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pe in the Abyss _ Part. Luxiem
1. 소설가, 악마를 만나다
복스 아쿠마는 악마다.
그는 약 400년을 이 땅에서 인간과 뒤섞여 살아왔으나 오랜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의 존재가 표면에 부각된 적은 없었다. 그는 주변의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일 없이 그저 이 세상에 존재했을 뿐이었다. 그에게는 인외의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이 여럿 있었으며, 주변의 인간들은 이를 숭배하거나 경외하며 그를 특별한 존재로 여겼다 전해진다. 한때는 머나먼 섬나라에서 자신만의 클랜을 만들어 살아가던 적도 있었으나,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자신이 악마임을 겉으로 드러내지도 자신의 능력을 피로하지도 않은 채 그저 이 땅에서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정부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기나긴 역사 속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의문의 남성을 찾다 드디어 그에게 도달한 것이다. 정부의 에이전트는 복스에게 그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능을 나라의 번영과 수많은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 없느냐고 타진했다. 장장 한 시간에 걸친 기나긴 설득을 그저 듣고만 있던 복스는 피식 웃고서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도 될까? 내가 정부의 일각에 들어가게 되면 10년도 지나지 않아 이 나라는 내 것이 될 텐데.”
정부의 에이전트는 복스의 그 오만한 발언이 결코 거짓도, 허세도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실제로 그렇게 할 힘이 있었으며 그럴 자신도 있었다.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도망쳐 나온 에이전트는 즉시 그의 답을 정부에 고했다. 이에 정부 고관들은 당연히 분노하며 그 오만한 악마를 자신들의 앞에 끌고 오라고 명령했으나 특수부대가 복스의 집에 쳐들어갔을 때 그는 바람처럼 사라져 모습을 감춘 뒤였다.
그 날부터 시작된 정부와 복스 아쿠마 사이의 추격전에 대해서는, 모두 설명하자면 너무나 장황해질 테니 과감히 생략해도 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복스가 10년 넘게 이어진 정부의 추적을 어렵지 않게 따돌렸으며 그를 생포하기를 포기한 정부에서 악마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데몬 슬레이어를 파견해 그를 죽이고자 시도했지만 이 역시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생사가 오갈만한 큰 부상을 입거나 부활을 기약해야 하는 사건도 없이 복스 아쿠마는 한 도시에 정착했다. 추격이 오면 어차피 다시 도망쳐야 했으나 그에게는 정부의 추적 따위 심심풀이에 불과했기에 ‘언제든 도망쳐야 하는 생활’ 따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복스의 새로운 거처는 5층짜리 작은 아파트였다. 가장 넓어 가장 집세가 비싼 집을 덜컥 현금으로 계약하고 머물기 시작한 청년을 집주인 역시 수상쩍게 여기기는 했으나 그의 통장으로 매달 정확하게 들어오는 집세는 집주인의 경계심을 고작 한 달 만에 늦춰 버렸다. 심지어 복스 아쿠마는 매우 사교적인 청년이었다. 그는 이사를 오자마자 옆집부터 시작해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선물들을 돌렸고, 주민 자치회에도 열심히 참여했으며, 지나가다가 안면이 있는 이웃을 보면 언제나 특유의 낮고 매력적인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건넬 줄 알았다. 주민들은 곧 복스를 자신의 이웃으로 받아들였으며, 400년 가까이 살아오며 쌓아온 사교성을 전부 다 발휘할 필요도 없었다며 악마는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 이 마을에는 복스 아쿠마의 흥미를 강하게 끄는 존재가 한 명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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