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불쌍한 내 새끼

인내의 열매

Lacrimosa by 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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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우는 창가에서 들리는 나직한 소음에 잠을 설쳤다. 처음엔 벌레가 지나가는 것처럼 사사삭, 간지럽게 스치고 지나가는 듯한 잡음이었다. 날짜가 지나면서 밤마다, 그 위에 발소리가 얹히고 웃음이 쌓였다. 이사를 오고 어느덧 한 달째였다. 지난밤에는 사람의 음성까지 겹쳤다. 낮게 울리는 목소리가 속삭였다. '짜증 나'라고. 연우의 방은 13층에 있다.

 

  아침이 되자 그는 퀭한 눈으로 방을 나왔다. 건조한 눈은 뻑뻑했고, 목을 돌리자 우두둑 소리가 났다. 그때 거실에 있던 아버지가 상냥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오늘도 못 잤어? 안색이 안 좋구나."

  "예에, 뭐... 그렇죠."

  연우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오늘도 아버지가 하는 걱정은, 국어책을 읽는 듯했다.

  "안타깝기도 하지."

  그는 찌푸린 미간을 짚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들을 향한 반응은 거기까지였다. 아버지는 텔레비전으로 시선을 돌렸다. 교회 예배를 녹화한 영상이었다. 통기타와 피아노 반주에 맞춰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불쌍한 저희를 굽어보소서. 어여삐 여기소서.

  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화면을 감상했다.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혈색이 환했다. 노래가 끝나자, 설교하기 위해 목사가 단상 위에 섰다. 아버지 자신이었다. 그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운을 뗐다. 욥기 23장 10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과 같이 되어 나오리라'. 신이 욥이란 자를 총애하였으므로 악마가 그에게 고난을 주었고, 이를 극복한 욥은 보상으로 이전보다 찬란한 영광을 누렸다는 내용이었다. 아버지는 열정적으로 강론을 펼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입꼬리를 연신 씰룩거렸다. 눈은 몽롱하게 풀려서 황홀경에 빠진 듯했다. 연우는 옆에서 질색하여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잠시 멈춰 선 채, 불면의 원인을 어떻게 해야 없앨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겼다. 처음엔 벌레 소리만 들렸으니, 그거라도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진열장 안을 뒤적거리던 연우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혹시 살충제 어디 있는지 아세요?"

  "응? 뭐라고?"

  영상 속 자신에게 몰입해 있던 아버지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 되물었다.

  "벌레 죽이는 약 어딨냐고요. 늘 있던 곳에 없어서요."

  "어제 시우가 가져가더라."

  텔레비전에서 아버지는, 힘 있고, 떨림 없는 목소리로 희망, 사랑,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모든 역경을 견디고 나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는 부귀영화 이야기도 있었다. 이 모든 소리를 뒤로하고, 연우는 시우의 방으로 갔다.

  그 방은 연우가 쓰는 곳보다 남향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여름에 덜 덥고, 겨울에 덜 추웠다. 바닥에 목재 무늬를 입힌 비닐 장판을 깔았다는 점이나, 벽지가 베이지색인 것은 연우의 방과 비슷했다. 하지만 장판이 더 도톰한 감이 있었고, 벽지는 하얀 비둘기가 포인트 무늬로 새겨져 있다는 점은 달랐다. 삼 년 전부터 이어진 사소한 차이 중 하나였다. 방 침대에는 연우와 똑같은 얼굴에 머리카락만 더 짧은 남자가 아직 잠결에 뒤척이고 있었다. 연우가 수납장을 뒤적거리고 있자, 인기척에 시우가 부스스 눈을 떴다.

  "뭐하냐?"

  "벌레약 찾는다. 어제 네가 썼다며."

  "이사 오고 나서 계속 벽지 안쪽에 지네 기어다니는 소리가 났거든. 고막을 살살 긁는다고 해야 하나... 네 방에도 나왔어?"

  적어도 벌레 소리는 실존한다는 뜻이었다. 연우는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품을 늘어지게 하던 시우는 침대 밑에 손을 넣어 몇 번 휘적이더니, 뿌리는 살충제를 찾아 휙 던져주었다.

  "벌레인지 뭔지, 아무튼 나오긴 했어. 너 찾으러 가다가 얼굴 보고 방을 헷갈렸나."

  이에 시우는 헛소리하지 말라며 연우에게 베개를 느리게 던졌다.

  "이 기회에 네가 나 대신 좀 키워봐라."

  "내가 미쳤냐?"

  그는 힘없이 날아오는 베개를 받더니, 쌍둥이에게 다시 던졌다. 시우는 되돌아온 베개를 품에 꼭 안고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다.

  "한 번쯤은 미쳐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 실없는 소리에 연우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한 손에 살충제를 들고, 그는 손을 흔들며 방을 나섰다.

  "그래. 벌레한테는 헛소리하는 주인한테 돌아가라고, 잘 일러둘게."

  거실에선 여전히 힘찬 강론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가엾을 어린양을 사랑으로 인도하소서, 사악한 시련을 이겨낼 힘을, 다른 누구도 아닌 저희에게 주소서.

 

  방 전체에 약을 한 번 쳤으니, 연우는 사람 목소리는 몰라도 벌레 소리 정도는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다고 사라질 소리이긴 하냐는 회의감이 동시에 들기도 했지만, 사람은 무엇이든 노력을 한 이상 결과에 대한 티끌만 한 희망 정도는 갖는 법이었다. 어느덧 밤이 되자 새카만 실망만이 선명해지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처음과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할 것처럼 벌레 다리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귓바퀴를 긁는 듯한 잡음은 어느 순간부터 선명해지더니 점점 뜻이 있는 소리로 변했다. 창가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분명히 '죽어'라고 했다.

  '나한테 왜 이러는데! 잠 좀 자자!'

  그리고 문뜩 이 모든 상황이 가위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는 눈을 꾹 감고,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으려 애썼다. 이사 후 잠자리가 바뀌면서, 한 달 내내 가위에 눌렸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는가. 멀리서부터 들리던 소음은 점차 벽의 중앙으로 다가왔다. 연우가 누운 자리 바로 위에서, 손톱으로 벽 긁는 소리가 났다. 시멘트 부스러기가 벽지 사이로 흘러내리는 듯도 했다.

  '난 미친 게 아냐. 가위에 눌렸을 뿐이야.'

  그의 생각이 맞다면 몸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었다. 그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손가락을 움직여보았다. 기대와 달리 너무나 자유스럽고 시야가 맑았다. 연우의 아랫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킨 후 주위를 살폈다. 같은 악몽을 연속으로 꾸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어떤 때는 꿈과 꿈이 이어지기도 한다는 이야기가 텔레비전에 자주 나왔다. 가위가 아니라면 악몽일 거라며, 그는 자신의 가슴께를 떨리는 손으로 두드렸다. '나는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라고 중얼거렸다. 혼잣말을 한 후에도 방은 고요했다. 겨우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나 싶었다.

―킥킥

  방심한 틈을 타 창가에서 낯선 목소리가 키득거렸다.

  "안 괜찮네, 씨x."

  연우는 신경질적으로 외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베개 양쪽 끝을 당기고, 식은땀으로 축축해진 등을 벽에서 돌린 채 다시 눈을 감았다. 이 상황이 악몽 자체일 수도 있다는 작은 기대를 하고, 그대로 밤을 새웠다.

 

  해가 뜨고 나서야, 그는 밤새도록 자신을 긁던 소음이 꿈이나 가위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만을 깨달았다. 눈 밑이 퀭한 채로 마른 입을 축이러 방에서 나오자, 거실에는 여전히 아버지가 있었다. 그는 연우가 나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버지,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요."

  하지만 아버지는 찬송가 영상에 몰두한 상태라, 말소리를 듣지 못한 듯했다. 연우는 아버지의 팔을 슬슬 잡아당겼다. 그러자 아버지는 빽 소리를 지르며 잡은 손을 뿌리쳤다. 연우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는 헛기침을 한 후에 어색하게 말을 이었다.

  "깜짝 놀랐잖아. 왜 말로 안 하고 사람을 놀라게 해?"

  "불렀는데 아버지가 못 들으신 거예요."

  "그래도!"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지르고 연우를 노려봤다. 눈빛이 불에 달군 쇠구슬처럼 시뻘겠다. 그는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딱따구리처럼 말을 쏟아부었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작업인지 알아? 더 좋은 강연을 해야 사람이 모여. 사람이 모여야 교회도 운영하고, 온 가족을 먹여 살리지. 너는 이제 성인이면서 시우처럼 공부를 하냐, 돈을 벌어오냐. 근데 아비 일하는 거 방해까지 해야겠어?"

  갑작스레 쏟아지는 폭언은 예상한 부분인 듯, 연우는 자기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네, 죄송합니다.' 그 한마디를 듣고 나서야 아버지는 리모콘 버튼을 꾹 눌러서 텔레비전 볼륨을 높였다. 그는 평온을 되찾은 듯했다.

  "벽에 거는 십자가 하나만 주세요. 낡은 것도 괜찮고요."

  아버지는 언제 화를 냈었냐는 듯, 다시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낮게 울리는 상냥한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우리 아들, 십자가가 필요했구나. 안 그래도 집에 십자가 장식은 많은데, 굳이 벽에 거는 게 하나 더 필요하니?"

  "제 방에 둘 거예요. 거긴 하나도 없잖아요."

  그러자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 끝을 내려, 과장되게 울상을 지어 보였다. 그는 길고 매끄러운 손으로, 연우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듯 쓰다듬었다.

  "아들아, 내가 왜 네 방에서 모든 십자가를 내렸겠니? 더는 그 어떤 죄도 짊어지지 말라는 뜻이었다. 너는 이미..."

  "네, 지옥불에 타버릴 죄를 지었죠. 알고 있습니다."

 

  삼 년 전, 쌍둥이가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등교 둘째 날부터 연우의 책상 위로 우유갑 하나가 통째로 쏟아져 있던 게 시작이었다.

  "어떤 새끼냐?"

  소리를 높여 외쳤지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각자가 하던 이야기를 하고, 장난을 치거나, 아예 교과서에 코를 박았다. 그러던 중 한 명이 연우를 흘끗 쳐다보다가 '킥킥' 소리 내어 웃었다. 요섭이었다. 그는 중학교 때부터 다섯 명 정도, 다른 반 학생들과 무리를 지어 다녔다. 그가 갖고 다니는 붉은색 송아지 가죽 필통과 발매 당일마다 바뀌는 휴대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왔다는 노란 체크무늬 가방 같은 것에 사람이 꼬이는 것뿐이라, 멤버는 항상 바뀌었다. 어쩌면 연우는 그 순간만 참고 견디면 되었을지도 몰랐다. 진작에 금이 가기 시작한 교실이라면, 어설픈 오기나 아집으로 얼마나 고칠 수 있을까? 연우는 요섭의 어깨를 잡아 돌렸다.

  "너냐?"

  질문을 듣고 무리는 돌림노래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침을 튀겨가며 목구멍에서 가래가 끓는 소리로 웃었다.

  "봤어? 증거 있어? 아니면... 얘들아! 이 새끼 책상에 구린내 나는 우유 쏟는 거 본 목격자 있냐? 아, 구린 냄새는 네 자리라서 나는 건가?"

  미간을 찌푸리거나 흘겨보는 이는 있어도, 그 자리에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연우는 이때 아차 싶었다. 알았다며 자리로 돌아가려던 그의 뒷덜미를 요섭이 낚아챘다.

  "어디 가. 증거도 없으면서 사람을 모함했으면, 사과해야지. 이거 완전히 쓰레기잖아!"

  연우 자신이 한 거라고는 어깨를 잡아서 그가 한 짓이냐고 물은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부풀려져서 추궁당할 문제일까, 그런 의문도 잠시였다. 더 이상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미안하다' 한마디를 하고 다시 돌아서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쉽게 연우를 놓아주지 않았다. 이번엔 어깨를 붙들었다.

  "그게 미안하다는 사람 태도냐?"

  욕설과 조롱이 섞이어 그의 귀를 파먹기 시작했다. 생선눈깔처럼 탁한 열 개의 시선이 파리처럼 주위를 빙빙 돌았다. 조회 시작종이 울리고서야 그들은 자리로 돌아갔다.

  "새끼가 어제부터 개 같이 구네."

  욱하는 마음에 '어제 내가 뭐!'라는 말이 혀 밑까지 튀어나오려 했다. 하지만 이제 막 시작한 고등학교 생활을 엉망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참자. 참아야 한다. 연우는 그렇게 오래도 참았다. 책상 서랍 안에 압정이 들어가 있고, 벗어놨던 운동화 안에 가래침이 들어가 있는 것도 감내했다. 누군가 그의 머리 위로 뜨거운 된장국을 쏟아놓고 도망치는 게 일상이 되어도, 견뎠다. 두 달쯤 지난 후 너무 괴로워서 연우는 그동안의 일을 아버지에게 말했다. 자식의 고통에 그는 엉엉 울면서 연우의 뺨을 쓰다듬었다.

  "맙소사, 불쌍한 내 새끼! 그동안 힘든 걸 어떻게 참았을까!"

  부자는 끌어안고 한참을 울었다. 연우는 이제 아버지가 어떻게든 해주실 거라 생각했다. 담임선생에게 이야기하든, 그놈의 부모님과 담판을 짓든, 어떤 형식으로라도 자신을 지켜주리라.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흘렀다.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는 물론 담임선생도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으니, 괴롭힘도 당연히 그대로였다. 연우는 다시 아버지에게 호소했다.

  "아빠, 저 너무 힘들어요. 죽을 거 같아요."

  "아아, 불쌍한 아들아! 너에게 내려진 이 시련을 내가 어찌할 수 있겠니. 마음 같아서는 내가 네 몫까지 대신 짊어지고만 싶구나!"

  아버지는 연우가 불쌍하기만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세 번쯤 통곡하며 아버지에게 매달린 후, 담임선생과 통화를 나누긴 한 모양이었다. 그래도 거기까지였다. 괴롭히는 강도는 점점 심해졌다. 연우의 책가방에 차 바퀴에 깔린 쥐가 들어가 있을 때, 그는 폭발하고 말았다. 등교하자마자 주먹을 내지른 것이다. 그마저도 무리에 둘러싸여서, 때린 것보다 맞은 게 더 많았다. 요섭과 연우, 양쪽 보호자가 모두 학교로 올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걱정하지 말라고, 자신이 다 해결하겠다던 아버지는, 요섭의 아버지가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고오, 선생님! 여기서 이렇게 뵙네요!"

  아버지는 팔을 활짝 벌리며 그를 맞이했다. 얼굴은 벚꽃이라도 핀 듯 환했고, 발 벗고 나서며 악수를 청했다.

  "목사님 아니십니까? 하... 이런 일로 뵙다니, 정말 유감스럽군요."

  "애들끼리 같이 놀다가 싸우기도 하는 건데... 원래 이 나이에는 주먹다짐도 좀 하면서 우정을 다지지 않습니까? 학교에서 이렇게 유난을 떠네요."

  이야기를 나눈 후, 요섭의 아버지는 제 아들에게 다가가 상태를 살폈다. 얻어맞은 부위를 제대로 건드리지도 못하고, 손끝으로만 겨우 쓰다듬었다.

  "너무 아팠겠다. 세상에..."

  요섭의 아버지는 다친 자식을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행여나 아프게 할까 조심스럽게 요섭에게 물었다.

  "안아도 될까?"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지만, 그는 최대한 울음을 참아가며 제 아들에게 미소 지었다. 요섭은 그 품에 안겨 눈을 감고, 편안히 몸을 기댔다. 연우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사건은 빠르게 해결되었다. 애초에 연우가 먼저 폭력을 행사한 게 문제였으므로, 요섭과 그의 보호자가 연우를 용서해 주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연우가 당했다고 주장한 따돌림의 대부분은 의도적인 폭력은 아니었다며, 피해의식이 만든 착각이라 일축했다. 뜨거운 찌개를 쏟은 것이나 쥐 사체가 발견된 일은, 요섭과 관련없는 학생들의 실수나 질 나쁜 장난이었다고 결론지었다. 삼 년 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연우는 달리는 차 앞으로 뛰어든 것이다.

  성경에 자살한 영혼은 지옥에서 영원히 불탄다고 했다. 마음만으로 짓는 죄도 죄이니, 실행까지 한 죄는 얼마나 무겁냐고, 병상에 누워 있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말했다.

  "그러니까 빨리 퇴원하자, 연우야."

  "의사 선생님은 3주는 더 입원해야 한다고 했는데요."

  "그거 다, 돈 좀 벌겠다고 부풀려서 말하는 거야. 집에서 충분히 쉬면 다 나을 정도야."

  아버지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엄지손톱을 딱딱 소리 나게 물어뜯고 있었다. 전화를 걸었다가, 상대방이 받지 않는 탓인지 다시 내려놨다가,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한참을 같은 자리에서 빙빙 돌았다.

  "아빠는 의사가 아니잖아요."

  "너 부끄러울 거 아냐. 목사 아들씩이나 되어서 스스로 생명을 버리려고 했어. 감히 살인하려 했잖아. 수치스러워서라도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 더 있고 싶지 않을 거다."

  아버지는 경직된 입꼬리를 가까스로 끌어올리며 말했다. 부드럽게 어르는 목소리는 떨렸고, 휴대폰을 있는 힘껏 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뇨, 아버지. 저는 지금 고통스러울 뿐이에요."

  의사가 권한 일수보다 훨씬 앞당겨 일주일 만에 퇴원한 대가는, 공부도 일도 할 수 없게 된 지독한 후유증뿐이었다.

 

  "됐어요. 주기 싫으면 마세요."

  연우는 건조하게 말을 덧붙인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자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번만 특별히 봐주마. 연우야, 마트 같은 곳에서 막대기 두 개를 구해오면, 십자가를 만들어주지. 목사 손 닿은 거면 다 성물이고 십자가 아니겠니?"

  이에 연우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러시구나. 참으로 대단하네요! 플라스틱 막대기도 되는 거죠?"

  "그럼! 꼭 나무 십자가여야 한다는 법도 없잖아. 교회에서 파는 것 중에도 폴리에틸렌 제품이 많거든."

  연우는 '그래서 플라스틱 십자가를 몇만 원씩 받고 팔아잡수셨구나'라고 하려다, 고개를 내저었다. 더 이상 대화에 의미는 없는 듯하고, 명치가 꽉 막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바람을 쐬느라 베란다로 나갔다. 창문을 열자 겨울바람이 차가웠다. 거실에는 다시 찬송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우가 슬그머니 연우에게로 다가왔다.

  "십자가는 갑자기 왜?"

  연우가 물끄러미 쳐다보자, 그는 시선을 피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넌 그걸 다 듣고 앉았냐?"

  "귀가 좀 밝아서."

  "눈치를 엄청나게 본다는 뜻이겠지."

  시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찬 공기가 얼굴을 할퀴고 지나가는 탓에 발을 동동 굴렀지만, 연우가 석상처럼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기에 그도 베란다에 머물렀다. 바람 소리가 고막을 찢어버릴 것처럼 요란해지자, 연우가 말했다.

  "창문 쪽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길래."

  "벌레 소리?"

  "사람 말소리. 벌레가 '짜증 나'라고 하진 않으니까..."

  시우는 팔꿈치로 연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한겨울에 뜬금없는 납량극이냐는 것이었다.

  "난 그런 소리 못 들었어. 같은 집에 사는데 네 방만 그럴 리는 없잖아."

  "못 믿겠으면 방 바꿔서 자볼래?"

  가늘게 눈꼬리를 휘어 웃으며, 연우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시우는 흠칫하며 뒤로 크게 물러섰다. 시선은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아주 바닥으로 향했다. 그가 도리질하며 뒷걸음질을 치자 연우는 무표정으로 돌아갔다.

  "의외다. 난 네가 바꾸는 거 좋아할 줄 알았거든."

  그때 쌍둥이의 뒤에서 시커멓고 산 같은 인영이 드리웠다. 여느 때처럼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아버지가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연우야, 네가 결국 미쳤다고?"

  그는 손의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휴대폰을 꽉 붙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새하얀 돌을 쌓아 교회를 세웠다. 비소에 담가서 만든 듯 에메랄드빛이 선명한 철문을 지나면, 버스 한 대 정도는 너끈히 지나갈 법한 크기의 유리문이 있었다. 자동으로 회전하는 문을 따라 들어가자, 은색 액자에 끼운 교회 연혁과 주기도문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하얀 대리석 바닥을 따라 사무실과 기념품 가게, 그 사이에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다. 나선형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유난히 좁고 길었기 때문에, 예배 시간이 가까워지면 신자들이 줄을 서서 층을 올랐다. 엘리베이터는 유독 멀고 외진 길목에서도, 직각으로 꺾어진 안쪽에 있었다. 많은 사람이 엘리베이터의 존재를 아예 모르거나, 위치를 알면서도 타는 걸 포기했다. 겨우 한 층만 참고 올라가면 되었으니까. 그렇게 소용돌이 같은 공간을 지나 숨이 탁 트인 공간에 서면, 은은한 금빛 조명과 넓게 펼쳐진 예배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단상 벽에는 거대한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황동으로 만든 십자가 주위에 흰색으로 둥근 장식을 붙여서, 그 앞에 선 사람은 후광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그 자리에 선 사람은 이 교회의 목사, 즉 쌍둥이의 아버지뿐이었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었다. 단상에서 뒤로 갈수록 넓고 위로 솟는 구조의 신자 좌석에는, 구름처럼 부드럽고 푹신한 의자가 길게 늘어서 있었다. 예배가 시작되면 파이프오르간 소리와 함께 성가대가 화음을 쌓았다. 환희로 가득한 가사와 음률 안에서, 쌓인 소리들이 차츰 웅장해졌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시라는 간곡한 찬송가가 마무리 짓기 전에, 아버지는 연우의 손을 잡고 단상에 올라가려 했다. 당황한 그가 '제가 거길 왜 가요?'라고 외쳤지만, 신자들의 노랫소리에 묻혔다. 연우는 얼떨결에 아버지와 단상에 섰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말씀을 전하기에 앞서 간곡한 청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 제 가련한 아들이 용기를 내어 저와 같이 섰습니다."

  그때 주위가 어두워졌고, 하얀 스포트라이트 하나가 연우를 비췄다. 그는 입 모양으로만 이게 무슨 짓이냐고 했지만, 아버지는 개의치 않았다. 뒤이어 북받치고 떨리는 목소리가 예배당 안을 가득 채웠다.

  "여러분도 기억하시죠? 사악한 마귀에게 현혹되어 잘못된 길을 가려던 저의 아들입니다. 그때 저는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이 시련이 천근만근 무거웠고, 마귀와 결탁한 무리가 저를 헐뜯었습니다."

  잠깐의 간극이 있자, 스포트라이트는 기다렸다는 듯 아버지를 향해 옮겨갔다. 마이크를 든 그의 목소리는 다시 결의에 차 단단했고, 우렁찼으며, 언제 떨었냐는 듯 비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건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께서 저를 아끼시는 증거라고. 마치 욥에게 그러하신 것처럼! 또한 시련에 고통받고 눈물 흘리는 모든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란 깊은 뜻이, 저와 함께하는 것이라고."

  옆에서 듣던 연우가 토하는 시늉을 했다.

  "왜요. 아주 제 모가지를 따서 달랑달랑 효수하시지."

  그리 진저리를 치며 단상에서 내려오려는 연우를, 아버지가 다시 붙잡아 중앙으로 떠밀었다. 동시에 조금 더 강한 빛의 스포트라이트가 연우를 비췄다. 자리를 꽉 채울 정도로 바글바글한 눈동자들의 관심은 오롯이 그 하나에게로 몰렸다.

  "여러분, 염치없이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제 불쌍한 아들을 위해 기도하여 주십시오!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힘을 주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안타까운 자식을 위하여, 고통받는 부모들을 위하여, 사랑받아 마땅하나 고난이 끊이지 않는 우리들의 가정을 위하여!"

  신자석에서 일제히 '아멘'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자, 수많은 신도 역시 각자 기도하기 시작했다. 깊게 울리는 듯한 혼란 속에는 훌쩍거리는 소리도, 탄식도 있었다. 세상 모든 시련과 악의를 향한 분노도 있었다. 자리의 제일 앞줄에는 시우도 있었다. 그는 사색이 된 채로 무대와 신자들을 번갈아 봤다. 눈동자들 사이에는 요섭의 아버지도 있었다. 그는 위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메스꺼운 바람에 바닥에 주저앉았다.

  '내가 저 자리에 설 뻔했던 거야.'

  시우는 고등학교로 등교한 첫날이 떠올랐다. 교실을 찾느라 두리번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몸을 휙 돌리는 바람에 요섭의 뒤통수를 가방으로 후려친 날이기도 했다.

  "씨x, 미쳤냐?"

  그때 시우는 어린 치기에 괜히 으름장을 놓고 싶었다.

  "눈깔은 장식이냐? 민첩하게 피했어야지."

  두 사람은 몇 차례 욕설을 주고받다가, 멱살을 쥐고 흔들기 직전까지 갔다. 복도 끝에서 교사 한 명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요섭이 먼저 손을 놓으며 말했다.

  "됐다. 내가 오늘 첫날이니까 봐준다."

  다음에 굳이 대화를 이은 것을 시우는 두고두고 후회했다.

  "어휴, 그러세요? 난 앞으로 너 봐줄 생각 없는데."

  "그래? 너 이름이 뭐냐?"

  "나는..."

  어쩌면 그는 일이 잘못될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는지도 몰랐다. 아니고서야 요섭의 질문에 그런 답을 했을 리 없었다.

  "김연우다, 왜!"

  아버지의 예배가 끝날 때까지, 시우는 눈을 질끈 감고 그대로 있었다. 삼 년 전처럼.

 

  집에 돌아온 후, 연우는 담담하게 아버지에게 말했다.

  "고작 이상한 소리가 들렸을 뿐이에요, 아버지."

  "들려서는 안 될 소리를 들었잖아. 여긴 13층인데, 창문 밖에서 말소리가 들렸다며."

  아버지는 언제나와 같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따뜻하고 상냥한 목소리에는 슬픔이 그렁그렁 담겨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망가졌을까... 안타까운 내 새끼."

  연우는 물끄러미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가, 무겁게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그러면 입원할게요. 요즘 십자가 많이 파셨잖아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랫입술을 피가 나게 깨물고 손안에서 휴대폰을 빙빙 돌리던 그는, 곧 환하게 웃으며 이를 허락했다. 일주일 후, 연우는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에 입원 수속을 밟기 위해 짐을 꾸렸다. 비닐봉지 반입은 안 되고, 긴 수건도 들고 갈 수 없어서 반으로 잘라야 했다. 볼펜처럼 뾰족한 금속도 다 놓고 가야 했다. 아무리 자진입원이라 해도 보호자는 필요했기 때문에, 그는 시우를 데리고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집을 떠나는 날에도 거실에서는 설교 말씀이 울려 퍼졌다.

―악귀에게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제 아들은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길을 택하여...

  정신건강의학과 입원환자들이 머무는 병실은 7층에 있었다. 가는 길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쌍둥이는 해당 층 카운터로 가기 직전에야 겨우 대화를 나눴다. 시우가 먼저 물었다.

  "왜 아빠가 아니라 나를 보호자로 데려왔어? 대신 집어넣고 싶어서?"

  이에 연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어색하게 제 뒷머리를 벅벅 긁더니 힘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그 목사 양반이 어떻게 내 보호자냐?"

  시우는 대답 없이 자신의 발끝만을 바라보다가, 고개만 약간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연우가 말을 덧붙였다.

  "너한테 유감없어. 예전엔 엄청 미웠는데, 내가 너였더라도 외면하지 않을 자신이 없더라."

  쌍둥이가 병실로 들어가는 순간까지, 시우는 아무런 답도 할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바닥에 죄가 찐득하니 들러붙은 기분이었다.

  아파트 13층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는 주민 두 사람과 함께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들려온 대화는 이러했다.

  "요즘 층간소음이 점점 심해지네요."

  "부실공사 때문이겠죠. 여기를 지은 건설회사 사장이 횡령으로 잡혀들어갔잖아요. 한 집인데도 어느 방은 멀쩡하고, 어떤 방은 층 세 개씩 뚫고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던데요."

  "그럼 소음이 문제가 아니잖아요. 이러다 건물 무너지는 거 아니에요?"

  "옆 동은 벽에 금 가는 소리도 났답디다. 집이 무너진들 어쩌겠어요. 견디는 수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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