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끼
사형. 이 전쟁이 끝나고 화산으로 돌아가면 저와 혼인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비교적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고 또 대비해왔던 마교와의 전쟁이 결국 확실하게 실체를 가지고 눈앞에 다가왔을 때였다. 그래도 아직은 웃을 수 있고 아직은 시답잖은 농을 주고받으며 장난을 칠 수 있었던 때. 그래야만 했던 때. 공포에 짓눌리지 않으려 부러 쾌활히 웃는 이들이 곳곳에 있었고
“사형, 누가 뭐라 해도 제가 사형께 느끼는 이 감정은 연모입니다. 설사 사형이라 하더라도 그걸 부정하실 수는 없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그 목소리는 어딘가 먼 곳에서 들린 것마냥 아득하게 윤종의 귀에 닿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던가. 눈앞에 닥친 현실을 도피하듯 기억을 더듬어나가지만 계기를, 시작을, 혹은 이 순간에 도달하게 된 분기점을 이제 와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그 직후 든 생각은 끝나면 정신 빼놓고 있었다고 청명이에게 죽겠구나 겨우 그 정도였는데. 정파의 후기지수를 기준으로 잡는다면 조걸을 비롯한 화산오검이 죽음을 바라본 횟수는 압도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굳이 기준을 그리 잡지 않는다 해도, 정사를 가리지 않고 후기지수의 틀로 가두지 않는다 해도 그들이 경험한 죽음은 결코 적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