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eap of Disbelief
줄리아 라이네케가 핀갈 모레이에게, 7학년 | 2024.08.09
공황 상태에 대한 간략한 묘사, 유혈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열람에 주의 바랍니다.
흐려지는 시야 속 당신의 얼굴은 낯설다. 그것은 목 주변으로 드러난 아가미 때문도, 자신을 겨눈 지팡이 뒤로 언뜻 보이는 물갈퀴 때문도, 형형할 정도의 노란색 눈동자 때문도 아니었다. 살이 썩어가는 냄새 때문도, 푸르게 변색된 이질적인 피부 때문도 아니었다. 그런 것으로 당신을 멀게 보기에는, 다른 호그와트의 많은 학생들처럼 당신을 두려워하고 끔찍하게 여기기에는…… 그는 너무 당신을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그것이 그로 하여금 생리적인 혐오감을 불러일으켰을지언정, 당신이 ‘약해졌다’ 여겨 경멸하도록 만들었을지언정…….
그는 눈을 깜빡였다. 마치 그 얼굴을 더 자세히 보려는 듯이,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실감하지 못한 사람처럼. 얼굴에 떠올랐던 웃음은 점차 흐려지고, 그 대신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자리를 차지한다. 차마 이름 붙이지 못할 그 감정은, 충격과, 이유모를 배신감.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한없는 슬픔과,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실감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래, 약한 건 마음대로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지.
괜찮아. 네 힘으로 당해내지 못하겠다면, 너 하나쯤은 내가 지켜줄게.
……적어도 여기에 있는 동안은.
그것은 1학년 때의 일이었다. 짧게 자른 잿빛 머리에, 귀에는 여러 종류의 귀걸이를 치렁치렁 달고 있던 소년이었던 당신. 세상 만물이 두려워, 저 자신조차 이름붙이지 못한 불안에 휩쓸려 이리저리 떠다니던 소녀였던 그. 소년은 소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서투르게 위로를 시도하고(“그…… 학교에 가면 식사를 잘 준대.”), 때로는 답답한 마음에 윽박지르고,(“야, 오는 길에는 선배들 말에 겁먹고, 와서는 교장 말에 겁 먹는 거야? 작작 좀 해라. 이러다가 어둠의 마법 얘기 같은 걸 들으면 아주 놀라서 숨 넘어가겠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지켜주겠다며 맹세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말이지. 거기에서 내가 도움을 받았다면, 힘을 얻었다면, 괜찮은 거 아닐까?
덕분에 버티어냈는걸. 그 순간 말이야. 그리고, 그 뒤에도. 어쩌면 꽤 자주.
응. 그랬어. 그 말이, 큰 위로가 되었어.
비록 그게 무엇이 될지는 몰라도, 네가 날 그것으로부터 지켜줄 거라고 했으니까……
그래. 소년은 맹세했다. 자신의 적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채로. 소녀는 위로받았다. 자신이 두려워하던 것의 정체를 모르면서도.
그래. 그럼 약속할게. 나는 더 강해질 거야.
그래서 오늘밤 같은 일은 두 번 다시 네게……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게 할 거야.
응. 고마워, 핀갈.
소녀는 단 한 순간도 망설이지 않았다. 당신의 가능성에 대해, 당신이 가진 힘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품지 않았다.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부터, 그를 향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학교의 환상적인 음식들을 나열하는 당신을 볼 때부터, 그랬다.
믿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신은 새로운 세상의 안내자이자 길잡이였으며, 보호받지 못한 아이가 가진 유일한 보호였다. 만일 이 세상이 동화였다면 당신은 왕자님이었겠지. 어린 소녀는 남몰래 당신을 생각하며 그런 상상을 했더랬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인가? 내 눈을 보고 대답해.
그것은 4학년 때의 일이었다. 소년의 머리는 어깨까지 길었고, 그것은 소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낯선 세상에 적응해 안정적인 길을 망설임 없이 걸어가던 당신, 계속해서 흔들린 채 ‘강한 이’들에게 의존하던 그. 소녀는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소년을 모르는 체 외면하고는 했다. 이 세상은 동화가 아니었고 당신 역시 왕자님이 아니었기에. ‘친구들’에게 당신은 출신 모를 이상한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에.
라이네케. 내가 했던 약속 기억해?
…… 그건.
소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약속을 기억하냐는 물음에도,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냐는 물음에도. 그는 그저 스리 브룸스틱스를 뛰쳐나가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눈이 날리는 겨울, 호그스미드를 가로지르며 그는 생각했다. 그래. 기억해. 나도 알아. 그걸 잊을 리 없잖아. 당신의 맹세에 기대었던 수백 번의 밤, 그럼에도 당신에게 말할 수 없었던 수백 번의 낮. 그는 자신 안에 소용돌이 치는 그것을 ―약한 것에 대한 두려움, 돌봄에 대한 거리낌, ‘강한 자’들 곁에 붙어서 얻을 수 있던 안정감, 일말의 희열과, 그럼에도 느껴지던 죄책감― 당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인간사에 기이할 정도로 무지한, 노력을 함에도 무심한 당신에게 이 모든 것을 설명할 자신이 없었다.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그들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은 마음을, 그들을 당신의 적, 곧 그의 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을.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어째서인지 그 사실을 확인받는 것은, 다른 친구들과 다투는 것보다, 그들과 연이 끊어지고 미워하게 되는 것보다,
두려웠다.
라이네케. 정신 차리고 지팡이 들어.
그러나 당신은 달려와줬다. 그 날, 그가 가장 취약했던 그 날에. 전쟁의 공포는 언제나 그를 마구잡이로 해치고 부수었다. 그는 자신이 어째서 그리도 전쟁을 두려워하는지, 그 신호와 징후들에 무너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근본조차 모를 공포에 휩싸여 숨을 헐떡이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것은 그의 가장 큰 약점이자, 그가 가장 외로운 순간이었다.
이것을 이해할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시야 한 구석에서 회색빛 머리가 흔들렸다. 누군가 단 한 순간의 주저도 없이, 단 한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향해 달려왔다. 그를 단단히 붙잡았다. 계속해서 그의 이름을 외쳤다. 공포라는 회오리바람이 그를 떠오르게 했을 때, 그의 두 발을 다시 지상에 붙들려고 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당신의 이름을 불렀다. 그 형상이 누구인지, 몰아치는 공포 속에서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탓이었다.
핀갈…….
당신은 이 외로움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공포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소녀는 생각했다. 그럼에도, 당신이 있기에 나는 혼자가 아니라고. 이 호그와트에서 내가 가장 취약할 때면 언제나 당신이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언제든, 오늘처럼, 달려와줄 것이라고.
그러니 가 버려. 나는 더 이상 네 약속 따위 필요 없으니까. 내가 파기한 걸로 치자고.
1학년, 첫 연회에서 시작되어 4학년, 마지막 연회때 다시 한 번 확인받았고 7학년, 그가 어둠의 마법으로 당신을 짓이기던 순간까지도 유지되던 맹세. 소녀가 더 이상은 소녀라 부를 수 없게 될 때까지, 그리고 소년이 한 마리의 ‘괴물’로 불리게 될 때까지의, 7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맹세는 보이지 않게 그들을 묶었었다. 그것은 보호에 대한 약속이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였다. 우리는 비록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도, 심금을 울릴 사랑을 하는 연인도 아니며, 이 뭍의 어떠한 관계도 우리를 온전히 정의내리지 못할지라도. 그렇기에 그 자신조차, 당신에게 보내는 그 무한한 신뢰의 근원을 설명하지 못할지라도.
당신을 그토록 철저하게 짓밟은 것은 어쩌면 실망이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와서야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언제든 그를 위해 달려와줄 왕자님이, 그를 보호해야할 이 세상의 유일한 보호자가, 저리도 처참하게 무너져버린 것에 대한. 그런 실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당신은 더이상 확신을 가지고 그에게 달려와주지 않았으니까, 오히려 그를 피해 달아나버렸으니까.
…… 내가 또, 약속을…… 윽, 못 지켰구나…… 라이네케.
…… 내가 여기서 너를, …… 해 입게 했어……
네 잘난 약속이 나를 지켜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모레이.
넌 항상 거기에 실패했지.
그럼에도 그 맹세에 자주 기대었다는 사실을, 당신을 자주 필요로 했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가 결코 언급하지 않은 그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었을까?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게 된 이 순간에도, 그가 그의 입으로, 그의 손으로, 그의 지팡이로 친히 맹세의 증인이자 서약자의 피를 토하게 만들고 땅바닥을 기게 만든 뒤에도, 그렇게 맹세의 파기를 선언한 뒤에도…… 여전히, 어떤 신뢰가 남아있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었을까?
그조차 지금 이 순간까지는 깨닫지 못한 신뢰, 전부 버려버린 줄 알았던 그 신뢰의 존재를…….
너 하나쯤은 내가 지켜줄게.
그러므로 당신은 결코 그를 해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 너는 안 돼. 핀갈 모레이.”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했다. 그것은 평상시처럼 조소 어린 목소리도, 뼛속까지 새겨질 듯한 증오가 엿보이는 말투도 아니었다. 그렇다 해서 그것이 애원이냐 하면 그 또한 아니었다. 애절한 구걸이라 볼 수도 없었다. 그것은 조용한 투정이었다. 원망이었다. 맹세를 파기한 것은 자신이면서, 당신의 책임을 끝낸 것도 그 자신이면서도…… 꼭 그 반대였다는 듯이. 당신이 맹세를 깼으며, 당신이 책임을 내던졌다는 듯이, 내뱉는.
“내가 죽더라도. 이 호그와트의, …… 마법 세계의 모두가 ……날 죽이려 들더라도, 너는 안 돼. 네가 그러면 안 돼…….”
목소리에는 물기가 어렸다. 그는 중간중간 토해내지 못한 감정이 목을 막은 것처럼 여러 차례 말을 멈추었다.
“넌 핀갈 모레이잖아…….”
처음으로 개구리 초콜렛을 먹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 호그와트에 나오는 음식들을 이야기해준 사람, 그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사람, 언제든 자신이 필요할 때 이야기하라고 한 사람, 그가 가장 취약한 순간에 달려와준 사람.
그리고 언제나, 언제나 그러리라고 믿을 수 있었던 사람.
“이 세상 모두가 그래도, 네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당신이 발음하는 ‘보호’라는 단어는 역겹지 않았다. 그것은 이 호그와트의 다른 누구와도 같지 않았다. 그 차가운 보호는, 어쩌면 그 차가움 때문에, 다른 이들이 말하는 따뜻하고 온기 넘치는 ‘돌봄’보다, ‘애정’보다 더욱 그에게 안심을 주었었다. 그것은 그를 착취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를 지치게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를 괴롭게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땅의 그 누구도 줄 수 없었다. 우리 모두는 애정과 돌봄 위에 살아가기에. 그렇게 진화해 온 짐승들이기에.
오직 당신만이.
“너만은, 너만은…….”
눈가가 뜨거웠다. 시야가 순식간에 흐려졌다가, 맑아지기를 반복했다. 따뜻하고 축축한 것이 하염없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는 생각했다. 아, 당신이 그들을 다 쫓아내버려서 다행이다. 이곳에 그의 취약함을 비웃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롱할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꼴을 당신 아닌 누군가에게 보일 필요가 없어서. 이 나약한 모습은 오직 당신만 기억하면 되어서.
당신은 결코 이것을 조롱하지 않을테니까.
“너만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이것은 논변이 아니다. 애원도 아니다. 여기에는 명료한 근거도, 사람을 울리고 감정을 건드리는 말도 없었다. 그는 그저 계속해서 이야기할 뿐이었다. 끝없이, 제 감정에 제가 먹혀가며. 증오도 분노도 아닌 슬픔에, 신뢰의 상실에, 믿음의 상실에, 그 거대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말은 점차 뭉개지고 일그러져 울음이 되었다. 이러한 울음은 1학년 때도 터뜨려 본 기억이 없었다. 그는 제 안에 놓인 모든 감정을 눈물로 흘려보냈다. 애타는 오열 속에 실었다. 숨이 막혀 꺽꺽대고, 얼굴은 추하게 일그러뜨려가며.
그렇게 세상이 떠나가라, 섦게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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