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못죽

돈 쓰지 말라니까

위시즈 류건우 드림

위시즈의 처음이자 마지막일 팬 사인회 날. 류건우는 앞선 팬을 보낸 후 앞자리가 빈 틈을 타서 자신을 찍는 카메라들에 하트를 날리다 이내 옆에서 꾸물꾸물 제 쪽으로 넘어오는 팬을 돌아보았다.

 

“안녕하세요~”

 

……? 아니, 네가 왜 여기 있냐.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단정한 프레피룩 차림의 서주가 류건우 앞에 앉았다. 평소에 화장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이곳에 오느라 힘주어 꾸몄는지 앞에 앉은 서주의 눈가에 옅은 금빛 펄이 은은하게 반짝였다. 메이크업이며 스타일이 전체적으로 담백하게 잘 어울렸다. 짧은 시간 서주를 요목조목 뜯어본 류건우는 서주와 눈을 맞추고 인사했다.

 

“예,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워요.”

“제가 더요~ 아, 참 이거 써줄 수 있어요?”

“당연하죠.”

 

작위적인 것 하나 없이 여타 다른 팬들과 똑같이 류건우를 실제로 처음 보는 듯 수줍게 웃은 서주가 머리띠를 내밀었다.

 

‘생각보다… 능청스럽군. 하긴 안 어색할 자신이 있으니까 왔겠다만.’

 

덤덤하게 감탄한 류건우가 머리띠를 받았다. 길쭉하고 쫑긋한 흰색 토끼 귀가 인상적이었다. 취향은 여전하네. 언젠가 둘이 놀이공원에 놀러 갔을 때. 기프트샵에서 여러 디자인의 토끼 머리띠를 보며 고민하더니 급발진해서 전부 사려고 집어 들던 서주가 떠올라 류건우는 속웃음을 지었다.

그나저나 어디서 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누군가는 토끼 귀 생긴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박문대 일 적 첫 팬 사인회에서 받았던 것과 생김새가 비슷했기에 류건우는 머리띠를 쓰며 그립고도 반가운 기분을 느꼈다.

 

“와… 워낙 공공연한 냉미남이라서 걱정했는데, 귀여운 것도 잘 어울리네요.”

“감사합니다. 누나가 귀엽게 봐주셔서 그래요. 성함이?”

“…네? 아, 서주로 해주세요.”

“누나 이름 귀엽네요.”

 

…누나 소리는 좀 오버였나. 그래도 뒷말은 진심이다. 류건우는 적당히 만든 사인 옆으로 익숙한 이름 두 자를 쓱쓱 적었다.

 

[끝나고 복도 왼쪽 끝 대기실 쪽으로 와. 매니저한테 따로 말해둘게.]

 

그리고 사인지 귀퉁이를 손으로 살짝 가린 뒤에 짧은 문장을 덧붙여 써 서주에게 앨범을 돌려주었다. 글을 읽은 서주는 눈을 굴리다 알았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 없는 대답에 만족한 류건우는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서주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왔는지는 몰라도 꽁으로 사인회에 오진 않았을 테니 도리는 다할 생각이었다.

 

“깍지 낄까요.”

“음… 괜찮은,”

“제가 하고 싶어서 그래요. 안될까요?”

“그 안되는 건 아닌데…….”

 

네가 허락한 거다. 류건우는 앨범 위에서 꼼질거리던 손을 붙잡아 깍지를 끼고 입꼬리를 씩 올려 웃었다. 수족냉증은 여전한지 맞잡은 서주의 손이 퍽 차가웠으나 류건우는 그 점이 오히려 좋았다. 정말로.

 

 

*

 

퇴근길을 보려 분주하게 주차장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서 매니저를 따라 대기실로 향하니 편한 차림의 류건우가 서주를 맞이했다. 류건우는 와줘서 고맙다, 따위의 말을 먼저 할까 하다가 일단 제 궁금증을 먼저 풀기로 했다.

 

“여긴 어떻게 왔어.”

“앨범 사서 왔죠.”

“…팬싸컷 140장이던데. 그걸 설마 다 샀다고?”

“? 아니 누가 데이터 팔던 사람 아니랄까봐…. 안 그래도 자신 없어서 손 추첨한다는 곳 찾아가서 샀어요. 서른 장도 안 샀는데, 운이 좋았죠.”

“스무 장은 넘게 샀다는 소리네.”

 

류건우의 말을 크게 부정하지 않은 서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 모습에 류건우는 조용히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만약에라도, 서주가 팬싸컷에 맞춰 사고 온 거라면… 대체 자신이 무얼 해서 돌려줘야 수지 타산이 맞을지 감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었다. 굳이 물질적인 걸 받지 않더라도 서주한테는 이미 받은 게 많았다. 물론 스무 장도 적은 숫자는 아니니 어떻게든 돌려줄 생각이지만. 돌아갈 현실이 따로 있고, 이곳은 가짜라는 걸 알아도 말이다.

 

“아무튼, 와줘서 고맙다. 아까 얼굴 보니까. …좋더라.”

 

잠시 망설이다가 서주를 한 품에 끌어안은 류건우가 속삭이듯 말했다. 매니저는 아까 팬싸컷이 어쩌고 할 때 이미 떠난 뒤로, 이런 둘의 모습을 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갑작스런 포옹에 짐짓 놀랐던 서주는 짧은 정적 후 이어지는 말에 가벼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순서가 틀린 거 아니에요?”

“그러게 누가 그렇게 큰 돈 쓰랬냐. 그리고 혹시 다음에 오고 싶으면 미리 말해, 한 자리 달라고 말해볼게.”

“콘서트도 아니고 사인회를? 지금 그 말 완전 말도 안 되는 거 알죠.”

“어, 안다.”

 

그렇게 한참 후, 집에 가자고 류건우를 찾아 대기실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 차유진이 ‘Oops… 저 방해하지 말고 나가요?’라고 말할 때까지 둘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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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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