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 Dear my deer - prol.

DODOM-NOTE by 도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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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금방이라도 하늘에 잠길 듯 솟아올랐다. 작은 손은 녹슨 그넷줄을 꽉 부여잡은 채였다. 둥그렇게 만 등을 쫙 피고 가느다란 팔을 힘껏 밀어내며 마른 몸을 하늘로 띄운다. 앞뒤로 커다란 반원이 그려질 때마다 낡은 그네가 괴상한 소리를 냈지만,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벌써 열 번째 땅을 딛지 않고 솟아 올랐으니 신기록이다. 가장 높은 곳에 이르면 손을 놓아볼 요량이다. 오늘따라 바람도 알맞게 불고 있으니 내내 머릿속으로만 상상했던 것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른다.

멀리, 저만치 날아보고 싶었다. 마지막 한 번만 세게 몸을 밀면 될 것 같다. 

반동을 위해 그네가 뒤로 넘어가는 순간, 아이의 마른 등이 둥글게 말렸다. 



"아가! 밥 무야지."



놀이터 입구에서 들린 작은 소리에 솜털 보송한 귀가 쫑긋거린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솟아 오르려던 아이는 한참 공들인 것도 잊은 채 땅에 발을 딛었다. 워낙 추진력을 모았던 탓에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바닥에 발을 대는 건 쉽지 않았지만, 의연했다. 유연한 착지였다. 얼굴이며 온몸에 모래가 달라붙었지만, 털어낼 새 없이 공처럼 튀어 입구로 향했다. 내도록 붙어있던 그네인데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혼자 남은 그네가 맥없이 흔들렸다. 뛰어가는 아이의 엉덩이 부근에 올망하게 솟은 사슴 꼬리가 까닥거린다.

DEAR my DEER

prol.


수인이 인간인 원인과 공존하여 살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명확히 아는 학자는 없다. 다만 그들의 개체수가 점차 줄고 있다는 연구 결과는 학계에 넘쳐났다. 원인과의 결혼이 반복되어 수인의 DNA가 점차 퇴색되었고, 종의 경계가 무너진 지 오래였다. 인간은 수인에 비해 신체 에너지 활용도가 낮아 연약했지만 유전자의 생존력이 강했다. 원인과 수인의 결혼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수인은 열에 한 둘이었고, 수인의 능력을 물려받았으나 혼현이 불가능한 반종 한 둘, 나머지는 모두 원인이었다. 

개체 수가 적은 레어 종 수인들은 멸종위기의 동물과 같은 수순을 밟았다. 암암리에 은밀히 납치되어 거래된 레어 종들은 선망의 대상에서 유희 거리로 전락했기에, 그들 간의 온전한 번식은 어려웠다. 몇몇 레어 중종들을 제외한 레어 경종들은 대부분 멸종될 수 밖에 없었다. 포획 대상에서 벗어난 고양이, 개, 다람쥐, 토끼 등의 노멀 경종과 호랑이, 표범, 늑대, 곰 등의 노멀 중종만이 그 명맥을 유지했다.

사슴 수인인 아이도 노멀 경종에 속했다.

수인이 인간과 다른 점이라면 동물로의 혼현화가 가능한 것. 본래 수인들은 자신이 속한 동물 자체로 온전한 혼현화가 가능했으나, 지금으로선 귀와 꼬리 정도가 한계였다. 잘 쓰지 않는 근육이 퇴화하듯 그들도 점차 원인 중심 사회에 적응되고 있다는 증거였다.



"할무이-"

"오야. 다 놀았나?"

"응."



인자한 얼굴로 포동포동한 뺨과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던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꼭 붙들었다. 집 밖이래봤자 바로 앞의 작은 놀이터 하나 뿐인걸 알면서도 내내 걱정한 탓이다. 어린 손주가 잠깐 사이 사라질까 싶어, 실은 작은 창밖으로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것을 지켜봤다. 유난이래도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게 이 아이는 삶의 낙이었다. 사슴 수인이던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하나뿐인 사슴 수인이었던 딸의 아들. 딸이 떠난 세상에서 이 아이가 온전히 살아낼 수 있도록 지키는 것이 그녀가 이어가는 삶의 명분이었다.

집에 들어선 아이는 그저 맑게 웃었다. 신나게 놀고 와 저녁 먹을 생각을 하니 신이 났을 테다. 밖보다 어둠에 빨리 잠기는 반 지하가 환해지는 웃음이었다.



"할무이, 밥 뭐예요?"

"우리 아가 좋아하는 돈가스."

"우와! 어떻게?"

"손부터 씻으라."



신이 나 발을 바짝 들고 낡은 싱크대에서 조물조물 손을 씻은 아이는 얼른 밥이 차려진 방으로 올라섰다. 안에 고기가 있는지도 모를 동전만 한 싸구려 미니 돈가스가 접시에 소복했다. 우와아- 어디서 났어요? 대답을 들을 새도 없이 포크로 콱 찍어 입에 욱여넣은 아이의 불룩한 뺨. 부스러기를 떼어주자 또 눈을 접어 말갛게 웃는다. 따라 웃으면서도, 할머니는 아이의 복슬거리는 머리카락 위에 쫑긋 솟은 사슴 귀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린 수인이 받아야 할 교육을 해주지 못하는 현실을 되새겨주는 귀와 꼬리. 마냥 귀여울 수만은 없었다.



"마이써!"

"오야, 많이 먹어야지."

"응!"



아이는 벌써 여섯 살이지만, 낡고 녹슨 놀이기구를 오르내리는 것 외에 달리 노는 방법을 모른다. 또래들은 모두 학원이나 유치원에서 자랐다. 특히 어린 수인들은 혼현화 적응훈련을 위한 수인 전용 유아교육 시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다. 물론 그것도 넉넉한 형편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이곳은 수인 전용 유아교육 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낙후지역이라 아이가 갈 곳이 없다. 그렇다고 지역을 이동할 여윳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근근이 청소 일로 벌어온 돈은 두 사람의 끼니와 월세로 빠져나갔다. 하루하루 빠듯했다. 돈을 모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밥 먹고 동화책 볼 거야."

"응, 그랴."



가르쳐 줄 사람이 없고 대화를 나눌 사람도 없으니 글자 익히는 것도 더뎠다. 눈이 어두운 할머니가 읽어주지 못해 그림만 곱씹는 동화책이 장난감의 전부. 사준 이는 엄마지만 정작 얼굴은 몰랐다. 아이는 동화책에서 가장 예쁜 사슴을 엄마 삼았다.

동화책 속 사슴은 수염이 잔뜩 난 아저씨에게서 도망쳤다. 다음 페이지 그림에서는 어떤 형을 만나 덤불 뒤에 숨었다. 다행히 수염 아저씨는 지나갔고, 사슴은 형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다행이었다.

아이는 그림 속 사슴을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우리 엄마도 이렇게 눈이 크고 예쁠 거야. 솜털이 보송한 귀가 쫑긋거렸다.

-

겨울이 두 번 지나갈 때까지 동화책을 읽는 것은 계속되었다.

키가 반 뼘쯤 자란 만큼 동화책은 빛이 바래고 책등이 너덜거렸다. 그래도 괜찮다. 고치면 된다. 할머니가 일하는 곳에서 얻어온 테이프로 분리된 페이지를 꼼꼼히 붙이는 손길이 야무졌다. 집중한 입술이 볼록 튀어나와 책 위로 그림자가 졌다.

아이는 최근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수인이라해도 귀와 꼬리를 숨기는 조건으로 원인들의 의무교육 시스템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이는 학교 갈 나이에 이르러 혼현 은신을 제법 잘 해냈고, 덕분에 글을 익힐 기회를 얻었다. 이미 사전 교육을 유치원에서 끝낸 아이들보다 학습이 조금 더뎠으나, 상관없었다. 행복한 나날이었다. 더듬더듬 글을 읽게 되면서부터 아이의 웃음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다른 집은 학교에 가기 싫다 전쟁인데, 오히려 학교를 가지 않는 주말을 싫어했다.

평화로운 한 학기가 저물어 갈 무렵, 글자를 제법 읽게 된 날. 아이는 여느 때처럼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 책을 읽었다. 할머니는 퇴근이 늦는 모양인지 계시지 않았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냥꾼이 쫓아오자 사슴은 도망쳤어요.

 "사슴아~ 어디 있니? 이리 나와보렴."

무서운 사냥꾼이 사슴을 불렀지만, 사슴은 더욱 깊은 숲으로 들어갔어요.

 "사슴아, 네게 전할 이야기가 있단다. 들어주지 않을래?"

사냥꾼은 기다란 총을 들고 사슴의 냄새를 따라갔어요.
숲의 나무들이 속삭였어요.

도망쳐, 사슴아. 도망쳐야 해. 그는 너를 잡아먹을 거야!





이미 헤진 동화책의 모서리를 움켜쥔 아이는 사슴을 도와줄 형이 나타날 것을 알면서도 두려움에 떨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그림을 외웠는데도, 글자가 주는 생생한 공포감은 실로 굉장했다. 글을 알게 된 이후, 책을 읽는 횟수는 더욱 늘었다. 아이는 숲속의 나무들과 한마음이 되어 외쳤다. 

도망쳐야 해. 그는 너를 잡아먹을 거야!




쾅!



책을 붙들고 바짝 몸을 웅크린 순간이었다. 사냥꾼이 총이라도 쏜 것처럼 거대한 소리를 내며 방문이 열렸다. 아이는 파드득 놀라 책을 끌어안고 구석으로 도망쳤다. 킬킬대는 웃음소리와 덥수룩한 수염. 동화책 속 사냥꾼이 활짝 열린 문 사이로 서 있었다.



"네가 지안이구나."

"누... 구..."



신발도 벗지 않은 사냥꾼은 성큼성큼 들어와 구석에서 떨고 있는 아이 앞에 섰다. 노란 장판 위로 시커먼 발자국이 선명하게 그를 따라왔다. 작은 방 안이 그림자로 가득 찼다. 커다란 손이 머리를 쓰다듬자, 아이는 오싹한 기분에 몸을 웅크렸다. 무릎 사이로 얼굴을 숨기자 그는 손으로 턱을 잡아 올렸다. 이리저리 돌려 얼굴을 뜯어보는 눈에는 하얀 색이 더 많았다. 이어 그가 입맛을 다셨다. 오싹했다.



"똑같이 생겼네, 제 어미랑."

도망쳐야 해.

"나다. 니 아빠."

그는 너를 잡아먹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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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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