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엠 인게이지] 제목없음

23.10.10 작성

키스를 했다. 연인들이 할 법한, 서로 껴안고서 혀와 혀를 얽히는 그런 찐득한 것이 아니라 입술과 입술이 잠시 맞대었다가 떨어진, 그런 가벼운 것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이러한 키스를 인사 대신 한다고 했던가. 어디서 주워 들은 건지도 모를 지식을 떠올리며 베일은 무심코 쥐었던 자신의 원피스 자락을 만지작거렸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키스라기 보다는 입맞춤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지만 베일로서는 혼란을 잠재울 수가 없었다. 물론 잠시 부끄러워했다가 궁금증이 풀린 것이 이유일까 천연 냄새 풀풀 풍기면서 웃는 친언니이자 파트너인, 뤼에르는 멀쩡해도 너무 멀쩡하게 보였지만.

본인 말로는 최근에 소설을 많이 읽는데 키스하는 장면이 꽤 나와 무슨 느낌인지 궁금했다고 한다. 일단 본인도 부끄러움 정도는 알고 있으니 스스로 열심히 그 느낌을 느끼려고 하다가 실패하고서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가까운 상대인 베일을 끌어들인 것이다. 베일은 갑작스러운 발언에 그 느낌을 그만큼 알고 싶었느냐며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대로 표정으로 표현하며 거절할 방법을 강구했으나 언니의 그 순수한 눈빛과 부탁을 완벽하게 차단할 만큼의 강함을 지니지 못했었다.

결국 베일은 제발 누가 지나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침대에 앉았고, 그걸 기다린 듯 뤼에르는 가겠다며 그대로 입술 박치기를 한 것이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 베일을 놀리듯이 머릿속에서 반복하며 떠오르고 있었다. 베일은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 잡고 싶은 것을 눈을 꼭 감는 것으로 참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먼저 결과가 이러할 것이라는 가정을 세운 후에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탐구 및 실험을 할 것이다. 적어도 베일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한 생각의 흐름에 따르는 편이다. 그렇기에 이번 경우에는 베일 또한 그런 방식으로 뤼에르의 생각을 가늠하고 또 지금 열심히 피어 오르는 베일 본인의 이 형용키 어려운 감정을 밝히고자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정을 세우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부끄럽지만 뤼에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생각이었다. 오랜 기간 떨어졌으나 피를 이은 혈육이며 마음이 얽힌 파트너다. 안다고 한다면 아마도 베일 본인이 가장 뤼에르에 대해 잘 알 것이다. 베일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있으나 솔라넬에 올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이 입을 모아 똑같이 말한다. 그렇기에 베일은 자신 안의 뤼에르에 관한 지식을 토대로 뤼에르의 방금 행동의 이유를 알고자 했다. 본인 말로는 키스의 느낌을 알고 싶다고 했으나 석연치 않았다. 고작 그런 이유로 친동생과 키스를 하고자 하는 건가. 

그럼에도 놀랍도록 답이 나오지 않았다.

원래 행동력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 아니 신룡이었다. 자신이 생각한 바에 대해 결코 의심하지 않으며 놀라울 정도의 추진력과 뛰어난 머리 회전을 통해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느낌인지 알고 싶다'는 애매한 이유로 친동생과 키스를 한 것이다. 베일로서는 답이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었다.

물론 직접 물어보면 될 일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안다는 텔레파시 같은 능력은 아무리 용이라 해도 가지고 있지 않다. 말을 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 그건 베일 또한 절절하게 느낀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뭔가가 다르다. 왜 키스를 했냐는 질문은 그야말로 정신이 취하지 않는 한 물을 수 없는 이른바 금단의 질문과도 같았다. 물론 전혀 달랐지만 베일의 머릿속에서는 완전히 판도라의 상자와도 같은 취급이었다.

슬그머니 눈을 뜬 베일을 혼란스럽게 하는 뤼에르 본인은 어떤 상태냐 하면 키스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오히려 걱정 거리를 잔뜩 쌓아 놓는 베일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나 멋진 언니지만, 상냥한 눈빛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오히려 베일을 울리고 있었다. 그게 아니잖아, 언니. 멋지긴 한데 답부터 알려주자. 나 너무 혼란스러워. 베일은 입 밖으로 터져 나오려 하지만 결코 나오지 못하는 말을 삼키며 눈을 질끈 감았다.

언니에게 있어서는 그깟 키스라는 걸까?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베일에게 키스란 좀 더 마음 속 어딘가를 간지럽히는, 그런 달콤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적어도 이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언니와 자신 사이에는 이만큼의 인식 차이가 있었단 말인가. 순간 베일 자신과 뤼에르 사이가 조금, 약 5cm 정도 멀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베일은 참을 수 없어져 그대로 눈을 떴다. 베일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깨달은 뤼에르가 활짝 웃으며 말 없이 반겼다. 베일은 결국 말을 툭 떨어트리고 말았다.

"언니는 키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베일?"

무슨 일인가요? 걱정하는 뤼에르가 베일의 곁으로 다가온다. 베일은 뤼에르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시선을 흰 바닥에 두고서 말을 이었다.

"나한테 있어서 키스는 말이지. 연인끼리 하는 거야. 서로 사랑을 나누면서, 마음을 전하면서."

적어도 단순한 궁금증으로 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베일은 어설프게 말을 이었다. 말을 하면서 어째서 자신에게 잘 모를 감정이 피어 올랐는지 깨닫는다. 아, 실망했구나. 이런 걸 키스라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구나. 베일은 고개를 더욱 숙였다. 동시에 베일의 두 뺨에 온기가 닿으며, 시선이 강제로 올라갔다. 그 앞에는 빨강과 파랑 두 눈동자가 가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 직후 눈동자가 사라지며 베일의 몸 전체가 온기로 감싸였다.

"미안해요. 베일을 속이려던 건 아니었는데..."

"언니...?"

베일이 뤼에르에게 껴안겼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는 뤼에르가 말을 이었을 때였다.

"사실은 그저 베일과 키스를 하고 싶었어요. 물론 궁금했던 건 맞아요. 그래도 베일과 저는 파트너니까요. 역시 키스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다른 이유를 들어야 베일이 납득해줄 것 같아서, 그래서 그랬던 건데... 미안해요. 아까 전부터 저는 쭉 치사했네요."

그와 동시에 베일을 껴안는 팔에 힘이 들어간다. 그저 미안하다는 듯이 언제나 무거운 검을 들던 손이 베일의 뒷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다. 지금 뤼에르의 온기도 팔의 힘도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도 너무나도 기분이 좋다. 너무 기분 좋아 베일은 무심코 눈을 감았다. 그 탓인지 무심코 말이 튀어 나왔다.

"그럼... 키스해줘... 장난도, 변명도 아닌... 여, 연인들이 하는 거, 걸로..."

자신의 말을 깨달은 베일이 허둥대며 뤼에르의 등에 두 팔을 감싸며 그대로 뤼에르의 옷자락을 쥔다. 얼굴을 더욱 뤼에르의 품 속에 넣은 베일은 뜨거워진 얼굴을 어찌할 바를 몰라 입술만 깨물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뤼에르가 베일에게서 몸을 떨어트렸다.

"언니?"

그리고 베일의 입술에 닿는 무언가. 그것이 뤼에르의 입술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입술과 입술이 맞대고, 숨을 쉬기 위해 벌어진 입술 사이로 혀가 침입하며 조금씩 베일의 입 안을 천천히 유린하듯 애무한다. 아까 전의 인사와도 같은 키스와는 전혀 다른 연인과의 키스. 베일은 혀도 몸도 모두 뤼에르에게 맡기며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베일은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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