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g] 그림+글

Family Tree 2 (끝)

underneath by 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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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난 어느 날 저녁, 퇴근하고 돌아오면 다이고가 없었다. 심장이 내려앉은 듯한 느낌을 받은 미네는 아무렇게나 구두를 벗어던지고 성인 남성이 숨을 곳도 없는 좁은 집을 뒤졌다. 말도 없이 사라지는 건 비겁했다. 다시 끈끈한 인연 없이 혼자가 되는 건 싫었다. 불안함에 그의 신분도 잊고 경찰에 신고할까, 하며 밖으로 달려 나간 미네는 터덜터덜 돌아오는 다이고를 보았다.

오후에 쓰레기를 밖에 내놓고 오는 길에 재수 없게 마주친 녀석들의 보복에 맞선 다이고는 뭐라 변명할 수 없었다. 미네가 싫어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최대한 빨리 끝내고 오려 했지만 집에만 박혀 있다 보니 몸의 균형이 잘 맞지 않았다. 구구절절 말하기보다 달려온 미네에게서 시선을 돌릴 뿐이다.

미네가 곧장 달려가서 보면 다이고는 고개를 돌린다. 그가 괘씸하게 느껴진 미네가 턱을 잡고 이쪽을 보게 하자 다이고는 눈을 감았다.

"싸우셨군요."

미네가 손을 내리자 다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땅바닥만 내려다본다. 부어오른 뺨, 이마에서 줄줄 흐르는 핏물, 찢어져서 벌겋게 빛나는 입술. 둘은 말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미네는 피를 닦고 각종 약을 발라 주며 그가 싸우고 다니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다이고는 누군가에게 맞고서 모든 걸 포기한 얼굴로 비를 맞으며 가로등 밑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다이고는 이름과 나이 말고는 스스로 알려주는 것이 없었다.

응급 처치를 끝낸 미네는 다이고가 방으로 도망가기 전에 옷을 빨기 위해 벗어 달라고 했다. 다이고는 얌전히 윗옷을 벗어서 손에 들었다. 절대 싸우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아침마다 집안일만 시켰을 뿐인데, 다이고는 잘못을 저지른 개마냥 꼬리를 말고 있다.

"다이고 씨."

"왜."

"등 좀 보여 주세요."

그렇게 요구하자 다이고의 눈이 커진다. 미네는 옷을 벗던 다이고의 동작이 부자연스러운 것을 보았다. 필시 등에도 상처가 있을 것이다.

"다치셨잖아요."

거의 노려보듯이 보면서 말하자 다이고는 고개를 숙이고 망설이는 발걸음으로 빙 돌았다. 미네는 깜짝 놀랐다. 그의 등에 커다란 문신이 그려져 있었다. 동양적인 향취가 가득한 인물상이 시퍼렇게 칠해져 있다. 오른손에는 용이 휘감고 있는 검을, 왼손에는 동아줄을 들고 있다. 인물상의 뒤에는 붉은 불마저 타오르고 있었다. 명색만 야쿠자가 아닌 모양이다.

"……무섭다면 미안해."

"전혀요."

처음엔 놀랐으나 이것도 다이고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무섭지 않았다. 꽤나 상징성이 강해 보였기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는 나중에 분위기가 좋을 때 묻기로 한다.

문신의 색이 진해 어딜 다쳤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미네는 앉아있는 채로 손을 뻗어 탄탄한 등에 손바닥을 붙였다. 그 상태로 이곳저곳을 쓸었다. 탄탄한 살갗의 감촉이 좋게 다가온다.

"어디가 아프신가요."

질문과 동시에 다이고의 등이 흠칫 떨린 것을 본 미네는 그곳에 스프레이형 파스를 분사했다. 아픈 곳이 맞았는지 다이고는 다시 미네 쪽으로 돌아선다.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시선은 다른 곳에 있다.

"다이고 씨."

"……."

"귀찮게 안 할 테니 대답 하나만 해 주세요."

"싸움 같은 거 하지 말라는 부탁이라면, 그렇게 할……."

"다이고 씨는."

"……."

"언젠가 저를 떠나시나요?"

불쑥 말을 자른 미네의 물음에 다이고는 바로 입을 닫았다. '여기'가 아니라 '저'라고 물은 건 이미 다이고가 자신의 소유 아래 놓였다고 여긴 탓이다.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던 그의 정체를 알면서도 편한 잠자리와 따뜻한 밥을 제공해 주며 주권을 손에 쥐고서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낱 고독, 한낱 유대, 한낱 인연과도 같은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오래 데리고 있지 못할 것은 알고 있었다. 다이고도 그렇게 말했었다. 함부로 이탈한 조직에서 감당할 책임이 남아있는 것이다. 미네도 다가올 일을 각오해야만 했다.

하지만 누군가와 이렇게 집에 있어 본 적도 없었기에 돌아오면 순수하게 자신을 맞이해 주고 대화 상대가 돼 주며 장난도 치는 다이고가 계속 여기 남기를 바란다. 그는, 어두운 세계가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미네는 욕망을 드러내기 직전이었다.

다이고는 미네의 물음에 잊고 있던 자신의 처지를 떠올렸다. 아버지의 간섭과 뒷세계의 지긋지긋함에 질려 가출한 자신의 못난 처지를. 적당히 자유롭게 놀다가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다이고도 짧은 자신의 인생에 들어온 미네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이 녀석 없이 살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니야."

그게 최선의 대답이었다.

눈을 뜨면 껄끄러운 저녁이 지나 있었다. 그 뒤로 미네는 그렇냐는 대답을 하고 아무것도 치우지 않은 채 방으로 들어갔다. 다이고는 손에 들고 있던 지저분한 옷을 다시 입고는 어질러진 것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좁은 거실에서 탁자를 저쪽까지 밀어놓고 잠을 잤다. 깨어나면 아직 일어날 시간보다 빨랐다.

다이고는 모로누워 팔을 베개 삼은 채 생각에 잠긴다. 미네와 있으면 정말로 평범한 청년이 되었다. 단지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처지긴 했으나 함께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며 웃고, 실없는 농담을 나눴다. 비록 서로 선을 지켜 자세한 건 묻지 않아도, 아는 것이 적어도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편하게 느껴졌다.

'이젠 떠나야겠어.'

다이고는 일반인인 미네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슬슬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너무 정을 붙이지 말 것, 너무 받아들이지 말 것. 한계를 모르고 자신에게 다정한 미네에게 미안한 것들이 많아 저절로 가슴속이 아려온다.

그때, 벽 너머로 미네가 설정해 둔 알람 소리가 들렸다. 다이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눈을 감고 자는 체하기로 했다. 이윽고 미네가 방에서 나와 다가온다. 발소리가 잠깐 멎었다가 욕실 쪽으로 향한다. 물소리가 언제 멎을지 몰라 다이고는 눈만 가늘게 뜨고 누워 있었다.

잠시 후 씻고 나온 미네가 자는 척하던 다이고의 어깨를 두드린다. 다이고는 일부러 눈을 느지막이 떴다.

"안 자고 있던 거 알아요."

'뭐!'

웃기지도 않은 연극에 부끄러움을 느낀 다이고는 겨우 당황한 것을 감춘다.

"어디 끌려가면 죽은 척도 못 하시겠네."

그가 야쿠자이기에 할 수 있는 미네의 농에 다이고는 스르르 일어난다. 쭈그려 앉아 있던 미네는 아침 먹을 거니까 씻고 오시라는 말을 하고 일어선다.

이러면 더더욱 여기서 나가기가 힘든데. 다이고는 세수를 한 뒤 거울을 통해 물줄기가 흐르는 자신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렇게 많이 티가 나나?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 제어를 잘하지 못하는 건 알고 있다. 좀 더 독한 마음을 먹자고 생각한다.

미네는 아침밥을 먹는 다이고의 표정이 좀처럼 풀리지 않는 걸 보고는 코로 조용한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심각한 일도 아니었다. 싸움 한 번 했다고 말 안 듣는 애완견 취급은 너무 했지…… 하고 엉뚱한 생각을 한다. 그럼 다이고는 왜 이렇게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 건지. 자신이 쓸데없이 굴어서 그런 거라 추측한다.

'퇴근길에 맛있는 거라도 사 와야겠어. 내일은 토요일이니까 술이라도 같이 마실까.'

구두를 신으며 결심한 미네는 인사를 남기고 현관을 나선다.

미네에게서 멀어지기로 한 다이고는 그래도 맡은 일은 착실히 해냈다. 집안일을 끝낸 뒤 미네의 침대에 누워 숨을 들이쉬면 늘 같은 향을 맡을 수 있다. 이제 이 냄새도 못 맡겠구나. 조직 간부의 자식이 남의 집 청소나 하는 생활도 곧 끝이다. 하지만 그렇게라도 하면서 미네와 있고 싶다.

'미안해, 미네. 여러 가지로 미안한 게 많아…….'

못난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미네를 떠올리자 다이고는 울고 싶었다. 울음을 참기 위해 눈을 끔뻑거리다가 얕은 잠을 자고는 곧바로 깼다. 아마 꿈에 미네가 나왔던 것 같다. 꿈속으로 도망쳐도 거기에 미네가 있었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다.

저녁이 되자 미네는 주류와 먹거리를 산 비닐봉투를 들고 돌아왔다. 둘 다 조금 더 솔직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기도 했다. 표정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꽤 신난 미네가 다이고를 거실로 불러냈다.

"씻고 올 동안 준비해 주세요."

"뭘 이리 많이도 샀어."

"금요일이니까요."

마치 오늘을 기대했다는 듯이 대답한 미네가 욕실로 사라지자 다이고는 비닐을 뒤적거리며 그가 사 온 것들을 탁자에 올려둔다. 캔맥주까지는 괜찮았다. 그러나 양주병을 꺼냈을 때엔 사고가 정지된다. 그것을 조심스레 바닥에 내려둔다. 이건 왜 샀지? 마음에 안 드는 소릴 하면 머리라도 후려치려고? 얌전히 안주거리의 포장을 뜯어서 정리하고 있자 미네가 와서 앞에 털썩 앉는다.

"이런 건 왜 샀어?"

양주병을 가리키면 미네는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 하고 단순한 대답을 한다.

"종류별로 다 사려고 했는데 둘 다 안 마시는 게 남으면 아까우니까요."

가끔 극단적인 면이 있어도 어디까지나 다정한 배려에 한해서다. 다이고는 피식 웃는다. 건배, 하고 처음은 가볍게 캔맥주로 시작한다. 오랜만의 술상에 다이고는 이름 모를 구이 요리를 손에 들고 뜯어 먹었다. 고소하고 달고 짭짤한, 알아서 술이 당기는 맛이 났다.

"야쿠자들은 술을 같이 마시면 의형제가 되는 건가요?"

"음? 아냐. 술잔을 나누는 의식은 되게 중요한 거라 옷도 맞춰 입고 모여서 크게 해."

"다이고 씨도 해 보셨어요?"

"아직. 마음에 드는 녀석도 없고, 난 이쪽 세계에서…… 아니다. 못 들은 걸로 해 줘."

"자기가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알아도 쓸데없는 거라."

미네는 다이고가 자신이 속한 세계를 싫어한다고 추측했다. 그것이야말로 미네가 바라던 것이었다. 좀 더 취하게 만들어서 깊은 곳까지 알아내고 싶어진다. 다이고는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니 많이 마실 것이다. 악의라곤 없어 보이는 웃는 얼굴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참 후, 취기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다이고는 완전히 취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풀어진 상태였다. 미네는 다이고 모르게 적절히 조절해서 마셨기에 완전 나가떨어지진 않았다.

"다이고 씨는 술을 잘하시네요."

"그런가?"

"그런 편이에요."

"어릴 때부터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곳에서 자랐으니까 잘 모르겠어."

물을 마시던 미네는 새로운 사실에 귀를 기울였다.

"어릴 때부터요?"

"부모님이 바쁘셨거든. 아버지 밑에 있는 부하들이랑 자주 놀았어."

미네는 다이고를 그저 호기심에 발을 디딘 말단 조직원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적성에 맞지 않아 도망쳐 나온 것이라 여겼는데 지금 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는 아버지부터가 이미 야쿠자인, 뼈대 있는(?) 집안 출신이었다.

이건 또 이거대로 새롭다고 생각하는데 다이고가 깊은숨을 내쉰다.

"미안해, 미네."

"뭐가요?"

"말하지 못했던 게 있어."

"하고 싶으시면 하세요."

다이고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망설였고 미네는 그가 무슨 말을 할지 두근거렸다.

"아버지가 동성회 간부야."

어느 조직일지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나 관동 지역을 주름잡는 최대 규모의 조직인 동성회의 이름이 나오자 술이 확 깬다. 게다가 간부라고.

"그럼…… 다이고 씨는 왜 숨어다니시나요?"

그러자 다이고는 여태 말하지 못한 사정을 설명했다. 아버지의 이름에 걸맞은 자식으로 키워진 어린 시절, 잘하던 학교생활을 망치게 된 이유, 이후 같은 생활에 질려 도망친 자신. 다이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괜히 말했어, 하고 중얼거렸다. 미네는 팔을 뻗어 그 손을 잡아 내리고 취기와 부끄러움에 물든 얼굴을 바라본다.

"오히려 말씀해 주셔서 좋은데요. 다이고 씨도 편해졌죠?"

"으응…… 그러게."

다이고는 머쓱하게 웃고는 버릇처럼 검지로 뺨을 긁었다.

"조직에서 나가고 싶은 건가요?"

말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이대로 잘 구슬려서 정말 그쪽 세계에서 빼내 올 수만 있다면. 언젠가 했던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치켜든다. 그러나 그는 간부의 자식. 쉽게 나올 수 없는 몸이었다.

"그러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어. 나도 평범하게 살고 싶어. 너처럼……."

눈썹을 찡그린 다이고가 울어버릴 것 같다고 생각한 미네는 손을 뻗어 뺨의 거친 피부결을 쓰다듬었다. 듬성듬성 깎이지 못한 짧은 수염이 여린 손바닥 살에 닿인다.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차라리 최선을 다하세요. 저도 어릴 땐 절망뿐인 삶을 살다 일찍 죽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는 천애 고아였거든요. 키워주신 분도 병으로 돌아가시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살길은 있었죠."

다이고는 미네의 방이 삭막했던 이유를 알게 되자 놀라면서도 가슴이 아파왔다. 미네도 위로가 필요한 녀석이라 생각해 자신의 뺨을 어루만지고 있는 손을 잡았다. 미네가 눈을 크게 뜬다.

"실은 곧 여길 나가려고 생각했어. 너한테 폐만 끼치는 것 같고…… 슬슬 돌아가야 다른 사람들도 안심할 테니까."

자신의 처지를 위로해 주는 미네의 다정한 태도에 다이고는 굽힐 수밖에 없어진다. 이렇게 되면 멀어지는 것이 어려운데도.

미네는 다이고가 떠날 때가 빨리 다가온 것에 놀랐다. 어젯밤에 각오하면서도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붙잡으려던 것을 참았는데, 본인에게서 직접 듣게 되자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다. 다이고의 손에서 빠져나와 일어섰다. 그러고는 곁에 붙어 앉자 다이고는 약간 놀란다. 미네는 그를 똑바로 바라본다.

"다이고 씨."

"응?"

"좋아해요."

"어……?"

"다이고 씨를 좋아한다고요."

다이고도 분명 미네가 좋고 이제 없으면 안 될 친구인 건 맞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너무나 애달파 보이자 혼란스러웠다. 어떤 식으로 좋아하는 거지? 좋아하니까 나 같은 녀석이랑 친구처럼 있는 거겠지? 일부러 생각을 빙빙 돌려봐도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며 이해하지 못한 척하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걱정해 주고, 사소한 것마저 챙겨 주고, 원하는 대로 해 주려는 미네의 태도는 부모님의 내리사랑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었다. 다이고는 그의 외로운 부분을 어루만져주며 애정을 주는 미네의 태도에, 지금 대답을 바라는 눈빛에 깨달았다. 미네를 좋아하게 되었다.

다이고를 좋아하게 되었다. 외로움에 갇혀 돈으로 그 속의 갈라진 틈을 메우고 있던 자신을 쳐다보던 다이고. 매서운 눈빛에도 이상하게 무섭지 않아 이해되지 않는 심정으로 데리고 왔다. 도움을 청하자 도와주고 싶었다. 자신이 무어라도 제공해 주지 않으면 구석으로 내몰릴 다이고에게 무조건적으로 봉사하자 놓치고 싶지 않아졌다. 그는 나의 도움을 받기에 이렇게 무사태평한 것이다. 우월감에 젖기도 했다.

순진하게 놀란 표정을 보았을 때 깨달았다. 다이고를 좋아하게 되었다. 더는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 않기를, 자신도 외롭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속에 담아두고 있던 말을 꺼내 보였다.

다이고는 당황해서 쉽게 대답해 주지 않는다. 미네는 본심을 가리는 안경을 벗었다. 도수가 없는 위장용이기에 여전히 다이고의 표정은 선명하게 잘 보인다. 뭐라 말하긴 해야 하는데 할 수 없다는 표정. 미네는 천천히 기다리기로 했다.

"나, 나는……."

어렵게 한마디를 꺼낸 다이고는 참을 수 없었는지 잔에 남아있던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너랑 있고 싶어도 그렇게 할 수 없어. 알잖아, 내가 어떤 놈인지."

"그럼…… 저도 그쪽으로 가면 되겠네요."

한 번은 출근길에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때는 농담처럼 생각했던 터라 혼자 웃고 말았다. 다이고는 고개까지 저으며 안 된다고 말했다.

"너도 카무로쵸에서 직장을 다니니 알 거 아냐."

미네가 동성회에? 최고의 해결책이지만 최악의 해결책이기도 했다.

"너는 네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해."

비록 시뻘건 얼굴일지라도 힘이 들어간 눈빛은 평소의 다이고와 같았다. 미네는 다이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다이고 씨와 다르게 저는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어요."

자신이 했던 말을 한 번 꼬아서 말하자 다이고는 한숨을 쉬며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너는 대체 나 같은 놈 어디가 좋아서 그렇게까지……."

손바닥 사이로 새어 나온 볼멘소리에 미네는 저도 모르게 픽 웃었다. 좁은 실내라 잘 들린 웃음소리에 다이고가 눈을 흘기며 미네를 쳐다봤다.

"야쿠자가 되면 큰돈도 만지겠네요."

"꼭 그런 것도 아냐."

"연줄로 꽂아 주시면 가능하겠는데요."

'나는 여기서 도망치려고 하는데, 너는 여기로 걸어 들어오려고 하는구나.'

충돌하는 상반된 생각에 다이고는 미소를 짓고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오른손을 뗐다. 미네는 처음 보는 다이고의 진실성 있는 웃음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아직 어깨에 올려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다이고는 팔을 들어 미네의 손등을 자신의 손으로 감싼다.

"너는 참 이상한 녀석이야."

"그래서 좋은 거 아녜요?"

뻔뻔한 대답을 하며 미네가 반대쪽 손도 다이고의 어깨에 올린다. 지근거리에서 눈동자가 마주치자 분위기가 어색해진다. 천천히 밀어내려는 힘에 다이고는 그가 자신을 뒤로 쓰러뜨리려는 걸 알고 미네를 밀어낸다.

"잠깐만!"

"싫으신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아직 등이 아파서……."

다이고는 맞았던 부위에 여전히 통증이 달렸다. 미네는 완전히 거절하지 않는 걸 청신호로 여기고, 대신 두 팔로 그를 감싸고 잡아당겼다. 오래된 형광등 불빛을 등에 진 다이고는 바닥에 누운 미네를 보며 눈을 질끈 감고 허리를 낮췄다. 누구의 술맛인지도 모를 맛이 혀를 감싼다.

"날 따라오는 거, 후회하지 마."

다이고가 낮은 숨을 흘리며 말했다. 미네는 싱긋 웃으며 다이고를 밀어내고 앉았다. 투박한 자신과 달리 좋은 얼굴을 한 미네가 그렇게 웃으면 어찌할 수가 없어진다.

"왜 데려왔는지 후회하지나 마세요."

"그럴 일 없도록 잘해야지."

둘은 홀로 막고 있던 틈새를 서로의 정으로 메웠다. 거기엔 이제 아무런 균열이 보이지 않았다.

수년 후 도지마 가의 가계도에는 줄이 하나 더 그였다.

어버이 도지마 소헤이. 도지마 야요이.

직계 자손 도지마 다이고.

의형제 미네 요시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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