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612
유사님의 Weigh Anchor AU
*유사님의 세계관을 참고한 로그입니다.
*쓰다보니 떠올라서 제목으로 정했을 뿐,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차용하지는 않았습니다.
*관련 지식이 전무하여 서술에 헛점이 존재합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우리의 하늘은 늘 잿빛이지.”
“…무슨 의미입니까?”
그는 젠트 베른하르트가 처음 템베릭에 들었던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선배 항해사였다. 그는 드넓은 우주 속에서 늘 낭만을 찾던 이였으며, 종종 젠트가 이해할 수 없는 소릴 내뱉고는 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그가 낭만을 빙자한 의문 모를 소릴 내뱉으면, 젠트가 되물어보는 순서. 템베릭인 두 사람이었으나 만나서 하는 이야기라곤 그런 부류의 잡담이 훨씬 많았다.
늘상 그렇듯 들려온 의문에 그가 말했다.
“우리의 조상은 지구의 사람이라잖아. 비록 태어난 건 이곳이어도, 근본은 잿빛의 지구에 있다… 뭐 그런 뜻이야.”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젠트였으나, 표정은 영 이해하지 못한듯 보였다. 그런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건지, 선배는 키득키득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는 낭만을 몰라. 그렇게 삭막하게 살아서 어쩌냐?”
“어찌 압니까?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것을.”
“방주의 평범한 예술가들이 영감의 장소로 찾는 곳이 지구이기도 하잖아. 그들이 가봐서 영감을 얻나? 소명이 시작된 곳의 존재만으로도, 우리는 많은 길을 맞이할 수 있어.”
그렇다면 당신도 예술가를 하지, 왜 이곳에 있는 것인가.
젠트의 표정이 말하는 바를 깨달은 선배는 다시금 웃음을 터트렸다. 검지 끝을 세워 젠트의 어깨를 콕 찔렀다.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다. 단순히 의무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닌, 어떤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때를 말이야.”
필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확신. 단단한 목소리. 어째서 그리 단호할 수 있는지, 젠트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보금자리를 찾아 탐사하고는 있지만, 방주 안에서의 쾌적함에 필적하는 행성은 여태껏 발견되지 않은 것을. 왜 굳이 잿빛의 오염에 영감을 받는 걸까.’
젠트는 선배의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창에 비친 꿈을 음울한 회색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자면, 아득함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삑- 삐익-
“…아, 이런.”
듣기만 해도 솜털이 곤두설 정도의 높은 기계음이 탐사선 안을 울린다.
그것은 완벽한 여정에서 발생한, 아주 사소한 사건이었다.
젠트는 유의미한 탐사 결과를 얻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는단 말이 있을 정도로 끈질긴 성격이었다. 비록 머리가 나빠 배움은 느리지만, 적어도 몸에 익은 것에선 완벽할 줄 알았다.
허둥대거나 흘리는 법 없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끝맺는 사람.
그러므로, 이번 탐사 역시 그러할 예정이었다. 홀로 탐사선에 오른지 얼마의 시간이 흘렀던가.
샘플을 채집하고 행성 탐색 메뉴얼을 따르는 것은 항상 같았으나, 늘 새로운 일이기에 집중력을 가지고 행했다. 이번에도 탐사 시스템이 안내한 행성이 결국 인류의 종착역으로선 부적합했으나, 토양의 성질에서 인간의 식물을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으니.
탐색이 끝나고 홈인 방주로 돌아가는 도약. 그 과정에서 멀쩡한 줄 알았던 엔진에 문제가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무리한다면 바로 돌아갈 수 있겠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겠지.’
인간의 마음과 기술력이 쌓여온 지금의 시대에, 엔진 하나가 고장이 난다고 해서 문제 되는 것은 없었다. 엔진이 하나만 탑재되는 탐사선은 없고, 나머지 엔진으로도 우주를 가르고 나아갈 힘은 충분했으니.
젠트는 이 사소한 문제가 항해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알았으나, 다시금 신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신의 행위는 모두 누군가의 꿈이자, 그리는 미래의 발판임을 질리도록 교육받지 않았던가. 한 치의 오차 없이 안전하게 방주로 돌아가는 것이 임무의 끝.
하여, 젠트는 비상 착륙을 결정했다. 엔진을 제대로 손본 후 안전하게 방주로 돌아갈 것을 택한 것이다.
그는 곧바로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좌표를 찾았다.
[qv-5n8o-804erw-iuo1]
.
.
.
삐- 삐익- 삐이이…
착지 후, 비상 전력만을 두고 엔진의 시동을 끄자 시끄럽게 울리던 기계음이 잠잠해졌다.
일순간 찾아온 고요. 늘 책임과 목적을 지고 사느라 숨 돌릴 틈 없을 젠트에게도 그 적막함은 참 적응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
그 고요함에 목소리 한 번 내어볼 법도 하건만. 그는 사무치는 적막에도 혼잣말하는 법이 없었다. 템베릭이 된 후 제게 주어진 임무를 따르고 나아가며, 허튼소리나 움직임을 보이는 일이 점차 줄어들어 갔다.
함께하는 동료들이 갈수록 삭막해진다며 핀잔을 주었으나, 젠트는 가무른 미소만 지을 뿐 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렇게 메말라가는 것도 삶의 한줄기일 것이라, 젠트는 자신을 위로했다. 어찌 모든 사람이 꿈을 품고, 또 목표를 가지겠는가? 저의 친한 선배처럼 영원히 이상을 꿈꾸는 자가 있다면, 저처럼 현실을 착실히 걸어가는 자 또한 있는 것이니. ……
오래 머무를 것도 없었기에, 젠트는 곧바로 정비 도구를 챙겨 엔진실로 향했다. 홀로 몸을 실은 탐사선이라 하여도 탐사 중 생활 전반을 모두 이 안에서 해결해야 했기에 규모가 꽤 있었으며, 생활 공간과 기계가 집약된 공간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엔진을 살피는 도중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기 위하여 비상 전력을 제외한 모든 스위치를 내린 상태였다. 내부는 최소한의 빛을 제외하고는 켜놓지 않아 어둑어둑했다.
…그래서였을까? 늘 똑같이 지나는 길, 유독 동그랗게 난 창에 시선을 빼앗긴 것은.
……
바깥으로 시선을 던진 채 우두커니 서 있던 젠트는 한참이 지나서야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생각했던 것보다 별문제는 아니었구나.’
정비 도구를 갈무리해 정리하던 젠트가 안심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예상대로 엔진 하나의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다른 엔진은 모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냉각기 역시 확실하게 작동하여, 적어도 방주에 도착해 제대로 된 정비를 받을 때까지는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돌아가 볼까.’ 그리 말하려던 참이었을 텐데.
늘 매뉴얼처럼 살아가던 그에게 어쩐 일인지 변화가 일어났다. 조종실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 뒤쪽으로 난 출입문으로 향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든 다시 도구를 챙겨갈 수 있도록 보이는 곳에 정리해 둔 젠트는 몸을 보호하는 수트와 생명유지장치를 착용했다. 정비 도구를 챙긴 후 중력으로 몸이 날아가지 않도록 보조할 연결구를 몸에 단단히 부착했다.
탐사선의 뒤쪽 출입구를 향하고 일부 버튼을 조작한다. 이윽고.
치이이이익-
강제로 압력이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익숙하고도 새로운 시선으로, 행성의 표면 위를 굽어본다.
참으로 삭막하고, 덧없는 행성을.
“……”
젠트가 비상착륙을 진행한 행성은 아주 오래전에 탐사가 완료되어 더 이상 찾지 않는 곳이었다. 어느 행성이라 이름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로 작은 크기에 중력 차가 심해, 인류의 희망을 담기에는 진즉 부적합하다 판명된 행성. 이곳에서 채취 가능한 자원마저 탐욕스럽게 모두 긁어간 터라, 이곳에는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고개를 든 젠트는 잠시 울렁거림을 느꼈다. 홀로 탐사를 전전하다 보면 한 번씩 느껴지는 감각이었다.
검진을 해도 이상이 없다고만 나오고, 설마 템베릭씩이나 되어서 멀미를 하진 않을 테니….
긴 시간 앓아온 그 무엇. 그는 결국 이 감각을 ‘외로움’이라고 정의했다.
처음부터 그리 정의한 것은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며 절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하던데. 처음 템베릭이 되었던 젠트는 그런 법칙을 깨트린 것처럼 무덤덤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도중 울렁거림을 느끼거나 일정한 피로를 호소하고는 했지만, 혼자 탐사를 다녀오는 대원들이 종종 앓는 향수병의 기질로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템베릭 동료들이 그를 삭막하다 일컫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었다. 젠트는 모두가 그리는 지구를 바라지 않았으며, 오랜 탐사 끝에 방주로 돌아가는 것에 그 어떤 흥분이나 고양감을 내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저 일이 끝났으니 보고를 하기 위해 돌아가는 그뿐.
젠트의 속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방주에 자기 집이 있기도 하나, 그보다는 저의 소명이 먼저 떠오르는 장소였다. 방주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제가 의무를 이루어야만 하는 이유일 뿐이었으며, 누군가의 말을 빌린다면 저를 삭막하게 만드는 주체일 수도 있었다. 동료들을 기껍게 여기나 마냥 사랑하지만도 않았고, 우리는 광활한 우주 아래서 겨우 오늘을 연명해 갈 뿐이라 여겼다.
그런 생각이 사람을 삭막하게 만든다는 것도 모른 채.
이런 성향 탓에, 차라리 혼자 탐색하는 것이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분명 임무 중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둘러보는 고요한 행성의 전경은 자유를 찾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하여튼. 그런 삭막함을 지닌 젠트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혼자일 때 끊임없이 몰려오던 어지럼증은 방주에 도착해 사람과 마찰하기 시작하면 자연히 사라져갔다. 어떤 약을 처방받아 삼켜도 지워지지 않던 일렁임이었는데. 동료들이 지나가듯 장난스레 말했던 ‘외로워서 그런 거 아냐?’ 라던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되려 그럴법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미미한 애정을 닮은, 딱 멀미처럼 미미한 외로움. 자신이 느끼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후우….”
어째서인지 이번에는 더욱 선명했다. 온몸을 보호하고 있는 장치와 수트로 인해 느낄 수도 없을 이 별의 온도가 뺨에 느껴지는 듯 서늘했다. 예정에 없던 착륙으로 저 역시 향수를 느끼기라도 하는 것일까….
‘웃긴 일이지. 선배가 말했던 이야기의 의미를 이 나이 먹도록 깨닫지도 못하고서, 향수를 느낄 수 있다니.’
멀거니 서있던 젠트가 천천히 탐색선 바깥으로 걸음 하기 시작했다. 가벼운 중력으로 엄한 곳에 튕겨나가거나 넘어지지 않게 조심스러운 걸음이었다. 기계에 숨을 의지한 채, 색이 없는 행성에 발을 디딘다. 기체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무렵, 젠트가 고갤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대기가 없는 곳의 하늘은 방주가 꾸며내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평생을 탐색으로 살아가던 젠트는 수많은 하늘을 보아왔다. 그저 관찰을, 관측을 위하여 살피던 하늘이 오늘에서야 조금은 다르게 다가왔다. 평소라면 느끼지 못했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행성이, 별이 보인다.
각자의 색으로, 혹은 빛으로 빛난다.
혹 빛나지 않는다 하여도, 수많은 행성의 좌표를 외우고 또 기억하는 젠트는 가려진 별들의 위치까지 짚어낸다. 잿빛의 눈동자가 다양한 별을 쫓기 시작한다.
‘어느 하늘이든 그들만의 별은 있구나. 이렇게 보잘것없고, 삭막하고, 존재하는 것이 고작인 이 행성에도.’
행성이나 위성 간의 위치는 상상 이상으로 떨어져 있고, 또 제각각임에도. 마치 자신의 것이라는 듯, 이 별의 하늘은 그들을 담아내었다. 우주는 광활하고, 이런 행성 하나하나는 그 부속품에 불과하지 않은가? 희망이라는 프레임을 씌웠으나, 인류에게도 그저 존재를 연명할 대비책, 혹은 적절한 도구를 찾는 길이 뿐이잖는가.
한데 이 행성의 하늘은 어찌 이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발 디딘 지면은 이리도 거친데, 담은 하늘은 시리도록 사랑스러운가.
젠트 베른하르트, 그는 제게서 퇴색되었다고 여겼던 선배의 말을 다시금 떠올렸다.
‘너도 언젠가는 알게 될거다. 단순히 의무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닌, 어떤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때를 말이야.’
“아….”
방금, 무언가를 깨달은 것도 같았다.
눈이 크게 뜨였다. 행성의 하늘을 담은 회색, 아니 백색의 눈동자는 오염 하나 없이 희게 반짝였다.
그 눈동자가 처음으로 제빛을 찾는 순간이었다. 이 울렁임은 겨우 금방 나아질 멀미 같은 것이 아니었다. 미미한 애정을 닮은 외로움도 아니었다.
그리움이었다. 나의 세상에, 나의 하늘에,
또 나의 별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토해낸 편린이었다.
인류의 희망을 이루고자 나아온 길은, 겨우 임무라는 핑계가 아니었던 거다. 그 꿈 서린 눈동자란 창이 다채롭게 빛날 때, 젠트는 왜 시선을 떼지 못하였나. 그는 이들이 부담과 피로를 안겨주는 존재임을 알면서도, 왜 매번 그 속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는가.
시답잖은 농담과 웃음이 사랑스러웠던 걸지도 모른다. 각자의 꿈을 품은 모습이 반짝였으며, 평생에 해소하기 어려운 향수와 그리움이 애틋했다. 각자는 이 우주 아래 너무도 사소하고 초라한 존재지만, 품은 이상과 순간들이 눈부시도록 찬란해서. 가무르고 투박한 저의 하늘로 품은 것이 들킬까, 거대한 마음을 감당하지 못해 외면해 왔던 것뿐이었다.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제 삶의 의미는 모두 그곳에 있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여긴 모든 순간에서, 저는 진심으로 애정하고, 간절하며, 또 행복을 기원했다.
이 모든 것을 알아버렸는데, 앞으로의 저는 어쩌면 좋을까. 지금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양, 거리를 두며 기울어갈 수 있을까….
깨닫고 난 심장이 옥죄듯 아파진다. 희게 밝아진 눈동자에 물기가 서린다.
“…돌아가자. 어서 돌아가야지.”
우두커니 서있던 몸을 돌려 탐색선으로 향한다.
돌아가자. 그리움으로.
fin.
와아ㅏ아ㅏㅏ… 이걸 완성을 하는군요… 야금야금 쓰기 시작해서 추합이 될까 싶었는데, 베이스가 된 세계관이 전부 좋아서인가, 마무리가 되긴 했습니다…. 드문드문 쓰다보니 설정의 간극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그냥 넘겨주세요. 다시 고쳐 쓸 자신이 없거든요…❤️❤️❤️
세계관을 빌려주신 유사님 넘 감사합니다… 개인로그를 신나서 쓴건 정말 간만이네요. 꽤 긴 글이라 여기까지 읽어주셨을진 모르겠지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혹 발견하고 읽어주셨을 다른 분들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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