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나무
나쁜 일은 평범한 날 닥쳐온다. 대비할 틈도 없이, 갑자기. 무럭무럭 자라 누군가를 향해 겨누어진 악의는 결코 눈을 감지 않고, 잠들지 않는다. 이것이 선생님께 첫 번째로 배운 것이었다.
선생님께선 돈을 좋아하신다. 선생님을 잘 알지 못했던 때의 나는 선생님의 그런 면이 싫었다. 세상은 돈이 많은 종교인을 싫어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돈은 우리의 목숨값이기도 하다는 것을 안다. 굿상에 올라가는 수많은 음식과 색색의 장식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모든 것이 준비된 상 앞에서 모시는 분을 부른다. 그 분들이 만족하시도록, 성심을 다해. 그 분들은 힘이 있고 또한 변덕스러우시기에 한낱 인간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오실 때까지 몇번이고 맨발로 올라가는 작두와 몸을 긋는 칼날은 영험함의 표식이자 목줄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무당이 아닌, 우리는 무엇인가. 사람 틈에 섞인, 사람이되, 사람이 아닌 것이다. 나는 보았다. 평범함에서 벗어난 것을 바라보는 그 시선, 그 끔찍한 시선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동물원 얇은 철창 너머의 존재. 등을 돌리면 잊혀졌다가 화젯거리로 잠깐 화르륵 타오를 번개탄같은 존재가 바로 우리다.
나는 잠듦과 동시에 깨어난다. 자유를 갈망하며 눈 앞의 것을 노려본다. 삿된 그것은 숨이 막혀 허덕이는 나를 관망하고, 괄시한다. 선생님과 달리 약하디 약한 제자는 그저 그것에 밟혀 꿈틀거릴 수 있을 뿐이다. 턱턱 막히는 숨, 밀려드는 공포. 하지만 약하다고 해서 무력한 것은 아니다. 물을 빨아들여 젖은 나무는 때로 단단한 쇠보다 질기다.
나는 베어진 채 죽어버린 나무다. 저 진창, 흙탕물에 쳐박힌 나무토막이다.
이제, 선생님께서 황홀하고 어지러이 피어계실 수 있도록 내가 저 불을 막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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