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의 광장 (2)
철권 무협 AU
‘여기서부터 끊어졌나.’
기운은 오솔길 근처에서 사라졌다. 따라가면서 느낀 것이지만 그것은 영악했다. 일부러 절벽으로 유도하거나, 기운을 흩뿌려 간 곳을 혼동하게 만드는 등 추적자를 경계하는 행동을 보여주었다. 온전하게 소환된 상태였다면 까다로운 놈이었을지도 모른다.
기운이 사라졌다면 생각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힘을 다해 사라진 것. 녀석이 추적을 방지하기 위해 힘을 쓰긴 했지만 존재가 사라질 정도로 쓰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가사 상태….’
괴물이 힘을 전부 소진하면 구슬 모양의 핵이 남는다.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물체처럼 보이지만 힘이 모이면 다시 형체를 갖추고 움직일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괴물을 상대할 때는 핵까지 부숴야 완전히 사라진다.
녀석은 불완전하게 소환되었으니 핵 상태로 움직였을 가능성이 높고, 가사 상태로 빠르게 전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공격에 무방비해져서 웬만하면 취하지 않지만 살아남기 위해 갖은 수를 쓰는 놈이라면 시도했을 수 있다. 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대화 소리가 들렸다.
“야. 여기 맞아?”
“맞아. 엿들었을 때 여기라고 했어.”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적당한 곳에 몸을 숨겨 기다리자 두 청년이 나타났다.
“쳇. 그거 꽤 커서 값나가 보이던데. 그냥 내가 주인이요 하고 받아올 걸 그랬나.”
“자잘한 게 좀 더 있을 수도 있지. 운만 좋으면 짭짤할 거라고.”
“그래. 안 깨진 구슬이라도 건지면 좋겠네.”
“방금 구슬이라고 말했나.”
주변을 뒤지려던 두 사람이 ‘힉’하며 놀랐다. 방금까지 아무도 없었던 길 위에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났다.
검은 넝마를 두른 남성이 두 사람을 노려보았다.
“뭐, 뭐야? 당신이 그거 주인이야?”
“주인은 아니다. 찾고 있다. 알고 있는 걸 자세하게 말해라.”
기백에 놀란 두 사람이 뒤돌아 쑥덕거렸다. 이내 보기 좋은 미소를 지으며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그그, 어르신. 저희가 그걸 훔친 건 아니고요. 저희 마을에 한 아이가 여기서 큰 구슬을 발견했다고 해서 혹시 떨어뜨린 물건이 더 있을지 몰라서 온 겁니다. 절대 한몫 챙기려 온 건 아니고 잘 모아서 진짜 주인께 드리려고 했던 겁니다.”
“그 말, 진실인가?”
“네네. 맞습니다. 진짭니다.”
“그 큰 구슬이 마지막으로 어디 있었는지 아나?”
“분명 도장이었을 겁니다. 거기서 아일 다그치며 구슬을 압수했습니다.”
“마을은 여기서 어디로 가면 나오지?”
“여기서 길 따라 쭉 가시면 나옵니다.”
“그래. 알려줘서 고맙군.”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빠르게 날아올랐다. 두 청년이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화랑과 괴물과의 대치는 반 각이나 진행되고 있었다. 먼 거리에서 괴물이 다리를 뻗어 화랑을 노리면, 그것을 피해 가까이 다가간 화랑이 공격하는 흐름으로 합을 나누고 있었다. 구슬을 발로 맞추자 음파가 터지며 화랑이 뒤로 물러섰다.
‘처음 봤을 때는 사부님 올 때까지 버틴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까 할 만 한데?’
화라도 났는지 두세 가닥을 모아 크게 만든 다리가 화랑이 있던 곳을 내려쳤다. 저 검은 게 자기 팔을 휘감았기도 하고 본 적 없는 움직임이라 처음에는 어려워했다. 막상 싸워보니 찌르거나 휘두르는 등, 단순하게 공격하는 게 다라 흘러 칠 수 있는 걸 깨닫자 어이없었다. 내지르는 속도도 피할 만했다.
‘물론 한 대라도 맞으면 큰일 나겠지.’
구슬 주변을 빙 돌던 화랑이 안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괴물이 휘적거려봤지만 화랑을 막긴 부족했다.
화랑의 공격이 다시 먹히자 이번에는 금 가는 소리와 함께 괴성을 질렀다.
“---!”
“그래! 내가 몇 대를 때렸는데 금 가야지!”
뒤로 물러선 화랑이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사부님 손 안 빌리고 끝내면, 여기 떠날 이유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마을을 떠나 혼자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고. 그리 생각한 화랑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괴물이 다시 화랑을 향해 내찔렀다.
‘왼쪽으로 꺾으면서... 어?’
내찌르던 것이 도중에 여러 가닥으로 갈라져 날아왔다. 바뀐 움직임에 당황해 멈춘 순간, 가닥이 화랑을 재빠르게 붙잡아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바로 바닥으로 패대기쳤다.
"크헉!"
쾅! 쾅! 쾅!
생각할 틈 없이 계속 바닥으로 내려치는 바람에 잠시 넋을 잃은 화랑을 내던진 뒤, 괴물이 그를 향해 찔렀다. 흉흉한 기운이 맴도는 것을 보면 아예 죽여버릴 작정이었다.
그 공격을 누군가가 막았다. 그가 등을 돌려 화랑을 내려다 보았다.
"…괜찮은 게냐."
겨우 정신 차려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앞에 누군가가 있었다. 오늘따라 보고 싶었던 스승님이었다.
“사부님?”
“왜 저게 마당에 있는지, 설명은 나중에 해야 할 것 같구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운 백두산이 화랑의 등을 밀어 앞으로 보냈다.
“사부님? 안 도와주실 거예요?”
“네가 상대하고 있었는데 내가 끼어들어 무얼 하겠느냐. 제대로 싸우기나 하거라.”
“…좋아요. 제가 저거 패는 거 보고 계시라고요.”
“또 얻어맞지나 말거라.”
그 말을 웃어 넘긴 화랑이 다시 튀어 나갔다. 화랑이 떠나자 백두산이 등뒤로 가리고 있던 손을 조심스레 앞으로 돌렸다. 공격을 막으면서 붙은 흉흉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기운을 보던 백두산이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어떤 힘인진 몰라도 교묘하기 짝이 없군.’
기운을 앗아간다는 건 둘째로 치더라도 백두산의 시야는 현실과 환상이 뒤섞여 공존하고 있었다. 아예 모조리 환상이면 몰라도 이렇게 뒤섞여있으면 싸우는 데에 방해만 된다. 그리고 백두산이 보고 있는 환상은 평온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들끓게 만들고 미치게 만드는 광경. 특히 피범벅이 된 화랑이 움직였을 때는 이성을 잃고 주먹이 먼저 나갈 뻔했다. 현실에 지쳐 눈을 감으면 과거의 기억이 눈앞에 펼쳐진다. 손에 묻은 것. 바로 앞에 있는 것.
‘…아버지.’
마음이 어그러진다. 냉정을 잃고 충동에 이끌린다.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 자신을 미치게 만든다. 살의를 간신히 억누른 백두산이 제자를 바라봤다.
원래라면 이상을 알아차리자마자 자신을 점혈하여 후환을 없애려고 했으나, 자신에게는 제자가 있었다. 눈앞의 스승이 갑자기 고꾸라지는 광경을 보면 냉정을 잃고 저것에 달려들겠지.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었으니….
‘네가 알아서 하리라 믿겠다.’
제자에게 방해가 되지 않길 바라며 백두산은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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