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엠 인게이지] 하늘을 닮은 파랑

23.07.01 작성

     베일은 솔라넬에서 가장 하늘이 잘 보이는 곳에 있었다. 솔라넬은 부유섬으로서 어느 곳에 발을 내딛어도 지상의 어디보다도 하늘이 잘 보이지만 베일로서는 이 장소가 제일 마음이 뻥 뚫릴 것처럼 탁 트여 보였다. 비가 왔던 탓에 흐린 것이 아쉬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베일이 하늘 저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으니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 들어와 베일 자신의 뺨을 쓰다듬으며 보랏빛을 머금은 은색과 검정을 품은 베일의 머리카락의 물결을 따라 솔라넬 안으로 들어왔다. 베일은 큰 눈동자를 천천히 깜빡였다.

실제로 바람을 느끼고 드넓은 하늘을 본다고 마음이 환해지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그것들은 현재 베일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베일이 그 장소를 떠나지 않는 것은,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서 푸른 빛을 품은 반지가 지금 눈앞에 펼쳐진 하늘의 색과 흡사했으니까.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오른쪽 검지와 가운데 손가락으로 반지를 문지르는 것이 현재 베일이 누군가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베일은 자신의 행동의 진의를, 이유를 잘 알지 못했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그렇기에 이곳에 왔다. 그것이 베일이 내세울 수 있는 이유였다.

"하늘을 보고 있었나요?"

그 순간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공간에 누군가가 부드럽게 침입했다. 그저 넋 놓고서 바람을 느끼고, 하늘을 보던 베일은 반사적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려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향했다. 베일의 자수정과 같은 눈동자에 비친 것은 새하얀 옷와 빛나는 검을 두르고서 그 몸에 적색과 청색을 함께 품은 여성이었다. 여성의 이름은 뤼에르라 하며, 베일 외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신룡이라 불리우고 있었다. 

"응, 하늘이 예뻐서 그만 넋 놓고 보고 말았나봐."

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고민이 있는 건 아니야. 뤼에르의 성격을 아는 베일은 허둥지둥 변명을 하듯 뒷말을 이었다. 스스로도 이러면 변명하는 게 되는 게 아닌가, 더 걱정하는 게 아닌가 싶어 내심 침울해졌으나 뤼에르는 부드럽게 웃으면서 베일의 바로 옆까지 걸어와 말했다.

"괜찮아요. 저도 가끔 솔라넬의 하늘을 보러 오거든요."

"어, 그래?"

몰랐어. 베일은 중얼거렸다. 베일이 보는 한 뤼에르는 항상 솔라넬에서 열심히 뛰어 다니고 있었다. 동물을 돌보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가끔 문장사의 반지가 모셔진 방에서 열심히 반지를 닦는다. 적어도 느긋하게 무언가를 구경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베일이 솔라넬에 오기 전이라면 있었을 지도 몰랐으나 적어도 베일이 솔라넬에 온 후에는 본 적 없었다. 

"여기서라면 하늘 뿐만 아니라 지상도 잘 보이거든요. 마치 명화를 보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그림은 거의 본 적 없지만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을 덧붙이는 뤼에르는 자신의 두 색깔을 품은 눈동자로 베일을 담았다. 그 시선은 베일을 부드럽게 감싸면서도 베일의 상태를 가늠하고 있었다. 이는 뤼에르가 순수하게 베일을 걱정하고 있는 것을 표현하고 있었다. 잠시 베일을 보며 생각에 잠기던 뤼에르는 최대한 조심하며 물었다.

"손 잡아도 될까요?"

"손?"

"네, 거절해도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는 뤼에르는 몸을 돌려 왼손을 가슴 위에 두고, 오른손을 베일을 향해 뻗고 있었다. 마치 사교장에서 함께 춤을 추겠냐며 권유하는 움직임이었다. 베일은 무심코 움찔거리는 손가락을 장식하고 있는 반지에 손을 올렸다가 작게 웃으면서 손가락이 자리 잡은 왼손을 뻗어 뤼에르의 오른손에 올렸다. 그와 동시에 뤼에르의 손이 부드럽게 베일의 손을 잡으며 아래로 내려갔다.

"고마워요, 베일."

"아냐, 언니랑 이렇게 손 잡을 수 있어서 기쁜 걸."

"저도예요. 베일의 손이 따뜻해서 될 수 있다면 쭉 잡고 싶어져요."

그 말을 들은 베일은 뤼에르의 손이 닿고 있는 자신의 손에 무심코 힘을 주고 말았다. 

"응, 나도야..." 

하늘은 드넓고 공기는 조금 따뜻하다. 뤼에르의 손은 더 없이 포근했고 이 시간은 행복했다. 그래서 그랬을까, 베일은 무심코 입술을 깨물었다. 그걸 본 뤼에르가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은 손을,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베일의 손 위에 올리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베일은 걱정 거리가 없다고 말했지만 오늘은 조금 이상하네요. 뭔가 마음에 두고 있는 거라도 있나요?"

"응? 아, 아냐... 정말 없어."

"저는 베일의 파트너니까요. 언제든지 기대주세요."

베일의 도움이 될 수 있는 게 기쁘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뤼에르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 미소에 마음을 놓으면서도 베일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렇게 언니랑 같이 있으니까."

그 말은 진심이었다. 베일은 순수하게 뤼에르와 함께 있는 것이 좋았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베일은 만족하고 있었다. 만족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뤼에르는 진지한 표정을 하며 입을 열었다.

"베일."

"왜 그래?"

"인게이지 할까요?"

갑작스러운 말에 베일이 깜짝 놀랐다. 그 진의를 읽기 힘들어 당황하고 또 혼란스러웠다. 뤼에르라는 사람은 그 근간은 부드럽고 상냥하지만 농담을 잘 담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저 베일은 반사적으로 나오는 말을 꺼낼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안 싸워도 되는데...?"

"이 힘은 싸움 속에서만 지닐 수 있는 힘이 아닙니다. 힘이란 사용하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이 있어요. 지금은 그 힘을 베일을 위해 쓰고 싶은 거에요. 그리고..."

"응, 그리고...?"

잠시 뜸들이던 뤼에르는 한 번 심호흡을 하며 말을 이었다.

"저는 지금 베일과 함께 하고 싶거든요."

지금 이렇게 함께 하고 있잖아, 베일은 그런 말을 차마 목구멍 밖으로 내지 못했다. 뤼에르가 하는 말은 분명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지금 베일과 뤼에르는 함께 하고 있다. 손도 잡고 있다. 그러나 몸은 따로이며 그렇기에 마음도 따로 존재한다. 아무리 마음이 이어져 있다고 말한다 한들 이를 진정으로 둘이서 함께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인게이지는 다르다. 실제로 하나가 된다. 몸도, 마음도 전부 하나가 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함께 한다고 할 수 있었다. 베일은 뤼에르가 문장사가 된 후 함께 인게이지를 하면서 이를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이해하고 있음에도 이대로 계속 뤼에르와 인게이지 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비록 뤼에르에게는 그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뤼에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혹시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했던 걸까? 베일은 마음속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베일이 본인이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잘 몰라 고민하고 있으니 뤼에르는 베일의 손을 잡은 본인의 손에 힘을 조금 넣으면서 부끄러운 듯 베시시 웃으면서도 나름의 고집을 담아 두 눈동자를 베일에게 고정하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실은 외로웠거든요. 안 될...까요...?"

그 말을 들은 베일은 무심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당황하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묻고 싶었으나 베일의 머리는 이미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이 베일 본인이 바라고 있던 거라고. 자신은 외로웠던 거고 이곳에 온 것도 뤼에르를 만나고 싶었으나 차마 만날 수 없어 뤼에르가 자신에게 준 증표인 반지의 색을 한 하늘을 보는 걸로 대신하고 있었다고. 그래서 자신은 뤼에르가 준 증표인 반지를 만지고 있던 거라고.

이제야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순수하게 응할 수 없던 것은 베일의 마음속에 망설임이 남아 있는 탓이었다.

"그래도..."

"베일, 제게 기대해 주세요."

"기대해 달라니?"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행동할 때는 그 무언가에 기대를 하고 있기에 하는 거겠죠?"

"응, 그러게..."

"그렇다면 베일은 제게 기대해 주세요. 저는 있는 힘껏 베일의 기대에 응할게요."

그게 베일의 언니이자 파트너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뤼에르는 언제 어느 때이든 바뀌지 않는 올곧은 눈을 하고서 베일에게 말했다.

그 눈을 보며 베일은 생각했다. 너무나도 올곧고 올바른 이 눈을 거부할 수 없다. 자신보다 조금 더 크고 단단한 손을 놓을 수 없다. 이 사람과 함께 걸으며 모든 걸 공유하고 싶다. 그런 충동에 휩싸였다. 본인이 충동에 부추겨 진다는 건 느끼고 있었으나 그 충동은 언제나 느꼈던 그것과는 달리 훨씬 따뜻하고 기뻤다. 뤼에르에게 모든 것을 기대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베일은 무심코 그 말에 응하고 있었다. 아니, 뤼에르에게 기대하고 있었다.

언니와 인게이지를 하는 것으로 이 외로움이 해소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응, 하자. ...인게이지 하자."

"고마워요, 베일."

누가 먼저 정한 것도 아닌데도 베일과 뤼에르는 말이 끝나자마자 동시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뤼에르가 익숙하게 주문을 읊으며 베일의 손을 잡은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베일과 뤼에르의 몸이 가벼워지며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알 수 없는 느낌이 맴돌았다. 참지 못하고서 베일이 눈을 뜨자, 베일의 모습이 평소와는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옆에는 투명하게 비치는 뤼에르가 빨강과 파랑이 공존하던 것이 착각이라는 것처럼 오직 푸른색만을 품은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하고서 베일을 보고 있었다.

인게이지를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도 어쩐지 베일의 마음 속에는 무언가가 충만해지고 있었다. 베일 자신이 이 하늘을 보러 온 이유가 뤼에르가 준 반지의 색과 같아서라고 이해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하늘과 닮은 것은 반지가 아니라 뤼에르의 색이었던 것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푸른 머리카락은 그야말로 하늘을 따라 흐르는 바람이었으며 하늘을 치는 파도였다. 이 솔라넬의 하늘 자체가 뤼에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베일은 두 손으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눈가가 조금 뜨거웠으나 억지로 참았다. 그와 동시에 뤼에르가 베일 자신의 몸을 감싼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 그 순간 베일은 혼자가 아니었다. 외로움은 마치 뤼에르가 자신의 검으로 베어버린 듯 사라지고 없었다. 베일은 두 손을 겨우 내리며 하늘을 바라봤다. 외로움이 걷힌 베일의 눈에 비친 하늘은 불필요한 색이 일절 없는, 너무나도 새파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베일이 하늘 저 먼 곳을 향해 시선을 두고 있으니 바람이 부드럽게 불어 들어와 베일 자신의 뺨을 쓰다듬으며 뤼에르 대신 빨강과 파랑을 받아 품은 베일의 머리카락의 물결을 따라 솔라넬 안으로 들어왔다. 베일은 큰 눈동자를 천천히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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