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엠 인게이지] 사랑하는 하늘은

23.11.09 작성

누군가는 말했다. 하늘을 사랑했노라고.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모두를 품는, 그러면서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그 자유에 손을 뻗었다고. 있는 힘껏 발돋움하면 하늘 끝에 닿을 수 있을까, 몸을 던지면 하늘을 품을 수 있을까. 그 사람은 어린아이처럼 시원하게 웃으면서 말했다고 한다.

과거의 나는 울 것 같은 마음을 무릎과 함께 품에 안으면서 언젠가 들었던 그 말을 떠올리며 하늘을 올려다 봤었다. 눈물 너머로 본 하늘은 마치 신기루 같아 곧바로 흠칫 놀라며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지만 말이다. 

당연하다고 할까, 내 시야가 너무 좁았던 탓일까 그런 내 눈에 보인 것은 새파란 하늘과는 전혀 다르지만 똑같이 끝을 알 수 없는 밤하늘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딱히 내가 파란 하늘 아래 있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하늘에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하늘을 올려다 볼 때면 항상 아득해질 정도로 어두운 밤에 작은 빛만이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것에 아주 잠깐 외로움을 느끼고 말았다. 아주 잠깐이라는 말은 분명 맞지 않겠지만 자존심 탓인지 괜히 얼버무리게 된다. 그래, 분명 아주 잠깐 온 외로움일 것이다. 그런 거치고는 이러한 나날이 이어졌던 것 같아서 시선을 아래로 쭉 내리고 말았지만. 

분명 그 알지도 못하는 사람은 분명 보기만 해도 눈이 부시는 맑고 밝은 하늘을 떠올렸겠지. 적어도 내 시야, 마음속에 그려지는 밤하늘은 아닐 것이다. 누가 밤하늘에서 자유를 보겠는가. 사랑을 하겠는가. 적어도 나는 본 적 없었다. 그러니 그 사람이 사랑했을 하늘을 상상할 수 없다. 예상은 할 수 있어도 그리지는 못 한다. 알지 못하니까.

왜 그런 생각을 지금 하느냐면, 분명 언니의 머리카락에서 하늘을 봤으니까. 타오를 듯이 휘날리는 불꽃과 함께 날아오르는 푸른 선을 봤으니까. 그러니 분명 나는 손을 뻗고 말았던 거겠지. 나는 그런 자신을 깨닫고선 어설픈 움직임으로 언니의 머리카락에 뻗었던 손을 거뒀다. 

어쨌든 이쪽을 바라보는 두 색의 머리카락의 소유자인 언니가 의문을 품은 눈동자를 이쪽으로 향한다. 나보다 연상일 것인데, 나보다도 더 많은 일을 겪었을 것인데 너무나도 맑고 순수한 빛을 품고 있어 무심코 쓴웃음을 짓고 만다. 안 되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손을 뻗었다는 건 하늘을 떠올린 탓일까? 한 가지 의문인 것은 손끝은 푸른 머리카락이 아닌 붉은 머리카락 쪽을 향하고 있던 점이겠지만.

내가 어색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사과의 말을 건내니 언니는 맑은 목소리로 되려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건냈다. 생각하지 않아도 이미 행동으로 누군가를 배려하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세계를 품는 신룡 그 자체다. 알지도 못했던 사람이 사랑했던 하늘 그 자체일 것이다. 지금이라면 그 사람이 사랑했을 하늘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간다.

분명 그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이 봤을 하늘은 미소 짓고 있었을 거니까. 순수하고 맑은 눈동자로 바라봤기에 그대로 사랑에 빠진 걸지도 모른다. 왜 그렇게 생각했나면, 글쎄, 지금 내 감정이 딱 그런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니는 오른손을 뻗어 내 윗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언젠가 언니와 처음 만났을 때 펼쳐졌던 그 꽃의 향기가 코에 닿는 느낌이다. 실제로 그 꽃이 피어난 것인지 내 착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니 윗머리를 쓰다듬던 언니의 손이 내려와서 이번엔 내 뺨을 덮었다. 꽃 향기가 더 강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입을 열고 말았다.

"누군가는 말이지, 하늘을 사랑했대. 어떻게 하면 하늘과 닿을 수 있을까, 그걸 즐겁게 말했다고 해."

언니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는다. 아마 내 말이 이어진다는 걸 느낀 거겠지. 나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두 손을 올려 내 뺨에 닿은 언니의 손을 덮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난 몰랐어. 내가 떠올리는 하늘은 밤하늘이니까. 그 사람이 사랑했을 하늘과는 달랐을 거니까."

말을 하는 내 목소리가 점점 잠기는 느낌이다. 울고 싶은 걸까. 울고 싶지는 않은데.

"지금이라면 알 수 있을 거 같아. 분명 이 순간 내가 느끼는 감정이 정답일 거야. 그 사람은 이 감정에 이끌려서 하늘을 사랑한 걸 거야."

반사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울고 싶지 않다. 그래도 끝까지 말하고 싶으니 순순히 입술을 놓아준다.

"내게 있어서 하늘은 언니야. 끝없이 푸르고 한없이 포용적이고 언제나 미소를 보내줘. 어느 때든 받아들여줘. 그리고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아. 나는 분명 언니를, 두 색의 하늘을 동경한 걸 거야."

"그리고 사랑하고 있는 걸 거야." 그 말과 함께 두 눈에서 무언가가 흐르는 감촉이 느껴졌다. 결국 울고 만 거구나. 어쩐지 분했지만, 분명 그 감정조차 불필요하겠지. 왜냐면 지금 내 눈가를 훑는 감촉이 느껴졌으니까. 언니가 내 눈물을 닦아 줬으니까. 나는 참지 못하고서 감았던 눈을 떴다. 동시에 내 두 손이 아래로 떨어지고, 내 온몸에 감촉이 느껴졌다. 언니가 날 껴안아준 것이다.

그리고 마치 무대 연출인 것처럼 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밤이 올 준비를 시작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사랑했던 푸른 하늘과 내가 언제나 봐왔던 밤하늘도 아닌, 그 사이 마치 사룡을 떠올리게 하는, 매우 짧은 붉은 하늘의 시간. 두 사룡이 마음을 나누기에는 너무나도 적합한 시간이었다.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안아줄 뿐이다. 평소라면 이것저것 날 설득하거나 내 마음을 강하게 감싸는 말을 건내겠지만 지금은 그저 내 모든 것을 품어줄 뿐이다. 언니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지만, 결국 나도 입을 다물어버렸다. 아마 지금은 말이 필요 없는 시간인 거 같으니까.

나는 분명 지금, 알지도 못 하는 사람이 사랑했던 푸른 하늘도, 내 마음속에 언제나 자리 잡은 밤하늘도 아닌 언니가 안아주는 저녁노을 하늘을.  이 하늘을 사랑하게 된 거겠지. 저녁노을 하늘인가, 생각해보지도 못했었네. 그렇구나, 이 하늘도 있었구나. 따뜻하다. 정말로 따뜻하네.

"고마워, 언니..."

"뭘요."

나는 떨어졌던 두 팔을 언니의 등에 감아 몸을 기댔다. 아까 전부터 오던 꽃향기가 더욱 짙어졌다. 마치 꽃에 코를 대서 직접 향을 맡는 것 같다. 어느새 상당히 내려온 저녁노을 하늘이 내 몸을, 언니의 몸을 감싸며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하늘이 바로 내가 쭉 사랑해왔던, 그렇지만 계속 몰랐던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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