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의 너에게 보내는
마이후유 / 유료 웹공개
:: 도쿄 리벤저스
:: 사노 만지로 X 마츠노 치후유
:: 화이트데이 원고 유료 웹공개
[마이키 군, 무슨 일로 전화를…?]
[네. 맞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그날 뵐게요.]
[감사합니다, 마이키 군!]
틱, 틱, 틱, 틱….
연거푸 버튼 눌러 문자를 확인한 마이키의 표정이 단번에 뚱해졌다.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휴대폰 액정을 바라보는 탁한 흑색 눈동자. 틱, 틱…!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미간을 찌푸린 그의 손짓 따라 아래로 향하는 버튼을 누르는 엄지에 숨기지 못한 신경질이 담긴다. 따각! 결국 홈으로 돌아간 마이키가 전화번호부에 떠 있는 번호를 집요히 노려봤다.
“흐으음―.”
단조롭게 [후윳치]라 명명된 하나의 번호.
이미 저장되어 있던 번호의 이름이 약간 바뀌었을 뿐이지만 이 숫자의 나열에 불과한 개인 정보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제 기분이 단숨에 하늘로 솟구쳤을 정도니, 이 건에 대해선 더 말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오늘은 3월 13일. 발렌타인으로부터 훌쩍 흐른 한 달 사이에 다가온 화이트데이 전날 밤. …그런데. 매끈한 아미가 볼썽사납게 구겨졌다. 함께 어딘가를 갈 때면 여전히 딱딱하게 긴장해버리면서도, 나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기에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다 생각했다. 당연히 그 아이가 자신의 행동에 어떠한 위화감도 가지지 않을거라 추측해 이 또한 자연스러운 회로의 굴레였을지 모른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연락도 여러 번 넣어봤었는데―…….
…음. 입술을 매만진 마이키가 힘없이 한숨 쉬었다. …그 결과가 이거다. 혹시나 뭐라도 오지 않을까 싶어 탈탈 흔들어 보지만 잠잠한 휴대폰.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먼저 오지 않는 전화와 문자. 정확히는 다른 쓸모없는 놈들의 연락은 그렇게나 쏟아지면서 ‘치후유’라는 이름만은 결단코 들어가 있지 않다는 점이. 띠롱. 때마침 울린 문자 알림에 서둘러 확인해 봤으나 역시, 예상한대로 관심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놈들의 문자다. 쯧, 혀를 찬 그가 짜증 실린 손놀림으로 확인 버튼을 연타했다.
하아…, 길게 까라지는 숨 조각과 허탈하게 앉아 천장을 올려보는 홍채. …사실, 처음은 장난치나? 라는 물음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장난? 얘가 지금 나랑 밀고 당기기를 하나? 그런 건 전혀 모르는 것 같아 보였는데? 자신을 볼 때만 순하고 동그래지는 눈매.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힐끔힐끔, 남몰래 제 얼굴을 훔쳐보곤 했던 그 아이. 희끗한 잔상을 그린 마이키의 눈빛이 한풀 꺾이듯 가라앉는다. …수십, 수백번을 곱씹어 봤음에도 두루뭉실한 마츠노 치후유의 부류는 과연 어느쪽이지? 발렌타인 저녁의 그날, 신사에서 답을 줬다고 하지만 진작부터 자신만 보면 빳빳하게 숫기 없어지는 그 아이는 고백에 대해 장난스럽게 돌려 말한 답을 똑바로 이해하고 넘어가긴 했을까? 스멀스멀, 발끝에서부터 기어올라오는 안 좋은 예감. 적어도 지난 한 달간 이렇다 싶은 무언가의 껀덕지조차 없던 걸 보면…, 아마 제 예상이 맞을 것 같은데. 느른히 기대어 앉은 채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의 휴대폰 액정을 응시한 그가 톡, 톡. 손가락으로 무릎을 건드렸다.
고백. 진심 초콜릿. 그것을 받은 나. 상대가 누군지 알아내고, 초콜릿을 먹으며 헷갈리지 않을법한 답까지 건네준 자신. 애초에 관심이 없었으면 입에 넣지도 않았을 테니, 당연히 초콜릿을 먹은 진실이 제대로 된 답을 줬다고 생각했었다.
…분명 그랬는데.
“틀렸던 건가….”
밀폐된 공간을 한껏 메운 갈라진 목소리. 얇은 눈꺼풀 아래에서 드러난 눈동자가 흰 화면 너머, 새카맣게 자리한 숫자의 나열을 빼곡히 담아낸다. …후윳치. …치후유. …마츠노 치후유…. 소리 내 읊조린 이름을 잇속으로 굴린 마이키가 그 잠깐 새 환상이라도 본 듯 흐지부지한 관계로 돌아간 서먹함을 상기했다. …그건 거짓말이었나? 그날, 신사에서 마주한 밤은 한낱 꿈이었을까? 구름을 벗어나 환하게 내리쬐는 달빛. 차가운 공기 속, 제 얼굴을 올려보던 말간 파란색 호수. 막상 그런 모습과는 반대로 발갛게 달아오른 볼, 자신의 손이 닿자 한없이 움츠러든 어깨. 초콜릿을 꺼냈을 때부터 맥없이 무너지려던 다리. 덜덜 경련하는 손. 물기 어린 음색. 텁텁한 투와 얄따란 틈새로 스며든 누군가의 달콤한 연정이. ―그 전부가, 정말 거짓이었나? 의문스럽게 생각한 그가 피곤한 기운을 감추지 못한 채 한 손으로 미간을 문질렀다. 대답은 ‘아니’. 스르륵, 곧 텅 빈 손바닥을 내려본 마이키가 주먹을 세게 움켜쥔다. …이 모든 게 거짓이었다면. 제게 이렇게까지 확실한 증거가 있을 리 없다.
달칵, 달칵. 망설임 없이 문자함으로 들어간 그가 익숙한 주소를 치고, 메시지 적은 뒤,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한차례 얼굴을 쓸어내는 손바닥 아래 틱, 뭉툭한 손끝으로 인해 보내진 문자 메시지. 잠시간 화면을 응망하던 마이키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고요한 방을 나선다.
끼익, 탕―.
쇠로 된 문이 열림과 동시에 굳게 닫혔다.
3월 14일의 너에게 보내는
깜빡깜빡.
막 씻고 나온 치후유가 턱밑의 물기를 훔치며 조용히 빛나는 침대 위 휴대폰을 관망했다. …응? 연락? 방 문을 닫다 말고 우뚝 멈춰선 소년의 고개가 갸웃거린다. …누구지? …타케밋치? 아닐테고. …1번대면, 앗군? …그것도 아닐텐데…. 곰곰이 생각해 보지만 떠오르는 이름은 제로. 더욱이 최근엔 이 시간에 다른 이로부터 연락 올 일이 없던 터라 의문은 점점 커져갔으나. 흐음…. 멋쩍게 뒷목 긁으며 휴대폰을 집어 든 치후유가 별생각 없이 폴더 열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후윳치, 내일 오후에 여기로 와.]
고작 한 문장만으로 멀쩡한 심장을 저 깊은 나락까지 떨어뜨려 버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조심스럽게 확인할 걸 그랬다.
허억…! 툭, 놀라 숨 삼킨 소년이 속절없이 휴대폰을 떨어뜨렸다. 으, 악…! 새파랗게 질린 얼굴. 침대였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고장 낼 뻔한 자신의 유일무이 연락 수단을 황급히 주워 올린 치후유가 격정적인 심장 고동에 옷자락을 틀켜쥔다. 쿵쾅, 쿵쾅. 언제 잠잠했냐는 듯 요란하게도 날뛰는 가슴. 손아귀로 축축하게 배어나온 식은땀. 후우, 후우…. 그 아릿한 감각에 간신히 심호흡한 소년이 요동치는 마음을 잠재우지 못하고 재차 문자를 확인했다. 비적비적, 잘못 봤을지 모르니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한 손으로 비비는 두 눈. 잔뜩 긴장해 삐쭉, 곤두선 머리카락. 혼미한 잔영 너머 하얗게 빛나는 액정 위로 적힌 문장을 읽어내리는 음성이 꼴사납게 떨린다. …후윳치, 내일, 오후에, 여기로, 와. 낯선 주소와 함께 도착한 문자. 상단을 보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보낸 사람. [마이키 군]. 그 명백한 결론에 눈을 땡그랗게 뜬 치후유가 다시금 기겁하며 펄쩍, 튀어 올랐다.
“마, 마마, 마이키, 군이…!”
나한테 문자를? 에? 그보다 여기 어디?!
새된 언성이 순식간에 대기권까지 수직으로 치솟아 올랐다. 버벅대는 혼잣말, 다급히 주소를 되뇌는 입술. 그러면서도 문자 속 시간과 날짜를 몇 번이고 확인한 소년의 입꼬리가 꾸물꾸물, 절로 밀려 올라간다. …오늘은 진짜 별것 아닌 하루였는데. 그의 단조로운 문자 하나로 이렇게 기분 좋아질 일인가. 10센티도 되지 않는 크기의 자그마한 액정 저편, 가지런히 적힌 활자의 나열에서부터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후윳치. 나긋한 음색과 둥근 어조. 늘상 자신을 보며 푸스스 내걸린 미소. 바람결에 나부끼는 특공복과 긴 백금발이 눈앞으로 선명히 아롱진 찰나. 짧다면 짧을 문자열을 몇 번이고 반복해 읽고, 읽고, 또 읽어내린 치후유가 파도처럼 일렁이는 눈으로 흐읍, 숨을 들이마신다. 따각따각! 매번 썼다 지웠다를 거듭하던 평소 때와는 달리 빠르게 눌린 버튼 아래, 옅게 웃으며 전송되는 답장. 달칵! 이윽고 확인 버튼을 누른 소년이 전송창이 사라지자마자 떠오른 문자를 담아냈다. 내일, 여기로, 와. 입밖으로 흩어지는 일련의 문장. 이내 멍청하게 앉아 순백의 화면을 바라본 치후유가 휴대폰을 손에 쥔 채 기우뚱, 중심 잃고 넘어간다. 풀썩! 뒤로 널부러져 침대에 누운 몸이 푹신한 이불로 가라앉았다. 하늘하늘한 머리칼이 너저분하게 흐트러졌으나 신경 쓰지 않는듯 그저 휴대폰을 보며 헤실거릴 뿐이다. …좋아하는 사람이 준 문자. 그 사실만으로도 이만치 가슴이. 콩, 콩, 콩, 뛰는 심박이 좋아서. 이 나른함을 잊고 싶지 않아서. 액정을 훑은 소년이 낯익은 온기가 새겨진 것 같은 단어 조각을 잇속으로 읊조린다. …후윳치, 내일, 오후에, 여기로, 와…. 작게 달싹이는 입술. 좁은 공간에서 머물다 소리 없이 산화되어 사라진 물거품 하나.
살며시 눈꺼풀을 밀어 올린 치후유가 휴대폰 상단의 시계를 응망했다. 23:59. 틱. 00:00. 자정. 하루를 넘겨 바로 옆에 적힌 3월 14일―이라는 날짜를 확인한 소년이 문득 심장 한켠으로 콕, 박히는 숫자가 간지러워 멀거니 웅얼거린다.
…아.
“화이트데이다.”
담담한 것 같으면서도 티 나지 않게 까라진 언성.
화이트데이. 벌써 한 달.
몸을 감싼 이불에서 폭신하고도 말랑한 기류가 몽글몽글 자라나는 듯했다. …그렇구나. …마이키 군에게 초콜릿을 건네주고 벌써 한 달이……. 따각, 따각. 버튼 누르며 일전에 주고받은 문자의 내용을 곱씹은 치후유가 시야 가득 차오른 활자 위로 결코 잊혀지지 않는 2월 14일의 추억을 상기한다.
…그래. 그러고 보니 그랬었다. 총장님께 초콜릿을 건네준 그날밤. 샐쭉 웃어 보인 그가 제 뺨을 건드리며 기대하라는 말을 했었지. 꿈뻑, 꿈뻑. 서서히 느려지는 깜빡임. 당연히 당시엔 그런 말만이라도 기뻐 화이트데이 보답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럼 설마, 지금의 문자도 그와 관련된 걸까? 두둥실, 하늘로 부유하는 단어들의 나열.
스윽, 툭…. 자연스럽게 손에서 미끄러진 휴대폰이 침대로 떨어진다.
‘…기대하라고 하셨는데…….’
…정말일까…….
스르르, 천천히 눈을 내려감은 마츠노 치후유의 밤이 까무룩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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