게 혼났을 때는 봇짐 하나 들고 나가려던 때도 있었다.

‘마을 입구 길로 나가려다가 곰 만났지.’

그때는 얌전히 마을로 돌아가 이불 깔고 잤지만 지금은 달랐다.

사부님이 알려주던 기술은 다 배웠고 이젠 육체 단련에 가까운 수련만 하고 있었다. 곰 같은 건 적수도 아니게 된 지 오래다.

몸을 일으켜 편하게 앉았다.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마을 풍경은 확실하게 보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떠는 노인들. 조그마한 장터.

‘따분해.’

평화로운 마을에서 화랑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도장에 놀러오는 아이들 상대나 시장 천막 설치 정도가 다였다.

사부님은 도시에 괜찮은 집도 있었는데, 맹에서 은퇴하자마자 이런 시골로 내려왔다. 같이 내려올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와선 조금 서러웠다. 내 밑의 후배가 들어오냐는 생각은 반쯤 버렸다. 놀러 오는 애들이 크면 밑으로 들어올지도 모르지만 너무 어린 시절을 알아서 그런지 가르치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든다.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 때문에 이런 마을로 온 거라고 하시긴 했지만, 그나마 오늘이 장터라서 좀 많이 모이긴 했네.’

화랑은 그동안 시장이 뜨는 날만 기다려 왔다. 딱히 사고 싶은 물건이나 만나고 싶은 지인이 있던 건 아니었다.

장이 열리면 가끔 불청객이 생겼다. 술 취한 취객, 상인 수레 따라온 산적, 작음 마을이라고 자기 멋대로 날뛰는 외부인들. 이런 마을에 자기네들 막을 수 있는 고수가 어디 있겠냐는 생각에서 나온 무례였다.

그런 사람을 합법적으로 팰 수 있다는 점이 화랑의 낙이었다. 물론 너무 패면 사부님한테 한 소리 들어서 적당히 패야 했다.

‘요즘에는 그런 녀석들도 없고.’

소문이 퍼졌는지 행패 부리던 사람들이나 산적들이 줄었다. 마을 사람들한테는 좋은 일이지만 화랑한테는 아니었다.

화랑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부님한테는 수련하겠다고 말했는데 여기 앉아서 이런 생각만 하는 거 보면 뭐라고 하시려나.’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지 최근에는 수련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잡념 좀 털겠다고 몸 좀 굴려봤지만 도움이 안 됐다. 오늘 사부님이 시장 나가서 기분 전환하라고 직접 말하신 걸 보면 걱정하고 계신 눈치였다.

‘나가고 싶다 말하는 걸로 꾸지람 듣진 않겠지. 하지만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뭔 말 들을게 뻔해.’

이유. 왜 나가고 싶은지만 설명할 수 있으면 될 것 같은데, 머리가 따라가질 못하고 있다. 만담꾼처럼 없는 말이라도 지어내고 싶은 심정이다.

“따분한 일상에 누가 돌 안 던져 주나.”

신세 한탄을 마친 화랑이 다시 마을로 걸어 돌아갔다.


수풀을 헤치며 누군가가 다급히 움직이고 잇었다.

그것이 지나간 흔적은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께름칙한 기운은 느껴졌다.

그는 사술이 있던 곳에서 숨만 붙어 있던 이가 한 말을 떠올렸다.

‘불완전했지만 성공했다…. 그분이 원하시던 것에 닿지 못했지만 후회하지는….’

생기가 없이 마른나무처럼 바짝 마른 자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자세한 이야기를 묻고 싶었지만 그가 있던 공간에 살아있는 사람은 더 이상 없었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자 공간 중앙에 원형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비슷한 문양을 알고 있었다.

‘또 소환술인가..’

최근 마교는 무언가를 소환하는 것에 집착하고 있다. 그들이 소환한 것들이 정상의 범주를 뛰어넘은 것을 생각하면 과정도 그런 편이다. 말라비틀어진 시체, 검게 타버린 무언가, 역겨운 냄새. 술식진 주위의 처참한 광경이 그 추측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다.

이 이상으로 얻을 정보가 없다는 걸 깨달은 그는 밖으로 나와 소환한 것의 흔적을 뒤쫓기 시작했다. 불완전하게 소환되었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그것은 사람을 잡아먹으려 안달이 난 상태다. 마을 하나 정도는 박살낼 수 있겠지.

‘이번에는 내 힘으로 막고 말겠다.’

자신처럼 괴물에게 소중한 것을 잃은 사람이 늘어나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리 다짐한 순간, 주먹에 붉은 기운이 돌았다.


언덕에서 내려왔어도 할 일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갈 곳 없이 도장 입구 쪽에 걸터앉자, 시장에서 나온 아이들이 화랑을 보고 몰려왔다.

“형! 형! 화랑 형! 뭐해?”

“그냥 앉아서 사람 구경 중.”

“그게 재미있어?”

“아무 생각 없이 보면 괜찮아.”

“진짜?”

“진짜지. 너희도 가만히 있어 볼래?”

“싫어. 재미없어.”

그렇게 뒤돌아서 가려던 아이들이 잠깐 멈췄다가 돌아왔다.

“형 지금 할 거 없는 거 맞지?”

“그럼 우리 심판 해줘!”

“뭔 심판?”

“시장에서 산 거 누가 더 잘 샀는지 내기할 거야!”

“심판 해줘! 심파아안!”

“그만 그만! 해 줄 테니까 소리 지르지 마.”

아이들이 까르르 웃으며 화랑 옆으로 원을 돌러앉았다. 그러고는 자랑스럽게 시장에서 얻은 물건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아이용으로 깎은 목검, 부모님께 선물할 팔찌, 모양이 이리저리 바뀌는 장난감 등 작은 시장임에도 알차게 물건을 샀다. 마지막으로 남은 아이는 팔짱을 끼며 이때까지 자랑한 물건들을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봤다.

“흐흐. 고작 이정도인가. 내 것에 비하면 사소하군.”

“뭐 얼마나 대단한 거라도 샀냐?”

아이가 천천히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이 손보다 좀 더 큰 공 모양 물건이었다.

“뭐야. 그냥 큰 구슬이잖아.”

“아니지. 이거의 진가는 천을 벗기면 드러난다고.”

‘짠’하며 천을 벗기자, 검은 구슬이 드러났다. 그늘에서 검은색을 띠고 있었지만 햇빛을 받자 오묘한 보랏빛을 냈다. 구슬 내부에서는 반짝이는 알갱이가 움직이며 아름다움을 더했다. 구슬을 본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우와… 예쁘다.”

“그치? 이번 건 내가 우승이라고.”

“시장 세 바퀴 돌면서 이런거 파는 곳 한 번도 못 봤는데 어디서 산 거야?”

“어… 그게… 좀 구석진 데에 있어서 못 봤을 거야.”

질문을 받자 으스대던 아이가 당황했다.

“그럼 나도 거기 가볼래. 동생한테 줘야지.”

“저거 구슬 얼마였어?”

“그게… 그러니까….”

다른 질문까지 예상을 못 했는지 우물쭈물하며 있자, 화랑이 눈을 마주치며 말을 걸었다.

“사실대로 말해봐. 이 물건 시장에서 산게 맞아?”

“…….”

아이의 눈이 화랑을 피하자 아이들이 한 마디씩 더하기 시작했다.

“산 물건도 아니야?”

“반칙이야 반칙! 집에 있는 거 가져오는 건 반칙!”

아이들의 야유에 시달리던 아이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더니.

“우아아앙! 미안해!”

펑펑 울기 시작했다.


사건은 이랬다.

좋은 물건 자랑하고 싶었지만 용돈이 적었던 아이는 시장이 아닌 시장으로 들어오는 길로 향했다. 가끔 상인들 수레에서 물건이 떨어지곤 해 괜찮은 물건을 주우면 될 거란 생각에서 그랬다고 말했다. 떨어진 물건을 찾지 못해 마을로 돌아가던 중, 길가 옆에서 반짝이는 걸 발견했다. 그게 문제의 구슬이었다. 딱 봐도 값비싼 물건이라고 생각해 옷으로 조심스럽게 닦아 가지고 온 것이었다.

이야기를 들은 화랑이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바깥에는 산적이나 야생동물도 있어 아이 혼자서 마을 밖으로 나가는 행동은 굉장히 위험했다. 그걸 알긴 하는지 훌쩍거리던 아이가 고개를 푹 숙였다. 화랑은 아이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정말 위험했어. 재수가 없으면 바로 깩이라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다행이자만, 다음에는 이러면 절대 안 돼. 알겠지?”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의 아이들은 훌쩍거리는 아이한테 한 소리 하긴 했지만 나중에는 위로하는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보던 화랑은 아이가 떨어뜨린 구슬을 주웠다. 그리고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곧 사부님 오실 시간이라 슬슬 가야 할 것 같은데? 이건 내가 주인 찾아서 돌려주고 올게.”

“네에, 알겠어요.”

아이들이 인사하고 큰길로 빠져나갔다. 아이들이 멀어지자 화랑은 자기 손에 들린 구슬을 바라보았다. 처음 봤을 때는 예쁜 구슬이아 정도였지만, 손에 쥐니 느낌이 달랐다.

가벼워 보이는 외견과 달리 묵직함이 느껴졌다. 이때까지 보랏빛이라 생각했던 것도 내공으로 나오는 기운과 비슷했다. 무엇보다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맥동이 느껴졌다. 이상함을 느끼자마자 바로 바닥에 던져 깨버리고 싶었지만 아이들 때문에 참았다. 대체 누가 이런 걸 무슨 생각으로 만든 건지 짐작도 가질 않았다.

‘급하게 행동하는 것보단 사부님한테 조언을 구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한 화랑이 도장 안쪽으로 발을 들인 순간, 구슬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구슬에서 검은 것이 나와 자기 팔을 휘감고 있다는 걸 알자 재빠르게 구슬을 던졌다. 팔을 감은 것은 쪼그라들어 사라졌지만 구슬은 그러지 않았다. 공중에서 멈춘 구슬이 서서히 떠올랐다. 검은 줄 네 가닥이 나와 다리처럼 구슬을 받쳤다. 그것이 화랑을 바라보았다. 눈이 없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감각이었다.

“하… 젠장.”

무슨 일이 있어도 저걸 여기 밖으로 내보내면 안 된다. 그리 다짐했다.

카테고리
#2차창작
작품
#철권

댓글 1


  • 반짝이는 하마

    ㅠㅠㅠㅠㅠㅠㅠ 진짜로 써주시다니 감동이에요 재밌게 보겠습니다!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