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코넛살인마의 코빌사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날

사비나와의 첫만남

“야!!!!!!!!!!! 나와서 밥 처먹으라니까 말이 안들리냐?!?!!!!!”


쿵쾅거리는 발걸음 소리 뒤로 당장이라도 문을 박살낼 것 같은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사비나는 그것을 배경음 삼아 침대에 누워 빈둥대고 있었다. 깍지 낀 손을 머리 뒤로 받치게 하며 한쪽 다리를 까딱인다. 언제부터 저 새끼가 지랄하는게 익숙해졌더라. 마음대로 하라며 한 번 문을 발로 찬 코니가 돌아간다. 분명히 처음에는 무서웠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더라….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코니를 보고 했던 생각이 아직도 선명하다. ‘뭐야 저 미친새끼는?’ 역시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는데 뭘 하려고 이 남자를 쫓아왔을까. 사비나는 한 순간 흐려진 자신의 판단력을 탓하고,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저 남자를 탓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미인계인가. 별로 취향도 아니건만 어째서 넘어갔단 말인가.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고 싶은데, 차마 그러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저 미친새끼가 날 죽일 것만 같았다.


“야. 뭘 주워온거야?”


“주워오다니!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거야. 오늘부터 우리랑 같이 지낼 사이인데 그러면 쓰나.”


빌이 사람 좋게 웃으며 사비나의 어깨를 두드린다. 이걸 고맙다고 해야하나? 아까까지는  어떻게든 멀어지려고 했던 빌에게 슬금슬금 다가간다. 이정도의 거구라면 저 방독면을 쓴 미친새끼정도는 얼마든지 막을 수 있으리라. 

사비나는 자기 자신이 약한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기폄하는 아니었다. 생각해보라. 근육 하나 없고 밥도 제대로 챙기지 않아 빼빼 마른 인간이 척 봐도 근육으로 똘똘뭉친 인간의, 심지어 성격도 더러워보이는 이의 앞에 알짱거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안 봐도 비디오지. 분명히 한 대 맞고 뻗을게 분명했다.


“척 봐도 힘도 못쓰고 뒈지게 생겼구만 주워와도 그런걸 주워오냐? 아, 여차하면 좀비한테 던질 수는 있겠군. 그러려고 가져온거지?”


미친새끼가 빈정대기 시작했다. 건들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온 남자가 빌의 바로 코 앞에서 멈춰 선다. 새카만 방독면의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나, 빌은 그것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말 말게. 척 보니 자네와 연배도 비슷해보이는데 친구처럼 지내면 좋지 않겠나?”


“니미, 친구같은 소리하네. 난 원래 친구 안만들어.”


“어허, 말 예쁘게 하라니까. 그럼 동생처럼 챙겨주면 되지. 이쪽이 누나인가?”


허허허. 빌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고, 남자의 목에 핏대가 세워진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은 예감에 사비나가 침을 꼴깍 삼키고 빌의 옷자락을 쥔다. 


“아오!!!!”


고개를 꺾어 비명지른 남자가 멀쩡히 자리하고 있는 소파를 걷어차곤 씩씩댄다. 사비나는 이 시점에서 ‘정말 미친새끼’ 라며 생각을 정정하고 있었다. 남자는 고슴도치처럼 삐죽삐죽 올라가있는 모히칸 머리를 피해 두피를 벅벅 문지르고 화를 삭히는 듯 하더니 다시 빌에게, 아니. 정확히는 사비나에게 다가간다. 


“야. 다물고 있지 말고 말해봐. 우리가 널 왜 데리고 있어야하는데?”


“그렇게 말하면 나올 말도 안 나오겠어. 척 봐도 공부 잘하게 생겼으니 우리에게 도움이 될거야.”


“그걸 말이라고 하냐? 미쳐버리겠네…. 나도 공부 잘했거든?? 그럼 얘 내다버려도 되냐?”


“허허허. 농이 늘었어. 젊은이, 신경쓰지말게. 이 친구가 나쁜건 아닌데 가끔 이래.”


지금 안 믿는거냐고 바락바락 성을 내는 남자를 무시한 빌이 제 옷을 쥔 사비나를 다독인다. 신경쓰지 말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신경쓰지 않겠는가. 한 지붕 아래에서 ‘저거’랑 같이 살아야하는데. 뒤늦게 정신차린 사비나가 굳은 의지를 다진다. 여기서 꿀리면 말짱도루묵이다.


“... 내가 오고싶다고 해서 온게 아니라 빌이 오라고 한거야. 불만 있으면 나 말고 빌한테 말해, 방독면모히칸.”


좋아, 훌륭한 떠넘기기였다. 이곳까지 오기까지 빌과 몇가지 이야기를 하며 깨달은 것이 있다면, 이 빌어먹게도 상냥한-가면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벗기 전까지는- 남자는 자신에게 칼을 찔러도 허허 웃으며 용서해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증명해주듯 빌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 망할 안경잡이가 처 돌았나... 뒤질래?”


“어허, 말 좀 예쁘게 하래도. 일단 밥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 할까? 코니 자네도 뭐 좀 먹어야지. 이 젊은이가 식량을 많이 나눠줘서 오늘은 맛있는 것을 먹을 수도 있을거야.”


그래. 사비나는 빌에게 목숨을 건 도박을 하면서 승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가도록 가지고 있던 좋은 것을 나서서 바쳤다. 코니라고 불리운 남자는 사비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않다가, 마음대로 하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곤 밖으로 나가버렸다.


“무례했다면 대신 사과하지. 이런 세상에서 사람을 쉬이 믿을 수 없을테니까 말이야. 자네도 그렇지 않나”


물론 그렇지. 지금도 당신네들을 믿지 못하니. 저 미친 방독면을 쓴 모히칸 놈을 본 후에는 더더욱. 대충 고개를 끄덕인 사비나를 보며 빌은 작게 웃는다. 작은 주택의 2층의 작은 방으로 사비나를 데리고 간 빌이 이곳에서 지내면 된다며 무거운 짐들을 손수 옮겨주었다. 빌의 상냥함에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이 사람이 상냥한 인식을 제게 심어주어 크게 뒤통수 칠 것이라는 생각이 뿌리깊게 사비나의 의식에 자리잡고 있었지만, 빌은 그 뿌리를 부드럽게 제거하는 사람같았다. 왠지 울렁거리는 감각에 사비나는 조금 딱딱하지만 편안한 침대로 폭 쓰러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밥을 먹으라는 빌의 외침과 함께 사비나는 선잠에서 깨어났다. 이렇게 무방비하게 잠들 생각은 없었는데. 제 옷가지나 짐들 따위가 멀쩡히 있는지 확인한 사비나는 1층으로 내려갔다. 호기롭게 문을 박차고 나갔던 코니라는 남자는 식탁에 앉아 방독면의 아래로 음식을 집어넣고 있었다. 대체 뭐 어떻게 생겼으면 저렇게까지 방독면을 고집하는거지? 진짜 얼굴을 가려야하는 것은 빌 아닌가? 같은 생각을 하며 빌의 맞은편에 앉는다.


“뭐야. 아직도 안 나갔냐?”


“우리랑 같이 지낼거라니까. 살아남는데에 한 명이라도 더 있으면 힘이 되지 않겠나.”


“그 반대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좀비한테 뜯어먹힐거다. 오, 제이미! 내가 넘어졌어요, 무릎에 피가 많이 나요! 안돼! 뒤에서 좀비가 오고있는데 어떡하지! 젠장, 내가 갈게! 아아악~!”


코니가 정성스럽게 1인 극을 하며 제이미과 필립이라고 이름붙인 콩을 포크로 콱콱 찍은 후 방독면 아래로 가져간다.

질색한 사비나가 그것을 보며 포크를 내려놓는데, 코니가 고개를 기울인다.


“죽치고 앉아있는 주제에 왜 안 먹는데? 빨리 안 먹으면 콱 버려버린다.”


어처구니가 없으려니까. 생각보다 더 정신이 나간 것 같은 코니를 보며 사비나는 깨작깨작 밥을 먹기 시작했다. 잘 구워진 칠면조는 윤기가 흘렀고, 크림치즈로 마무리를 한 샐러드는 지금껏 생으로 먹은 채소들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녹스 사태 이전에도 밥은 제대로 챙겨먹지 않았던 사비나를 유혹하기엔 완벽한 음식이었다. 조금씩 먹던 사비나가 좀 더 많이 먹는 것 같자 빌은 흐뭇하게 웃었고 코니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먹으니까 젓가락같지. 팍팍 먹어!! 이 늙은이가 너 때문에 이렇게 음식 많이한거 아냐! 원래는 이렇게 먹지도 않는데 식량 아깝게….”


꿍얼꿍얼대는 코니를 완벽하게 무시한 사비나는 열심히-남들이 보기에는 그리하지 않았음에도- 음식을 입에 넣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먹어보는 것 같았다. 


“많이 먹게. 부족하면 더 해줄 수 있어. 며칠 전 식료품점에서 재료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거든.”


식탁 아래로 코니의 허벅지를 꽉 누른 빌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비나는 우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힐끗 그들을 보니 어쩐지 저만 보고있는 듯 해 조금 의아했지만 상관없었다. 쳐다본다고 못 먹는 것도 아니니.

그렇게 열심히 먹어 그 어느때보다 배가 부른 사비나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식기를 내려놓았다.


“빌은 요리솜씨도 뛰어나네요. 맛있었어요.”


그 말이 어찌나 고마운지. 고양이처럼 날을 세우고 경계하는 사비나의 조금 풀린 얼굴을 보니 눈물이 찔끔날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다 먹은거냐? 젓가락 안경잡이.”


뒷 말은 동의하지 못했지만 빌 역시 그렇게 생각중이었다. 아니 겨우 두 접시를 비우고 그만 두다니. 사실 맛이 없었던걸까? 근심가득한 얼굴이 되려는데 사비나의 황당한 얼굴이 되는 것이 더 빨랐다.


“이게 보통 사람들 양이거든?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인 줄 아나봐. 저러니까 방독면 모히칸이지.”


배도 부르고 빌도 있겠다 사비나는 좀 더 막나가기로 했다. 식사하는데 화내고 부수지는 않겠지.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사비나는 용기를 내었다. 문제는 상대가 코니라는 점이었을까. 사비나가 몇 마디 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부들부들 떨던 코니가 “에라이!” 하는 기합과 함께 밥상을 뒤집어 엎었다.


“코니!!!!!!!”


빌의 고함과 날아가는 접시들과 허공을 누비는 음식들…. 생각을 채 마치기도 전 사비나는 본능적으로 옆으로 도망갔고, 다행히 큰 식탁에 몸이 깔리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다.


“너 이리 와봐. 이 안경잡이가 오냐오냐하니까 눈에 뵈는게 없나봐??!? 어디 한 번 해봐?? 어!!!??”


코니가 사비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다는데, 빌이 뒤에서 코니의 머리를 콱 잡는다.


“누가 밥 먹는데 밥상을 뒤엎나!!!! 밥 먹는 중이 아니라도 그러면 안되지! 소중한 음식들이 다 떨어졌잖나!!!”


“그게 내 탓이야?!? 너도 들었잖아!!! 저렇게 깐죽거리는데 왜 나한테만 그래??! 야!!!!! 젓가락 너 이리와봐. 와봐!!!!”


“니가 와, 이 모히칸아!!!”


사비나는 코니의 말을 무시하곤 후다닥 방으로 도망쳤다. 문을 걸어잠구고 의자로 문고리를 막는다. 쿵쾅대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선연한 것 같았다. 차라리 저들이 잘 때 물자들을 가지고 도망칠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코니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그렇게 그들의 첫 식사는 화려하게 망했다.


그 땐 뭐가 무섭다고 도망쳤을까. 그냥 물을 끼얹어버리는건데…. 짧은 듯 긴 회상을 끝낸 사비나가 흠흠, 헛기침을 하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문을 열었을 때 역시나 코니는 없었다. 그 밴댕이 소갈딱지만한 인내심으로 계속 이곳에 있을 리가 없지. 느긋한 걸음으로 1층으로 내려가자 이미 식사를 시작한 코니와 사비나를 기다리는 빌이 있었다.


“뭐 하느라 늦었나? 식사 준비는 다 되었으니 앉아서 먹게.”


“뭐 좀 생각하느라요. 잘 먹겠습니다!”


사비나는 이제 음식에 약이 들었을까 걱정하지 않는다. 빌이 웃으면 왠지 모르게 자신도 웃음이 나는 것 같고, 코니는 여전히 미친새끼며 보다보면 분노가 저를 감싸는 것 같기도 하지만 무섭지는 않다. 코니를 화나게 할 정도로 깐족거릴 수 있을만큼.


“니 대가리로 뭔 생각을 한다고 그렇게 늦었냐?”


“니 죽이는 생각.”


“죽여봐라, 죽여봐. 젓가락 주제에 호랑이한테 덤벼들라고.”


“호랑이같은 소리하네... 호랑이도 눈깔에 젓가락 찔리면 쓰러진다.”


“니가 내 눈깔을 찌를 수는 있고?”


“그러는 너는 그렇게 방독면 쓰고 나 물수나 있겠냐? 왜, 방독면 올리고 물어 뜯게? 아이고, 한 손으로 방독면 잡고 한 손으로 저 잡으시면 바쁘시겠어요 도련님.”


코니가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다. 사비나는 제 앞의 접시를 덥썩 잡고 다시 입을 놀린다.


“호랑이가 아니라 전기톱이었네. 아주 갈아라, 갈아. 입에 밥 넣고 왜 씹냐? 걍 부들부들 떠면 알아서 갈리는데.”


벌떡. 의자를 박차고 일어난 코니가 식탁을 텁 잡는다. 사비나는 접시를 잡고 후다닥 피하고, 코니는 식탁을 뒤집어 엎는다.


“코니!!!!!!!!!!!!!!!!!!”


빌의 외침은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다. 그렇게 다시 접시들은 하늘을 날고 코니는 악을 지르며 사비나를 쫓아간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저자식한테 도망친 세월이 얼마인데. 빌도 코니를 잡을테니 사비나의 완승이다. 후다닥 방으로 도망친 사비나가 문을 걸어잠구고 키득키득 웃는다. 평범하고 평화롭기 짝이없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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