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T

[솔부]Finder.1

“외계인도 보일까 했어.”

“제어팔찌네.”

낮은 목소리였다. 약간 중얼대는.

그럼에도 근처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모였다. 한창 박수가 터지고 있을 때 들려온 저음이라서 그런듯 했다. 이상한 일도 특별한 일도 아니었지만. 그 말의 내용 때문에, 승관은 대통령마냥 손을 흔들며 앉던 그대로 얼어붙을 수 밖에 없었다. 어, 그러네. 시끄러운 배경음을 놔두고 흐르던 모종의 침묵이 그런 단어로 깨지고 나서, 다른 목소리가 나왔다. 뭐야? 너 이능력자야? 대박.

3월이었다. 금요일의 부대찌개 집은 쏟아져 나온 경찰대 학생들에게 한 쪽을 전부 내어주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 안주 추가 등의 주문에 정신없이 시끄러웠다. 과가 둘 밖에 없는 특목계 대학교에서는 내정 된 미래의 직업이 직업인 만큼 군기가 심했다. 시대가 어쩌니해도 개강총회 정도는 신입생 전원참가 해야지. 승관은 필참이 아니었어도 기어나왔을테지만, 그런것과는 별개로 인원이 생각보다 훨씬 많아지기는 했다. 승관은 분명 방금전까지도 그런건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캠퍼스 생활의 기초, 그리고 제 포부와 넘치는 끼를 선보일 데뷔 무대였다. 사람 많으면 좋지 뭐. 승관은 왁자지껄한 자리가 좋았다. ‘특정조건’이 붙지 않을 때는.

빙글빙글 돌던 맥주병에게 선택 받아서, 자신있는 아이돌 춤을 기깔나게 추고 내려온 참이었다. 모두가 휘파람과 박수를 보내줬고, 그에 보답한답시고 인사를 하다가 가디건 소매가 올라갔다. 그 탓에 팔찌가 보였던 것이다. 그러나 보이고 있다는걸 알았다면 금방 감출 참이었다. 앉자마자 이런 일이.

“헐, 진짜네. 나 이능력자 처음 봐!”

“능력이 뭔데 제어팔찌 같은걸 차? 막 불내고 그런거 아니야?”

“야 뭐야! 그럼 춤추지 말고 이런거나 좀 보여주지!”

말이 나오기 전에는 제 손목에는 관심도 없었으면서, 개떼처럼 모여드는 관심이 점점 불어났다. 이런 자리를 좋아하는 시끄러운 선배들과, 이런 자리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끌려온 동기들이 가득한 자리였다. 안그래도 뛰어난 춤 재주에 몰려있던 관심이 소란에 밀려온다. 벽까지 밀려난 승관은 손목을 잡아당겨보는 무례한 선배와 동기들에게 둘러쌓여 그런거 아니라고 말을 더듬기 바빴다. 아니, 딱히, ㄱ,그냥 좀 멀리 보는건데- 이거 안하면 휴대폰 보기도 힘들어서! 아이고! 저 아파요 선배!

특정조건이란, 사람들이 제 손목이나, 제 ‘특이점’에 대해 왁자지껄하지 않을 때다. 그런거 말고 그냥 술을 먹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웃긴 얘기하느라 시끄러운게 좋다는거지. 이런 상황이 좋을리가 있겠어. 원하지 않았던 관심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냥 좀 멀리 본다니 어디까지 보이는건데? 막 망원경처럼 그러는거야? 아니면 몽골 사람들처럼?

누군가가 팔찌를 잡아당겨 승관이 비명을 질렀다. 잡아당긴다고 빠지는게 아닌데, 구경 좀 해보자고 미는 손들이 어지러웠다. 와, 우리 동기중에 이능력자가 다 있네. 그게 뭐 좋고 나쁜거라고 이렇게 반응하는지, 승관은 알았지만 짜증을 낼 수가 없었다. 대신 손목을 빼서 최대한 감춘 승관은 별거 아니라는 말만 반복했다. 돋보기 눈에 달고 태어난게 다라니까. 다음 게임 안해요? 저 춤 췄으니까 안마셔도 되죠? 다음다음.

그러지말고 얘기 좀 더 해달라고 보채는 사람들은 단호한 얼굴로 밀어냈다. 이런 상황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도 알 수 없었지만, 승관은 좀 미운털이 박히더라도 취해야할 태도는 알고 있었다. 다음 게임이나 하자니까요? 웃는 얼굴 옆에 박힌 힘줄에 그제서야 인파들이 투덜대며 자리로 돌아가자, 한숨을 돌린 승관이 고개를 든다.

맞은편에는 멀거니 앉은 희대의 미남이 있었다. 눈이 마주치니 미간을 구기고 있던 조각상이 뭔가 말하려다 입을 꾹 닫는다. -맞은편에 앉았을 때는 휴대폰으로 친구들한테 대박이라고 주접을 떨었었는데. 시작의 대사가 저 입에서 나왔던걸 똑똑히 알고 있으니, 외모가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대놓고 노려보는 시선에 내려가는 눈썹도, 시끄러운 주변 소음에 묻히는 사과도 잡친 기분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 저렇게 잘생겼는데도.

그래서, 승관은 팩 고개를 돌리고 옆자리에 있느라 같이 고초를 치른 동기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웃었다. 별거 아닌데 엄청 호들갑들이어서 진짜. 아, 이름 뭐라고 했지? 대전에서 왔댔나?

그 이후의 술자리도 지속적으로 최악이었다. 진실게임 중에는 해 본 나쁜 짓부터 부작용이 뭔지까지 다양하고 무례한 질문들이 쏟아졌고, 승관은 다년간의 경험으로 그것들을 유들하게 웃어넘겼다. 그러나 속에서 나는 천불과 저주가 끝나는건 아니었다. 머릿속 수배전단에 엿같은 선배와 동기들을 차례차례 정성스레 수놓는 시간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물론, 그 중에 가장 첫번째 수배전단에는 폭탄발언 이후 또 조각상으로 돌아간 유사 디카프리오가 새겨졌다. 최한솔. DEAD or ALIVE. 현상금 5천만원.

*

“한 번만! 진짜 마지막! 내가 있다가 핫바 사갖고 갈게!”

손바닥을 부딪혀가며 부탁하는 동기를 보고있자니 잔소리가 목끝까지 차오른다. 구린 표정을 한 승관은 그럼에도 그냥 창문 너머를 봐줬다. 회관 바깥에는 없는 것 같은데. 잠깐만… 음… 안보인다.

진짜 없는거 맞지? 마주치면 죽어버릴거라고 곡소리를 내길래 나중에 나오는건 모른다고 말했더니, 고맙다고 이마를 땅에 붙인 동기가 당장 식당을 탈출했다. 에휴, 쟤는 저렇게 살아서 어떡하냐. 맞은편에서 돈까스를 씹던 다른 동기도 한심하다는듯 그렇게 말을 흘렸고, 승관은 동의의 말 대신 돈까스와 함께 나온 된장국을 마셨다. 마주치면 울 것 같다는 이유로 헤어진 구애인이나 피해다니는 놈을 도와줘야 한다니 제 팔자도 어지간하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CC 1호의 말로라는건 언제나 이런걸까? 너무 빨리 사귀는거 아닌가 싶기는 했다지만.

7월의 교정은 마냥 푸릇하지도 못했다. 기말고사는 코앞이고, 모두가 좀비 꼴을 해서 돌아다니는 교정은 후덥지근하기만 하다. 파릇한 신입생 생활에 적응하고 나자 밝고 활기찬 걸음도, 아침마다 드라이 하는 머리도 환상처럼 흩어졌다. 동기들은 머리도 안감고 나오거나 털레털레 쓰래빠나 끌고 강의실을 찾고는 했다. 승관은 그나마 비주얼을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식사가 끝나면 비타민 3종과 초콜릿을 위장에 쑤셔넣고 입학 때보다 굽어진 허리를 한채 걷고는 했다. 들어오는 것도 진절머리나게 어려웠는데, 비상한 머리만 모아놓은 곳에서도 학부 진도를 따라가는게 여간 힘든게 아니다. 어느 대학이나 이러지 않겠냐만은.

“너도 진짜 고생 많다. 허구한날 저런거나 도와줘야 되고.”

같은 테이블에 앉은건 3명 남짓이 되는 동기였다. 개강총회나 그 근처에서 친해진 애들끼리 정정기간 때 시간표를 맞췄어서, 한학기 동안 징하게 붙어다니고 있는 중이다. 승관은 누구하고나 잘 지내는 타입의 사회성 인간이라, 필수전공 강의에 들어가면 인사를 하느라 바쁘긴 했지만. 밥 정도는 고정멤버랑 먹는 편이 마음이 편해서 그러고 있었다. 동정하는 말에 반찬을 입에 집어넣은 승관이 알아줘서 고맙다고 넋두리를 했다. 에휴.

개강총회 이후로 본격 이능력자로 이름을 날리게 된 부승관의 악명은 빠르게 수그러들었다. 그는 사랑스러운 사람이었고,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재주가 있는 사회생활의 천재였다. 사람들은 금방 승관에게 있는 매력이 특이한 이능력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걸 알게되었다. 술자리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하면서, 승관은 애교와 잔소리로 동기는 물론 선배들까지 사로잡았다. 물론 엿같은 놈들은 언제나 있고, 예수도 안티가 칠천만이니 어디서든 뒷말은 나오겠지만. 승관은 그걸 무시는 못하고 제 귀에 들릴 때마다 불을 뿜어대며 지내는 타협을 봤다. 한마디로, 평범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이다. 그가 의도했던 캠퍼스 생활대로.

그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첫 단추가 좀 꼬이기는 했지만, 팔찌를 차고 있는 이상 언젠가는 소문이 났을 것이다. 그에대한 각오를 하지 않았던건 아니었다. 그렇게 막. 초반부터 온 학교에 소문이 나게 들키고 싶었던건 절대로 아니었으니 천불이 났던것 뿐이지. 심지어 신입생이 이능력자랍시고 개강총회에서 나댔다는 뒷담까지 들었단 말이다. 그래도 어쨌든, 승관은 본래 계획했던 것 보다 좀 더 애써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았다. 바쁘고 예쁨받는 사랑둥이.

“야, 근데 너희 우리 디카프리오 얘기 들었냐?”

눈물의 이별을 한 동기를 구원한 일에서 화제가 넘어가서, 승관이 눈썹을 꿈찔 움직였다. ‘우리 디카프리오’는, 말할 것도 없이 동기인 한솔 버논 최를 가리키는 별명이었다. 그와 딱히 친분이 없어도 동기들은 그를 우리 한솔이, 우리 디카프리오, 우리 다비드상 정도로 불렀다. 그와 연결고리 하나라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 애를 그렇게 부르고 싶어할만한 외모의 소유자라 그랬다. 개강총회로부터 가까웠던 시기에는 누가 얘기를 꺼내면 나 걔 마음에 안들어, 하고 대놓고 말하던 승관은 이제 익숙하게 돈까스만 집었다. 유사 디카프리오는 그 희귀성으로 인해 싫어도 툭하면 주변에서 이야기가 오르내리는 주제였기 때문이다. 걔가 뭐?

주변에서 이야기가 오르내린다고 해도 오늘은 누구 고백을 거절했다더라, 오늘도 콧대가 예술이더라, 눈이 특히 더 호수 같다더라, 이번 미팅에 또 안나온다더라 하는게 다기는 하다. 이번엔 또 누구 가슴에 대못을 박았으려나 싶었는데. 아니, 하고 한국인 다운 서두를 뗀 동기가 의외의 이름을 꺼냈다. 그 창식놈 있잖아.

이런 좀비 같은 생활에서 그나마 활력을 넣어주는건 동기들간의 끈끈한 유대 뭐 그런거였다. 이번 기수가 특이한건지 아닌건지 모르겠지만, 워낙 군기 잡는 선배들의 텃새가 심해서 오히려 동기들끼리는 똘똘 뭉치게 된 경향이 있었다. ‘창식놈’은 그 중에서도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2학년 선배였다. 4학년쯤 되는것도 아니고 오수해서 나이만 많은게 유세 떠는 최악의 인간이었기 때문인데. 첫만남부터 승관에게 입학시험 답안지 보고 배낀거 아니냐는 개소리를 하여 블랙리스트 4번 쯤에 올라와있는 이름이기도 했다. 그 쓰레기가 왜? 

“그 새끼가 저번 무도 시간에 우리 디카프리오를 말그대로 던져버렸었거든? 힘만 무식하게 세가지고.”

실제로 창식놈 다음에 많이 불리는 별명이 고릴창인 사람이라, 무도 실습 때만 되면 자기가 강호동이라도 되는 마냥 기세등등 해진다는건 이미 아는 뉴스였다. 아씨, 그래도 양심이 있지 어떻게 그런 얼굴을 한 애를 던지냐. 마음 속에 수배전단을 품고있든 말든, 보편적인 인류의 기준으로 입맛 떨어질 쓰레기짓을 들은 승관이 젓가락까지 내려놓는다. 내 말이. 동의 한다는듯 고개를 주억거린 동기가 제 식판의 불고기를 주워먹었다. 그게 어젠데, 오늘 가오 차린답시고 자기가 너무 심했던 것 같다고 간식 챙겨주러 갔었나봐. 근데.

“근데?”

“깨끗했대. 멍이고 뭐고 하나도 없이.”

“뭐?”

황당한 목소리가 나올만한 내용이었다. 던져버렸다고 하지 않았나? 그래봤자 유도하면서 뒤집기를 한거겠지만. 괴담 같은거냐고 물었더니 엄숙하게 고개를 저은 동기가 다른 동기의 식판에서 깍두기를 훔쳐먹었다. 그 새끼 디카프리오 얼굴에 열등감 있는거 티 존나 나잖아. 얼굴 노렸을텐데 아무것도 없어서, 당황해가지고 다친건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더니 걔가 아, 저 이능력자라서요. 토씨 하나 안틀리고 그렇게 말했대.

이제 승관은 입만 열었다 닫았다. 엥?

“야 그야 이능력자겠지. 그렇게 생겼는데. 잘생긴게 이능력인거지? 그럴줄 알았다.”

“아니 농담이 아니라니까? 생각해 보면 무슨 험한 수업을 들어도 걔는 맨날 다비드상이잖아. 깨끗해가지고는 조각 같이.”

리커버리래. 그 뭐냐, 자가치료 하는거 있잖아. 가오 잘 차렸냐고 지민 선배가 물어봤더니 창식놈이 카톡으로 줄줄 그렇게 말했다던데. 그래서 던져진 것도 별로 안아팠으니까 신경쓰지 말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그게 열라 재수 없었다나 봐. 누구 놀리는거냐고 욕을 드립다해서 차단했대. 와, 그놈을 아직도 차단 안하고 있었다니 지민 선배도 진짜 신선이다.

“그럼 진짜 이능력자인거야? 승관이처럼?”

거의 비워진 식판을 두고 나온 질문에 이야기꾼이 어깨를 으쓱인다. 그런가 봐. 질문을 한건 다른 동기긴 하지만, 승관은 그 타이밍에 허, 하고 탄식을 냈다. 뭐야. 그럼 그 때 제어팔찌인거 알아본게.

걔는 팔찌 같은 것도 없잖아. 그래도 되냐는듯한 순수한 목소리라, 찝찝한 얼굴을 한 승관이 의미없이 국을 젓가락으로 저었다. 리커버리라며. 딱히 제어할만한 능력도 아니잖아. 이능력자라고 제어팔찌를 전부 받는건 아니다. 난 이걸 안차면 화면이 화소단위로 보여서 차는거라는 말에 오오, 하고 감탄을 낸 동기가 손목을 기웃댔다. 7월의 날씨에도 아직 입고있는 긴팔 가디건 밑으로 초록색 LED가 점멸중이었다. 물론 승관이 하지말라는듯 팔을 털자 기웃대는건 그만뒀지만.

“근데 두만식이 그러는데. 그게 끝이 아니래.”

여기서 더 나올게 있단 말이야? 학기가 끝나가서야 이능력자인게 밝혀진 것도 충분히 쇼킹한 일인데. 소문에 밝고 입 가벼운 동기에게 몰린 시선들이 의아함을 띄었다. 국을 마신 동기가 깍두기를 또 훔쳐먹는다. 조교니까 학적부 볼거 아니야. 걔 그 프로그램 출신이래. 일괄처리 코스.

승관의 얼굴이 본격적으로 구겨졌다. 일괄처리 코스? 모르는듯한 동기의 질문에 다른 동기가 대답했다. 위험한 능력 가진 애들 모아놓고 특수부대 직행 시키는 그거 있잖아. 이능력 개발 및 수용 프로그램?

“그렇게 부르면 좋냐?”

툭 나온 짜증에 눈을 깜박인 동기가 아, 하고 자기 입을 가렸다. 아이고, 이놈의 입이 또. 미안하다고 불고기를 적선하길래 잔뜩 신경질이 난 표정으로 됐다고 그걸 밀어낸 승관이 볼이 밀리게 턱을 괴었다. 그래도 바로 사과할줄 아는 애라 밥도 계속 먹는거긴 하지만. 눈치를 보던 다른 동기가 다른 질문을 꺼낸다. 리커버리라며. 뭐 위험한 능력이라고 그런데를 다녀왔대. 떨떠름한 목소리였으나, 승관은 그냥 마지막 남은 돈까스만 입에 우겨넣었다. 몰라. 사실은 더 위험한 능력이거나 그런가보지.

“웃기네. 거기 갔다왔는데 위험한 능력인거면 팔찌 같은게 없을리가 없어."

툭 나온 목소리에 테이블이 침묵한다. 승관은 여전히 짜증이 난 표정을 하고 있다가, 아까 밀어냈던 불고기를 한 번에 입에 넣었다. 모르면 이상한 소문 내지말고 밥이나 먹어. 강의 시작 전에 커피 때리려면 시간 모자라. 뭉게진 발음으로 나온 말에 하나 둘 젓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원래 좀 예민한 애이긴 하지만, 이런 주제가 나오면 특히 더 날카로워진다. 다들 알아서 입조심을 하기는 했으나 당사자가 아니면 선이 어딘지 가늠하기 힘든 주제기는 했다. 이번에는 선 넘었나보다, 할 뿐.

“그래도 다행이다. 다쳐도 낫는거면 얼굴 상할 일 평생 없겠네.”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전환한 동기가 다시 공기를 가볍게 만들었다. 너도 그런 유용한 능력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우리 관이 다음학기 무도 수업 듣다가 빵실한 볼에 상처나면 어떡해. 마음이 찢어질 것 같다고 가짜로 울어대는 동기의 다리를 차버리자 평소의 깔깔댐이 있었다. 야, 뭐가 유용하냐. 다쳐도 자기만 치료하는거 아니야? 외모처럼 이기적이잖아. 승관이 능력이 훨배 낫지.

-그 때 뭐라고 했었더라? 아마 그걸 이제야 알았냐고 했었던가. 허구한날 강의실 스캔이나 부탁하면서 유용 운운이냐느니, 젓가락을 휘저으며 말했더니 다들 과장된 비명이나 질러줬던 것 같다. 영양가 없는 주고받기였지만. 그 7월의 대화가 승관이 일부러라도 피하던 수배전단서에 새겨진 얼굴에게 제 망원경의 초점을 맞춘 첫 계기였다. DEAD or ALIVE, 최한솔. 저와 같은 이능력자.

*

이능력자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어떠한가? 논평이라도 될듯한 주제는 부승관의 삶에 바짝 붙어 떨어질줄을 몰랐다. 승관은 능력이 발현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원치않는 관심에 절여져 살았다. 날개가 있거나 팔이 세개인건 아니었지만, 제어팔찌는 꽤 눈에 띄었다. 악세서리인줄 알던 사람들이 그 팔찌의 용도에 대해 알게되면 반응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신기해하거나 무서워하거나. 어쩌면 둘 다인 경우도 있고.

신기해하는건 그럴 수 있다. 주변에서 보기 힘드니까. 승관만 해도 주변에서 능력이라고 지칭할만한걸 가지고 있던 사람은 초등학교 때 피아노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끝이었다. 절대음감 같은건 웬만해서는 공인서류에 기록되지 않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이능력자라고 해도 산들바람을 5초 정도 불게하거나, 손가락에 동전을 붙일 수 있는 자성을 가졌거나, 그 정도가 끝이었다. ‘제어팔찌’까지 차는 이능력자는 특이하다. 무슨 마트에서 사는것도 아니고. 그건 정부에서 등급측정을 끝낸 후 능력을 풀어두면 윤리에 어긋나거나, 사회 혹은 본인에게 위험하다고 판단해 보내주는 보호장치였다. 풀어내려면 공식절차가 필요한.

제어까지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두려워하는건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승관은 등급측정을 끝낸 뒤 받은 감각적인 홍보지를 받아들고 센터의 로비에서 30분을 서있었다. 난생 처음 밟아본 육지에서 마주한 낙인은 그를 두렵게 만들었다. 이능력 개발 및 수용 프로그램에 관한 안내서. 그리고 제어팔찌.

발현된 능력이 무엇인지 검사하고 등급측정을 끝내면, 일부 사람들에게 제안이 들어온다. 프로그램에 합류하지 않겠냐는. 일괄처리 코스라고 불리는 그 프로그램은 말그대로 위험분자들을 일괄처리하는 용도로 소문이 나있다. 승관이 그 홍보지를 읽고있을 때 조차 센터의 TV에서는 이능력 테러에 의해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비추고 있었다. 연일 보도되는 국내외의 이능력 범죄와 그를 제압하는 특수부대들의 소식, 발현되었다면 반드시 센터를 통해 검사 받기를 권유하는 홍보문구 등은 일반인들과 이능력자들의 거리를 벌리고 깊게 파낸다. 센터에서도 홍보지와 팔찌를 들고 굳어있는 승관을 힐끔대고 가는 시선들이 있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승관은 떨리는 손으로 팔찌를 찼다. 홍보지는 구겨버리고.

개강총회와 학교 사람들에게는 그냥 멀리 좀 보는거라고 했지만. 그리고 그게 거짓말은 아니지만. 승관의 학적부나 주민등록등본 등에 써져있는 '천리안'이라는 능력은 단순히 멀리 보기만 하는건 아니다. 더 간단히 해서, 승관은 투시까지 가능했다. 제어팔찌는 그 능력을 제어하는 용도였다. 벽이나 장애물, 심지어는 피부와 뼈까지 투과해 내장을 볼 수도 있는 그런 능력.

물론 너무 좋은 시력도 좀 제한해주기는 하지만, 승관이 안되겠다 싶어 제주도에서 서울에 있는 이능력 센터까지 발걸음을 옮기고, 제어팔찌를 받은 이유는 그 부분 때문이 더 컸다. 더 이상 사람들의 장기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싶지가 않았다. TV나 휴대폰도 화소 단위가 아니라 제대로 보고싶었고. 또.

안내서는 단순히 안내서고, 소문과 다르게 개발 프로그램은 강제참가가 아니었다. 다만 위험한 능력을 가진 이능력자들은 취업시장에서 배제되기도 쉽고, 부모나 주변의 학대에 노출 되는 일이 많아 각자의 사정으로 안내서를 받으면 그대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을 뿐이다. 승관은 집으로 돌아가기 전의 공항에서 구겼던 안내서를 버렸다. 프로그램에 합류하는 일도 없었다. 승관은 제가 군인이나 최전방 사령군에 어울리는 사람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해본적이 없었고, 그리고. 수용소에는 위험한 이능력자들 뿐이니까. 자신은 위험하지않다. 그저 좀 특이한거지.

제어팔찌를 받고나서도 삶은 그럭저럭 흘러갔다. 승관은 사람들의 관심에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는 바람에 제가 갈고닦은 수많은 면에게서 주목을 앗아가는 이능력이 싫었지만. 그것을 저주라고 생각하면서도 제 일면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경찰을 꿈꾸게 되었던 것도 그런 노력중에 하나였다. 천연 엑스레이 아니냐면서 의사나 되라고 하던 누나에게 반항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연일 보도되는 이능력 범죄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기도 해서였다. 테러리스트들을 상대하는 특수부대가 여러모로 눈에 더 띄기는 하지만, 타지 생활을 하고싶지는 않고. 좀 더 일반인들의 생활에 밀접한 사건들도 분명 있었으니까. 그런 작은것들로부터 시각을 바꿔나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무엇보다 승관은 유능한 자신을 믿었다. 경찰대 입시하다가 세 번 정도 죽기는 했었지만.

그럼에도 승관은 제어팔찌를 발견한 사람들에게 어김없이 '그냥 좀 멀리볼 뿐'이라는 변명을 일삼았다. 왜냐하면, 투시가 된다는걸 아는 순간 사람들이 저를 10배는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 부분은 이해했다. 누구나 모르는 새에 타인이 자기를 보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분 나쁘지 않겠어. 승관도 쓸데없는 것들을 보고싶지 않으니까 제어팔찌를 차고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팔찌를 차고있으면 투시는 안된다고 설명해도 악담은 돌기 마련이고, 무슨 일만 터지면 다들 승관을 찾는 횟수가 늘어날테니까. 그래서였다.

실제로 투시가 된다는걸 몰라도 사람들은 툭하면 승관을 찾는다. 예를들면 지금처럼.

“보나마나 숙소일텐데 뭘 또 찾아오라고 난리야.”

주변 100m 안에 아무도 없다는걸 확인하고나서야 승관이 궁시렁대며 계단을 올랐다. 여름밤의 습기 때문에 더 진해진 서늘한 냄새가 얇은 가디건의 주변을 찌른다. 내부계단으로 통하는 철문이 꽤나 두꺼웠는데도 지나온 홀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웅웅대며 울렸다. 씨. 내 청포도 다 먹어버리는거 아니야. 억울해서 눈물이 찔끔 나오는게 저도 꽤나 취한것 같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정 봐주지 않는 선배들은 멀쩡히 즐겁게 놀고있던 승관을 호출해 밖으로 쫓아내기에 이른다. 최한솔이 안보이니 찾아오라는 명령이었다. 제가요? 황당하게 물었더니 너는 더 빨리 찾을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창문 가서 한바퀴 쭉 둘러보고 와. 걔 눈에 엄청 띄잖아.

그야 눈에야 띈다. 남들보다 더 빨리 찾을수도 있겠고. 그치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한참 재밌을 때 이렇게 내쫓기는건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가평이나 우이동이면 됐지 전통이랍시고 MT를 이런 산골짜기로 온 것도 마음에 안들어 죽겠는데, 애들이랑 놀 생각으로 그나마 가라앉힌걸 이렇게 방해하다니. 거기다 최한솔을 찾아오라는 얘기 자체도 마음에 안들었다. 걔가 안보이는 이유를 진짜 모르나? 눈치를 한강에 빠뜨리고 온건지 아주.

개강총회와 마찬가지로 과 MT도 1학년들은 강제참가였다. 뭐 이딴 군기를 잡는 곳이 아직도 있나 싶었지만, 저는 어차피 강제가 아니더라도 왔을테니 그러려니 했다. 승관을 포함한 1학년들이 진심으로 안타까워 한 것은 집합장소에 나타난 디카프리오였다. 과방에도 잘 안나타나는 애가 강제참가랍시고 1박 2일을 지낼 짐을 싸들고 온게 어지간히 마음이 쓰여서였다. 분명 고릴창이 얼굴 한 번 비추라고 뭐라고 한게 틀림없다. 7월의 그 사건 이후 1학년들은 문명화가 덜 된 야만인에게서 다비드상을 지키느라 암암리에 회의를 하고는 했는데, 철망에도 개구멍이 있었던 모양이다. 

집합장소에 나온 애를 괜찮으니 돌아가라고 할 수도 없고, 같은 버스를 타고 산넘고 물건너 강원도까지 오기는 했는데. 솔직히 1학년들은 중간에 다비드상이 없어졌든 말든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개강총회에서 조차 처음 한 잔 이상은 마시지도 않았다는 괴담이 돌았던 애인데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애였다면 한학기 동안 50번은 넘게 있었던 각종 모임들에 얼굴을 한 번도 비추지 않았을리가 없다. 적당히 들어갔겠지 뭐. 

아주 솔직히 말하면, 술자리에서 그 애를 챙겨줄만큼 친한 애가 없기도 했다. 모두가 우리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디카프리오는 객관적으로 말하면 좀 겉도는 부류였다. 마당발인 승관조차 걔가 누구랑 친하더라, 하고 생각하다보면 떠오르는 애가 없을 정도였다. 관계에 집착하지 않는달까. 나쁘게 말하면 사회성이 없었지만. 그런것도 쿨하고 멋있게 보이는게 그가 열등감에 젖은 적들을 만드는 알고리즘이니까.

승관은 따지자면 어느쪽도 아니었지만-수배전단의 현상금은 400만원까지 내려갔다-디카프리오는 친구는 없고 적은 많으면서 적들 눈치 볼 생각도 안하는 애라 오히려 이런 위치의 사람을 고생시키고는 한다. 아까 말했듯이 보나마나 숙소일테니까. 창문으로 보고 돌아가서 아파 보인다고 말하면 되겠지. 아까도 컨디션 안좋아보였다고 말하면 그걸로 납득할터였다. 납득 안하면 어쩔거야, 아프다는데. 

이정도하면 양심은 챙기겠지 싶어 도착한 창문으로 눈을 내민 승관이 맞은편에 보이는 숙소건물의 창문 안을 훑었다. 말하고 먼저 들어갔던 동기들이 보이고. 어. 없네, 디카프리오.

승관이 시선을 올린건 혹시 한솔이 숙소의 층을 햇갈렸나 싶어서였다. 층을 위아래로 두 개 쓰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윗층의 숙소는 아무도 없는지 불이 꺼져있었고, 그 대신 남들보다 몇 배는 넓은 시야에 옥상 난간에 기댄 뒤통수가 보였다. 초점을 맞추려고 눈을 한 번 깜박이자 하얀 뒷목이 선명해진다. 다시 깜박. 초점이.

*

끼익.

생각보다 소리가 너무 크게 나서 승관이 저절로 어깨를 움츠렸다. 밤 열한시의 건물 옥상은 지상과는 다르게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산중이라 그런가? 버스에서 내린 동기들이 괜히 공기가 맑다고 긍정적인 소리를 냈던걸 기억한다. 물론 억소리 나게 낡아보이는 유스호스텔과 벌레가 점령한것만 같은 자연이 주는 공포심을 이겨내기 위한 발버둥이긴 했지만.

한솔이 난간에 기댄채로 하늘을 보던 시선을 돌렸다. 눈이 마주친 승관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킨다. 잘생겨서 그런지 저런것마저 화보 같네.

그에 반해 승관은 문 뒤에서 완전히 나오지도 못하고 안쪽에서 상체만 내민 상태였다. 딱히 쫄았다거나 그런건 아니었다. 누구나 수배지가 붙은 사람을 눈 앞에서 보면 좀 경계하게 되지 않나? 물론 한솔의 수배지는 어디까지나 부승관의 마음 속에만 있고, 그가 경찰에 잡혀갈만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건 아니지만서도. 얼굴을 보자 그 수배지의 현상금이 약 50만원 정도로 내려가기도 했다. 승관은, 그러니까. 어쨌든 자신이 별로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않은 불청객으로서의 자세를 취했다고 생각했다. 영화 같은 순간을 방해 했다는 생각 때문에 겁을 먹은건 아니었다. 절대로.

“선배들이 찾아.”

그럼에도 승관의 목소리는 약간 기어들어가는 종류의 것이었다. 부승관과 낯가림은 등치할 수 없는 단어들인듯 했지만, 그런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을 때나 해당되는 얘기다. 사실상 승관은 한 학기가 지나가도록 눈앞의 디카프리오와 말을 섞어본적이 없었다. 다른 애들한테는 걔 별로라고 쏘아붙이고 다녀놓고 실제로 말을 섞은적은 없다니 좀 우습기도 했다. 그게 지금의 낯가림의 주된 원인이기도 했고. 제가 날을 세우고 다녔어도 세상에 관심 없어보이는 저 힙스터는 제가 누군지 기억하지도 못할거고, 그래서 승관이 문 뒤에 숨은 이유도 잘 모르긴 하겠지만.

한솔은 움츠러들어있는 승관을 보다가 난간에 기대있던 몸을 일으켰다. 반 박자가 느리네. 승관은 꼭 그렇게 생각하다가, 어느 선배냐고 묻는 말에 약간 멍한 머리를 깨웠다. 선영 선배가. 그 2학년 과대.

이름만 말하면 모를것 같아서 설명을 덧붙인거지만, 그래도 누군지 모르는것 같은 얼굴이기는 했다. 그 선배가 왜? 출석을 부를때나 한솔이 강의에서 발표를 할때나 들었던 낮은 목소리가 적응이 안됐다. 왜냐니.

“갑자기 없어졌잖아. 나보고 찾아오래.”

적어도 사실이었다. 단정한 눈썹이 내려간다. 그 선은 미안한 것 같기도 하고, 머슥한 것 같기도 하고, 약간은 불쌍하게 보이기도 했다. 아. 안타까운 탄성마저도 무슨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사같다. 그러나 다음에 나온 말은 연극이나 꾸며낸 종류와는 좀 멀어보였다. 별로 안돌아가고 싶은데.

명치에서 나온 진심의 말에 승관의 낯가림이 좀 풀린다. 허. 이것은 정확히 좀 어이없다는 종류의 감탄이었지만, 디카프리오가 밝힌 속내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잘 놀고있다가 선배들이 찾아오라고 해서 이 옥상까지 올라온 사람에게 별로 안돌아가고 싶다니. 하지만 그것은 저에 대한 배려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말 그럴만한 말이었으므로 밉거나 싫어할 수가 없다. 당연히 안돌아가고 싶겠지. 누가봐도 도망 나온건데.

그럼 그냥 컨디션 안좋아보인다고 말해줄게. 승관은 어차피 처음부터 그럴 셈이었으므로 이 짧은 대화가 언짢지도 않았다. 옥상에 있는거 보고 돌아가서 그냥 말했어도 됐는데, 이렇게 될거 뭐하러 여기까지 왔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승관은 난간에 혼자 기대어있는 하얀 뒷목을 놔두고 바로 술자리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냥, 본인도 잘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용건은 끝났으니 승관은 옥상을 내려갈 생각으로 하체를 상체에 맞췄다. 문을 닫으려면 몸의 균형을 맞춰야하니까 그랬던건데. 생명줄이라도 되는것처럼 붙잡고 있던 문고리를 안으로 당기려고 했더니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능력 써서 찾아온거야?

동작을 멈춘건 여러 이유가 있었다. 올라왔던 계단 쪽으로 돌아가있던 고개를 돌린 승관이 여전히 난간 근처에서 벗어나지 않은 한솔을 본다. 뭐? 라거나, 그 엇비슷한 반문 같은걸 할 만도 한데 승관은 그냥 물끄러미 밤하늘을 배경으로 가진 잘생긴 얼굴을 쳐다만 봤다. 그 시간이 길어지자 한솔은 입술을 한 번 핥았다. 여기 있으면 아무도 못찾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찾아 왔길래.

“뒷목 보이던데.”

복도 창문에서. 물론 승관처럼 눈이 좋지 않으면 그게 누구의 뒷목인지 알 수 없을만한 거리기는 했다. 그래도 이 낡아빠진 유스호스텔을 쓰고 있는건 오랜 전통의 피해자인 경찰대 학생들 밖에 없고. 대부분은 다 강당에서 부어라 마셔라 중이었으니 혼자 있는 하얀 뒷목이 누구의 것인지 추측하는건 일반인에게도 별 어려운 일은 아니다. 승관은 한솔의 추측에 부정의 답을 내놓고는 그를 여전히 쳐다봤다. 한솔이 눈을 떨어뜨린다.

그렇구나. 덤덤한 말이었다. 승관은 낯을 가리는건 아마도 제가 아니라 한솔의 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저런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 누구에게 무슨 말을 걸든 매사 자신감 있을만도 한데. 그러나 승관은 낯선 사람에게 처음 말을 걸 때 좀 방어적이게 되는 배경 따위야 추측할 수 있었다. 힐끔 쳐다본 손목에는 제어팔찌 대신 스포츠 아대가 있을 뿐이지만.

“미안. 기분 나쁘게 하려던건 아니야.”

승관은 별로 기분 나쁜 표정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러니 저건 자신의 경험을 반추해본 대답일 가능성이 컸다. 대뜸 능력을 쓴거냐는 말을 들었을 때의 경험. 승관은 손잡이를 놓았다. 미안한거 알아서 다행이네.

“능력 써서 찾은거 맞아.”

면봉 같이 보이길래 좀 확대해서 봤지. 뒤통수가 딱 조각상이던데. 어깨를 으쓱이며 낸 무덤덤한 말에 한솔은 다시 그 셰익스피어 연극 같은 탄성을 냈다. 아. 그리고는 자신의 뒤통수를 좀 만졌다. 조각상 같지는 않다던지, 그런 겸손한 말이 나올줄 알았더니 한솔은 그냥 경계만 조금 내렸다. 그거 있어도 그런거 할 수 있어? 한솔의 시선은 팔찌를 가린 가디건 소매에 있다. 승관은 아무렇지 않게 팔을 들어 드러난 손목의 팔찌를 봤다. 어느정도는.

강당에서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과 청포도 소주는 머리에서 지워졌다. 반틈만 열려있던 문을 조금 더 밀어젖힌 승관은 허물어진 낯가림의 벽 앞에서 대화주제를 꺼냈다. 그냥 숙소에 있지 뭐하러 옥상으로 숨었어? 자고 있는 애 다시 끌고갈만큼 극악무도한 선배들은 아닌데.

실제로 숙소에 들어간 애들은 빈둥빈둥 누워있다. 빈말로도 너무 좋은 선배들이라고는 못하지만, 그네들도 어느정도 양심이라는게 있었다. 숙소에 돌아간건지 화장실에 간건지 담배 피우러 간간지 모르니까 찾아오라고 한거고, 첫번째를 제외한 상황이라면 다시 끌고오라고 명령했을 뿐이다. 당연히 숙소에 돌아갔을 애를 보고 그런 명령을 하는게 말이 안됐던거지.

진짜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본건 아니었다. 승관은 그저 한솔이 저를 잡아끌었으니 대화를 좀 더 이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스몰토크? 그런거. 그냥 충동적이었거나 숙소에서 코고는 애가 있었거나 그랬겠지. 그런데 질문을 들은 한솔은 버릇인지 후드티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고개를 위로 올렸다.

“여기는 별이 잘보여서.”

자연스레 시선을 따라가자 밤하늘이 있다. 아. 이번에 나온 셰익스피어 감탄사는 승관에게서 나온것이었다. 강원도 산골. 겨우 4층 높이의 유스호스텔 건물 옥상인데도 반짝거리는 것들이 보였다. 영화나 교과서 사진마냥 쏟아질 것 같이 있는건 아니었지만, 충분히 별이라고 말할만한 것들이 떠있다.

몇 개는 인공위성 아닌가? 승관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걸 굳이 말로 하지는 않았다. 저렇게 보일만큼 반짝거리는 인공위성 같은건 없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것 같기도 했다. 낭만을 가진 사람마냥 생겨서 퍽 현실적인 편인 승관은 금방 하늘에서 시선을 내려 제 앞에 서있는 한솔을 봤다. 멀리 있는 별보다는 그의 곱슬거리는 갈색머리가 좀 더 빛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난간에 기대어있던 하얀 뒷목을 생각한다. 별을 보고 있었던거구나.

로맨티스트네. 적어도 승관은 산골짜기라 벌레 많고 습하다고 투덜거리기나 했지 별이 잘보일거라고 생각한적은 없다. 그제서야 고개를 내려 씩 웃어주는 입이 곡선을 그린다.

승관은 그걸 보다가, 충동적으로 스니커즈를 뻗어 옥상 안으로 절 들였다. 서늘하고 습한 바람이 머리를 흐트려놓는다. 별보러 MT 온거야? 별 특이한 애가 다있다는 말투였는데 한솔은 웃고나 있다. 보는거 좋아해. 그게 사실이라면 좀 안타까운 일이다. 평생을 도회지에서만 살았을것 같은 외모였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너 이능력자라며.”

한솔의 옆에서 두어발자국 떨어진 곳의 난간에 팔을 걸친다. 올려다본 하늘에서 별자리를 찾으려고 해봤다. 저게 북두칠성인가? 제주도에 있을 때는 서울보다는 별이 좀 더 잘보였는데. 막상 그걸 특별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는 것 같다. 승관에게는 제주도보다는 오히려 도심이 좋았다. 건물들이 빽빽하니까, 투시만 제어하면 시야가 넓어지기 전에 어디서든 벽과 차가 그걸 막아준다.

답이 없어서 힐끔 쳐다보니 한솔은 곤란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들었어? 승관은 그 말이 좀 황당해서 숨을 터뜨렸다. 어디서냐니. 네가 고릴창한테 말했었다며. 소문 쫙 났어.

“고릴창?”

“정창식 말이야. 무도 시간 때 너 던져버리고나서 가오 차리겠다고 찾아갔었다매.”

근데 기대했던 흉이 없어서 물어봤더니 네가 리커버리 능력자라고 했다며. 꽤나 자세한 정황이 흘러나오는 입을 보던 한솔이 미간을 구긴다. 선배를 고릴창이라고 불러? 그건 예상도 못했던 태클이라 승관은 난간에 괴고 있던 턱을 미끄러뜨렸다. 아니. 동기들 사이에서 제일 유명한 별명을.

고릴라 닮았잖아. 물론 승관도 한솔의 뉘앙스가 그런걸 물어본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할리우드에서 볼 것 처럼 생겨서는 웬 유교사상을 머리에 탑재하고 있는지 참. 한솔은 입을 비뚤게 했다가, 어느정도 닮긴 닮았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다른 얘기를 꺼냈다. 네가 나한테 관심이 있는지는 몰랐어. 승관은 이제 기묘한 얼굴이 된다.

“관심?”

“아니야? 꽤 자세히 알고 있길래.”

한솔도 난간에 등을 기댄다. 다시 별이 박힌 하늘로 올라가는 옆선이 거의 신성했다. 저렇게 완벽한 각도의 콧날과 턱선을 가졌으면서 얘가 지금. 어이가 없어서 기함한 승관이 고개를 젓는다. 그런거 아니거든. 힐끔 돌아오는 시선이 안믿는듯한 눈이어서 승관의 눈이 가늘어졌다. 야. 너 최한솔이야. 너한테 관심이 있든 없든 경찰대 학생이라면 네 소식 같은건 자다가도 들린다고.

심지어 승관은 동기이기까지 하니 더욱 당연했다. 일거수일투족을 캠퍼스의 모두에게 관음당하고 있다는 자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너 에타 같은거 안해? 새학기 때는 하루에도 두번씩 번호 아는 사람 있냐고 사진 찍혀서 게시글이 올라왔었는데. 그러나 아무도 한솔 버논 최의 번호를 알지 못하는 연유로 누구도 안다는 답을 할 수 없었던 전설의 3월을 본인만 모르고 있었다니.

믿기지 않게도, 한솔은 전혀 승관의 말을 믿는투가 아니었다. 좀 더 믿게 할 수 있을만한 다른 변명이 있을텐데, 싶은 얼굴이다. 50만원으로 내려갔던 현상금에 0하나를 더 붙인 승관이 될대로 되라는 생각을 한다.

“너 개강총회 때 나한테 엿먹인거 기억 안나?”

약간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나오는건 불가항력이었다. 그래놓고 관심이 있을줄은 몰랐다니 어디서 그런 뻔뻔한 말을. 너 때문에 대학교 첫걸음 완전 망했잖아. 원래는 다들 내 춤과 노래에 홀딱 반했어야했고 어쩌고, 그런 말을 듣는 동안 한솔은 입을 좀 우물댔다. 그런 전적이 있었으니 소식이 들리면 반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나 걔 별로라고 말해야 했으니까. 물론 그런 얘기는 생략시킨 승관이 다른 말을 덧붙였다. 그랬던 애가 이능력자라는데. 그런 얘기는 당연히 기억하지 않겠어?

한솔은 생각보다 승관의 입이 험한 편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동그랗게 생겼는데. 물론 그는 승관이 친구들에게 신경질을 내거나 툭 쏘아 붙일 때의 말투 정도는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건… 미안해.”

 서툴게 나오는 사과에 승관이 더더욱 눈을 가늘게 한다. 그 날의 일은 필시 미안해 해야하는 일이니 당연한 대답이었지만, 승관은 어쨌든 그가 그런말을 하게끔 한걸 좀 후회했다. 현상금에 막 붙였던 0이 다시 떨어진다. 됐어. 왜 그랬었는지는 아니까.

이능력자는 희귀하다. 아마 한솔은 그렇게 남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성량으로 제어팔찌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건 아닐 것이다. 눈에 띄었고, 얼마 없는 일이니까 저도 모르게 말이 나왔던거겠지. 승관도 한솔이 이능력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적잖이 놀랐다. 나 말고도 이능력자가 있다니. 대충 그런 감상으로.

그건 이능력자가 아닌 사람들이 와, 신기하다, 하는 식의 감상과는 좀 다르다. 놀란 그 즉시 다른 감정들이 끼어들어온다. 쟤도. 아, 그렇구나. 그랬겠구나. 그런식으로 그냥 멋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생겨버렸다. 동정이 샘솟고 공감대가 생긴다. 이능력자라는 소수성 외에는 아무것도 몰라도 그랬다. 무언가 특이한 점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그러겠지. 적어도 승관은 그렇다.

“…사실 더 빨리 이야기 해보고 싶었는데.”

별 많네. 무심하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더니 한솔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난간에 턱을 괴서 밀려난 볼이 오른쪽 눈을 살짝 가린다. 제대로 사과하고 싶어서. 한솔은 진지한 것 같은데 승관은 별 집중을 안했다. 그랬구나 싶었다. 뭐, 그런 일도 있는거지. 어차피 그건 거의 3달 전의 일이었고, 승관은 첫 발은 좀 헛디뎠을지언정 빠르게 자신이 계획했던 포지션을 쟁취했다. 이젠 괜찮다는 말에 그래도 미안했다는 사과가 돌아와서 승관이 손사레를 쳤다. 어차피 언젠가는 들켰을거야. 들어보이는 제어팔찌가 달빛에 반사된다.

위로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사실이었다. 승관이 현상금을 그냥 빼버리고 수배지를 마음속의 코르크보드에서 떼어낸다. 한솔의 말대로 좀 더 빨리 이야기 해봤다면 보드도 더 빨리 깔끔해졌었겠지. 어떠한 애일거라고 이렇다하게 상상한건 없었지만 생각보다 좋은 애 같았다.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할 줄 아는 인간이란 얼마나 드문가. 적어도 승관은 잘 못한다. 보드의 1순위 수배지에는 고릴창이 자리했다. 빠밤. 싸구려 네온사인이 한 번 빛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

짧은 선언이었다. 승관이 시선을 돌린다. 여전히 별을 보고 있던 한솔은 자신도 시선을 돌렸다가, 눈이 마주치니 웃었다. 승관은 그런 웃음은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피그말리온이 간절하게 빌어서 살아난 조각상 같다. 이름이 뭐였지? 갈… 음. 사실 승관은 신화 같은건 잘 모른다.

“나도 물어보고 싶은거 있어.”

약간은 충동적으로 말이 나왔다. 누가봐도 그럼 물어보라고 할만한 타이밍이었는데. 한솔은 조금 놀라서 눈을 깜박였다. 나한테? 자기는 물어보고 싶은게 있다고 해놓고 승관이 그렇다는건 퍽 예상조차 못했던 모양이다. 그럴만도 했다. 한 번도 얘기해본적도 없는 사람한테 무슨 궁금한게 있겠어. 승관도 똑같은 이유로 한솔이 저에게 궁금한 것이 뭔지 몰랐기 때문에, 제 질문을 먼저 했다. 일괄처리 코스 출신이라며.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동기가 말했을 때는 짜증을 냈던 호칭을 입 밖에 내니 좀 별로다. 그러나 이능력 개발 및 수용 프로그램 출신이냐고 묻는것 보다는 이 편이 전달하고 싶은 바는 좀 더 확실했다. 한솔은 다시 셰익스피어 감탄사를 냈다. 옥상에서 주고받는 대화에서 앞으로 그 감탄사가 몇 번이나 더 나올지 궁금하다.

“학적부에 써있었대서.”

출처를 묻지는 않았지만 승관은 변명하듯 그렇게 말했다. 물론 승관이 한솔의 학적부를 볼 이유는 없으니까 다른 사람한테서 들었다는 말이 되기는 했다. 이능력자라는건 본인이 말했다쳐도, 이런 정보까지 나도는건 확실히 좋은 일은 아니고. 한솔은 눈을 사선쪽으로 굴렸다. 무슨 말을 대답으로 해야하는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그게 좀 오래걸리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니야?

승관은 다시 제 제어팔찌로 시선이 갔다. 그냥 아니라고 말하면 되는데, 입은 대신해서 이렇게 대답했다. 제안은 받았어. ‘은’이 붙었으니, 맥락상 아니라는 뜻이기는 했다. 공항에서 버렸던 감각적인 홍보지를 생각한다. 센터에서 저를 힐끗대던 시선들도.

“거기 왜 간거야?”

승관이 궁금한건 이것이었다. 리커버리라며. 능력에 대해서는 들었다. 제어팔찌도 필요없을 정도의 능력이다. 위험하지도 않고, 주변에 영향을 주는 능력도 아니다. 그저 다치면 낫는 정도의 능력으로 왜 프로그램을 이수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일괄처리 코스의 목적대로 특수부대로 직행하지도 않고, 경찰대학에 입학해서는 학적부에 쓰인 글씨로 소문의 대상이 되었는지도.

심플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솔의 고민이 길었다. 별을 한참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난 한솔이 주변을 둘러본다. 낡은 유스호스텔의 옥상에는 다양한 쓰레기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는 소주병도 있었다. 과자봉지 같은것들도 잔뜩 널려있으니 아무래도 옥상에서 분위기 내며 퍼마시던 사람들이 꽤 있던 모양이었다. 승관은 한솔이 걸어가서 그걸 집어들때까지만 해도 뭔가 싶었다가, 그가 병목을 잡고 계단 통로 쪽의 벽에 그걸 휘둘러서 깨버리자 경악했다. 뭔. 쟤 갑자기 왜저래?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커서 숙소에 있던 애들한테 들렸을까 싶을 정도였다. 한솔은 날카롭게 깨진 병을 들고 승관쪽으로 가려다가 승관이 겁먹어서 주춤대는걸 보고는 또 셰익스피어 감탄사를 냈다. 뭐야. 뭐하는데. 경계를 한참 올려 슬슬 계단쪽으로 도망칠 준비를 하는 몸을 보던 한솔이 어차피 너는 거기서도 보이겠지,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병의 단면을 제 손바닥에 댔다. 승관이 소리를 지를새도 없이 거칠게 깨진 유리가 하얀 손바닥을 빠르게 지나간다.

“미쳤어?!”

주춤댔을 때는 언제고 단박에 한솔의 쪽으로 뛰어간 승관이 병을 뺏어든다. 당장 감싸야한다는 생각에 급하게 가디건을 벗었는데, 잡은 손은 멀쩡했다. 거짓말치지 않고 깔끔했다. 상처가 좀 빨리 낫는다거나, 그런 수준이 아니라. 이미 아물어가는 과정조차 보이지 않았다. 동공이 흔들리는 승관을 두고 한솔이 얌전히 깨진 병을 도로 가져온다. 그걸 다시 손바닥에 대자 승관이 급하게 그 손을 막았다. 한손을 입을 열었다가, 승관이 하지 말라는듯 고개를 저어대자 곧 손을 내렸다. 안아파. 대신 그는 병을 내려놓고 승관의 손을 감싸줬다. 등급측정 S라더라.

불에서도 그냥 걸어다닌다는 말에 안색이 좀 아연해졌다. 이런건 아프기도 전에 나아. 아직도 충격 때문에 입을 열지 못하는 승관의 손을 문질러주던 솔이 감기도 걸려본적 없다느니 하는 말을 냈다. 프로그램 제안서는 그래서 받은거라고.

발현 시기는 딱히 없다. 신생아 때부터 아픈적이 한 번도 없었다. 모두가 자신의 아이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지만 정말이지 하나도 안아프면 좀 불안한 법이다. 주변의 권고로 100일이 지났을 때 기관에서 측정을 했는데, 그 때는 그냥 리커버리라는 명칭만 나왔다. 태어난지 100일이 된 아이의 이능력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을리도 없어서. 그래서 그런줄 알고 살다가, 중학교 때 검사를 한 번 더 받고 결과로 S등급 측정을 받았다. 비슷한 능력계열에서 가장 상위.

일괄처리 코스는 보기에 위험한 능력들뿐만이 아니라 이런식으로 군사작전이나 테러리스트가 되는데에 너무나 큰 도움이 될만한 능력자들-승관처럼-에게도 제안서가 온다. 제안서는 바로 받았지만 받자마자 들어간건 아니었다. 제어가 어렵거나 위험한 능력이라면 유치원생도 프로그램에 보내져야했지만 한솔은 딱히 그런것도 아니었으니까.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했다. 그리고는 한 3년을 있다가 나와서, 특채로 온게 경찰대학이었다. 물론 성적도 실습도 커트라인은 맞췄다. 가산점이 얼마더라. 5점 정도 됐나?

“그런걸 용케 소문도 안내고 한학기 동안 살았다 너?”

긴장이 풀려서 목소리의 볼륨이 커졌다. 수용소 갔다온건 소문 돌았다며. 의아하게 말했지만 그 소문이 돈건 기말고사 직전이다. 어떻게 꽁꽁 숨기고 살았냐는데, 한솔은 어깨를 으쓱였다. 친구가 없어서.

있었다면 이런 수준의 능력은 훨씬 먼저 소문이 났었겠지. 리커버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건 그냥 상처가 좀 일찍 아물거나 하는 정도의 능력이지 이런게 아니다. 좀 멀리보는 정도의 능력만으로 개강총회에서 그런 이목을 끌었는데, 이걸 들켰으면 어떤 이슈감이 됐을지 좀 아득했다. 제어팔찌 없으니까 안들키는 놈이 내 것만 소문냈다고 궁시렁대던 시절도 있었는데.

창식놈도 이건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만 하루가 지나서야 찾아갔던거니까. 캠퍼스 최고의 화제거리인 얼굴을 달고 이런걸 어떻게 숨겼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사람들은 한솔의 얼굴만 봤을 가능성이 컸다. 미모 가림막이라니. 본인은 별로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겠지만.

좀 어지럽다. 약간 신경질 적으로 한솔이 내려놓은 병을 차서 구석으로 굴린 승관이 다시는 하지 말라고 성질을 냈다. 그냥 말로하면 되지 무슨, 이런걸 보여주겠다고. 나 비위 약하단 말이야. 경찰대에 들어와서는 그런 말을 해도 되나 싶었던 한솔이 굴러가는 병을 눈에 담았다. 안보여주면 어느정도인지 다들 잘 모르더라고. 수용소에서도.

다쳐도 나아, 정도의 말로는 상상할 수 있는 느낌은 아니긴 했지만. 한숨을 쉬고 놀란 마음을 좀 추스리는데, 여전히 굴러간 병을 보고있던 한솔이 다른 말을 냈다. 혹시 질문 끝났으면 내 질문 해도 돼?

“맞다.”

그러고보면 있다고 했었지. 일어난 일이 워낙 상식 밖의 것이라서 까먹고 있었다. 승관은 다시 한 번 이런 짓은 다시는 하지 말고 남 앞에서도 이러지 말라는 잔소리를 하고 싶은걸 꾹 삼켰다. 좀 놀라기는 했지만 이게 한솔과 처음으로 대화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할 정도는 되었다. 먼저 질문이 있다고 한건 한솔인데, 제가 중간에 가로챈 형국이니 들어줄 의무는 있었다. 말하라는듯 턱짓하자 한솔이 아직까지도 잡고 있는 승관의 손등을 문질렀다. -혹시 별 잘 보여?

“뭐?”

“멀리 보는 능력이잖아.”

들었어. 아까 내 뒷모습도 확대해서 봤다고 했었고. 그럼 별도 잘 보이냐는 질문이 뜬다.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다는데, 황당해서 미간을 구기던 승관이 곧 고개를 위로 올렸다. 맑은 여름 밤하늘에 아까와 다름없는 별이 떠있다. 한솔은 묵묵히 승관이 눈꺼풀을 깜박이는걸 보고 있었다. 한 번. 두 번. 깜박일 때마다 동공이 늘어나고 줄어든다. 초점을 맞추듯이.

“팔찌 빼면 좀 더 보이기는 하겠는데…….”

말이 흐려진다. 좀 당연한 말을 한 것 같아서 귀가 붉어졌다. 그렇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는 주제라서 승관은 당황한 상태다. 별이 잘 보이냐고? 그런가? 확실히 남들보다는 가깝게 볼 수 있다. 그러나 별이었다. 팔찌를 뺀다고 해도 인공위성 뒤꽁무니도 안보일텐데. 팔찌차기 전에 수업시간이 지루해서 날아가는 비행기의 로고를 보려고 했던적은 있었지만.

“어떤식으로 보여?”

“어떤식?”

“휴대폰으로 사진 확대해서 보듯이 보이는거야?”

원리를 묻고 있는건가? 이것도 한 번도 생각해본적 없는 문제라 승관이 곤혹스러워한다. 휴대폰 사진을 확대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그런거랑은 달라서 일단 고개가 저어졌다. 화질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그렇게 하는건 기본적으로 크게 보이는 대신 상을 흐리게 하니까. 그런 것보다는 좀 더… 망원경 같은 느낌이라는 말이 나온다.

렌즈를 바꿔가며 배율을 늘리고 줄이는 식이었다. 파인더를 조절해서 초점을 맞추면 보고싶은 것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반대로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넓은것들이 보인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설명해 본게 처음이라 승관은 제가 묘사를 잘 하고 있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지금은 어디까지 보이냐는 말에 승관이 고개를 내린다. 글쎄. 온통 산골짜기라서……. 그래도 시도해보려고 난간의 너머를 본다. 조절해보던 승관이 입을 비뚤게 틀었다. 우리 버스타고 들어오는 길목에 편의점 있었잖아. 지금 알바생 존다. 

약 600m 정도였다. 지금 제어팔찌의 강도는 최대 수준이고, 어느정도까지는 정식절차 없이도 웬만큼 풀렸다. 몇 년 동안 특별히 팔찌를 풀려는 시도도 없었고, 꼬박꼬박 센터에서 정기검사도 받았던 덕이다. 풀고 해주냐는 말에 한솔이 고개를 저었다. 어떤식인지 알았으면 됐다고. 미안. 좀 무례한 질문이었는데.

“같은 이능력자들끼리 뭘.”

승관은 웃었다. 어이없다는 듯한 헛웃음이 아니고는 처음 짓는 웃음이다. 한솔은 그 웃음을 오래 쳐다보다가, 그때까지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승관은 그제서야 제 손이 한솔에게 잡혀있었다는걸 알아서 좀 놀랐다. 황당함의 연속이었던 바람에.

근데 그런게 왜 궁금해? 한솔이 쥐고 있었던 손을 괜히 문질러보며 승관이 질문을 던진다. 예상하고 있던 질문이 있었던건 아니래도 별이 잘 보이냐는 말은 좀 이상한 질문이기는 했다. 지금 옥상에서 별을 보고 있었으니 그정도야 자연스러운 질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한솔은 예전부터 궁금하다고 했었다. 승관의 이능력이 멀리 보는 능력인게 밝혀진건 개강총회 때다. 그 때부터 그런걸 계속 궁금해 했었다고?

한솔은 답을 하는 대신 하늘을 보았다. 여름의 습한 바람이 둘을 한차례 훑고 지나가자 갈색 곱슬머리가 흔들렸다. 저거 자연인가? 염색이라고 생각했는데, 능력이 그렇다보니 염색이 가능한건지를 잘 모르겠다. 승관은 실시간으로 질문이 계속 늘어나는 기분이었다. 별 보는걸 좋아하는 수용소 출신의 다비드 상에게 궁금한 것들이 하나 둘 씩.

“외계인도 보일까 했어.”

별이 보인다면. 중얼거린 소리에 승관이 입을 열었다 닫는다. 한솔은 그렇게 하면 제 눈에도 별이 가까이 보일 것 처럼 한참이나 하늘을 쳐다봤다. 물끄러미. 승관이 전혀 읽을 수 없는 얼굴로.

뒷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승관이 깨어난다. 휴대폰을 꺼내자 썩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만보기. 소리 때문에 고개를 원위치 했던 한솔이 눈썹을 휘는게 보였는데, 승관은 양해를 구하듯이 화면을 들어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는걸 보자마자 초록색 버튼을 슬라이드하니 왁자지껄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야 부승관! 다비드상을 조각해서 오냐?!

재빨리 통화음량을 줄인 승관이 최대한 한솔에게서 등을 돌려 그런거 아니라고 오히려 목소리를 키웠다. 애 찾다가 길 잃어버렸어! 편의점까지 내려가다가. 침도 안바르고 하는 거짓말이 매끄러웠다. 혼자 빠지려고 그런거 아니거든? 아씨, 안그래도 첩첩산중을 걸어서 다리 아픈데 이게 진짜.

“가도 돼.”

아 청포도나 사수해 놔! 빽 소리를 지르고 끊은 통화화면에서 파란 빛이 나온다. 한솔의 목소리에 반 박자 늦게 몸을 돌린 승관은 왜인지 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어볼건 전부 물어봤으니까. 나도 조금만 더 있다가 숙소로 돌아갈 생각이라는 말이 여상해서 승관은 망설이다가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사실상 용건이 끝난건 맞기는 했다.

전화 내용 때문에 숙소에서 찾았는데 피곤해보였다는 변명을 쓰지는 못하겠지만. 아마 동기들도 선배들도 승관이 한솔을 핑계로 해서 몰래 해장음료나 젤리 따위를 사려고 편의점에 갔다왔다고 생각하긴 할 것이다. 못찾았다고 시치미만 떼고, 다음날 선배들이나 애들이 어딨었냐고 물으면- 글쎄, 그건 최한솔이 알아서 하겠지. 승관은 변명을 해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못내 미안해졌지만 한솔은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내일 7시 기상이래. 되는대로 디카프리오도 받은 일정표에 써있었을 얘기나 해준 승관이 발을 돌린다. 힐끗 뒤를 돌아보자 한솔은 휴대폰을 꺼내고 있었다. 시간을 보는건지 뭔지 모르겠으나.

혼자 남겨두고 가기 불안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냥, 외계인의 이야기를 하던 그 목소리가.

끼익. 

연락처라도 교환할걸. 옥상을 나서는 순간까지 승관은 그런 후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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