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의 원류 『JUNE』의 전 편집장·사가와 토시히코 인터뷰

「여자아이는 미소년의 탈을 뒤집어쓰면 자유롭게 된다」

원문 : https://realsound.jp/book/2024/06/post-1699528.html

※ 인터뷰 내 언급된 인물들의 이름을 읽는 방식은 검색을 통해 확인하였습니다만, 『STARLOG』 편집장이셨던 中尾重晴 님은 읽는 방식을 찾지 못해 보편적으로 읽는 '나카오 시게하루'로 작성합니다. 혹시 틀릴 시, 댓글 등으로 지적해주시면 수정하겠습니다.


글·취재=엔도 토시아키円堂都司昭

#엔도토시아키 #잡지 #BL #사가와토시히코 #JUNE

1978년에 『Comic Jun』으로 창간되어, 동명의 브랜드 「JUN」가 있었기에 제3호부터 『JUNE』으로 이름을 바꾼 이 잡지는, 여성향의 남성 동성애를 테마로 했다는 점에서 이후 BL(보이즈 러브, Boys' Love)의 원류가 되었다. 한때 "JUNE"은, 이러한 장르를 총칭하기도 했다. 만화중심의 잡지들이 일시휴간했던 1980년대에 열성적인 팬을 확보하여, 1982년부터는 자매지 『소설 JUNE』도 발행하였다. 다만, BL 대두 후에는 성향의 차이로 인하여 독자층이 감소하여, 2013년에 『JUNE』 브랜드의 잡지는 모습을 감췄다. 『JUNE의 시대, BL이 동트기 이전JUNEの時代 BLの夜明け前』은, 아르바이트 시절 잡지를 기획하고 편집에 참여해서, 어느새 편집장이 되었던 사가와 토시히코佐川俊彦의 회고록이다. 그는, 시대의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엔도 토시아키 / 6월 10일 취재·구성)

남자들끼리 있는게 아름답다는 감각은, 여자아이들에게 퍼져있었다.


이름을 바꾸기 전 창간2호와 바꾼 후 3호


──젊은 시절부터 만화와 친했을텐데, 『JUNE』이라고 하는 잡지를 떠올리게 한 출발점이 된 작품은 무엇이었습니까.

사가와 : 타케미야 케이코竹宮恵子 『바람과 나무의 시風と木の詩』, 하기오 모토萩尾望都 『토마의 심장トーマの心臓』 등 유명작품이 있긴 하지만, 특별히 이런 작품들에게서 충격을 받았다는건 아닙니다. 친구로부터 빌린 소녀잡지를 보고 있다보면, 어째선지 다들 남자들끼리 나오는걸 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다만, 이시모리 쇼타로石森章太郎(이시노모리 쇼타로石ノ森章太郎의 이전 필명)가 『만화가 입문マンガ家入門』에 실었던 본인 작품 『용신늪龍神沼』이, 소녀만화이면서도 남성 주인공이었기 때문에, 타케미야 씨 등이 그걸 읽고 「소녀 만화에도 남성이 주인공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한게 아닐까 상상해봤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소년만화 뿐만 아니라 소녀만화도 읽고 있었습니까.

사가와 : 초등학생 시절에, 몸이 약해서 여자아이와도 어울리며 소녀만화를 빌렸었고, 여동생이 『리본りぼん』을 사기 시작한 뒤로는 소녀소설을 포함하여, 당연하게 읽고 있었습니다.

──동성애를 그리기 시작한 세대이이기도 하며, 24년조라고 불리는 소녀만화가들(쇼와 24년(1949년) 전후로 태어난 아오이케 야스코青池保子, 타케미야 케이코竹宮恵子, 오시마 유미코大島弓子, 하기오 모토萩尾望都, 키하라 토시에木原敏江, 야마기시 료코山岸凉子 등. 올해 6월 8일에 작고한 사가와의 아내, 사사야 나나에코ささやななえこ=이전 필명 사사에 나나에ささやななえ도 그 중 한명)을 자연스럽게 접했다는 인상이네요.

사가와 : 저도 『COM』 (데즈카 오사무手塚治虫가 세운 무시 프로덕션의 자회사의 월간 만화잡지)을 창간호부터 읽으면서 영향을 받은게 있고, 이 잡지에서 타게미야 씨, 하기오 씨, 야마기시 씨 등도 실렸기 때문에 그러한 영향이 컸습니다.

──『JUNE』은 과거에는 없었던 컨셉이기 때문에, 기획, 창간 타이밍, 여러 면에서 설명하기가 힘들지 않았습니까. 발행처인 산출판サン出版 (현 매거진·매거진マガジン·マガジン)은, 이미 게이 잡지인 『사부さぶ』를 발행하고 있었기에, 사내에의 설명은 도리어 어렵지 않았을 것 같은데.

사가와 : 그렇습니다. 「게이 잡지야?」라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레즈비언 잡지를 낼 수 없을까」같은 기획이 종종 나옵니다만, 기본적으로 여성은 포르노 같아 보이는 잡지는 부끄러워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사회운동같은 책밖에 없고, 엔터테인먼트 성향은 무리가 있다. 거기에 『JUNE』이 끼어들었네요. 처음에는 「어째서 여자아이가 남자들끼리 있는 것을?」라고 물어서, 「여자들끼리 있으면 남자는 즐기면서 본다. 하지만 남자가 등장하면 방해받는다고 생각해서 싫은 기분이 된다. 여자아이도 마찬가지라서, 여자가 등장하면 화가 치솟는다」라고 설명하니 이해해줬다. 「남자라면 여자들끼리 있는게 2배로 이득. 여자아이라면 청년+소년으로 2배 이득」라고 하니, 꽤 설득시킬 수 있었습니다.

에로 계열의 종합출판사였기에 사내에서 설명이 어려웠던 점은, 남성 대상의 경우, 사진이나 소설을 넣을지 제외할지 다루는게 기본입니다. 하지만 『JUNE』의 경우 평론을 싣거나, 마일드함이 빠지지 않는 페이지들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경향에 대해 「뭐랄까, 여성은 전희가 중요하니까」라고 변명했습니다.

──집필의 의뢰나 광고를 요청할 때 외부인에게 설명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사가와 : 같은 말을 수백번 설명했습니다. 어쨌든 남성이 읽는 게이 잡지가 아니라, 여성이 읽는 잡지라는 점입니다. 공상의 세계에서 남자아이가 거대 로봇을 타거나 총을 갖게 되어 강해지는 것처럼, 여자아이는 미소년의 탈을 뒤집어쓰면 자유롭게 되는데, 특히 성적인 자유가 크다. 뒤집어 쓴건 미소년이어도 안의 사람은 여자아이이므로, 선택받는 상대는 이성의 남자가 된다. 그것을 밖에서 보면 동성애로 보이게 된다고 설명해도, 좀처럼 설득되지 않았다. 성공한 뒤에 다이닛뽄인쇄大日本印刷 측 사람으로부터 「이런걸 잘도 생각해냈네」라고 칭찬받았습니다만, 코미케나 록 씬에서는 남자들끼리 있는게 아름답다는 감각이, 여자아이들 사이에 퍼지고 있었기 때문에.

돈도 없으면서 메이져는 하지 않는 것을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JUNE』은 만화 중심이면서도, 영미권의 록·뮤지션의 사진이나 기사를 꽤 싣고 있었습니다. 『JUNE』적이라고 하는 근원들 중 하나는 남성이 메이크업을 한 글램 록이 있습니다만, 자주 들어봤습니까.

사가와 : 데이비드 보위를 좋아했습니다. 몸이 약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동시에 라디오에서 비틀즈 시절부터의 음악을 듣고 있었고, 레드 제플린 같은 하드 록, 핑크 플로이드 같은 메이져한 프로그레시브 록부터, 마이너한 밴드들까지 좋아했습니다.

──1970년대의 소녀 만화에는 서양 뮤지션을 모델로 하는 캐릭터가 여럿 눈에 띄었지요. 그러고보니, 『JUNE』에서 그리고 있던 타케다 야요이竹田やよい는, 록 잡지인 『록킹 온ロッキング·オン』에도 만화를 게재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사가와 : 사실 당시에, 『JUNE』은 『록킹 온』에 광고 교환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책의 잡지本の雑誌』나 『가로ガロ』는 OK였는데.

──그랬습니까. 『JUNE』에는 『책의 잡지』, 『책의 잡지』에는 만화 정보지 『닷크스だっくす』 (훗날의 『파후ぱふ』)의 광고가 실리는 등, 당시의 서브컬쳐 잡지, 소잡지는 서로의 광고를 싣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니 『JUNE』의 뒷표지에는 데이비드 보위, 재팬(영국의 밴드) 등의 록 광고가 게재돼 있었네요.

사가와 : 잡지 안쪽에 들어가는 광고는 우편 판매 등이었습니다만, 뒷표지에는 세련된 것을 원했기 때문에 레코드 회사나 영화회사에 요청했습니다. 독자에게의 정보제공도 되고. 처음에는, 칼라 광고를 게재해준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하는 느낌이었습니다만, 이런 잡지가 팔린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는, 돈이 되기 때문에 게재하겠다는 곳들이 생겼습니다.

──『JUNE』적인 것에 대한 인지가 퍼지면서, 반발도 있었죠.

사가와 : 그건 어쩔 수 없죠. 어떤 의미로는 옳다고 할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뮤지션끼리 커플로 엮거나, 매니저가 되어 있거나, 망상을 즐기는 것은 실례라고, 여성들 중에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로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만화를 팬클럽에 보내거나 하면 뮤지션이 언급해주거나 해서, 「끼어드는 것은 비겁하다」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만화 계열의 사람들은, 실물을 좋아하는 리얼계의 사람들에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예인은 허상으로 살거나, 허상을 제공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아이돌은 팬을 위해 독신인 상태로, 좀처럼 결혼하지 않고 나이를 먹어가기도 합니다. 그것도 건전하지 않다고 생가합니다만.

──경쟁잡지로는 후발주자인 『ALLAN』이 국내 뮤지션을 소재로 하는 망상소설을 게재해 사무소로부터 금지당했다고. 『JUNE』도 도매금으로 같이 금지당했다던지.

사가와 : 그런 의미에서는 『ALLAN』의 형태가 독자의 욕망에 부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비교하자면 『JUNE』의 경우는, 전체적으로 구미적인 이미지였습니다. 해외작가로 치장해, 그 번역이라고 하는 형태로 쓴다던지, 여러 가명을 사용해 『JUNE』에 소설을 쓴 나카지마 아즈사中島梓의 초기작품 『한밤중의 천사真夜中の天使』 등은, 본래 사와다 켄지沢田研二, 후지 타츠야藤竜也 출연의 『악마같은 그 녀석悪魔のようなあいつ』에서 발상되어, 해당 드라마와는 멀어진 내용으로 발전된 것입니다. 하지만 『JUNE』은 국내의 것에는 접근하지 않았다. 그러한 경향은 의식하고 있던 것입니까.

사가와 : 『JUNE』과 같은 매니악한 잡지는 메이져한 것을 취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쟈니즈의 영화의 게재를 거부 당해도, 다른 매체가 평범하게 게재하고 있고, 이쪽도 돈도 없으면서 메이져가 하지 않는 것을 하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의 스틸컷은 어디에서나 메인으로 사용하는 것이 정해져 있었습니다만, 당시는 앨범에서 골라낼 수도 있어서, 저는 남성이 아름답게 보여지는 사진을 필사적으로 찾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권리관계가 엄격해져서 자유롭게 골라낼 수 없게 되어서, 제가 좋은 시절에 일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발로는, 「여자아이가 그런 식으로 (소비한다고)」 싫어하는 게이 분들도 있었습니다만, 『JUNE』 정도의 소녀 취향이 좋다고 하는 소프트한 게이 분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게이 잡지 『장미족薔薇族』의 편집장이, 여자아이로부터 『그런 스포츠머리들(원문 : 角刈り) 말고, 좀 더 미소년들을 보여줘」라는 손편지들이 가득해, 「쓸데없는 관심이야」라고 화냈었습니다. 여자아이들은 자신들의 기준이 절대적이라는 좁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사부』를 발행하던 산출판으로서 종종, 『JUNE』에 굳이 『사부』적인 것을 게재해, 진짜와는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전했습니다.

──확실히, 소녀만화적인 그림들이 나열된 『JUNE』에, 게이잡지나 SM잡지에도 그리고 있던 이시하라 고진石原豪人 (하야시 겟코林月光)의 일러스트도 게재돼 있었군요.

사가와 : 고진 씨는 에도가와 란포江戸川乱歩 작품의 삽화도 그렸고, 삽화 문화의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딱 어울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행복하게 일치하는, 과거가 있었다.


──『JUNE의 시대』에는, BL이 동트기 이전의 제 1세대는 이론무장해야 했다고 씌여져 있습니다. 선행세대인 시부사와 타츠히코澁澤龍彦가 책임편집이던 『피와 장미血と薔薇』와 같은 문학지향의 탐미가 아니라, 『JUNE』은 엔터테인먼트·패러디 지향의 "탐미"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에도가와 란포 등의 에로·그로테스크·넌센스와 통하는 요소가 있으면서, 그것을 계승한 데라야마 슈지寺山修司나 카라 주로唐十郎 등 196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연극만큼은 재밌지가 않아. 미묘한 차이.

사가와 : 전공투세대의 문학은 조금 무서운 부분이 있어서, 저는 데라야마 씨나 카라 씨의 연극도 무서워서 가지 않았습니다. 와중에 찾아낸 것이, 아메야 노리미즈飴屋法水 씨가 하고 있던 도쿄 그랑기뇰東京グランギニョル (1983년 결성). 마루오 스에히로丸尾末広 씨가 포스터를 그리고 출연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 가서 보고나니 제 선택이 옳았습니다. 소녀가 관찰하는 흥미로운 탐미, 블랙 유머의 굉장한 무대였습니다. 흥미로운 시대였죠. 『피와 장미』 등은 너무 무거워서 어려웠습니다. 역시 유머가 있는 것이, 1970~1980년대적인 이미지였습니다.

만듦새가 좋은지 어떤지도 『JUNE』에 실리는 기준이었습니다. 게이 가운데서도 드래그 퀸 계열이 되면, 저속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피했습니다. 『록키 호러 쇼』 (연극에서 영화화된 뮤지컬) 정도가 아슬아슬하게 허용선이었습니다만. 다만, 이후의 BL세대가 되면 『록키 호러 쇼』는 상식에서 벗어난 사람들끼리 노래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져서,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건 그런게, 글램 록 시대의 문화를 모르면 즐길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JUNE』에는, 타케미야 케이코 「그림 교실お絵描き教室」, 나카지마 아즈사 「소설도장小説道場」이, 독자에게 있어 봐야할 방향성을 알려주고 있었던 것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가와 : 모범이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제너릭(Generic)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타케미야 씨와 나카지마 씨가 모범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그것이 점점 이어져서 후발주자인 작가 분들을 대량으로 탄생시키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카지마 씨는 와세다早稲田 대학에서 사가와 씨도 재적하고 있던 와세다 미스터리 클럽에 있었지만, 유령 부원이었다고.

사가와 : 신입생 환영 파티에 온 정도. 실은 상급생 가운데 『COM』에 투고해서 우수작으로 게재된 사람이 있어서, 투고로 이름이 한번 실렸을 뿐인 나카지마 씨가 호승지심이 생겼어서, 클럽에서 멀어지게 된게 아닌가 하는 뒷 이야기가.

──1970년대 후반에 카도카와 영화와 서브컬쳐의 화제가 실리는 카도카와 쇼텐의 잡지 『버라이어티バラエティ』에 나카지마 아즈사, 타케미야 케이코가 연재하고 있었습니다만, 이 잡지에 클럽의 선배가 있었다고 하네요.

사가와 : 선배인 아키야마 쿄이치로秋山協一郎 씨가 『버라이어티』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만화가 등을 잡지로 끌어 들였습니다. 번역가, 비평가, 작가 등, 매스미디어의 저변을 지탱하는 클럽 출신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편집자가 된 사람도 많아서, 마찬가지로 대선배인 소네 타다오曽根忠穂 씨가 SF잡지 『기상천외奇想天外』를 하고 있었고, 저는 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소네 씨에게 요청받아 패러디 사전을 만들거나 했습니다만, 그를 소개시켜준 것이 같은 대선배였던, 번역가·평론가인 카가미 아키라鏡明 씨. SF잡지 『STARLOG』를 편집한 나카오 시게하루中尾重晴 씨도 선배. 다만, 클럽에는 미스터리나 SF에 지식이 굉장한 사람들이 많아서 저로써는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출판계에서는 클럽의 인맥을 끌어당겨주는 느낌이었습니까.

사가와 : 그쪽은, 의외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정말로 그 업무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요청하는 것이고, 연고에 의해 이뤄지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JUNE』의 업무를 아르바이트 시절부터 시작해 어느새 편집장이 되었습니다만, 사람에게 고용되어지는 쪽이 편했기 때문에, 『기상천외』, 『버라이어티』, 『STARLOG』, 그리고 『POPEYE』나 『아니메쥬アニメージュ』 등에 기고하고 있었습니다.

──『JUNE』으로 바빴을텐데도, 굉장히 많은 일을 하고 있었네요.

사가와 : 이제와서 되돌아보면 믿기지 않네요.

──당시에, 쿠리모토 카오루栗本薫, 타케모토 켄지竹本健治, 하시모토 오사무橋本治 등도 기고하고 있던 인디즈 잡지 『기담綺譚』의 편집에도 관여하여, 원고도 쓰고 쓰고 있으셨죠. 저, 1권 가지고 있습니다.

사가와 : 발행처인 키단샤綺譚社가, 나카지마 아즈사·쿠리모토 카오루의 사무소를 겸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만화가 타카노 후미코高野文子 씨가 전화응대를 맡고 있었다. 어쨌든 흥미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움직임이, 여러 장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책에 적힌 것처럼 사가와 씨는 제1회 코미케를 도왔고, 훗날 오타쿠라고 불리는 문화의 초창기를 알고 있는 것이군요.

사가와 : 오타쿠 세대는, 1954년에 태어난 나로부터 4년 후 즈음에 대량발생했다. 태어났을 때부터 TV가 있었는지 여부의 차이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도, 특촬도, 드라마도, 음악도 전부 접할 수 있고, 현실보다 TV의 화면이 좋다는 오타쿠를 대량으로 탄생시켰다. 나의 가족은 부모의 사정으로 일찍부터 TV가 있었기 때문에, 이웃이 와서 『월광가면月光仮面』을 보고 있었던 것이,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인 저의 첫번째 기억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나는, TV가 보급되기 전의 모습도 알고 있었다. 없었던 시절과 비교하거나, 또 여자아이 대상의 것들을 읽고 있었고, 학교도 옮겨다녔기 때문에 지역의 차이라던지, 그런 것들을 비교하던 것이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어딘가 한군데에 깊숙이 담겨 있으면 그걸 당연하게 생각해 버리니까.

──『JUNE』의 시대는 잡지 투고문화가 융성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만, 지금의 넷상 투고문화와의 차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가와 : 매체가 옮겨가도 근간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종이 시절보다 양이 엄청나게 늘었죠. 저는 그런 것이 낯설어서, 누가 미의식의 기준을 잡고 골라줬으면 좋겠다. 『JUNE』은 예산의 문제로 얉았습니다만, 오히려 좋았습니다. 충분한 예산이 있어서 얼마든지 게재할 수 있었다면, 반대로 지루했을 것이다. 나는 헤엄칠 수 없기 때문에, 바다는 낯설기에 수영장으로 해줬으면 좋겠다. 코미케 초창기 무렵엔, 오타쿠는 우물안 개구리 같다고 말했지만, 우물이 호수만큼의 넓이가 되면 어떨지, 바다가 되어 세계와 이어지게 되면 어떨지, 처럼 이해할 수 없는 역전현상이 일어나는 것이 즐겁다. 다만, 정보가 많은 것은 낯설어서, 개중에서 골라줘도 베스트라든지, 감동할 수 있다든지가 기준이 아니라, 과거의 만화 잡지 『가로』가 재미 중심이라고 하면서 이토이 시게사토糸井重里 씨, 미나미 신보南伸坊 씨, 아라키 노부요시荒木経惟 씨 등을 기용한 것처럼, 즐거움을 중심으로 골라주는 식이면 좋겠다.

──『JUNE』은 BL의 시대에 들어가면서 휴간했습니다만, 양쪽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입니까.

사가와 : 해피엔딩의 여부. 『JUNE』을 읽은 BL 팬으로부터 「해피엔딩이 아니라서 손해봤다」라고 하는 감상이 와서, 정말 시야가 한꺼풀 벗겨지는 느낌이었다. 여러 노력을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라면, 그 자체로도 현실인데, 어째서 돈을 지불하고도 현실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거야, 돈으로 꿈을 사는 쪽이 좋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공攻め과 수受け는 BL의 대발견입니다. 그건 대발명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쪽이 공이고 저쪽이 수가 아니면 안된달까, 페티시라고 하는 것에 엮여 버렸다.

『JUNE』에 그러한 연관성은 없었습니다. 저는, 좋아하게 된 사람이 이성이어도, 동성이어도 좋다고 하는 점에서 빠져들게 됐습니다. 동물이어도, 로봇이어도 좋아. 그래서, 그건 SF가 되기도 한다. 『JUNE』에 관한 이야기에서 벗어났지만, 이세계전생이 늘어난 것도, 읽고서 외국인이 될 수 있다면, 옛 사람도, 여성도, 남성도 될 수 있다는, 자신에게 편의적인 세계가 엔터테인먼트가 된다는 점은 독서체험과 함께일 것입니다. 근본은 바뀌지 않았다. 작가가 자신이 보고 싶은 것, 읽고 싶은 것을 그려낸다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와 같은, 수요와 공급의 관계가 행복하게 일치하는, 과거가 있었다. 그것이 『JUNE』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 도서정보

『JUNE의 시대, BL이 동트기 이전』

저자 : 사가와 토시히코

가격 : 1,760엔

발행일 : 5월 27일

출판사 : 아키쇼보亜紀書房

엔도 토시아키

문예·음악평론가. 저서로는 『포스트·디스토피아론ポスト·ディストピア論』 (세이도샤青土社), 『디스토피아·픽션론ディストピア·フィクション論』 (사쿠힌샤作品社), 『의미도 모르면서 프로그레시브를 말하지 마라意味も知らずにプログレを語るなかれ』 (릿토뮤직リットーミュージック)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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