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첼] 핸드크림 주의보
주의: 30대가 귀여워 질 수 있음
"팀장님 혹시 만나는 분 있으세요?"
오전 업무가 끝나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돌아와 탕비실로 들어선 승철에게 같은 부서 김대리가 다가와 물어보는 말이 상상도 못한 말이라 승철은 눈을 크게 뜨고 놀라 되물었다. 깜짝 놀란 얼굴로 예? 하고 되물어 보자, 김대리를 포함한 같은 탕비실 안의 사원들이 머쓱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최팀장님 지나가실 때 저희 깜짝 놀랐거든요."
"맞아요, 되게 어린 느낌 향 나서요."
"게다가 핸드크림도 바뀌시지 않았어요?"
"저도 봤어요! 라0언 그려진 거요."
그래서 지금 만나는 분이 재벌 2세라 자기 취향인 걸로 선물한거 아니냔 소문이 있어요. 김대리가 장난스레 웃으며 덧붙이는 말에 어이가 없어진 승철이 으하핳 웃으며 손을 저었다가 또 고개를 숙였다. 그 반응에 다른 사원들이 같이 웃으며 아닌가보네~ 라는 말을 나누곤 미안하다며 사과를 건넸다.
숙인 고개를 들며 괜찮다고 한 승철이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말투로 말을 이었다. 추천 받았단 말에 김대리가 커피잔을 내려두며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고 다른 직원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승철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주변 사람들의 연령대를 생각해보면 그에게 젊다못해 어린 감성의 핸드크림을 추천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는 후밴데, 요즘 유행이라고 하더라구요."
"어, 그럼 좀 나이있지 않아요?"
"그래도 걘 아직 20대라."
"아하, 그럼 그럴 수도 있겠다."
그의 핸드크림에 대해 더이상 묻지 않고 "그러고 보니 요즘 젊은 애들은~" 이라는 주제로 돌아가는 10평짜리 탕비실을 보던 최승철 팀장은 속으로 안심의 한숨을 쉬고 반쯤 식은 커피잔을 들어 입에 댔다.
후배긴 했다.
사귄지 3년 된 남자친구였지만.
**
최승철이 (그의 기준) 어린 애들이 쓰는 것 같은 향의 핸드크림이나 제품들을 쓰게 된 일의 시초는 남자친구인 승관이 발라준 핸드크림이였다. 카페 한구석에서 과제를 하던 그가 손을 씻고 오더니 너무 많이 발랐다며 자연스럽게 제 왼손을 가지고 갔다. 그러고는 여분의 핸드크림을 묻히며 손의 방향을 틀어 깍지를 끼었더랬다. 그런 승관의 행동에 내심 두근거리던 승철의 코 끝에 아릴정도로 단 향기가 닿았다.
"너무 단 거 아니냐?"
"뭐가?"
"핸드크림."
승관이 쓰기에도 너무 달지 않나 싶어 물어봤건만, 돌아온 것은 그럼 그렇지. 라고 자신을 보는 달갑지 않은 눈빛이었다. 뭔가 싶어 미간을 찌푸리니 승관이 반대편 손을 들어 꾹 누르곤 한숨을 쉬면서도 손깍지는 풀지 않아서 승철도 내려던 짜증을 한 번 참았다.
"형, 요즘은 이게 유행이야."
"유행이야?"
"엉, 여자애들도 쓰고 남자애들도 많이 써."
유행이라니 할 말이 없었다. 별 일이 다있다며 속으로 중얼거린 승철이 승관의 어깨에 기대자, 어깨에 기댄 승철의 머리에 가볍게 볼을 부빈 승관이 교재를 설렁설렁 넘기며 중얼거렸다. 자퇴하고 싶다.. 물론 그 말은 저번 데이트 때도, 저저번 데이트 때도 했으며 인턴이었던 승철과 데이트 할때에도 했었다.
승철은 자신이 대학생일 때에도 달고 살았던 말이었으므로 그려러니 싶었지만 계속보니 안쓰러워 뭐라도 해줄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승관은 그럼 옆에 있어줘. 라는 대답을 해와 승철의 묻어 두었던 소녀 감성을 두드렸었다. 그 대답에 감동을 받은 것이 귀찮음을 무릎쓰고 카페로 나와 한구석에서 같이 앉아있는 이유였다.
승관이 진짜로 집중해야 한다며 손깍지를 풀고 과제를 시작한지 몇십 분 지나니 코 끝을 누르던 단 향은 날아가고 손에는 가벼운 수분감만 남아있는 것이 느껴져 승철은 자유를 찾은 왼손을 들어 가볍게 간지러움이 이는 콧등을 긁었다. 뭔가 아쉬웠다.
"관아,"
"어, 어?"
핸드크림을 어디서 파는지 물어보려 했더니 과제에 집중하고 있는터라 승철은 고개를 저어 아무것도 아니라며 그냥 힘내라고. 하고 응원을 건넸다. 승관은 되려 그런 승철의 말에 감동을 받아 아, 뭐야아.. 하고 촉촉해졌지만 더 촉촉해지기엔 당도해있는 과제의 벽이 높았으므로 승관은 눈물을 꾹 참고 노트북과 얼굴을 마주했다.
승철은 다시 과제에 집중하는 승관의 옆모습을 보다가 얼음이 다 녹아 엹어진 (아이스였던) 아메리카노를 마시곤 핸드폰을 들어 검색창을 켰다.
[핸드크림 파는 곳]
**
어서오세요, 0리브영입니다~. 필요하신 제품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승관과의 데이트 다음 날, 일이 일찍 끝난 승철이 집으로 가기 전 들른 곳은 20대라면 안가본 사람이 드물 로드샵이었다. 안쪽으로 들어서니 온통 낯선 물건들이 가득했으며 가게 안을 채운 사람의 반은 젋은 여성들이었다.
괜스레 밀려오는 머쓱함을 밀어내고 주위를 둘러보니 찾는 물건이 보이질 않았다. 몇 번 두리번 거리다가 스쳐 지나가는 직원을 잡고 물어보니 손을 뻗어 알려주는 곳으로 향했다. 눈 앞에 놓인 형형색색의 케이스들을 보며 가볍게 헛기침한 승철은 손을 뻗어 가장 눈에 띄는 하늘색 케이스의 주황색 곰이 그려진 핸드크림을 집었다.
그것이 최승철 팀장의 검은 서류가방에 깜찍한 곰이 그려진 핸드크림이 들어가 있게 된 경로였다. 자리에 앉아 가방에서 샀던 핸드크림을 꺼낸 승철을 향해 어, 그거 제 동생도 가지고 있는데. 하고 옆 자리의 정 대리가 말을 걸어왔다. 유행이긴 하구나. 라는 생각을 한 승철이 머릿 속에 맴돌던 궁금증을 툭 내뱉었다.
"근데 왜 곰이 있는 거에요?"
"어, 그거 곰 아니고 사자래요."
사자라고요? 네, 걔가 카X오에서 새로 나온 캐릭터라던데, 되게 곰같죠. 저도 처음 볼 때 헷갈렸어요. 하고 대답해주는 정 대리의 말을 듣곤 어이가 없어 손에 들린 핸드크림을 빤히 보다 폰을 들어 사진을 찍고 승관과의 채팅방에 보내며 물었다.
[너 얘 사자인거 알았냐?]
이 시간이면 공강이라 동아리방에 죽치고 앉아있을 승관임을 알고 보낸 것인데, 곧이어 연달아 올라오는 말풍선에 당황하는 승철이었다. 얘 왜 이렇게 흥분했어? 그리고 그 시각, 동방에서 무방비하게 늘어져있던 승관은 갑작스러운 귀여움의 습격에 머리를 박고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이 형 진짜 뭐야..
[머야]
[먼데]
[형이샀어??]
사무적인 책상 위로 보이는 하늘색 라0언 핸드크림과 그걸 잡고 있는 평균보다 작은 손이 주는 귀여움에 승관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이를 악물며 몸부림쳤다. 최승철 왜 귀여운데엑. 그 꼴을 본 찬이 형 너 뭐해? 하고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보며 묻긴 했으나 신경쓸 것은 아니었다.
[엉 샀는데. 아니 근데 알고 있었냐고]
뒤이어 올라온 답장에 약간의 짜증이 묻어있는 것이 보여 격하게 뛰는 심장을 심호흡으로 가라앉힌 뒤 손을 움직여 답장을 보냈다. 형한테 얘 이모티콘도 선물해야겠다. 일부러 회사원 주제인 이모티콘으로 골라 보냈다.
[웅 형 그거 알아? 얘 임티도 있음]
승철에게 답장과 함께 캐릭터의 이모티콘을 선물하자 바로 노트북을 앞에 둔 캐릭터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이 귀여웠다. 이런 거 너무 아저씨 같다.. 근데 귀여워. 속으로 생각하던 승관이 곧이어 올라온 말풍선에 머리를 짚었다.
[이거 너 닮았다ㅋㅋㅋㅋㅋㅋ]
다시 한숨을 푹 쉬는 승관의 뒷모습을 보던 찬과 석민이 쟤 왜 저러냐며 서로 속닥이다가 금방 동방 문을 열고 들어오던 순영에게 부승관이 이상하다 말했고, 순영은 그래보이는 승관을 쿡쿡 찌르며 물었다.
"너 어디 아프냐?"
"하... 걍 가라."
걱정해주는 척 장난치려는 순영에게 차가운 반응을 되돌려준 승관이 다시 폰을 부여잡고 앓자, 순영의 뒤로 석민과 찬이 고개를 내밀며 뭔데 뭔데 하고 몰려왔고 아 진짜 가라고오~. 하고 엎어지는 승관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걱정해주는 건 고마운데 그렇다고 연상의 남자친구가 너무 귀여워서 죽을 것 같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말했다간 순영에게 죽을 때까지 놀림 당할 것이 뻔했고, 찬과 석민은 경악하는 얼굴로 하고 대체 무슨 말이냐며 기겁할 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며 붙어오는 동방 붙박이들을 밀어내고 톡방에 이건 형 닮았다. 운전하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장난을 걸어도 반응없는 승관에 흥미가 떨어진 순영이 핸드폰을 보다 약속이 있다며 떠나가고, 찬과 석민도 다음 수업을 위해 짐을 챙겨 동방을 나갔다. 그렇게 혼자 남은 승관은 시계를 확인한 뒤 승철과 이어 연락을 하다가 진짜로 일해야 한다는 말풍선과 함께 하트를 들고있는 캐릭터 이모티콘이 남은 톡방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이따 보장ㅎㅎ]
[(이모티콘)]
..30대 남성이 이렇게 귀여운건 좀 아니지 않나?
**
퇴근하고 돌아온 승철이 욕실에서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오자, 식탁에서 졸업 논문을 부여잡고 있던 승관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뻗으며 다가왔다. 그렇게 승관에게 수건을 넘겨주며 소파 밑에 앉은 승철은 몸을 움직여 헤어드라이기를 연결해 소파 쪽으로 가져왔다. 씻고 나와 머리를 말리지 않고 잠들어 감기 걸리기 일쑤인 승철을 대신해 승관이 말려주기 시작한 것이 동거 후 두 사람의 루틴으로 자연스레 자리잡았다.
얌전하게 앞에 앉아있는 승철의 머리를 털어주며 드라이기로 말리던 중, 달큰하고 상큼한 향이 승관의 코 끝을 간질였다. 성인 남성에게서 나기엔 조금 어린 느낌. 얼마 전 샴푸와 린스를 다 써서 사야할 때 뭐 살까? 하고 물어봤더니 승철이 고른 향이었다.
핸드크림은 향이 금방 날아가서. 라며 사달라고 링크를 보낸 것도 놀라운데 고른 것도 승철이 고르지 않을 감성이라 승관이 진짜로? 하고 물었었다. 의외로 승철은 그 향이 맘에 들었는지 꾸준히 사서 쓰고 있었고, 자연스레 승관도 그의 핸드크림을 챙겨서 샀다. 이제 승철에게선 짙은 스킨향이 아닌 상큼하고 단 향이 났다.
승관이 단 향이 나는 덜 마른 머리카락에 가볍게 코를 묻고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시자, 귀찮은 듯 머리를 흔든 승철이 크게 하품을 하고 눈을 끔벅였다. 마저 머리를 말린 승관이 손을 거두자 승철이 몸을 일으키다 귀찮아졌는지 승관의 허벅지에 머리를 부벼왔다. 관아,
"니가 나 안고 들어가.."
"그거 진심이야?"
"왜, 못해? 못하겠냐? 나 사랑한다매애."
"아니,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진짜 부승관 짜증나아아. 반쯤 누워있던 승철은 승관의 한 쪽 허벅지에 완전히 늘어지며 얼굴을 묻고 칭얼거렸고, 승관은 그런 승철의 뒷통수를 귀여워하는 눈빛으로 보며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감았다. 별 말이 오가지 않았지만 같이 있는 것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몇 분 후 승관이 눈이 느리게 깜빡이는 승철의 등을 토닥이곤 허벅지에 기댄 몸을 일으켜 세우자 승철이 끄응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걸음을 옮기다 멈춰 서며 승관에게 물었다. 이 때쯤이면 승관도 같이 잘 준비를 하는데.
"얼른 들어가서 자, 낼 출근이잖아."
"응.. 넌 안 자?"
"너 조금 더 쓰구 갈게."
승관의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승철은 옮기던 걸음을 돌려 승관을 꾹 안았다. 안아오는 승철에 맞춰 팔을 벌려 안긴 승관은 어깨에 볼을 기대고 푸욱 한숨을 쉬었다. 많은 것이 담긴 한숨에 승철은 그저 어깨에 얹힌 머리에 고개를 돌려 관자놀이에 가볍게 입맞추며 등을 쓸어 주는 수 밖에 없었다.
"진짜 자퇴할까..."
"그럴래? 내가 먹여 살릴까?"
"...아니이."
"그것 봐."
힘들다 말하지만 결국엔 다 해낼 승관임을 알기에 승철은 가끔 이런 승관의 어리광을 받아주며 응원해주었고 승관은 승철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 안고있던 몸을 움직여 이마와 볼에 입맞춘 승철이 얼른 하고 와. 하며 팔을 풀었고 승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볼과 입술에 입맞춤을 돌려주었다. 잘 자아. 웅, 빨리 와.
**
간만에 써지는 논문을 부여잡고 있으니 시간이 물처럼흘러갔다. 결국 저장하고 노트북을 닫았을 땐 새벽 세시가 넘어가던 중이었고, 급격히 몰려오는 뻐근함에 뒷목을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트북을 들고 침실의 문을 여니, 침대에서 곤한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딘가 막힌 틈을 비집고 나오는 듯한 숨소리. 비염으로 늘 고생하는 승철의 소리였다.
승관이 그 소리를 들으며 침대 옆 협탁에 충전기와 노트북을 연결하고 침대에 걸터앉자, 작게 앓는 소리와 함께 허리께에 무언가 걸렸다. 따뜻한 온기와 함께 등에서 문지르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아 승철이 잠에서 깨어버린 모양이었다.
"미안해, 깼어?"
"으으응."
"얼른 자자. 나두 누울거야."
승관이 몇 번 팔을 두드리다 풀어내며 따뜻한 이불 안으로 들어가자, 승철이 기다렸다는 듯 어깨에 팔을 감아오며 꽉 안았다. 그에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승관도 조금씩 움직여 자리를 잡고 허리에 팔을 둘러 승철의 등에 손을 올렸다. 깊게 숨을 들이쉬자, 자신이 사준 바디워시와 승철의 체향과 섞인 향이 났다. 승관은 그런 승철이 사랑스럽고 귀여워 참을 수 없었다.
"형."
"응.."
"이번에 산 워시랑,"
"응."
"형이랑 엄청 잘 어울린다."
흫, 그래? 승관이 이불 밖으로 새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한 애정 어린 말에, 승철이 반쯤 잠결에 듣고 있음에도 기쁜지 미소지었다. 입술에 쪽 입맞춘 승관이 다시 꾹 끌어안으며 손을 움직여 등을 토닥였다. 박자에 맞춰 숨 쉬던 연인의 숨이 느려지고, 가물거리던 눈이 완전히 감기기 전 승관은 마지막으로 승철에게 한마디를 전했다.
잘 자, 형.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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