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시그
익숙한 곳에 도착하자 다이고는 곧장 미네의 병실로 향했다. 데려다주기보다는 쌓인 앙금을 풀고 싶었다. 둘은 조심하세요, 알고 있어, 와 같은 말밖에 하지 않았다. 보좌하는 부하들을 물리고서 미네의 걱정과 함께 지팡이에 의지해 천천히 실내로 걸어 들어가면, 늘 처리해야 할 서류가 쌓여 있는 다이고의 병실과 달리 아무것도 없어서 적막하게 느껴졌다. 그 누
부하의 손을 통해 미네에게 편지를 보낸 지 몇 주가 지나고 달이 바뀌었다. 그동안 미네는 빠르게 회복하여 글씨도 가지런해졌다. 반면에 다이고는 업무 스트레스 때문인지, 앉아있던 시간이 길어서인지 상처를 회복하는 속도가 느렸다. 그래도 이제 아픈 곳은 없었고 다리에도 어느 정도 힘이 생겨 많이 걸을 때만 지팡이를 쓸 수준이 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끝났다. 다이고는 그렇게 생각하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지금 막 병실의 베드 테이블 위에 정신없이 펼쳐놓은 서류들에 서명을 마친 그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입으로 긴 한숨을 내쉰다. 안도감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더 남은 불안이 없는지 걱정도 되는 기분이다. 어둠에 갇혔다가 또 다른 어둠 속에서 정신을 차린 다이고는 자신을 덮친 많은 것들을 용서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오면 다이고가 없었다. 심장이 내려앉은 듯한 느낌을 받은 미네는 아무렇게나 구두를 벗어던지고 성인 남성이 숨을 곳도 없는 좁은 집을 뒤졌다. 말도 없이 사라지는 건 비겁했다. 다시 끈끈한 인연 없이 혼자가 되는 건 싫었다. 불안함에 그의 신분도 잊고 경찰에 신고할까, 하며 밖으로 달려 나간 미네는 터덜터덜 돌아
Family Tree 가계도 남들이 보기엔 저명한 브랜드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평범하고 인기 없는 디자인의 손목시계를 보면 밤 열한 시가 가까웠다. 인기척이라곤 없는 거리를 지나 자신의 키만큼 기다랗고 넓은 검은 우산을 쓰고 어둑어둑한 주택가로 들어가면 풍경은 항상 같다. 며칠째 들고 가지 않는 폐가구, 고양이들이 사냥 후 옆구리가 터진
다섯 시간이 지나고 저녁이 되자 문신사는 작업을 그만두었다. 하루에 대여섯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문신사가 온몸의 관절에서 소리가 날 만큼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나서 랩을 가져왔다. 시뻘겋게 물든 미네의 등에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기린 그림이 진한 잉크로 가득 차 있었다. 어딜 가는 건지, 구름 속에서 안개에 엉켜 날아오르는 의기양양한 기린에
Devotion 헌신 다이고가 미네와 의를 맺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때였다. 바깥 세계에서는 경력이 길지만 아무리 오래 있어도 승진의 기회가 적은 이쪽 세계에서 신입이나 다름없는 미네에게 이것저것 알려 주고 싶은 것이 많았다. 배움이 빠르고 명석한 녀석이니 금방 익힐 것으로 사료되었고, 다이고의 의형제라는 이름에 걸맞는 자로 키우고 싶은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