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08

무지개

그는 주말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평소라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자고도 남았을텐데, 이번에는 달랐다. 그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면서 방금 전까지 꿨던 꿈을 상기했다. 꿈의 시작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적어도 본인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기억했다. 바람결에 실려온 싱그러운 풀내음, 그리고 아직 다 마르지 않은 땅에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젖은 흙냄새. 아마 비가 그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던 것 같았다. 그는 이름 모를 산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드문드문 흘러가는 구름 사이로 선명한 무지개가 떠올랐다. 그는 말없이 화려한 무지개를 보고 있다가 무어라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은 들리지 않았다. 어쩌면 입만 뻐끔거린 걸지도 모른다. 그러더니 그는 산길을 천천히 내려갔다.

그가 기억하는 꿈은 이게 전부였다.

“ 길몽인가? 아니면 예지몽……? ”

그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꿈을 자주 꾸는 편이었으면 그냥 허무맹랑한 꿈이라고 치부했을텐데. 이따금 꾸는 꿈이라도 앞뒤가 맞지 않는 엉뚱한 꿈이 대부분이라서 웃어 넘기는 날이 태반이었으나, 이번에는 느낌이 달랐다. 꿈속에서 보았던 산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꿈이란 본래 허상과 현실이 뒤섞인 가상 세계였다. 본인이 겪었던 경험을 토대로 꿈이 발현되는 경우도 있다. 그는 건조한 눈을 비비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목이 말랐다. 시원한 물 한 잔 마셔야 머리가 제대로 돌아갈 것 같았다.

비척비척 몸을 움직이던 그는 별안간 꿈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번뜩 깨달았다. 그래서 주방으로 향하던 몸을 다급히 침실로 돌려 협탁 위에 올려진 핸드폰을 들었다. 달력 앱을 켜자 빼곡히 입력된 일정들이 눈에 띄었다.

“ 설마했는데……. 오늘 그 산에 들러야겠어. ”

그래, 오늘은 바로 무지개를 그토록 좋아했던 친우의 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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