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과 본체를 차별하지 마시오
약밀님이 먼저 감각 링크 미니돌이라는 맛있는 소재를 주셨죠?
알반 엘베드까지 조금 남은, 한 루나사. 톨비쉬는 고뇌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저번 알반 엘베드에 연인에게 쥐여준 인형이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와 연애중인 리온이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않게 수호해주는 것 역시 톨비쉬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일. 그러나 이계신의 흔적이나 세상을 덮칠 핀디아스의 운명의 징조들 따위를 쫓다보면 간혹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할 때가 있었고, 그런 상태에서 알아서 스스로를 지키리라 믿기엔 톨비쉬의 샛별은 다소 연약한 편이었다. 늘 그게 걱정이었던 와중 그는 모종의 실마리를 잡게 된 것이다.
“알고봤더니 청소하느라 잠깐 콘센트를 뽑아놨던 와이파이 확장기가 다시 꽂은 뒤에 작동을 제대로 안 하고 있었던 거 있지.”
처음 시작은 그와 함께 보내지 못했던 날들에 있었던 이야기를 재잘재잘 떠드는 연인의 말이었다.
“내 방은 공유기랑 멀리 있으니까… 확장기가 작동을 안하면 인터넷이 잘 안 된단 말이지. 아예 안 잡히는 건 아니긴 하지만…. 불편하니까.”
공유기라는 것과 다소간 떨어져있어도 그것이 제공하는 가호-톨비쉬에게 인터넷이란 이해하기 다소 난감한 개념이었다.-를 무리없이 사용할 수 있게 돕는 물건. 수호자의 가호야 에린 내에서라면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범위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밀레시안들은 귀여운 물건을 모아서 가방을 꾸미기를 즐기는 이들이었고, 리온의 취향이라면 톨비쉬도 잘 알고 있으므로….
“…그러니까, 네 인형을 직접 만들었다고?”
양손으로 톨비쉬 모양 솜인형을 쥐고 이리저리 둘러보는 리온이라는 장면이 탄생한 것이다.
“밀레시안들 사이에서 가방 안을 귀엽게 꾸미는 것이 유행이란 이야길 들었습니다. 거기에 도움이 되면 좋겠군요. …만듦새가 좀 엉성하긴 합니다만.”
그것만은 수호자라도 어쩔 수 없었다. 톨비쉬는 여차할 때 제 옷을 기우는 것 이상의 재봉을 해본 일이 없었다. 저나마도 꽤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인형의 형체조차 갖추지 못했던 수많은 실패작들을 기억에서 밀어내는 톨비쉬에게 리온이 달콤하게 웃어주었다.
“괜찮아. 처음 만든 거잖아. 재봉선이 좀 삐뚤빼뚤한거지 이상한 구석은 없잖아? 요리로 치면 별 3~4개쯤은 될거 같은데? 마음에 들어. 고마워, 잘 쓸게.”
정말로 마음에 드는지 인형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보는 리온에게 톨비쉬가 말했다.
“소중히 대해주세요. 제가 마음에 안 든다고 대신 때리지 말고.”
“응응. 알았어.”
어째 영 흘려듣는 것 같은 리온의 모습에 톨비쉬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 인형은 애초에 톨비쉬가 리온을 살피기 어려울 때 리온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그를 보호하고 자신이 알게 하도록 만들었으므로, 톨비쉬가 리온의 주변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도울 몇가지 기능이 있었다. 한 마디로 톨비쉬에게 감각이 공유되는 기능이 있다는 뜻이었다. 가방 안에서 가방 밖의 상황을 알아야하므로 인형의 민감도가 제법 높게 설정되어있어서 리온이 인형을 때리거나 구체적으로 생각하기도 난처한 일에 사용하는 것은 톨비쉬에게도 곤란했다.
그렇다고 그걸 솔직히 전했다간 ‘그런 기능을 넣어놓다니 너는 스토커랑 변태중에 어느쪽이냐?’라면서 싫어할 것이 분명하므로, 톨비쉬는 리온의 양심에 모든 일을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큰 실수였다.
알반 엘베드가 끝나고 톨비쉬와 헤어진 리온은 가방에 곱게 넣어두었던 인형을 즉시 안아들고 그것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진짜 귀엽네. 가방에 뭘 같이 넣어줘야 귀여울까? 네 물건이니까 같이 고르자?”
리온은 인형을 소중하게 안고 한참동안이나 경매장을 구경했다.
가방 하나를 완전히 비워내고 그 인형을 위한 물건들로 채웠다.
꾸며진 가방에 인형을 넣으려던 리온은 돌연히 인형을 다시 껴안았다.
“소중하게 대하라고 했지 가방에 넣어다니라고 하진 않았잖아? 안고 다녀도 되는 거 아냐?”
완전히 톨비쉬의 계산 실수였다.
리온은 싸울 때 말고는 24시간 내내 그 인형을 품에 안고 다녔다. 인형과 연결된 톨비쉬 역시 하루종일 리온에게 껴안겨있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안고만 다닌 것도 아니다.
“자, 톨비쉬. 아~.”
밥을 먹다가 괜히 달콤하게 웃으면서 인형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시늉을 하질 않나.
“자자, 톨비쉬. 원래 이런데선 같이 사진 찍는게 예절이라고?”
인형을 꼭 껴안은 채 사진을 찍어대질 않나.
“우음… 졸려…. 톨비쉬 자자…. 잘 자….”
잘 때도 굿나잇 키스를 한 뒤에 껴안고 자질 않나.
하루는 천을 잔뜩 쌓아두고선 인형의 치수를 재더니 -갑자기 인형의 옷이 벗겨져서 톨비쉬는 식겁했다. - 이런 저런 옷들을 잔뜩 만들어서 입혀보질 않나.
“짜잔, 이 옷은 톨비쉬 리레라는 색깔인데, 내 장갑 리본이랑 세트지롱~. 커플 아이템이야~.”
리온의 수제 옷을 입은 인형에다 대고는
“귀여워! 예뻐! 너무 좋아! 꺄~! 톨비쉬 사랑해!”
같은 말들을 속삭이며 껴안질 않나.
*
여기서 참고로 평소 톨비쉬 본체를 대하던 리온의 태도를 보고 가겠다.
간식을 먹길래 톨비쉬가 바라보고 있었더니,
“…? 뭐야?”
책을 보다가 꾸벅꾸벅 졸더니,
“하암…. 나 잔다.”
그만 보도록 하겠다.
*
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 인형은 톨비쉬와 감각 공유가 되고 있다.
리온의 속삭임도, 웃음도, 뽀뽀도 전부 톨비쉬의 귀에 들리고 톨비쉬의 피부로 느껴진다.
그러므로(?), 톨비쉬는 -다소 비이성적인 결론이지만- 인형을 없애버리기로 결심했다.
*
다시 돌아온 알반 엘베드, 톨비쉬 인형에게 웃으며 입맞추고는 가방에 곱게 넣어두고 진짜 자신에게는 뚱한 얼굴을 보여주는 리온에게 톨비쉬는 손을 내밀었다.
“인형의 만듦새가 좋지 않아 영 마음에 걸리는 군요. 제대로 다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돌려주시겠습니까?”
물론 새 인형을 제공할 예정은 없다.
“그냥 2개 가져도 되는데?”
“…세상에 하나뿐인 재료를 써서 그걸 분해해서 다시 써야합니다.”
거짓말이다.
“그럼 그 공정까지는 내가 갖고 있어도 되잖아? 어차피 재봉을 연습할 시간도 필요할테고.”
고개를 기울이고 반박하는 리온의 말에 재반박하는 대신 톨비쉬는 손을 흔들어 인형을 알아서 회수하기로 했다.
“아! 줬다 뺐지 말라고!”
가방에서 나와 떠오른 인형을 리온이 점프해서 콱 움켜쥔 탓에 덩달아 갑작스럽게 충격을 받은 톨비쉬가 비틀거렸다.
“잘 쓰고 있는데 왜 뺏어가!”
단단히 화가 났는지 인형을 꽉 안은 통에 덩달아 꽉 안긴 느낌이 된 톨비쉬는 귓가에 울리는 리온의 심장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손을 내밀었다.
“돌려주세요.”
“싫어!”
인형이 찌그러지도록 꽉 안은 리온 덕에 자기도 모르게 헉하는 소리를 내며 비틀거린 톨비쉬는 떨리는 시선의 리온이 인형을 한번 보고 저를 한번 보는 것을 무력하게 바라보았다.
“…아니지?”
“…돌려주세요.”
“…아니지?”
“…돌려주세요.”
“아니라고 해?!”
“…돌려주세요.”
새빨개진 얼굴을 양손으로 감싼 -와중에 인형은 소중하게 가방에 도로 넣어서 톨비쉬는 속에서 치미는 무언가를 느꼈다.- 리온이 외쳤다.
“너 변태야?! 왜 그런걸 줘?!”
“…그러는 당신은.”
인형에게 왜 그리 다정하냐고 따져물을 뻔한 톨비쉬가 자신의 입술을 짓씹었다.
“…돌려주세요.”
여전히 빨간 얼굴의 리온이 인형을 소중하게 들어서 톨비쉬에게 내밀자 톨비쉬는 리온이 ‘직접’ ‘그가 입은 옷과 세트가 되는 색상으로’ 만든 깜찍한 복장을 입은 제 인형에게서 감각 공유를 끊고 즉시 인형이었던 것으로 만들어주었다.
“돌려달라며?!”
“돌려받았으니 알아서 처분했을 뿐입니다.”
“너무해….”
“앞으로 이런걸 드릴 땐 좀 더 신중하게….”
애써 정색한 얼굴을 유지하던 톨비쉬는 시무룩해보이는 리온의 모습에 결국 그 질문을 하고야 말았다.
“인형과 실제가 뭐가 그리 다릅니까?”
“응…?”
부끄러운 질문을 두 번이나 할 생각은 아니었던 톨비쉬가 고개를 흔들기도 전에 리온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크기와 촉감?”
“…그게 문제입니까?”
“…?”
영 감이 안 잡혀보이던 리온이 이번엔 반대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닮은 가짜라서 좀 덜 설레지?”
“…?”
리온이 인형에게 보인 행태와는 정반대의 답에 톨비쉬의 고개도 기울어졌다.
“아무래도… 진짜한테는… 너무 설레서 할 수 없는 행동이지…?”
리온이 이 얘기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눈치로 조심스레 꺼낸 말에 톨비쉬는 몸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저도 그런 얘기 들을 줄 압니다.”
“…그렇구나?”
두 사람 사이를 어색한 침묵이 채웠다. 민망해진 톨비쉬가 화제를 전환하기 전에 리온의 손이 톨비쉬의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그… 인형한테 질투하는 거. 꽤 귀엽다고 생각해.”
차마 톨비쉬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고 바닥을 본 채 리온의 말이 이어졌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이 예쁘고. 음… 알반 엘베드마다 여기에 달려올만큼 너무너무 좋아하고… 사랑하고….”
민망한지 입을 오물거리는 리온을 힐긋 바라본 톨비쉬가 둥둥 떠있던 몸을 바닥으로 내려 땅에 발을 딛었다. 그런 톨비쉬를 리온이 조심스레 다가와 껴안았다.
“…서운했어?”
눈을 내리깔고 리온의 품에 고개를 묻은 톨비쉬가 말했다.
“한 번 더.”
“…? 어… 톨비쉬 귀여워, 예뻐. 너무 좋아. 사랑해?”
“한 번 더.”
“귀여워. 예뻐. 좋아해. 사랑해.”
“…한 번만 더.”
언제나 감각공유로만 느껴지던 말랑한 감촉이 톨비쉬의 뺨에 직접 와닿았다.
“사랑해.”
그게 괜히 민망해진 톨비쉬가 리온을 마주 안았다.
“…앞으론 직접 말씀하세요.”
“응.”
조심스레 리온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톨비쉬에 톨비쉬를 껴안은 리온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리온?”
“…난 계속 껴안고 있어도 되는데.”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녹색 눈을 가만히 바라본 톨비쉬가 다시 리온의 품에 기댔다. 그 해의 알반 엘베드, 두 사람은 서로 꼭 껴안은 채 하루같은 한달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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