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쿠요랑 사키를 섹못방에 가둠
야한 거 안 나옴
섹스하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고?
사키는 무어라 말을 잇지 못하고 종이를 쥔 채 파르르 떨었다. 그 뒤로 성인용품이 있는 장소나 유사 성행위는 인정되지 않는다거나 하는 내용이 이어졌으나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제정신으로 납득하기 힘든 문장에 압도당해서 사키는 그만 읽은 것을 말하는 일조차 잊었다. 덕분에 옆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고쿠요만 멀뚱하게 서 있었다. 고쿠요는 사키에게서 답을 듣는 것보다 스스로 읽는 게 빠르겠다고 판단해 힘없는 손에서 종이를 낚아채 대신 훑기 시작했다. 곧이어 아마도 같은 부분에서 고쿠요의 눈썹이 꿈틀했다.
“어이가 없군.”
고쿠요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종이를 구겨 쓰레기통으로 보이는 빈 통에 던져 넣었다.
“고쿠요 씨, 잠깐만요! 그래도 이건… 막 다루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요.”
사키 또한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A4용지에 인쇄된 설명문은 유일하게 두 사람을 가둔 범인과 연관된 물건이었다. 사키는 쓰레기통으로 쪼르르 달려가 종이 뭉치를 꺼냈다. 구깃구깃했지만, 다행히 읽는 데 지장은 없었다. 종이를 손바닥으로 펴는 일을 하며 눈을 떠 보니 모르는 곳이라는 황당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는구나, 라고 사키는 생각했다. 괜히 케이 생각이 나기도 했다. 내가 조심성이 없어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케이라면 그 말에 동의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는 말을 들려줄 것 같았다. 사키는 케이가 보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거 구긴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알 바냐. 너무 심각해지진 마. 일단 왠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있고.”
고쿠요는 머리 뒤로 깍지를 끼며 짐짓 여유로운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위험한데. 그 녀석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이어지는 말엔 케이에 대한 약간의 비웃음도 섞여 있었다.
“이런 일이라면 분명 평소에 널 노리던 놈들 짓이겠지. 나까지 잡아 처넣을 줄은 예상 못 했지만. 차라리 다행인가.”
말하고선 고쿠요는 창문 없는 방에 유일하게 있는 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쿠요는 그 앞에 멈춰 서고선 굳게 닫혀 강경한 기운을 풍기는 철제문을 잠시 노려봤다. 고쿠요는 손잡이를 두어 번 돌려보고선 뒤돌아 사키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당연하지만 잠겼네. 그러네요. 반전 없는 명백한 사실이 밀폐된 공간 속에서 공허하게 울렸다. 고쿠요는 옆구리에 손을 얹고선 천장을 바라봤다. 갑갑한 상황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사키는 괜히 고쿠요를 위로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안절부절못했다. 잠시간 침묵이 이어지나 싶더니 곧이어 굉장한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야!!! 안 들리냐?”
고쿠요가 주먹으로 문을 두들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문고리를 무력으로 어떻게 해보겠단 것처럼 잡아당기고 다시 돌리고 하느라 철컥대는 소리가 총알 장전하는 소리처럼 살벌했다.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자 고쿠요는 더 거세게 문을 두들겼다. 거의 문을 주먹으로 때려 부수는 수준의 소음이 고막을 강타했기에 사키는 어쩔 수 없이 귀를 막았다. 제대로 알아듣진 못했지만, 굵은 목소리로 드문드문 고함지르는 소리와 욕설이 섞였다는 정도는 파악할 수 있었다.
돌연 쿵쿵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사키가 고개를 돌리자 고쿠요는 침대 옆 작은 협탁을 뒤지는 중이었다. 솥뚜껑만 한 손이 서랍을 대번에 훑었고 안에 들어 있는 물건 중 손잡이를 부술 물건은 없다는 사실을 손쉽게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서랍 속 물건은 조롱하는 것처럼 피임 도구니, 성인용품이니 하는 것들로 가득했다. 놀리는 것도 아니고, 씨발! 고쿠요는 서랍을 신경질적으로 닫았다. 사키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고쿠요는 되먹지 않은 장난질에 열이 올라 문에 발길질했다. 쾅쾅대는 소리에 곧 방이 무너질 것 같았다. 문이 철제가 아닌 목제였다면 고쿠요가 진작 부수고도 남았을 것이다. 가두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온 힘을 다해 마지막으로 걷어차 주고서 고쿠요는 침대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분이 풀리지 않아서인지 날뛰느라 체력을 소모해서인지 모를 거친 숨소리가 났다. 고쿠요가 이마를 쓸어올리며 슬 쳐다보자 사키의 파리한 안색이 눈에 들어왔다. 미세하게 떨리는 어깨를 보고서야 고쿠요는 그제야 배려가 없었음을 깨달았다.
“미안.”
사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지만, 고쿠요가 보기엔 종잇조각 하나에 희망을 걸던 때보다 겁먹은 것처럼 보였다. 괜히 문짝을 가지고 난리란 난리는 전부 쳐버린 바람에 명백하게 갇혔단 사실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애써 긴장하지 않은 척하는 게 안쓰러울 정도로 눈에 담겼다. 고쿠요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사키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내가 여기서 나가게 해줄게. 어떻게든.”
“저, 저야말로 방법을….”
고쿠요가 제법 진중한 목소리를 내는 바람에 사키는 그만 말을 더듬었다. 평생 여기서 살 수는 없으니 그야말로 어떻게든 탈출을 모색해야 했다. 당장은 아무 일이 없더라도 언제 갑자기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여차하면 정말 죽을지도.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자니 그만 눈물이 핑 돌 것 같아서 사키는 애써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저희는 어쩌다 갇히게 된 걸까요.”
사키의 담담한 물음에 둘은 잠시간 기억을 되짚어가며 회상했다. 고쿠요는 말없이 팔짱을 낀 채 검지를 까딱이다 입을 열었다. 퇴근길까진 기억하지. 네. 역 근처 주점 지나쳤던 것도. 네네. 그러고선 대화가 무어라 더 이어지지 않고 실 끊기듯 단절됐다. 그 이후부터 두 사람 다 기억이 희미하다면 납치된 시점은 유추할 수 있었다. 주점이 밀집한 거리를 지나면 인적이 드물어진다. 범인은 아마 그때를 노린 것 같았다. 여태 행적을 돌이켜보면 목적은 사키인 것 같은데 어째서 고쿠요를 쌍으로 끌어들인 건지, 그리고 왜 장난 같은 조건을 걸어둔 건지는 여전히 의문인 채였다. 그러다 사키가 돌연 놀란 사람처럼 몸을 들썩였다.
“고쿠요 씨!”
“갑자기 뭐야. 뭔가 생각난 거라도….”
“그러고 보니 고쿠요 씨 공연, 언제였죠?”
이번엔 반대로 고쿠요가 얼굴을 굳혔다. 그건 고쿠요에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까먹은 게 아니라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여기 갇힌 지 얼마나 된 거지? 휴대전화는 당연하고, 창문도 시계도, 시간을 짐작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은 전부 없었다. 고쿠요는 이마를 짚었다. 짜증과 불안이 동시에 치밀어서 몸이 뜨거워졌다가 식었다가 했다. 사키를 바래다주던 때로부터 아직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곳으로 옮겨지는 시간이 그 이상으로 길었다면. 고쿠요는 머리가 아찔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여지없는 펑크였다. 컨디션 관리도 실력이라고 여태껏 어떤 이유로도 스테이지에서 빠진 적이 없던 고쿠요였다. 고작 이런 데 갇혀서 할 수 없다고? 고쿠요가 속으로 읊조린 말이 머릿속에서 둥둥 울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스테이지에 서지 못하는 건 사절이었다.
“저… 고쿠요 씨….”
고쿠요의 안색이 점점 나빠지는 걸 가만히 둘 수 없었던 사키가 먼저 정적을 깼다. 고쿠요가 말없이 사키에게 고개를 돌렸다. 사키를 조용히 응시하는 눈동자가 초조했다. 그건 사키가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그 고쿠요가 위태로운 얼굴을 하다니. 스타레스가 얽힌 것만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순식간에 사람이 뒤바뀌었다. 고쿠요가 스타레스에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정도는 사키도 잘 알고 있었다. 고쿠요 씨도 이런 표정을 짓는구나.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했을 때 고쿠요 씨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래서 사키는 고쿠요를 어떻게든 해주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저희… 적힌 대로 해볼까요.”
“뭐…?”
고쿠요가 눈을 크게 떴다. 사키가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굉장한 말을 내뱉었기에 오히려 고쿠요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나 아냐?”
“그럼요.”
사키는 결심한 듯 고쿠요의 눈을 마주했다. 망설임 없이 또렷한 눈동자에서 결의가 느껴졌다.
“공연, 빠질 수 없잖아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셨는데…. 쭉 옆에서 봐온 제가 모른 척할 순 없잖아요. 고쿠요 씨가 휘말린 건 저에게도 책임이 있고요.”
“분명 찾고 있을걸. 지금쯤이면 두 명이나 동시에 모습을 감춘 걸 모두가 이상하게 여길 테니까.”
“여기가 스타레스에서 아주 먼 곳이라면요? 당장 여기서 나갈 수 있다 하더라도 공연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있나요?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손 놓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할 수 있겠어요?”
거짓말로라도 그런 건 상관없다고 말할 수 없었기에 고쿠요는 그런 자신이 잠시 혐오스러웠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탄식하며 시선을 피하는 것뿐이었다. 고쿠요의 표정이 여전히 혼란스러웠기에 사키는 좀 더 강하게 굴기로 했다.
“어떻게든 나가게 해주겠다고 하셨죠.”
사키는 고쿠요의 팔을 잡고 제게로 끌어당겼다.
“어떻게든… 해주세요.”
두 사람의 무게중심이 한데 모여 매트리스가 출렁거렸다. 사키의 얼굴을 마주한 고쿠요의 눈동자가 여전히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흔들렸다. 고쿠요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넘실거렸다. 조금만 흔들리면 왈칵 흘러넘칠 것 같았다. 고쿠요는 그 불쾌한 감각에 잠식당하지 않으려 애썼다. 고쿠요는 마른침을 애써 삼키며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할 수 있겠지.”
고쿠요가 눈을 내리깔고서 입을 맞출 거리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그렇게 묻는 고쿠요의 목소리가 처음 듣는 형태로 누그러져 있었기에 사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 늦었다. 본방은?”
무대 의상으로 막 갈아입은 고쿠요가 급하게 백스테이지로 올라 숨을 가쁘게 골랐다. 맞춤 제작된 의상이 탄탄한 몸을 딱 맞게 감싸 보기 좋은 형태를 이루었다.
“고쿠요가 늦다니 별일이네.”
타카미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으나 평소와 같은 부드러운 어조였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왼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고 고쿠요는 가볍게 고맙다 대답하며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무대와 관련해선 누구보다 성실하고 의욕 있던 고쿠요였다. 오히려 그만큼 진심인지라 고쿠요로 인해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상황도 일어나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런 고쿠요가 지각한 것을 신기하게 여길 뿐, 날 선 비난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어둠보다 고요히 흐르는 수레바퀴도 가끔 길을 잃고 헤매는 법….”
“어… 잘 모르겠지만 미안. 그것보다 5분 전이다. 이유는 나중에 설명할 테니까.”
고쿠요는 떨떠름한 기색을 떨치듯이 채 마르지 않은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런 고쿠요를 유심히 바라보던 아키라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고쿠요, 설마, 서얼마. 안 그런 척하더니 제일 과감해?”
W팀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아키라를 향했다. 아. 뭐. 고쿠요에 대한 건수, 제대로 잡았어. 이런 느낌. 그러든 말든 아키라는 유들유들한 미소를 만면에 띄고 헤헤, 웃었다.
“머리 덜 말렸단 건 역시 그거잖아? 그거밖에 없잖아? 누구랑 하다 온 거야? 본방 시간 아슬아슬할 만큼 고쿠요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겍… 왔다… 저 이런 농담 아무렇지 않게 하는 거 정말로 적응 안 된다고요.”
고쿠요가 뭐라 답하기 전에 타이가의 얼굴이 급속도로 난감해졌다. 신은 고개를 젓고 타카미의 난처한 웃음소리가 이어질 때까지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고쿠요는 이상하리만치 침묵했다. 평소였다면 곧 한 대 치기라도 할 듯 치켜 올라간 눈초리나, 거친 목소리쯤은 나올법한 일이었다. 어, 고쿠요… 왜 반박 안 하는데…. 생글생글 웃던 아키라의 표정도 점차 당혹스러운 빛으로 물들었다. 그저 평소처럼 굴면 될 일이었다. 고쿠요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원하지도 않았던 일을 저지른 주제에 아예 없던 일이라고 잡아떼기엔 어딘지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기 때문에….
그리고 때마침,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익숙한 목소리가 백스테이지를 울렸다.
“저… 여러분, 늦어서… 정말 죄송해요…!”
이번엔 W팀 모두의 시선이 아키라에게서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쏠렸다. 남자만 가득 한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화창한 톤, 사키였다. 사키 또한 매번 그래왔듯, 무대에 오르기 전 팀을 격려하기 위해 도착했다. 다만 그 타이밍이 같은 곳에서 출발했던 고쿠요 보다 약간 늦었을 뿐이었다.
사키가 백스테이지에 도착한 것을 시발점으로 W팀 전원에게 미묘한 술렁임이 덮쳤다.
“……고쿠요, 진심…?”
뒷감당, 가능하냐고…. 아키라는 혼잣말하듯 작게 덧붙였다. 아키라의 시시껄렁하고 저급한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다. 사키의 모습을 보기 전까진 전원 만장일치인 이야기였다. 서로 속을 읽을 수는 없지만, 고쿠요와 사키를 제외한 전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아키라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 왜 고쿠요가 반박하지 않는지, 왜 사키의 머리카락도 마찬가지로 젖어 있는지, 마지막으로 어째서 둘은 같은 향을 풍기는지.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한데 얽혀 아키라의 저질 농담으로 다시 회귀할 것이다.
이후 누군가는 알고 싶지 않은 정보였다며 눈을 질끈 감고 누군가는 괜히 입을 놀렸다며 절망하고 누군가는 소리 없이 탄식했으나 고쿠요의 눈엔 잘 들어오지 않았다.
“어이, 너, 여긴 왜 온… 하아….”
고쿠요는 사키에게 뒤늦게 뭐라 따지려다 이미 엎질러진 물, 쓸모없는 짓이란 걸 깨닫고 대신 깊게 한숨을 쉬었다. 고쿠요는 상큼한 샴푸와 바디워시 향 한가운데서 망설인 것에 대해 뼈저리게 후회했다.
-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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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운 참새
비밀댓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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