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페일
1차
나의 집 처음엔 마른 오징어를 태운 냄새와 비슷했다. 찐득한 고린내가 콧구멍 안쪽의 점막을 따라 들러붙었다. 불은 스웨이드 소파와 커튼으로 번졌다. 플라스틱이 타면서 나는 강렬한 악취는 화재의 근원이 내뿜는 것마저 삼킬 듯했다. 먹물이 터진 것처럼 연기가 시커멓게 거실을 메웠다. 기관지를 지난 열기가 폐까지 인두로 길을 내는 듯한 통증에 나는 숨조차
연우는 창가에서 들리는 나직한 소음에 잠을 설쳤다. 처음엔 벌레가 지나가는 것처럼 사사삭, 간지럽게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잡음이었다. 날짜가 지나면서 밤마다, 그 위에 발소리가 얹히고 웃음이 쌓였다. 이사를 오고 어느덧 한 달째였다. 지난밤에는 사람의 음성까지 겹쳤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속삭였다. '짜증 나'라고. 연우의 방은 13층에 있다.
유기 숨바꼭질을 했다 나는 술래, 네가 숨었다 가장 익숙한 곳부터 찾아보다가 점점 함께한 기억이 드문 곳을 뒤지게 되었다 없다 더는 못 찾겠어 이제 그만 나와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나는 계속 술래, 인기척조차 없었다 내가 말했다 이제 숨바꼭질은 싫어 다른 놀이하자 술래잡기도 좋고 공놀이도 좋아 아니,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그러니까
미쿠와 네로 (미쿠* : 일본의 가상 캐릭터) 미쿠의 그림이 찢어지자 그 애는 죽었다 교회에 모인 이웃들은 그딴 거에 죽냐고 했다 성모마리아는 그딴 거보다 하찮다 현실을 몰라 꿈속에 산다던 애는 미쿠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던 그 애는 꿈만 꾸면 울었다 그 애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던 아로아네 아빠는 입관하던 날 벌금을 내고 풀려났다
책갈피 일기장을 펼쳤다 넘겨보다 가끔씩 멈춰 섰다 그곳엔 아홉 살이 있고 열다섯 살이 있고 열아홉 살이 있다 운 나쁜 아이가 조각난 몸을 줍고 있다 누덕누덕 기워진 아이가 쪽마다 있다 서른 살이 쪽마다 밀어내고 앉았다 다 잊었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무표정하게 등돌린다 나잇값 하려고 책 갈피마다 못 자란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