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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ily Tree

가계도

남들이 보기엔 저명한 브랜드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평범하고 인기 없는 디자인의 손목시계를 보면 밤 열한 시가 가까웠다. 인기척이라곤 없는 거리를 지나 자신의 키만큼 기다랗고 넓은 검은 우산을 쓰고 어둑어둑한 주택가로 들어가면 풍경은 항상 같다. 며칠째 들고 가지 않는 폐가구, 고양이들이 사냥 후 옆구리가 터진 쓰레기봉투, 천박한 웃음소리들.

너저분한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정갈한 차림새의 남성은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는 콧등을 내려온 안경을 알맞은 위치까지 올렸다. 마치 자신을 봐 달라는 것처럼 불빛 환한 가로등 아래에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가서 옷을 벗고, 씻고 나와, 잠자리에 들었을 터.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이 필요하다면 얼른 내어 주고 피하고 싶었다. 그럴 생각으로 남성은 그 사람의 앞에 다가갔다. 짧게 친 더벅머리에서는 빗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다. 고개를 위로 든 그 사람은 의외로 젊은 이목구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고작 이런 애송이에게 겁먹은 건가? 남성은 그렇게 생각했으나 워낙 흉흉한 도시였기에 얕볼 수는 없었다.

고개를 든 탓에 그 사람의 얼굴이 더 잘 보이게 되었는데, 싸움이라도 한 건지 왼쪽 눈은 부어 있었고 코피도 흘렀는지 인중과 입술을 따라 턱에는 피가 길을 낸 흔적이 붙어 있다. 이상하게 무섭지 않았다. 마치 짜인 각본처럼 남성은 손을 내밀었고, 그 사람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도와 달라고 쳐다본 게 아니었나요?"

피곤한 탓에 톤이 낮은 목소리가 나온 남성을 쳐다보던 그 사람은 손을 맞잡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둘은 2층짜리 낡은 건물의 철계단을 밟으며 올라갔다. 남성은 복도식 주거지 2층 중간 즈음 되는 문 앞에 서서 열쇠로 현관문을 연다.

실내로 들어와 불을 켜면 그 사람의 형태가 더욱 잘 보인다. 언짢은 듯한 표정, 거기에 어울리지 않게 처진 눈매, 거뭇거뭇 짧게 기른 수염. 잘 쳐봐야 이십대 초반으로 보였고 나이 들어 보이도록 어설프게 꾸민 고등학생으로 보이기도 했다.

선인도 아니고 악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도 굳이 선인을 자처하는 편도 아닌 남성은 일이 왜 이렇게 되어가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누군가를 집에 들이는 게 처음이었기에 괜히 신경이 곤두선다.

"욕실은 저쪽입니다."

도움을 받는 주제에 여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그 사람은 조용히 욕실로 향한다. 남성은 안경을 벗고 미간을 주무르며 한숨을 내쉬었다. 쓸 데 없는 짓인가 싶다. 그래도 옷을 빨아 주려고 발걸음을 죽이고 욕실로 향해 그가 벗어둔 옷가지들을 한쪽 팔에 걸친다. 이미 빗물에 식어버려 무겁고 차가웠다. 빨래 바구니에 그것들을 넣은 후 자신도 옷을 갈아입고 세탁을 시작한다.

체형이 비슷해 보여 자신의 옷을 내어주기로 한다. 편한 복장을 꺼내 욕실 앞에 두고 나왔다. 미뤄둔 집안일을 하고 있자 꺼내준 옷을 입은 그 사람이 나타났다. 남성은 이왕 도와주는 거 끝까지 도와주자고 생각해서 배가 고픈지를 물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고개를 젓는다.

"……당분간 여기서 지내게 해 줘."

불쑥 나온 건방진 첫마디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남성을 본 그 사람은 힘겨운 듯 눈썹을 더욱 찡그린다.

"돈은 많아. 거짓말이 아냐. 나중에 얼마를 부르든 다 줄 테니……."

"그런 거, 안 줘도 됩니다."

"그치만……."

남성은 그 사람이 마치 버려져 털을 세울 수밖에 없는 고양이 같이 느껴졌다. 세탁기에 넣으면서 본 옷은 틀림없이 유명한 브랜드들인데 맞아서 부은 얼굴, 곱상한 형태지만 분명하게 적의가 가득한 눈빛, 그런데도 굽히며 도움을 청하는 태도는 이상하게도 보호 욕구를 자극한다. 사연 있음직한 청년의 부탁에 응해주면, 그러면 둘만의 유대가 생길 것만 같았다. 언제나 혼자였던 자신이 찾던 그것.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

남성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그 사람은 도지마, 라고 한마디만 했다.

"제 이름은 미네 요시타카입니다."

"미네……."

도지마는 이름을 기억하려는 듯 미네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미네는 그가 정말 성인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이를 물었다. 의외로 도지마는 미네와 나이가 같았다. 미네는 얼마간 함께 지낼 그에 대해 알아가기로 했다. 따뜻한 차를 끓여준 뒤 좁은 거실의 원목 탁자에 잔을 두 개 올려놓았다.

"혼자 사는 곳이라 좁아도 불편하지 않을 거예요."

"……미네는 왜 이런 곳에 사는 거야?"

무슨 뜻이지? 미네는 이해가 되지 않아 도지마를 쳐다보았다. 도지마는 버릇인 것처럼 오른손의 검지로 뺨을 긁어댔다.

"사는 곳은 여기가 아니어도 이 동네가 어떤 곳인지는 알거든. 아까 들어오기 전에 네 손목시계가 눈에 들어왔어. 일부러 보려고 한 건 아니고, 불빛에 반짝여서."

미네는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시건방지긴 해도 그가 보통내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가난에 허덕였던 미네는 취직을 하고 돈을 벌게 되면서 그동안 채우지 못했던 것들을 채워가는 중이었다. 가격은 비싸도 남들 눈엔 그저 그런 가격대의 상품으로 보이는 것들만 샀다. 사회 초년생이 누구나 아는 디자인의 명품을 휘두르고 다닌다면 시선이 곱지 않은 시절이었다.

거주지를 일부러 허름하고 보잘것없는 동네로 정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집세도 저렴하고 친인척이라곤 없는 고아라는 뒷배경에 어울리기 때문이다. 누구도 미네를 물질만능주의자로 생각하지 않기에 미네는 남들처럼 유연하게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잃을 것도 없던 미네는 더욱 위로 향해 많은 돈을 벌어서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족시키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앞길이 막히지 않으려면 겸손하고 절약하는 일개 월급쟁이 시절을 버텨야만 했다. 시력도 좋으면서 도수 없는 안경을 끼고 다니는 것도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다.

하지만 이런 비밀을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 술술 불어버릴 순 없었다. 오로지 돈만 바라보던 고독한 미네의 인생에 드디어 사적으로 미네를 필요로 하는 이가 나타난 것이다. 미네는 돈과 더불어 따뜻한 타인의 정이 필요했다. 돈만 있으면 사람들이 먼저 다가오는 법이기에 현재는 악착같이 성공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돈보다 인연이 먼저 채워지려 하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면 도지마도 의식주를 포함해 미네의 자산에 빌붙는 것이나 다름없는 꼴이다. 돈은 많아. 거짓말이 아냐. 나중에 얼마를 부르든 다 줄 테니. 미네는 이 말이 거슬렸다.

"제가 왜 여기 사는지는 많은 사정이 얽혀 있습니다. 도지마 씨가 정말 사기꾼이 아닌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죠? 제 손목시계의 값어치를 알아볼 수준이신데."

대답을 마친 미네는 따뜻한 차를 후루룩 마셨다. 그러면서 슬쩍 보면 도지마는 곤란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어쩐지 우위를 점한 느낌이 든다.

"집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어. 더는 묻지 마."

도지마는 눈을 내리깔고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본다. 미네는 건드리면 안 되는 곳을 알아냈다. 더 건드려도 될지 고민하며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자 견디지 못한 도지마가 눈을 올리고서 먼저 입을 연다.

"네가 위험할 수 있으니 그렇게 오래 머무르지는 않을 거야. 너는 일반…… 그, 평범하게 사는 사람이니까."

그 말을 듣자 미네는 퍼즐이 다 맞춰진 기분이 들었다. 싸움에서 패배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모습, 어디든 달아나야만 했던 사정, 타인을 끌어들이면 곤란해지는 입장.

"도지마 씨는 야쿠자군요."

아무래도 정답인지, 도지마의 표정이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점점 둥그레지는 눈동자와 함께 입술이 벌어진다. 어떻게 아냐는 얼굴이었다. 미네는 살짝 웃었다.

"너무 알기 쉬운데요."

장난스레 말하자 도지마가 갑자기 인상을 찡그린다. 자존심을 긁었으니 화가 날 만도 하다. 그러나 처지가 처지인 만큼 화내는 것도 거기서 끝이었다. 도지마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 도시에서 살아가려면 필수 불가결한 존재들이죠. 제 클라이언트 중에서도 뒷세계와 손잡은 기업들이 있고요."

"오히려 말이 쉽게 통하겠군."

"다행이죠?"

"그래."

미네가 단순한 직장인이 아닌 걸 알자 안심되는지 표정을 풀고 대답한 도지마는 약간 식은 차를 마셨다. 젊은 나이와 여태 보인 태도를 통해 미네는 도지마가 한낱 조직원일 거라고 생각했다. 충성을 거부하고 손가락을 자르기 싫어 도망친 걸까? 싫어할 테니 그런 것까지는 묻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네."

"그냥…… 다이고라고 불러 줘."

"다이고 씨."

"그래, 그렇게."

"알겠습니다."

미네는 이 재밌는 야쿠자라면 정을 주고받는 유대를 쌓아도 될 거라 생각한다. 다이고는 정말로 뼛속까지 조직에 몸담고 싶지 않은 걸로 보였다. 그가 완전히 손을 씻고 자신과 맹우가 되기를 바란다면, 기꺼이 도와줄 의향도 있었다.

미네는 늘 여섯 시 반에 재깍 일어났다. 출근 준비를 한 뒤 간단한 아침상을 차려 어젯밤처럼 좁은 거실의 탁자 위에 준비했다. 그런 뒤에는 침실로 가 바닥에서 자고 있는 낯선 이를 깨웠다. 다이고는 꾸물거리며 겨우 일어나 벽시계를 보더니 너무 일찍 일어났다고 투덜댔다.

세수를 마친 다이고는 바닥에 털썩 앉아서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늘 같은 시간에 밥을 먹어야 몸에 좋아요. 야쿠자들은 밥도 못 먹을 때가 있지 않나요?"

일부러 그의 출신 배경을 끌어내자 다이고는 순진한 아이처럼 거기에 말려들어 젓가락을 손에 든다.

"공짜 밥 먹는 대신, 저 없는 동안 집안일 좀 해 주세요."

이 기회에 제대로 굴리자고 생각한 미네가 웃으며 말하자 다이고는 그를 노려보다가도 알겠다고 대답했다. 하루아침에 야쿠자를 부려먹는 일반인이라는 기상천외한 신세가 된 미네는 기시감이 들었다. 왜 그럴까 생각하는데 이 감정은 다이고가 수상한 인물인지 아닌지 물어봤을 때 느낀 것과 비슷했다. 우위를 점하고 그의 모든 거동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이대로 잘 구슬려서 정말 그쪽 세계에서 빼내 올 수만 있다면.

"미네?"

"네?"

"갑자기 정색하길래……."

"별일 아니에요."

미네는 당황했으나 금방 침착함을 되찾았다. 어떻게 얻은 인연인데, 쉽게 보낼 수 없어서 이런 것만 같다. 표정을 감추는 건 특기였는데.

집을 나서기 전에 다이고에게 할 일들을 지시했다. 아침상 설거지, 어제 세탁한 옷들 정리와 같이 간단한 것뿐이었다. 잘 대답해놓고 다시 자면 안 돼요, 라는 말을 남긴 뒤 현관문을 닫았다.

주차해 둔 자차로 걸어가는 미네의 얼굴에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눈앞에 보이는 지저분한 동네의 길거리를 봐도 웃음만 나왔다. 자신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할 다이고 때문에 벌써부터 퇴근하고 싶었다.

다이고는 착실하게 미네의 말을 따랐다. 둘이서 해치운 밥그릇들을 들고 일어나서 설거지를 했다. 다용도실에 널어둔 자신의 옷과 미네의 양말 등을 걷어서 개었다. 그러면 할 일도 끝이었다.

미네도 없으니 침대에 들어간 다이고는 잔향에 코를 킁킁거렸다.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지 미네의 잠자리에는 취향 타지 않는 무난하고 좋은 향기가 스며들어 있다. 깊이 숨을 들이쉰 다이고는 긴 날숨을 내쉬며 자유를 만끽한다.

원치도 않는 가문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꼭두각시처럼 살아온 다이고는 고등학생 때 처음으로 원하는 일을 했다. 소년원 출소 후에 곧바로 성인이 되자 아버지는 이제 제약도 없으니 멋대로 다이고를 쥐락펴락했다. 어머니는 폭군 같은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

미래를 위한 선행학습에 질린 다이고는 몇 년을 참다가 몰래 집에서 나왔다. 늦은 나이에 찾아온 반항기의 도련님은 자신을 잘 모를 불량배들이나 패고 다니며 돈을 뜯어 근근이 먹고 다녔다. 그러다 낯익은 부하들이 자신을 찾아다니는 것을 발견하고는 숨을 곳이 필요했다.

보복, 자존심, 그런 알량한 것들에 목숨을 건 자들은 부하들을 피해 다니던 다이고를 발견했다. 그러니까, 저번 달에 때린 녀석들인지 저번 주에 때린 녀석들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다. 이 소동으로 부하들에게 들킬지 몰라 얌전히 맞아주었다.

녀석들이 멍청해서 다행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오늘은 빗속에서 처량하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을 때였다. 지저분한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 깔끔한 인상의 남성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안경을 쓰고 오른손에는 우산을 들고 왼손에는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

다이고는 그가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비가 오고 있었기에 하룻밤만 재워 주길 바랐다. 운 좋게도 그는 다이고를 발견했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보면 멀리서 보던 것보다 훤칠했다. 지저분한 걸 싫어할 것 같은 그가 손을 내밀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도와 달라고 쳐다본 게 아니었나요?"

반가운 마음에 손을 잡고 일어섰다.

이야기는 다시 돌아와서, 다이고는 이불 속에서 입이 심심함을 느꼈다. 며칠내내 궁핍해 담배를 한 번도 피우지 않았던 것이다. 몸이 편해지면 이런 것부터 찾는 법이다. 그러고 보니 어제 미네는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침대에서 나와 다용도실로 가보면 정답이었다. 재떨이와 담뱃갑, 라이터가 바닥에 놓여 있다. 타르는 6mg, 니코틴은 0.5mg. 의외라고 생각하며 쭈그려 앉은 채 하나 꺼내 피워본다. 원래 피우는 것보다 조금 진한 맛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미네는 참 이상한 녀석이다. 처음 보는 사람을 쉽게 집에 데려올 수가 있나? 카무로쵸에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길거리 싸움이나 난동 같은 것에 무딘 편이긴 하지만 처맞고 넝마가 된 야쿠자를 주워서 돌봐주진 않는다.

명품 시계 또한 그렇다. 이런 동네에, 이런 작은 곳에서 살며 비싼 시계라니. 정장이나 구두도 언뜻 보기엔 꽤 때깔이 좋았던 것 같다.

'혹시 그건가? 좋은 집 대신 외제 차에 투자하는 겉멋 든 사람들이 있다던데. 비슷한 건가.'

혼자 무언갈 깨달은 듯 고개를 치켜든 다이고는 그가 얼마나 부자처럼 보이고 싶어서 그러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역시, 참 이상한 녀석이야.

둘의 기묘한 동거는 의외로 순탄하게 흘러갔다. 미네는 객식구인 다이고를 위해 항상 아침을 차려서 꼬박꼬박 밥을 먹였다. 부지런히 점심도 미리 만들어 둔 뒤에 할 일들을 시켜놓고 나갔다. 돌아올 때는 다이고가 좋아하는 걸 만들어 주기 위해 장을 봐 왔다.

집안일들을 끝내면 텔레비전이나 보며 빈둥거리던 어느 날, 항상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는 미네에 대해 궁금해진 다이고는 그의 침실을 뒤져보았다. 그런데 평생 혼자에다 친구도 가족도 없는 미네에 관한 재밌는 것이 안 나오자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미네 녀석, 회사에는 잘만 다니는데 졸업 앨범도 가족사진도 아무것도 없잖아.

다이고는 미네에 관해 알고 싶어져서 저녁을 먹을 때 넌지시 대화를 유도했다.

"그러고 보니 미네는 여기서 오래 살았어? 나는 여기 토박이거든."

"어릴 땐 다른 곳에 살았어요."

"어디?"

"XX구에서 살다가 취직한 회사가 카무로쵸라서."

"본가는 아직 거기야?"

미네는 잠시 말을 않다가 네, 하고 대답했다.

"형제도 있어?"

"아뇨, 외동이에요."

"나랑 같네."

"그렇군요."

사생활마저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해 딱히 더 물을 게 없어지자 다이고는 입을 닫았다. 형제도 없어, 친구도 없어, 어울리는 직장 동료도 없어. 대체 무슨 낙으로 사는 거지? 형편에 안 맞게 명품이나 사면서 거기에 만족하는 건가? 복잡한 생각들에 다이고가 인상을 찌푸리자 미네가 오늘 저녁은 맛이 없냐고 묻는다. 다이고는 아니라고 대답한 뒤 그릇을 싹 비워 주었다.

저녁식사 후 멍하니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자 미네가 심심하면 책장의 책이나 영화 DVD를 마음대로 봐도 된다고 해 주었다. 책들은 주로 경제학이나 외국어 교재, 실무에 관련된 것들이라 흥미로운 것이 없었고 영화도 다이고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이고는 평범한 삶을 동경했기에 여러 인물이 벌이는 가볍고 웃긴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머니가 정서에 좋지 않다며 어릴 때부터 밝은 분위기의 작품만 보게 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미네가 가진 것들은 그런 것이 없었다.

"너는 취향이 되게 고상한 것 같아."

"그런가요? 다이고 씨야말로 그럴 것 같은데요."

"배운 거라곤 주먹질뿐인데."

"저도 배운 거라곤 숫자놀음뿐이에요."

서로 이름난 브랜드 옷을 걸치니 고상하지, 라는 딴지를 마음속에서만 삼켰다.

다음 날 저녁, 미네는 퇴근길에 빌려 왔다며 영화 DVD를 건넸다. 미네는 좋아하지 않아도 다이고는 좋아할 법한 가벼운 이야기였다. 괜히 그럴 필요 없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오랜만에 즐기는 문화생활을 누리기로 한다. 실내의 불을 다 끄고 미네와 둘이서 거실에 앉아 영화를 보다 보면 자연스레 잊고 있던 순수한 재미를 추구한 웃음이 나왔다.

문득 깐깐한 미네도 재밌으려나? 하고 고개를 돌리면 미네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다이고는 화면을 정지시킨 뒤 미네를 침실까지 이끌었다.

"잘 자, 미네."

피곤했는지 미네는 대답도 없이 잠들어 버렸다. 다이고는 허리를 숙인 채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그의 안경을 벗기려 했다. 그러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미네가 눈을 부릅뜨고 다이고를 보았다. 깜짝 놀란 다이고는 그대로 손을 멈춘다. 미네는 담백한 동작으로 스스로 안경을 벗고 협탁 위에 올려 두고는 등을 돌린다.

"남은 거 마저 보고 주무세요."

"……잘 자, 미네."

"안녕히 주무세요, 다이고 씨."

미네는 다이고가 불을 끄고 방문을 닫는 소리를 듣자마자 다시 등을 돌리고 정자세로 눕는다. 다이고의 놀란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이고는 늘 새침하게 인상을 쓰고 있는데 방금 본 것은 둥글게 올라간 형태의 눈썹과 그에 맞춰 커진 눈동자, 놀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힘을 준 입술이었다. 이마에 왼손을 올린 미네는 어두운 방 안에서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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