ㅋㅌㅇㅇ
1.
에이버리는 예전부터 자기 주장이 약한 아이들만 골라 먹어치웠다. 취향이 고약하다기 보다는 그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이 그 정도 밖에 안 됐을 뿐이었다. 적당히 눈치가 빠르고 제 몸 건사할 줄 아는 꼬마들은 아무리 돈이 궁해도 제 부름에 많아봤자 두어번 응하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에게 변태같은 취향이 없다고는 하지 못했다. 에이버리가 골라 온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그보다 머리 반개 쯤은 작았고, 여리여리한 몸매에 백인, 긴 머리칼,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금발이 많았다. 그의 파트너가 바뀌는 것을 오래 전부터 봐 온 신사숙녀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시대착오적인 인형 수집가 같다고. 다양한 인종과 신체적인 특징의 인간상이 모여 살고있는 이 도시에서 저만치의 바비 인형같은 금발 미소년을 찾아내는 것도 어느 의미로 소름끼치더랬다. 그나마 성별은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의미에서 그가 저번 토요일 파인다이닝에 데려온 뉴페이스에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옆 테이블에서 이번에는 몇주나 갈 것 같냐며 속닥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달에 걸지. 나는 삼 주. 아니, 내가 볼 때 반년은 가겠는데? 예의상 목소리를 낮췄을 뿐, 딱히 들리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숨기지도 않고 오가는 실없는 목소리에 에이버리는 작게 크흠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이쪽 테이블로 모시겠습니다.”
에이버리의 팔짱을 끼고 있던 소년은 주변 사람들의 은근한 시선에 위축되나 싶더니, 당당한 에이버리의 행동거지를 의식하고 이내 어깨를 꼿꼿하게 펴서 과시하듯 그의 팔을 더욱 세게 쥐었다. 벌써부터 눈치도 볼 줄 아는군. 씰룩거리는 입매를 갈무리하며 에이버리는 웨이터가 뒤로 살짝 빼주는 의자 한 쪽을 향해 턱짓을 했다. 의미를 알아들은 소년은 그의 팔짱을 풀고 자신의 긴 아오자이 상의가 구겨지지 않도록 엉덩이부터 허벅지 라인을 손으로 쓸어 옷새무매를 정돈하고선 앉았다. 몰래 이쪽 테이블을 흘긋거리던 다른 손님들은 그 모습에 감탄했다. 정말 죽여주도록 에이버리의 취향이군… 어두침침한 노을색 조명과 테이블당 두 개씩 얹어져있는 촛불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기엔 충분했으나 모두의 관심사가 된 에이버리의 파트너의 얼굴을 확인하는데는 장애물이 될 뿐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홍채들이 열심히 굴러다니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에이버리의 새로운 고아. 이번에도 어김없이 금발. 아니, 흑발인가? 자세히 보니 목을 덮는 길이의 머리칼 절반 아래에는 검은색의 얼룩덜룩한 염색 자국이 남아있었다. 역시 금발이군. 테가 얇은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는 진한 남색에 가까웠다. 이번에야말로 에이버리의 숨겨진 자식일지도? 쿡쿡거리며 들려오는 말소리를 최대한 모른 척하며 당사자인 소년, 카터는 자신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의 안색을 관찰했다. 천박한 소음들을 익숙하게 흘려넘기는 듯 했지만 작게 꿈틀거리는 눈썹이나 입매를 놓치지 않았다. 여유로움, 태연함, 무관심. 뭐 이런 것들로 자신을 몇 겹씩 감싸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애잔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게 정말 그 소문의 에이버리라고? 카터는 무심코 나오려는 비웃음을 삼키고 식사 도중 이따금씩 보내오는 에이버리의 시선에 보답하듯 미소짓고 실없는 대화를 주거니받거니 했다. 학교 생활은 어떤지, 좋아하는 음식은 따로 있는지, 다음 번에는 기호에 맞는 레스토랑에 데려다 주겠다는 약속까지.
첫 데이트는 그렇게 끝났다.
에이버리. 고아원 애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이름 깨나 날렸다. 처음으로 에이버리와 데이트를 나갔던 건 카터의 윗방에 사는 여자애였다고 했다. 주말마다 데이트 한 번 해줬다고 2천 파운드나 쥐어주는, 돈이 썩어나는 잘생긴 아저씨라는 소문이 고아원에 쫙 돌았었다. 그런데 한 달도 채 안 돼서 그의 평판은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혔다. 손버릇 나쁜 분노조절장애 영감탱. 카터는 사춘기 청소년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는 가십거리란 하룻밤 사이 고아원 전체에 퍼질 정도의 확산력을 가지고 있구나, 얕보면 안 되겠다, 뭐 이런 생각이나 했다.
두 번째는 같은 층에 사는 남자애. 전의 그 여자애와는 다르게 무난하게 관계를 이어 나가나 했더니만 이번엔 삼 주도 안 돼서 끊겼다. ‘그 아저씨? 음침하고 기분 나빠서 저번 주부터 모르는 척 하고 있어. 돈은 아깝긴 한데 내가 집세를 감당 못 할 정도도 아니고… 굳이?’ 조심스레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이나 돌아왔다. 얼마나 하자 난 작자길래 그만한 돈으로 고등학생 하나 못 꼬시는 건지. 그때까지만 해도 카터는 손톱때 만큼의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세 번째.
“내 이름은 에이버리야.”
아 잠깐만… 이거… 장난 아니네. 학교 과학 프로젝트를 위해 방금 갓 채집한 이끼가 손 안에서 으그러졌다.
사실 에이버리를 실물로 본 애들은 얼마 없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고아원 앞 골목에 휘황찬란한 자동차를 끌고 오면 저게 그 잘난 에이버리구나, 하고 다들 짐작할 뿐이었지. 다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상대를 위해 운전석에서 나와 손수 조수석 문을 열어주는 기사 정신도 없었다. 하지만 그 아이들도 돈이나 쥐어주고 원조교제 하는 어른한테 그런 수준높은 에스코트를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도 그에 대한 욕을 많이 들어서인지 카터의 상상 속 에이버리는 상당한 추남이었다. 잘생겼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그정도로 돈을 주는데 안 잘생겨 보이기는 힘들지 싶었다. 오산이었다. 색소 옅은 금발이 단정하게 가르마를 타서 오른쪽 이마가 살짝 드러났고, 나이가 많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눈가에 주름 흔적이 선명했으나 늙어 보이기 보다는 연륜의 흔적으로 보였다. 그냥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카터가 환장할 만 했다.
그러니까… 뭐랬더라? 고분고분 따르고 조신하게 행동하면 되게 좋아한다고 했던가. 한때 에이버리랑 데이트 해 본 적 있는 애와의 대화를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카터가 아진짜요만 남발하던 영양가 바닥의 대화가 이제와서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저는 카터예요.”
속으로 으웩, 구역질을 하며 몸을 배배 꼬고 최대한 수줍어하는 듯한 목소리를 냈다. 분명 제 입에서 난 목소리인데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진짜로 이게 먹히나. 눈을 반쯤 가리는 앞머리를 방패삼아 눈동자를 굴리며 에이버리의 반응을 살폈다. 그가 흡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손을 뻗는 게 보였다. 아 진짜 먹혔어?
“음료수라도 한 잔 할래? 주변에 예쁜 카페를 알거든.”
에이버리는 뻗은 손길로 조심스럽게 카터의 앞머리를 살짝 넘겨줬다. 어머, 진도가 빠른데? 아이는 셋이 좋겠어요. 물론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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