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T

[솔부]Finder.0

자신이 괴물이든 외계인이든.


“아니?”

참 태연하기도 그런 말씨였다. 승관은 처음에는 물음표를 띄웠다가, 그럼 이발은 어떻게 했겠냐고 나무라는 투를 들어서야 이마에 힘줄을 세웠다.  근데 이게 진짜. 너 미쳤어?

더러운 창고인지 방인지 모를 공간은 먼지와 쇠 냄새가 가득했다. 승관이 밟고 올라간 나무상자는 곧 꺼질듯이 삐그덕댔고, 쌓여있는 다른 상자들도 케케묵은 티가 났다. 폭약이라도 들어있지는 않을지 의심스러운 공간이었다. 햇볕 하나 들지 않는 반지하에, 천장 가까이에 조그마한 창 하나가 나있었지만 그나마도 쇠창살로 막혀있다. 어디서 벌레가 튀어나올지 모를 외관에 살벌한 분위기. 감금실의 중앙에서 쇳줄에 손이 매달린채 띄워진 한솔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정말 기묘할 정도로.

“근데 뭘 손을 자르라고 해!”

빽 지르는 소리가 히스테리컬하다. 묶여있어서 귀를 막을 수가 없었던 한솔은 그저 먼지가 얹힌 얼굴로 눈을 굴렸다. 자르는건 안아플테니까. 어쨌든 불 위에서도 걷고 심장에 칼이 박혀도 죽지 않는 몸이었다. 날이 들어오면 그대로 절단면부터 나을테니 아프지야 않겠지. 승관도 그걸 알아서 손 좀 잘라보라는 말에 경악하지는 않고 유리조각이라도 들어본거지만. 당연한 상식으로-상식이라고 해도 될런지는 모르겠으나-자르면 손이 다시 자란다거나, 그럴줄 알고 그랬던것 뿐이다. 안물어보고 자르려고 했으면 어쩌려고 이 놈이 진짜.

두 사람이 현재 있는 곳은 도봉구 쪽에 있는 재개발구역이다. 사람이 빠지고 공사 팻말이 붙어있는 빈 집은 3층 구조로, 반지하까지가 층수에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은 없는데 전기는 연결되어 있고, 사람이 밟은 곳에만 먼지가 없다. 한솔은 이틀 전부터 이곳에 감금당해 경찰의 쁘락치가 누구인지 불라는 협박을 받고있다. 고문도 포함해서.

인질교환이었다. 경찰 쪽에서 넘어갈테니 원래 잡고 있던 민간인 인질은 넘기라는게 협상조건이었다. 조건이랄까, 그냥 한솔이 뜬금없이 내뱉었던 말이기는 하지만. 같이 협상자리에 나갔던 승철은 경악을 했고, 미쳤냐고 말렸지만 한솔은 덤덤했다. 자원 하겠습니다. 혼자서 헛소리하는거니까 듣지말라고 승철이 나섰으나 분위기가 기울어졌다. 뭘 믿고 인질을 경찰쪽 사람으로 하냐고 조직쪽도 의심했지만 몸수색을 해도 좋다는 말이 당당했다. 일반인을 계속 감금당한 상태로 놓는것보다는 나으니까 가는거라고 했다. 한마디가 더 나오기 전에 수사권을 가지고 있던 1팀에서 그쪽으로 협상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승철이 아무리 한팀장님, 하고 호소하려고 해도 듣지도 않았다. 쟤는 괜찮잖아. 승철의 뒤꿈치를 밟은 1팀의 사람이 나서지 말라는듯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그렇게 말했다. 지금 장난하세요? 더 화내려는 승철은 한솔이 막았고, 그 결과가 이 꼴이었다. 무슨 도살장 돼지마냥 감금당한 이 꼴이.

“손 없이도 사는거야 살겠지 뭐. 일단 나가야하잖아.”

매달려 있으면서 말씨가 아주 평범한게 더 열이 받았다. 승관은 유리조각을 던져버리며 자르겠냐고 히스테리를 부렸다. 묶여있는 한솔에 비해 승관의 외모는 엉망이다. 푹 꺼지고 충혈된 눈에 뛰다가 굴렀는지 이마에는 멍까지 있고, 머리카락과 피부는 푸석해서는. 누가 3일동안 지하에 감금되어 고문을 받았는지 모를 얼굴이었다. 이딴거 가지고 뼈 자를 시간에 누가 오던지 팀장님이 오던지 하시겠다! 손을 자르기는 개뿔이. 넌 왜이렇게 희생에 감흥이 없냐고 쏘아붙이자 한솔은 재주좋게 어깨를 으쓱였다. 다쳐도 나으니까.

등급 S 측정의 리커버리. 불에 손을 뻗어도 살이 타는것보다 낫는것이 더 빨라 따끔할 뿐이다. 어딘가에 칼이 박혀도 잠깐 뿐이었다. 신생아 때부터 지금까지 그 흔한 감기에 걸려본적도 없다. 무딘 유리조각으로 손목을 잘라도 아프지 않을 것이다. 다시 자라지는 않겠지만.

세간에는 이능력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6할 정도는 그냥 산들바람이나 10초 정도 불게하는게 다였지만, 나머지 4할 중에 또 얼마 안되는 비율로 위험하거나 쓸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온다. 이능력 특수범죄 팀은 그런 사람들 중 경찰로서 시민사회에 이바지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모아놓은 팀이었다. 설립 목적은 수사에 난항을 겪기 일수인 이능력 특수범죄를 같은 이능력을 사용해 해결하고, 어쩌고저쩌고였다. 사실은 단독수사권도 없이 여기저기서 협업으로 불러가라고 보기좋게 모아놓은것에 지나지 않는다. 동물원처럼. 

이능력자들 사이에서도 일 더럽기로 소문이 난 이 팀에 배정받을 때, 승관은 참아야지 어쩌겠니, 같은 생각을 했다. 원해서 얻은것도 아닌 능력을 가진채로 사회에서 인정받으려면 어느정도는 타협이 필요했다. 1~2년쯤 있다가 다시 다른 팀으로 빠지면 되는거니까. 그래서, 수사본부에 들어갔을 때 마주친 반가운 얼굴을 보고도 엄청 기뻐하지는 못했다. 한솔이 특수팀에 들어갔다는건 들어서 알았긴 했지만. 막상 거기서 마주치니 둘 다 서로에게 동정섞인 표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어서 그랬다. 어후, 너도 결국 여기로 오는거구나. 딱 그 짝.

다시 지하골방으로 돌아와서, 시선이 살벌하다. 선명해야할 동공과 홍채의 경계가 탁하게 흐려져 있었다. 상이 제대로 잡힐지 의문이다. 너 그딴 말 좀 쉽게 하지마. 어금니에 씹혀나온 목소리에 한솔은 간단하게 사과했다. 미안.

공기가 건조하다. 그따위로 바로 사과하면 어쩌라고. 눈을 감아버린 승관이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눈꺼풀을 덮는다. 그래봤자 소용없었다. 얼마나 쓴거야? 여전히 매달려있는 상태로 묻는 말에 승관이 모른다고 짜증을 낸다. 너무 오래 열어두고 있어서 눈을 감고서도 지하토층 300m까지 보이는 느낌이었다. 힐끔 쳐다본 손목에는 항상 있었던 제어팔찌가 사라진 채였다. 허가야 승철이 내줬겠지만.

찬이 데려다주는 전망대 따위에서 서울 전역을 뒤질기세로 이틀을 썼으니,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한건 당연한 일이다. 승관의 능력 부작용은 ‘능력이 닫히지 않는것’이었다. 사실 이능력의 부작용은 많이 쓴다고 무조건 나타나는게 아니라, 사용자의 심리 상태와 더 연관이 있기는 하지만. 무자비하게 넓어지는 시야와 장애물을 뚫는 투시를 가진 천리안은 쓰다보면 필연적으로 편두통을 동반한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눈을 감아도 앞이 보이고, 초점이 맞지 않아서 500m 앞이 보였다가 눈꺼풀이 보였다가 했다. 승관이 심호흡을 하려고 입을 악다문다. 팔찌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한솔을 찾자마자 택시를 잡아타고 뛰어오는 바람에.

머리를 부여잡자 한솔은 그게 안타까워 눈썹이 다 쳐졌다. -그렇게까지 안해도 괜찮았는데.

“뭐?”

“그렇잖아.”

뿌득, 갈리는 잇소리가 경고를 내포했지만 한솔은 진심을 담아 평소의 속도로 말을 이었다. 나 안아팠어.

진실이었다. 처음에 묶였을 때는 줄을 풀고 나갈 생각을 했었지만, 쇳줄이 파고드는 형태라 살갗이 쓸리면 상처가 나으면서 줄이 살에 들러붙으려고 했다. 다음 단계로 뼈를 부러뜨리거나 해서 손을 빼보려고 했더니 줄에서 손을 빼내는 것 보다 뼈가 붙는것이 더 빨랐다. 그럴것 같았지만 일단 시도는 해봤던 것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한솔은 이틀 동안 탈출시도 없이 고문을 받았다. 어떤 놈들이 들어와서 무슨 짓을 해도 눈 하나 깜짝 안할 수 있었고, 걷어차든 묶어놓든 타격도 제로였으니까. 뭐라고 떠들든 그건 한솔이 안들으면 되는거고.

자진해서 인질로 교환 당한 것도 저에게는 고문 따위가 통하지 않을것을 알아서였다. 한솔이라면 시간도 충분히 벌고, 화형 당한대도 살아남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이쪽에도 인질이 필요하니 갑자기 시멘트에 묻어서 바다에 버리지는 않을테고, 더더욱 좋은 이유로, 한솔은 단순히 수사협조를 위해 현장에 나갔을 뿐이라 이들이 찾는 ‘쁘락치’가 누군지 정말 몰랐다. 아픔을 생생히 느낄 일반인 보다 제가 고문 당하는게 사정이 낫다는 생각도 있었다. 한솔은 갇혀있는 동안 좀 자고, 물이나 맞고, 협박하는 놈들에게 박치기나 해주고, 절 괴물 취급하는 욕지기와 두려운 시선에 웃어주기나 했을 뿐이다. 아무렇지 않게.

그야 지구의 어떤 것도 최한솔을 두렵게 하거나 상처입힐 수 없으니까. 그게 바이러스던 독극물이던 날붙이던, 태어났을 때 부터 그랬던 일이다. 그러니 근 이틀은 한솔에게 좀 불편한 잠자리에 지나지 않았다. 좀 배고프고 탈수가 살짝 와서 어지러운것 외에는 힘든 것도 없었고. 승관이 이렇게 힘들게, 능력이 닫히지도 않을 정도로 고생해가며 찾지 않았어도.

“알았잖아.”

나 안아플거라는거. 말투가 덤덤했다. 한솔이 인질 역을 자처한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한솔이라면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야 한솔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한솔의 능력에 대해서 알고있지 않은가. 이 건을 맡고 있던 1팀이 한솔을 인질로 교환하기로 마음 먹은 것도 그래서일터다. 수사협조를 할 때 공유하는 서류에는-아니, 그런 서류 말고도 모든 공인서류에는 이능력자의 능력이 표기되게 되어있으니까. 공이 이쪽으로 넘어올테니 좀 배아파하지 않았을까 싶을 수준이었다. 그래서 한솔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했다. 제가 괜찮은걸 모두가 아니까.

그랬는데, 승관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을 때는, 뭐랄까. 그 엉망인 몰골 때문에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서.

왜, 이렇게 못생겨질 수 있는지 몰랐나보지? 짜증난다는듯한 목소리가 낯설었다. 으레 신경질을 잘 내는 예민한 성격이긴 하지만, 아마도 능력 부작용의 탓일터다. 시선을 내린 솔이 말을 이었다. 걱정할 줄은 몰랐어.

“걱정할 줄을 몰랐다고?”

째지는 소리가 높았다. 한솔은 반사적으로 문쪽을 봤지만, 너머가 보이는건 승관이지 제가 아니라 문고리가 없는 나무문만 보일 뿐이었다. 안아팠다는 말을 다시 돌리자 승관이 아픈게 문제냐고 욕을 쏟아냈다. 내가 진짜 얼마나.

“그러니까 딱히 걱정 안해도-“

“걱정을 어떻게 안하냐고!!”

시멘트로 막힌 방을 징, 울릴 정도의 성량이다. 아마 나무상자는 조금 흔들렸을것 같았다. 승관은 아무렇지않게 마저 소리를 지른다. 최한솔 진짜 미친새끼야!!

걱정을 안하고 지랄이고- 협상에 따라갔다더니 계획에도 없이 인질로 교환당했대지! 어디로 끌려갔는지도 모른다고 하고! 벌써 6시간은 지났대고!! 너는 다치면 낫는다고 네가 불사신인줄 알아!? 잃을것도 없는 미친놈들인거 몰라서 그랬냐고, 그럼 너 끌려갔는데 내가 그냥 밥 잘먹고 8시간 숙면했을줄 알았냐는 둑 터진 분노에 한솔이 고개를 물리고 미간을 찌푸렸다. 소리 좀.

그리고. 그 태도에 분노와 함께 승관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린다. 입을 벌렸다 닫은 한솔이 어, 하는 멍청한 탄성과 함께 다급하게 잠깐만을 외쳤다. ㅇ,울지 말아봐, 어? 이미 죽은 북어마냥 매달려있기만 했었으면서, 그제서야 어떻게든 풀어보겠다고 몸을 움직이는걸 보고 승관이 얼굴을 거칠게 닦았다. 왜 내가 울어야하냐고 진짜.

“난 네가 정확히 이따위로 생긴 곳에서 혼자 있을걸 생각하니까 밥도 안넘어갔어.”

어둡고 햇볕도 안드는 방에 갇혀서. 덜렁 혼자 있을걸 생각하니 초조하고 불안했다고. 네가 초인이라 얻어맞아도 괜찮든 말든 그딴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네가 얼마나 외로움을 타는지 내가 모를거라고 생각한거야.

지난 이틀은 정말 엉망이었다. 승철의 잘못이 아닌걸 알면서도 그걸 못막았냐고 소리소리를 지르고, 하고있던 수사협조에서도 빼달라고 막무가내로 굴고, 찬을 붙들고서는 남산타워를 갔다가 롯데타워를 갔다가. 1분 1초가 초조해서 밥은 커녕 잠도 자지 못했다. 계속 찬에게 포탈을 열어달라고 할 수도 없어서 늦은 밤에는 혼자서 그나마 높은 건물에 올라가 계속 수사할만한 곳을 좁혔다. 승철과 1팀의 자료를 합쳐서 어느정도 장소를 특정했다고 해도 범위가 어마어마했다. 도봉구에 있을 수도 있고 관악구에 있을 수도 있다는데, 그렇게 끝과 끝이라는건 그냥 전역을 다 뒤져야한다는 말밖에 더 되나. 그래도 승관은 유급휴가까지 내가며 인적이 드문 온갖 곳을 뒤졌다. 이런 수준으로 능력을 써본것도 정말 난생 처음이었다. 그나마 경기도나 다른 지방으로 빠지지는 않았을거라는 희망 하나만 붙잡고 있었다. 제가 늦어지는 만큼 한솔은 더 갇혀있어야만 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정말 쉴 수가 없어서.

“하도 미친놈처럼 굴어서 원우형이 좀 자라고 수면제까지 주려고 했어. 다 동료고 나 위해주는거 알고서도 당신들은 모른다고 히스테리를 부렸다고. 그 사람들은 모르잖아. 다 그냥 너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을거라고.”

너조차도 너니까 괜찮을거라고 생각했잖아. 그게 말이 돼? 너 진짜 괜찮았어? 이런 골방에서 혼자.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목이 메어서, 승관이 고개를 숙인다. 창살로 막힌 반지하방에서 매달려서는. 내내 얼마나 외로울지 불안하고 초조했다. 그렇게 혼자두면 안되는데. 그야 누구던지 감금당하고 고문받는게 좋을리가 없지만. 그런게 아니라.

“…나 안외로웠어.”

울지마. 안타까운 목소리에 승관이 다시 팔로 얼굴을 문질렀다. 꼴사나운데, 이렇게 만든게 전부 최한솔의 탓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자신을 진정시키듯 숨을 한 번 들인 승관이 내내 생각했던 말을 뱉었다. 너 외계인 아니잖아. 그리고 한솔은, 그 말을 들어서야 승관이 이렇게 빨리, 히스테릭해질 정도로 능력을 써가며 달려온 이유의 윤곽이 잡혀서. 외계인.

“너도 사람이야. …이런데서 고문이나 당하는게 괜찮을리가 없다고.”

그런데도 넌. 뻔뻔하게 내가 널 걱정할 줄 몰랐다는 말이나 해서는. 화를 내니까 그게 시끄럽다는 듯이. 다시 목이 메어서 이어지지 않는 말이 공간을 매운다. 너무나 부풀어서 팡 터질것 같은 공백이었다. 원망과 서러움이 뒤섞여서 발 밑에 뚝뚝 고인다. 승관은 한솔이 걱정되어서. 찾자마자 뛰어내려가서 택시를 잡으며 승철에게 연락하고는 정식 출동하기 전에 나서지 말라는 말도 안듣고 달려왔는데. 야 부승관! 질러지는 소리도 무시하고 전화를 끊어서는 빨리 가달라고 택시를 재촉이나 했다. 쇳줄에 묶여있는걸 보고 왔는데 그걸 끊을만한 날붙이 하나 들고올 정신도 챙기지 못했다. 단지 혼자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뿐이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숙여진 고개를 보던 한솔이 겨우 내놓은건 사과였다. 미안.

“알기는 해?”

훌쩍. 못났다고 생각하면서 코를 삼킨 승관이 다시 유리조각을 주워 나무상자를 밟고 올라선다. 그대로 뒤를 돌아보자 벽 너머 먼 곳에서 보이는 차들이 있었다. 2km 정도인가. 아무래도 연락을 받자마자 믿음직한 팀장님이 허겁지겁 달려오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금방 올 것 같아서 전해주려고 했는데, 한솔이 입을 여는 것이 한끗차로 빨랐다. 그거 기억하고 있을줄 몰랐어.

이 방에 들어와서 들었던것중에 가장 낮은 목소리다. 돌아봐도 한솔이 아니라 한솔의 너머만 보여서, 깨질것 같은 머리로 겨우 초점을 맞추자 아까의 저처럼 고개를 숙인 한솔이 보인다. 뭘. 퉁명스러운 대답에 한솔이 내린 시선을 그대로 옆으로만 돌렸다. 승관이 되는대로 밖에서 가져와서 깨뜨린 화병이 산산조각 나있다. 대학 때 얘기잖아.

덤덤한 말이 공간 탓에 울리게 들린다. 승관은 침묵하다가, 소용없다는걸 알면서도 팔을 뻗어 다시 유리조각으로 쇳줄을 잘라보기 시작했다. 그런걸 어떻게 잊어버려. 어느새 울음은 물러가고 대신 잠긴 목소리가 나온다. 네 폐포 하나까지 셀 수 있어도 머릿속을 못 읽는데, 네가 얼굴 말고 너에 대해 보여준게 그거말고 있었던줄 알아. 

웃음이 흘렀다. 나 벌레 싫어하는 것도 보여줬었잖아. 그게 자랑이냐고 핀잔을 주는 말이 훨씬 평소 같아서, 한솔의 긴장도 풀어진다. 줄을 자르려고 가까이 있던 몸에 제 머리를 기대자 며칠동안 잠을 못잔 파리한 안색에서도 온기가 전해져왔다. 먼지와 파스 냄새.

“근데 나 정말 안외로웠어.”

너는 진짜. 다시 올라오려는 욕을 삼키는 표정이 적나라했지만 승관의 가슴팍 쯤에 얼굴을 기댄 한솔에게는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끓는 소리를 내는 진동만 그대로 느끼는채로 한솔이 다음 말을 냈다. 네가 데리러 올거였잖아. 그러니 외롭지 않았다고.

이렇게 빨리는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승관이 저를 찾아줬을테니까. 그래서 한솔은 어떤것도 무섭지 않았고, 이런 썩어가는 골방에서도 외롭지 않았다. 빈말이 아니라 아예 인질로 교환당할 생각을 했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일이었다. 생각으로는 한 4일쯤 걸리지 않을까 했었는데. 1팀도 수사해줬을거였고, 다른쪽 일망타진하는 계획도 끝내고, 기타등등해서. 말했듯이 걱정했을줄 몰라서 이렇게 빨리 찾아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팍 때려지는 등짝에 웃음을 흘리자 한숨을 쉰 승관이 줄을 자르는 대신 매달려있는 한솔의 몸을 안고 얼굴을 묻는다. -당연하지 멍청아.

“네가 우주선에 있었어도 구하러 갔을거야.”

내가 얼마나 멀리까지 볼 수 있는지 알지. 눈을 감은 한솔이 마주 안아줄 수 없는 손을 허공에 매단채로 눈을 감는다. 그럼. 넌 언제나 날 찾아내잖아.

그러니 차가운 골방에 묶여있어도, 어느날 말했듯이 한솔이 정말로 우주에서 떨어진 외계인이어도 이제 상관 없는거지. 네가 언제나 날 찾아서 곁에 있어줄테니까. 그래서 한솔은 여기에서도 괜찮았다. 억지로 말하거나, 달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근데 나 때문에 네가 잠도 못잔걸 생각하면 좀 아프네. 불에서도 걸어다니는데, 신기하지 않냐는 말에 승관이 이번에는 한솔의 시야 안에서 눈을 홉떴다. 그게 할말이냐는 표정이었는데, 눈이 휘어지도록 웃는 최한솔은 이틀간 감금당한 사람치고는 정말 평소만큼이나 빛이 났다. 아마 내가 너를 정말 좋아하나봐.

그 목소리는 정말이지. 멀쩡한 얼굴을 노려보고 싶게 만들만큼 다정해서. 눈꼬리를 문질러줄 손도 없는 연유로 한솔이 쇳줄로 묶여있는 자신의 손을 올려다본다. 이대로 있다가 나 때문에 너까지 잡혀서 고문당하면 더 아플것 같은데. 역시 손을 자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심장에 칼이 꽂혀도 살 수 있지만 볼이 가차없이 잡아당겨지는건 진짜 아파서, 아아아, 하고 소리를 냈더니 승관이 의외로 금방 손을 떼어냈다. 심지어 상자에서 내려가서는 비껴선 자리에 서 미간만 잔뜩 구기고 뒷짐을 지길래. 물음표를 띄웠더니 그 타이밍에 나무문이 쾅, 하고 걷어차여 열린다. 저도 모르게 움찔했지만 그냥 숨이 차게 달려온 승철이었다. 와, 팀장님!

“미친놈들이 죽고싶어서 애를 이따위로 매달아놔!!”

거칠거 없이 소리를 지르는거 보면 바깥은 이미 정리한 모양이었다. 경악한 승철의 괴력에 의해 유리조각에는 꿈쩍도 안하던 쇳줄이 뚝 끊기자 한솔이 만 하루만에 땅을 디딘다. 어우. 팔 늘어난채로 회복 돼서 길어졌을 것 같은데. 태평한 감상을 내고 있을 동안 이를 드러낸 승철은 애가 어디 상하지는 않았는지 어깨를 붙잡고 돌려보기 바쁘다. 상처 하나 없을거 알면서. 아무래도 걱정 시킨건 승관만이 아닌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좀 미안해져서 한솔의 눈썹이 내려간다.

“상황은요?”

“순영이랑 명호가 알아서 하고있어.”

네가 인질된 순간부터 이거 완전 우리 케이스 됐다고. 내가 그 꼰대들한테 빡빡 우기다가 의자 하나 부러뜨려먹었다. 그 둘이라면 고문에 대한 복수도 알아서 잘 해줄것 같아서, 안심한 관이 그제서야 다리힘이 풀려 쓰러진다. 다 죽여버리라고 하세요. 그제서야 승관을 시야에 담은 승철이 아이고 소리를 내며 당장 손목에 제어팔찌를 채워줬다. 안들고 왔을줄 알았어 내가.

“우웩.”

“참아. 넌 괜찮아? 그 개자식들이 어떻게 했어.”

“때리고, 발로 차고, 찬물 뿌리고, 칼로 여기저기 찌르고, 물도 밥도 안주고 굶겼어요.”

오케이. 다 기억해놔. 무기징역으로 처넣어줄테니까. 형형한 기세가 다른 의미로 무서워서 한솔이 얌전히 멀미를 하는 승관을 부축한다. 무전기에 대고 구출 사실을 알리는 승철의 목소리가 좀 멀었다. 긴장이 풀린 승관은 거의 기절하고 싶은지 한솔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채로 눈을 감고 있었다. 아. 이제야 좀 안보인다. 살겠다는 미소를 무덤덤한 표정으로 보던 한솔이 손을 들어 흩어진 머리칼을 정리해줬다. …고마워. 작은 목소리에 승관이 치친 목소리를 낸다. 돌아가면 더 잔소리 들을 줄 알아. 죽었어 너.

“그래도 다음에도 찾아내줄거잖아.”

내가 어디에 있던지. 일견 뻔뻔한 말씨를 뱉는 미운 얼굴을 노려볼 힘도 남지 않았다. 거기다 사실이기도 했다. 승관이 팔을 뻗어 한솔의 목에 두르자 몸이 기울어졌다. 됐으니까 업어주기나 해. 나 이대로 못걸어가. 죽겠다는 곡소리에 뒤를 돌아보는 승철에게 괜찮다는 듯이 고개를 까닥인 한솔이 무릎을 굽혀 정말로 승관을 업었다. 너 몇 kg 빠졌을텐데도 꽤 무겁다. 진지한 목소리에는 뒤통수에 손날이 찍히고, 그래도 기대오는 체온이 기꺼웠다. 한솔은 그것으로 됐다는 생각을 한다. 어디에 있던지, 어디서나 네가 날 찾아내준다면. 자신이 괴물이든 외계인이든.

팀장님, 차 갖고 오셨어요? 단촐한 물음에 보고하던 승철이 무전기를 입에서 떼고 하는 대답이 짤막했다. 밖에 세워뒀어. 그걸로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한솔이 느릿한 걸음을 옮긴다. 이미 기절한듯한 고른 숨소리를 들으면서. 제가 발붙인 중력을 확인하며.

                                                   

카테고리
#2차창작
페어
#BL
커플링
#솔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