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나의 집

우리 아니고 나

Lacrimosa by 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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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처음엔 마른 오징어를 태운 냄새와 비슷했다. 찐득한 고린내가 콧구멍 안쪽의 점막을 따라 들러붙었다. 불은 스웨이드 소파와 커튼으로 번졌다. 플라스틱이 타면서 나는 강렬한 악취는 화재의 근원이 내뿜는 것마저 삼킬 듯했다. 먹물이 터진 것처럼 연기가 시커멓게 거실을 메웠다. 기관지를 지난 열기가 폐까지 인두로 길을 내는 듯한 통증에 나는 숨조차 쉬지 못하고 굳어버렸다. 눈앞이 흐려지던 찰나 아들내미가 날 붙들어줬기 때문에 불길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난 아파트 주차장에서 불타는 집을 황망하게 올려다봤다. 두툼하게 덩어리진 연기가 좁은 창문 틈으로 빠져나오려 발버둥치는 듯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짐작 가는 일은 있었다. 확신하기 위해서 내 기억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빈 거실에서 텔레비전이 홀로 떠들고 있었다. 나는 전원을 끄려고 리모콘을 찾아 소파 틈새를 뒤적거렸다. 쇼핑호스트는 부드러운 닭다리살을 달콤한 과일과 숙성 간장으로 조린 치킨이라며 찬사를 늘어놓고 있었다. 230그램씩 두 개 봉지로 파는데 만원이 안 됐다. 그때 부엌에서 강석이 입에 아이스크림을 문 채 거실로 왔다. 둥그렇고 커다란 눈에 구불거리는 머리카락까지, 담임선생을 만나러 가면 백 미터 밖에서도 내가 강석의 엄마라는 걸 알았다.

  "우리 아들! 치킨이 먹고 싶었어?"

  강석은 텔레비전을 흘끗 보고는 대답 대신 빠르게 고개를 내저었다.

  "오늘 저녁엔 강석이를 위해서 치킨 먹을까?"

  "내가 보던 거 아냐."

  아이스크림을 전부 먹고 나자 강석은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들내미 역시 집에 반찬도 많은데 굳이 치킨을 먹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엄마가 사주고 싶어서 그래. 이번 기말고사 백 점 받아오라고 격려하는 차원에서......"

  "난 티비를 안 켰어."

  나는 강석을 향해 눈을 흘기다가 화장실로 향했다. 벌컥 문을 열자 예상대로 양치질을 하던 딸아이가 있었다. 놀란 눈을 하고 나와 시선이 마주친 은주는 치약을 뱉어내며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텔레비전을 다 봤으면 전원을 꺼야지. 코드도 뽑고. 전기세가 땅바닥에 줄줄 새잖아."

  이야기를 듣던 은주는 한 차례 물로 입 안을 헹군 후 대답했다.

  "이만 닦은 다음에 또 보려고 안 껐어."

  "치킨 그까짓 거 계속 봐서 뭐하게. 쓸데없이 입맛만 돋우고 정작 맛은 구릴 뿐이야."

  그러자 딸아이가 여우처럼 쭉 째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먹어봤어?"

  "똥을 먹어봐야 알아? 뻔하지."

  은주의 고개가 바닥으로 향하며 내 시선을 피했다. 또 저런다. 올바르게 판단하지 못해서 비싼 것만 집어먹으려던 딸아이는 이번에도 그딴 거나 먹고 싶은 듯했다. 단단히 일러두지 않으면 시장 가는 길에도 나비를 따라 옆길로 새던 딸아이가 딱 그 모양대로 자랐다. 야무지지 못한 은주에게 다시 한 번 조언하려는데 아들내미가 내 팔을 붙잡았다.

  "엄마, 나 치킨 먹고 싶어."

  나는 강석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었다. 제 아빠를 닮아 나약한 성정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나는 오랜만에 세 가족이 다 같이 마트를 가자며 차콜색 코트를 챙겨 입었다. 이제 열 살 아들내미에게 목도리를 둘러주었고, 딸에겐 모자를 눌러 씌웠다. 문뜩 쳐다본 은주의 옷차림을 본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옷이 이게 뭐니?"

  하늘색 펠트 코트는 올이 여기저기 일어나 있었고 단추 하나는 겨우 달랑달랑 붙어 있었다. 나는 은주를 한 번 쳐다보고 전신거울에 내 모습을 비춰 보며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입을만한 옷이 없어."

  "얼마 전에 까만 패딩 하나 사줬잖아."

  나는 은주의 장롱을 뒤져서 새로 산 옷을 딸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다. 그 애는 물끄러미 나를 보다가 패딩 재킷으로 갈아입었다. 이렇게 일일이 손이 가는 점이 얼마나 번거로운지 모르겠다.

  "너도 이제 성인인데 자기 일은 스스로 하자."

  고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분수에 맞지 않는 허몽이 애를 저렇게 만들었나 싶어 속이 쓰렸다. 크로스백을 매고 딸아이 손에 장바구니를 맡겼다. 한 달 만에 가는 대형마트에서 뭘 사야 할까 고민이 됐다.

 

  새하얀 조명 아래 진열대마다 하나같이 비쌌다. 과자 하나에 천오백 원, 귤 한 봉지가 만 원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내 눈엔 오백 원, 오천 원 가치도 안 될 거 같은 쓸모없는 간식들이었다. 생닭 하나를 집어넣고 대파를 찾는 동안 강석은 카트에 슬그머니 포테토칩 하나를 집어넣었다. 한참을 과일 코너에서 홀로 서성이던 은주는 투명한 플라스틱 팩에 담긴 딸기를 가져왔다. 카트에 넣으려는 순간 나는 가까스로 딸아이의 손등을 쳐낼 수 있었다.

  "이런 거 먹으면 살찌잖아. 그리고 너무 비싸."

  은주는 익숙한 듯 무표정했지만 딸기를 든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어쩔 수 없이 말리게 되었지만 과일 하나 못 먹이는 건 미안했다. 그래서 은주에게 시키지 않고 내가 원래 있던 자리에 딸기를 가져다 놓았다. 은주가 물었다.

  "그럼 난 뭐 먹어?"

  "치킨! 이거 전부 너 먹을 거잖아."

  내가 카트를 가리키자 은주는 안쪽을 살펴보았다. 누구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건데... 안에는 생닭 한 마리와 대파, 감자, 홍고추, 그리고 강석의 포테토칩이 있었다. 딸아이를 위한 먹거리가 네 종류나 되었다. 반면 강석의 몫은 겨우 과자 한 봉지뿐이었다. 나는 마음이 아려왔다. 어리다고 너무 챙겨주지 않았다는 죄책감에 아들내미에게 물었다.

  "아드을, 더 먹고 싶은 거 없어?"

  강석은 제 모자를 꾹꾹 눌러 쓰고 있는 은주를 곁눈질로 보더니 조그맣게 말했다.

  "우유가 먹고 싶어."

  난 유제품 코너로 카트를 몰았다. 브랜드명이 커다랗게 박힌 또 다른 간식들이었다. 그나마 애들 키가 잘 크는 우유라는 말에 속는 셈치고 1리터들이 하나를 집었다. 카트에 담으려는데 포테토칩 아래에 언제 넣어놨는지 작은 딸기 우유 두 개가 숨어 있었다. 쓸데없는 걸 또 들고 올까봐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 언제 잽싸게 챙겨 놓은 걸까? 나는 은주를 한 번 흘겨보고 모른 척 계산대로 향했다. 딸기 우유 정도는 괜찮겠지. 마음 한편에서는 내가 아이들에게 너무 물렁하게 구는 것은 아닐까, 그걸로 절제하는 법을 모르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처음엔 닭을 튀기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요리를 하려니 생각이 바꿨다. 튀김은 건강에도 안 좋고 기름을 너무 많이 필요로 했다. 정리하는 건 또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치우는 상상만 해도 눈앞이 아득했다. 계획이 좀 틀어지긴 했지만 아이들은 엄마가 그럴 수도 있다며 이해해줄 것이었다. 소금과 후추에 20분 재워둔 닭고기를 케첩과 물엿으로 만든 양념을 오목한 프라이팬에 부었다. 미리 잘라둔 양파와 당근도 넣고 함께 볶으려는데 아들내미가 다섯 발짝 뒤에서 목만 길게 늘여 프라이팬 안쪽을 보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금방 만들어줄게."

  그때 휴대폰의 단조로운 벨소리가 울렸다. 친구 희진이었다. 나는 스피커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어, 희진아."

  "지금 바빠?"

  희진은 중학교 동창생이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으로 한겨울에 배를 곪았다는 점이 나와 닮았고 관심사도 비슷했다. 시간이 꽤 흐른 후 그는 인터넷 강의만 듣고 공인중개사 시험에 합격했다더니 녹양동에 부동산을 차렸다.

  "요리 중이지. 근데 왜?"

  "오늘 보자. 이번에 좋은 소식 하나 들어왔어."

  나는 키득키득 웃었다. 희진이 귀띔해주는 좋은 소식들로 나 역시 두 차례 이득을 본 바가 있었다. 이제 세 번째, 준비는 다 되어 있었다.

  "어떤 좋은 소식?"

  "지금 말하면 재미없지. 푸짐하게 저녁 먹고 디저트로 맛깔나게 풀어야 하지 않겠어?"

  이 얄미운 친구는 대가 없이 베풀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 사는 일에 공짜는 없다고, 더군다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버는 일과 관련된 정보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냐는 희진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입맛을 다시다가 물었다.

  "알았어. 지난 번 파스타 집에서 볼까?"

  "같은 곳은 지겹잖아. 아웃백 디너 세트메뉴가 요즘 평이 좋던데....."

  "요즘 제철이라고 애슐리 뷔페에서 딸기 축제 하더라."

  수화기 너머로 짧게 혀 차는 소리가 들렸다. 학창시절에 딸기가 먹고 싶다고 몇 차례 과일가게에서 딸기 서너 알을 훔쳐 오던 희진이었다. 그때마다 내게 하나를 건네며 자기 대신 숙제를 해달라고 흥정하곤 했다. 희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가 싶더니 말을 이었다.

  "빕스에도 딸기 많아."

  그렇게 우리는 한 시간 후 의정부 빕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만들던 닭도리탕은 어쩌나 고민하는데, 거실에 앉아 딸기우유를 마시고 있는 은주가 눈에 띄었다. 나는 딸아이를 데리고 부엌으로 왔다. 오른손에는 주걱을, 왼손엔 프라이팬 손잡이를 들려주었다.

  "할 줄 알지? 엄마 갑자기 일이 생겼거든. 너희끼리 먼저 만들어서 먹어."

  나는 급히 코트를 입은 후 구찌 로고가 흐리게 박혀 있는 까만 숄더백과 지금과 같은 만남을 대비해 준비했던 쇼핑백을 챙겼다.

 

  희진은 먼저 와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뽀얗게 화장을 하고 하얀 정장에 상아색 가방을 등받이에 뒀다. 왼쪽으로 약간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자석버클에 붙은 브랜드명이 반쯤 보였다. 프라다. 짝퉁이겠지.

  "오래 기다렸어?"

  "눈 빠지는 줄 알았지."

  샐러드바엔 관심이 없다며 스테이크를 시키자던 희진은 메뉴판을 보는 내내 손목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난 눈치 못 챈 척을 하려다가 현란하게도 물 컵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모습에 아량을 베풀기로 마음먹었다.

  "어이쿠, 눈부셔! 그 팔찌는 뭐야?"

  희진은 기다렸다는 듯 로즈골드 색상의 뱅글 팔찌를 들이밀었다.

  "우리 딸이 엄마 생일이라고 하나 사줬어. 가방이랑 같이!"

  그리고 자연스럽게 등받이에 두었던 것을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나는 가늘게 눈웃음을 지어 보인 후 직원을 손짓으로 불렀다. 희진은 나를 급히 막으며 아직 메뉴를 고르지 못했다고 했다. 그제야 우리는 스테이크 2인 세트를 먹을 수 있었다.

  "은주는 요즘 뭐하고 지내? 걔는 이번에 수능 봤지?"

  "방학이라 집에서 그냥저냥 지내."

  "대학은?"

  나는 눈동자를 빙그르르 돌리며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여기 조명이 너무 어둡지 않아?"

  "다 떨어졌어?"

  집요한 년. 난 어깨를 으쓱하곤 답했다.

  "인서울 붙었어. 근데 재수 시키려고."

  "왜? 학원도 안 보냈는데 그 정도면 잘한 거잖아."

  나는 희진의 팔찌와 가방을 슬쩍 쳐다봤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던 그의 딸은 사회초년생임에도 저런 선물들을 척척 가져다 바치는 모양이었다.

  "네 자식보다야 잘했지. 그런데 인서울에서도 겨우 턱걸이 대학이야. 스카이 정도는 되어야 학비도 대줄 가치가 있어. 애매하게 대학 나와서 뭣에 써? 당장 돈도 못 벌어올 건데."

  은주는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야무진 아이였다. 역삼동의 유명 학원을 다니는 반 친구들에게서 문제집을 잘도 얻어 왔다. 이미 채점이 된 부분은 자기가 지우개로 지워가면서라도 풀었다. 인터넷 강의 아이디도 친구들에게서 곧잘 빌려서 공부하곤 했다. 그래서 효율적으로 살아가는 법을 은주도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성적은 떨어지고 성격도 점점 우중충해졌다. 내가 낳은 내 딸이 자기 아빠를 닮아가는 거 같아 속상했다. 내가 생각에 잠긴 사이 희진은 턱을 괴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치자 나는 그를 뚫어버릴 것처럼 노려봤다. 희진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좀 의외네. 우리 둘 다.... 잠깐, 이번 자금은 원래 학비였어?"

  "아니. 걘 기대도 안 해. 강석이나 제대로 키워보려고"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가 나오자 희진은 '네 가족이니 네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말하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녹양동에 소액 매물이 나왔다고 했다. 지금은 낡고 오래된 동네인데다 서울에서도 북부에 겨우 걸치듯 위치해 있어서 집값이 낮은 곳이었다. 하지만 그의 소식통에 따르면 재건축은 확정된 사안이며 조만간 발표가 난다는 것이었다. 정보가 확실하다면 사들인 돈에 비해 몇 배는 불려서 받을 수 있었다. 신축이니 세를 놓아도 되었다. 매입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나는 갖고 온 쇼핑백을 내밀었다. 희진은 이게 뭐냐면서 내용물을 꺼냈다.

  "겨우살이 담금주구나."

  "제주 한라산에서 자란 거야."

  어린 시절 희진은 나에게 겨우살이를 닮았다고 했다. 참담한 겨울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푸른빛이자 힘겹게 겨우, 정말 겨우겨우 삶의 무게를 버텨낸 억척스런 생명력이라 했다. 나는 그 비유를 들을 때마다 환하게 웃었다. 그는 병을 만지작거리며 뜻 모를 미소를 지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겨우 끌어올린 듯한 희진의 입 꼬리가 열렸다.

  "한방에서 겨우살이를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나는 입을 다물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식욕을 자극하는 고기 냄새가 훅 끼쳤다. 식탁에 앉아 달그락거리며 닭다리를 젓가락으로 집어 먹는 강석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입가에 벌건 양념을 묻혀가며 먹고 있기에 난 웃으며 다가갔다.

  "입에 다 묻힐 거면 손에 양념 묻히기 싫다고 젓가락으로 먹어서 뭐해. 이러느니 편하게 손으로 잡고 뜯어라."

  나는 젓가락을 치워버리고 아들내미의 손에 닭다리를 쥐어 주었다. 강석은 뻣뻣하게 굳은 채로 날 흘끔흘끔 쳐다보다가 손에 들린 닭다리를 천천히 뜯어 먹기 시작했다. 내가 준비한 요리로 맛있게 배를 채우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이 다 푸근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맛있니?"

  "응, 누나가 만들어줘서 더 맛있어."

  나는 충동적으로 닭도리탕이 든 그릇을 툭 밀었다. 살짝만 밀 생각이었는데 그릇은 식탁에서 떨어져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뒹굴었다. 부엌에 있던 은주가 놀라서 달려왔다. 그릇이 깨지진 않았는지 확인한 후에 놀라서 울먹이는 강석을 안고 등을 토닥거리는 딸아이는 그제야 나의 존재를 인식했다. 제 동생이든 엄마든 사람을 먼저 챙겨야 할 텐데 그릇 깨진 것부터 확인하다니..... 나는 강석의 뺨과 손을 매만지는 은주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았다.

  "양념 범벅이 된 애를 안 닦아주고 쓰다듬기만 하면 다야? 네가 한 일이라곤 내가 손질하고 만든 재료를 겨우 볶기나 했으면서 동생 하나 제대로 못 챙겨?"

 멀뚱히 서서 아무것도 안 할 거냐고 내가 지적하자 그제야 딸아이는 바닥에 떨어진 닭고기를 줍고 손걸레로 양념을 닦아냈다. 엄마에게 칭찬 받고 싶었다며 상장이라도 들고 오던 내 딸은 너무 많이 망가져버린 거 같았다. 내가 강석을 안고 있는데 설거지를 끝낸 은주가 머뭇거리며 말을 걸어왔다.

  "엄마, 나 빨리 등록금 내야 해 ."

  "돈 없다."

  "인서울만 들어가면 내준다며."

  딸아이의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하지만 난 정말로 돈이 없었다. 세입자 하나는 월세를 석 달 치나 밀렸고 다른 하나는 계약기간도 안 끝났는데 보증금 빼서 나가겠다고 난리였다. 당장 생활비를 유지할 수나 있을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은주의 대학 등록금으로 낼 돈은 한 푼도 없었다.

  "서울에 발끝 겨우 걸쳐놓은 걸로 뻔뻔하긴. 네가 스카이를 갔으면 빚이라도 내서 보내줬을 거야. 하지만 네가 합격한 곳에 그럴 가치가 있을까? 난 모르겠네."

  "말이 다르잖아. 인서울이라고 했잖아!"

  나는 또 딸아이에게 이전에 했던 조언을 반복해야 했다. 단어가 아니라 문맥을 보라고, 나무가 아니라 숲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네가 이 모양이 된 거라고 사실을 직시하게 만들어줘야 했다. 은주는 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울음을 꾹꾹 참고 있었다. 그 모습이 가슴 아팠지만 나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세상을 알려줄 의무가 있었다. 잔인한 세상이다. 겨울보다도 참혹하다. 아무리 학력이 받쳐줘도 돈이 없으면 다 무슨 소용이야, 네 애비처럼! 어느새 은주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아빠한테 갈래."

  말은 잘했다. 남편은 이혼 후 해가 여덟 번 바뀌는 동안 연락한 적이 없었다. 오 년, 이혼 후 배우자였던 사람의 재산 절반이 빚을 진 자의 재산으로 해석되는 기간이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의 명의를 나로 바꾼 다음 딱 오 년만 파산 신청을 하지 않고 견디라 했었다. 오 년은 좀 괴롭더라도 남은 오십 년이 편할 거라고 설득했었다. 하지만 기간이 지났는데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조차 없었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잘난 김 사장님은 어딘가에서 딴 여자랑 새집 살림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도 모르는 그의 행방을 딸아이가 알 리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은주를 달래보려 애썼다.

  "그러지 말고, 은주야. 너 이제 성인이잖아. 돈 벌면서 공부하면 돼. 힘겹게 널 키워낸 집에 보탬도 되고 공부도 하고, 그거야말로 일석이조잖아."

  나는 딸아이를 계속 이해시켜야만 했다. 우리 집엔 돈이 없다고, 당장 너 하나만 사는 집이 아니라고 반복해서 말했다. 내가 있고 동생이 있고, 또 너 자신마저도 있는 이 집에서 살아가려면 돈이 있어야 하지 않냐는 뜻이었다.

  "너 때문에 온 식구가 다 길거리에 나앉을 수는 없잖아. 그치?"

  은주를 안고 천천히 등을 쓸어주며 나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엄마는 돈이 없어서 중학교 밖에 못 나왔어. 그래서 대학 나온 네 아빠를 만나면 행복할 줄 알았단다. 하지만 틀렸던 거야. 그 사람은 같잖은 사업을 벌이다가 우리 가족을 끔찍한 경제 위기로 몰아넣었어. 그걸 이겨낸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였단다. 물론 네 아빠도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 네가 지금 나에게 떼를 쓰는 것처럼.

 

  집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며칠째 은주의 얼굴이 창백하지만 딸아이도 자기 가정을 꾸리고 애를 낳아보면 내 행동을 이해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당장은 상심했을 은주를 위해 닭도리탕을 준비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하게 희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난 양념을 만들고 있었던 탓에 스피커폰으로 통화해야만 했다. 빌라 쪽 세입자가 문제였다. 그 집은 남편이 바람나서 없는 가정이었는데, 단둘이 남은 모녀가 결국 이사를 가며 남편 쪽 짐은 그대로 두고 갔다는 내용이었다.

  "그거 멋대로 치우면 사유재산에 손댔다고 벌금 내야 해."

  어디까지나 그 바람났다던 남편 쪽이 돌아와 신고를 했을 때 이야기였다. 더군다나 안 치우면 다시 세를 놓을 수 없었다.

  "사진 찍어놓고 치운 다음에 귀찮아질 거 같으면 그때 말하자. 애초에 식구 아니신 모양이고 보증금까지 빼서 나간 마당에 뭐가 문제냐고."

  집 얘기가 나온 김에 희진과 월세를 밀린 아파트 한 동은 어떻게 할까 이야기하기도 했다. 젊은 아가씨가 혼자 사는데 무슨 돈 나갈 일이 그리 많다고 지불이 밀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희진이 내게 말했다.

  "사정이 있겠지. 겉으로만 봐서는 누가 알겠어."

  "하긴 게으른 것도 사정이라면 사정이겠다. 그치?"

  난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잠시 그에게서 말이 없었다. 나는 몇 차례 '여보세요? 내 말 안 들리니?'라고 통신 상태를 확인했다.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들려. 아주 잘 들리고말고. 일처리를 마저 해야 할 거 같아. 나중에 내가 또 연락할게."

  부동산 일이 요즘 잘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해볼까 고민했다. 인터넷 강의는 한 번 결제하는 것만으로 시험에 붙을 때까지 계속 들을 수 있었다. 문뜩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뒤에 강석이 있었다.

  "엄마는 정말 거짓말쟁이였구나."

  "그게 무슨 소리니?"

  강석의 동그란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우리 집은 가난하다 했지 않냐며 조막만한 손에 핏물이 밸 정도로 주먹을 쥐고 있었다.

  "누나가 말해줬어. 엄마는 부자래. 집이 여기 말고 더 있다고 했는데 난 그 말 안 믿었거든. 근데 내가 틀렸나봐."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몇 푼 안 되는 땅 조금 있다고 부자라 할 수 있을까? 거기에서 나오는 월세로는 자식 둘을 홀로 키울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았지만 그래도 부족해서 빌어먹을 돈, 돈, 돈! 마음 졸이며 살았다. 그런 내가 부자라니 말도 안 됐다. 당장 강석의 오해를 풀어야 했다. 나는 딸아이를 찾아 작은 방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이 방을 마련해준 것만도 감사해야 할 노릇이었다. 나는 다섯 남매가 좁은 방에서 뒤엉켜 살았는데 내 자식들은 적어도 한 방에서 두 명만 생활하고 있으니까.

  "너 동생한테 무슨 헛소리를 한 거야?"

  은주는 창가에서 멍하니 밖을 내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자기 아빠를 쏙 빼닮은 눈과 표정이었다. 분명 웃고 있는데 보고 있자면 왜 기분이 나쁜지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네 동생이 오해할 말을 하면 어떡하냐며 화를 냈다. 너희에게 몇 번이나 이해를 구했다고, 이혼녀 딱지 달고 돈까지 없어서 자식 둘 키우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아냐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 이름으로 집 세 채 있는 건 뭐야?"

  "그거라도 없었으면 너희가 지금처럼 살 수 있을 거 같아? 따뜻하게 보일러를 돌릴 돈이 있었겠냐고. 수도세는 어쩌고. 관리비는, 매달 나가는 식비는 어떻게 감당할래. 너는 또 얼마나 많이 처먹는데!"

  "내 별명이 뭐였는지 알아? 3반 거지였어. 대체 뭘 그렇게 많이 처먹는다는 거야."

  딸아이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강석은 어느새 은주의 옆에 서서 손을 잡고 있었다. 저것이 모자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한 게 틀림없었다. 나에게서 보석과도 같은 내 아들을 빼앗으려는 모양이었다.

  "그 집들은 어떤 돈으로 샀어?"

  "강석아, 이리 와."

  하지만 아들내미는 은주의 뒤로 숨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이차가 많이 나니까 딸아이에게 자신이 엄마인 것처럼 동생을 돌보라고 한 것이 내 실수였다. 뒤에서 자식 사이 이간질이나 하고 있는 은주를 어떻게 바로잡아줘야 할까 고민하다가, 나는 후레자식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로 했다. 나는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어 은주의 머리채를 쥐어뜯고 흔들었다. 손가락에 긴 머리카락이 감겨서 베일 지경이었지만 이 기회에 버릇을 고쳐놔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었다. 엄마니까. 엄마한테 그따위로 굴 거면 이 집에서 나가 살라며 쥐었던 머리를 패대기쳤다. 은주는 쿵 소리를 내며 문에 부딪혔다. 낳아주고 키워준 은혜는 모르고 배가 부른 투정을 하고 있는 딸을 나는 어찌해야 했을까?

 

  그날 밤 한밤중에 딸아이가 젖은 손으로 나를 흔들어 깨웠다. 휘발유의 거북한 냄새가 나를 훅 덮었다. 반쯤 뜬 눈으로 이게 무슨 악취냐고 물었지만 은주는 안방에서 나오라고 할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장 환기부터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코를 감싸 쥐며 방 창문을 열었다. 거실에서 아들내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왜 그래?"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빠르게 거실로 나갔다. 형광등을 켜지 않아 어둑했으나 바깥에 늘어선 가로등과 다른 동 아파트 불빛 덕분에, 아까 딸아이의 몸에서 진동하던 휘발유 냄새 때문에 상황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나는 강석을 등 뒤로 숨겨서 슬금슬금 출입구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은주와의 거리는 팔을 뻗어도 닿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너 이게 무슨 짓이니?"

  그러자 딸아이는 플라스틱 라이터를 쥔 손을 불쑥 내밀었다.

  "사과해."

  "은주야. 일단 그거 내려놓고....."

  "사과하라고."

  그 모습을 보니 식은땀이 났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요동쳤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나보다 더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강석을 위해 용기를 쥐어짜냈다.

  "그래. 네가 손에 든 걸 놓으면 사과해줄 테니까....."

  "지금 당장 미안하다고 해."

  "알았어. 내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은주는 또다시 내가 감정을 읽어낼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찌푸린 미간에 가느다랗게 뜬 눈과 찢어질 듯 위로 끌어당겨진 입 꼬리를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다.

  "뭐가 미안한데?"

  그 말에 나는 순간적으로 울컥해서 목소리가 높아졌었다. 지금에 와서는 내 실수를 인정하겠다.

  "다! 내가 전부 잘못했어. 미안해!"

  더 상냥하고 부드럽게 말해야 했는데..... 이 말을 듣고 딸아이가 '엄마!'라고 외치던 소리는 길게 늘어지더니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비명으로 변했다. 귀신이라도 들린 듯 악을 쓰던 은주는 라이터를 켜서 불을 제 가슴팍에 가져다 댔다. 작은 불씨는 가슴에서부터 어깨를 타고 올라가 몸집을 키웠고 순식간에 은주를 집어삼켰다. 내가 낳은 딸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그것은 버둥거리며 연기가 꼬랑지처럼 달린 불덩이를 허공에 휘둘렀다. 새빨갛게 솟구친 불길과 날카로운 비명을 올가미 삼아 나와 강석을 잡아당길 것만 같았다. 아주 잠깐, 정말로 붙잡혀 있었는지도 몰랐다. 강석이 내 팔을 잡아끌고 나오지 않았다면 영락없이 그곳에서 정신을 잃었을 것이다.

 

  화마가 집어삼킨 것의 대부분은 플라스틱, 종이, 쇠붙이 같은 것일 텐데도 내 콧속에는 여전히 단백질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소방차가 도착해서도 시커먼 연기는 한참 동안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대체 왜 그랬니, 못난 것. 뭐가 그리 싫었어, 못된 것..... 한참을 통곡하던 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진실을 깨닫자 내 손끝은 감전된 것처럼 저리기 시작했다. 아랫입술이 떨리고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아아, 내 딸아이는 분명 그런 의도였다. 지독한 년. 사람 죽은 집이라고 소문나면 값이 바닥을 칠 텐데! 하지만 이번 비극도 극복할 것이다. 나는 겨우살이니까. 지독한 눈보라 속에서 그 무엇보다 마지막까지 남을, 삶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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